나쓰메 소세키 글을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아름답다 해야 하나, 멋지다고?, 괜찮은, 아주 좋은 글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밖에. 소설 두편과 수필 두편, 특히 '긴 봄날의 소품', '유리문 안에서'가 마음에 많이 머문다. 유리문을 통해 내다 본 바깥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관조하듯, 담담하게 담고있다. 그야말로 수필은 이렇게 쓰는거야에 정답같다, 적합하고 적절한 표현으로. 또한 번역을 굉장히 잘했다. 저자의 마음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 했다. 연중 쓸쓸함, 허전함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계절에서 그의 글 속으로 들어가보면 진짜 가을을 만나게 된다. 가을이 이렇구나를 느끼게 해 준다... 드디어 내가 번역한 글이 책으로 나왔다. 만감이 오간다. 이후야 어찌됐든, 지금은 기쁘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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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봄날의 소품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예를 들면 오늘 나쁜 일을 한다고 치세. 그게 성공하지 못하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네." "그러면 내일 똑같이 나쁜 일을 하네. 그래도 성공하지 못하지. 그러면 모레 또 같은 일을 하네. 성공할 때까지 매일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거지. 365일이라도, 750일이라도 나쁜 일을 똑같이 되풀이하네. 되풀이하다 보면 나쁜 일이 뒤집혀 좋은 일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언어도단이야." "언어도단이지." (76쪽)

"저렇게 아무렇게나 끌을 쓰는데도 생각한 대로 용케 눈썹이며 코가 만들어지는구나"하고 나는 너무나도 감탄한 나머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자 조금 전의 그 사내가, "무슨 소리, 저건 눈썹이나 코를 끌로 만든 게 아니네. 저대로의 눈썹이며 코가 나무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끌과 망치의 힘으로 파낸 것일 뿐이야. 마치 흙 속에서 돌을 파내는 거소가 같은 이치니까 절대 실패할 리가 없지"하고 말했다. 나는 이때 비로소 조각이 그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과연 그렇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9쪽)

안주인은 눈이 쑥 들어가고 코가 움푹 패었으며 턱과 볼이 뾰족하여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는 여자로, 언뜻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여성을 초월하고 있었다. 신경질, 비뚤어짐, 고집, 오기, 의심 등 모든 약점이 온화한 이목구비를 실컷 가지고 논 결과 이렇게 비뚤어진 인상이 된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134쪽)

고양이는 특별히 화를 내는 기색도 없었다. 싸움하는 걸 본 적도 없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누어 있는 자세에도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없다. 한가롭고 편하게 몸을 옆으로 뉘고 햇볕을 쬐고 있는 것과 달리 움직일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아니 이것으로는 아직 형용이 부족하다. 께느른함의 정도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움직이지 않으면 외롭지만 움직이면 더욱 쓸쓸해지게 때문에 가만히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43-144쪽)

바람이 높은 건물에 부딪혀 생각처럼 똑바로 빠져나갈 수 없어서인지 갑자기 번개 모양으로 꺾여 머리 위에서 비스듬히 포석까지 불어 내려온다. (147쪽)

10월의 해는 조용한 산골짜기의 공기를 하늘 중간에서 감싸 직접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 너머로 도망친 것도 아니다. 바람 없는 마을 위로 언제나 떨어져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뿌옇게 있다. 그사이에 들과 숲의 색이 점차 변해간다. 신 것이 어느새 달콤해지는 것처럼 골짜기 전체에 세월이 더해간다. (181쪽)

더구나 나는 작년 연말부터 감기에 걸려 거의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매일 이 유리문 안에만 앉아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전혀 모른다. 기분이 좋지 않아 책도 읽지 않는다. 그저 앉았다 누웠다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내 머리는 이따금 움직인다. 기분도 다소 변한다. 아무리 좁은 세계라고 해도 나름대로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작은 나와 넓은 세상을 격리하고 있는 이 유리문 안으로 때때로 사람이 들어온다. 그들은 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한다. 나는 흥미에 가득 찬 눈으로 그들을 맞이하거나 보낸다. (209-210쪽)

불쾌감으로 가득 찬 인생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는 자신이 언젠가 한번은 이르러야 하는 죽음이라는 지경에 대해 늘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삶보다 편한 것이라고만 믿고 있다. 어떤 때는 그것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지고의 상태라고 생각하는 일도 있다. (226쪽)

마주 앉은 O와 나는 무엇보다 먼저 서로의 얼굴을 보고 거기에 아직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 그리운 꿈의 기념물처럼 남아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예전의 마음이 새로운 기분 안에 어렴풋이 가미되어 있는 것처럼 온통 어슴푸레하게 흐려져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무서운 ‘시간‘의 위력에 저항하여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 지금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과거라는 불가사의한 것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231쪽)

이것이 그들의 허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허영은 돈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이었다. (262쪽)

비뚤어진 내 마음은 별도로 하고 나는 과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다는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다. 동시에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일부러 평이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은근히 그 사람의 품성에 창피를 준 것과 같은 해석을 한 경험도 많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93쪽)

나는 가끔 그 여자를 만나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만나보면 필경 할머니가 되어 있어 옛날과는 전혀 다른 얼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바짝 말랐을 것이다. (303쪽)

어머니는 내가 열서너 살 때 돌아가셨지만, 지금 멀리서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환상은 기억의 실을 아무리 더듬어가도 할머니로만 보인다. 어머니의 만년에 때어난 나에게는 끝내 어머니의 젊고 싱싱한 모습을 기억할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303-304쪽)

약한 바람이 때때로 화분에 심어진 구화란의 긴 잎을 흔들었다. 정원수 안에서 휘파람새가 가끔 서툴게 지저귀었다. 매일 유리문 안에 앉아 있는 내가 아직 겨울이다, 겨울이다,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봄은 어느새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명상은 아무리 앉아 있어도 형태를 이루지 못했다. (309-310쪽)

집도 마음도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유리문을 활짝 열고 조용한 봄 햇살에 싸여 넋을 잃은 채 이 원고를 끝낸다. 그런 후 나는 이 툇마루에서 잠깐 팔꿈치를 구부려 베개로 삼고 한숨 잘 생각이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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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일찍 여윈 외동 남편은 어느새 며느리가 없는 우리집 맏아들이 되어, 진즉에 하고 싶었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한 그런 일들을 장인장모에게 열심히 하고 있다. 긴 연휴를 온전히 친정에서 지내는 나를 동생들과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먼저 이 나이에 부모님이 계시다는 부분이 가장 크지만... 온전히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음식을 팔십이 다된 엄마와 팔십이 훨씬 넘은 아빠와 준비했다. 여전히 젊은이로 알고 있는 부모님의 종횡무진하에 자잘한 심부름만 하였지만 손님들이 엄청 많이 오셨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절대 공감한다... 찾아온 손님들의 대다수는 한때 우리집에 기숙하며 학교를 다녔던 막내 외삼촌, 사촌들과 이웃이었다. 엄마의 무를 넣고 푹 조린 고등어와 배추김치, 간장에 버무린 찐 가지, 고추장 바른 북어, 멸치조림, 구수한 된장에 여린 이파리를 가진 생채, 묵나물, 취나물, 도라지와 시금치나물, 찐 조기, 문어, 갈비탕, 잡채, 배추전, 오징어 튀김, 전유어, 동그랑땡, 부추전, 감주 등등 그 어떤 재료로도 뚝딱하여 만들어 낸 음식을 맛본 그들은 언제나 엄마의 밥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꼭 식사시간에 맞춰 그들의 식구들까지 데리고 온다. 몇번씩 밥상을 차렸지만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다... 가끔씩 엄마가 만들어 준 밥상이 그리운 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니까... 심지어 엄마가 양육한 손자손녀들 또한, 그네들의 친구들이 먹지 않는 나물반찬들을 쓱쓱 맛있게 먹는 거 보면, 햄이 들어간 음식은 도무지 먹기 힘든다고, 콜라는 한참이나 김이 빠진 후에야 먹는... 그렇게 먹은 음식으로 객지에서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먹은 음식안에 자신의 삶이 들어 있는 거 같다. 당연히 음식에 따라 추억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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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10-2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풍경이네요

JUNE 2017-10-27 15:23   좋아요 0 | URL
Be happy! Thanks!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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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나온 책과 읽은 책의 표지가 다르기에, 밑줄긋기의 쪽수도 다를 수 있다.)
수박은 한국에서는 과일로 취급하지만, 서양에서는 좀 달랐다. 뭐든 굽고 볶는 서양은 과일도 날로 먹는 법이 적었다. 배나 사과, 복숭아, 파인애플, 바나나도 굽고 삶았다. 물 많은 멜론이나 수박도 여지없었다. 수박을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오일이나 버터 녹인 팬에 구우면 제법 그럴싸한 맛이 난다. 아하, 수박도 채소구나, 그런 미각의 신천지를 열어준다. 겉은 따뜻하고 부드럽게 녹고, 속을 씹으면 아삭하다. 수박을 꼭 익히지 않더라도 후식이 아닌 요리에 쓰는 건 흔한 일이다. 듬성듬성 썰어서 샐러드에 넣는다. 이건 그리스식이 유명하다. (48쪽)

호남의 한식 기행은 수직적인 변화를 가진다. 저 남도의 끝이 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맛이라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맛은 유순해지고 슴슴한 재로의 맛을 강조한다. 담양의 밥상에서는 그 온후하고 융숭깊은 자연을 보여준다. 갯것과 들과 산의 물산이 고루 섞인 밥상은 천천히 당싱의 혀를 어루만진다. (102쪽)

한 개의 달걀은 백 몇십 원에 불과하다. 그렇게 값싼 달걀이지만, 무궁무진한 요리법으로 요리사들을 괴롭힌다. 주로 미국이나 영국 요리사에게 해당되지만, 간단한 아침 달걀 요리 하나에서도 A4지 몇 장을 채우고도 남을 요리법이 있다. 우선 프라이를 보자. 뒤집지 않고 한쪽만 익히는 서니 사이드 업, 뒤집지만 살짝 굽는 오버 이지, 완전히 익히는 오버 하드 등으로 나뉜다. 영국이나 미국의 고급 호텔의 아침 식사는 다른 건 몰라도 달걀만큼은 요리사가 직접 불을 때서 즉석에서 요리하는 게 원칙이다. 파랗게 면도를 한, 갓 수습을 땠을 것 같은 어린 요리사가 살가운 표정으로 주문을 받다 만들어주는 달걀 요리는 정말 받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다. 앞서의 프라이 요리는 물론, 다른 요리도 다 된다. 마구 휘젓는 것 같지만 일정한 농도와 질감을 내야 하는, 그래서 초보 요리사를 골탕먹이는 스크램블드에그도 있고 끓는 물에 예쁘게 익혀내는 수란도 있다. 치즈 등 고명을 얹어 오븐에서 굽는 사이드 에그도 있으며 반숙이나 완숙 달걀은 기본이다. (169쪽)

대구는 대서양에서 잡히지만, 명물인 소금에 절인 대구는 지중해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맛이 든다. 마치, 아무리 좋은 고등어라도 간잽이의 절묘한 소근 재는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이, 그 대구 ‘간잽이‘의 손기술은 날래고 아슬아슬하다. 너무 짜게 소금을 매기면 대구의 조직이 쭈그러들고, 심심하면 오래 보관하지 못하고 맛이 제대로 배지 않는 까닭이다. 내장와 머리를 버린 대구를 한 켜로 쌓고 ‘간잽이‘는 질 좋은 천일염을 삽으로 펴서 끼얹는다. 다시 대구가 한 켜, 한 켜 올라가고 그때마다 엄청난 양의 소금이 대구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대구살이 소금을 먹어 수분을 내주면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인간이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절임의 미학이 이루어지는 기나긴 순간들이다. ‘꾸득꾸득‘하다고 해야 할까. 대구가 적당한 수분을 남기고 절여지면 비로소 바칼라, 그러니까 포르투갈 사람들이 바칼라우라고 부르는 이 천상의 해물이 완성된다. (224쪽)

내가 간혹 들르는 서울의 문어 파는 술집들은 하나같이 이미 삶은 문어를 강원도든 경상도든 산지로부터 받아 썼다. 직접 요리하지 않고, 이미 삶아진 것을 받는다고 자랑하는 희한한 식당도 다 있구나,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던 거다. "간고들어는 간잽이가 젤로 중요하고, 문어는 삶은 사람이 젤이다." 어머니와 꽤 찬한 그 문어 가게 주인에게 물어봐야 이것도 ‘며느리도 안 가르쳐주는‘ 비법이라고 할까. 문어마다 다리 굵기가 다 다른데도 어떤 문어든 씹으면 살살 녹았다. 나는 문어를 씹으면서 그 비법을 음미했다. 다리 안쪽의 신경섬유질을 둘러싼 부분을 살짝 덜 삶아서 쫀득하게 씹히고, 그 주변의 살은 어느 정도 푹 익힌 것처럼 이빨 사이로 쑥쑥 씹혔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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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을 붙잡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와 같은 생각들이 많이 든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일들, 하지만 그런 일 속에 있다면 어떨까, 어떻게 할까를 고민해 보지만, 종내 알 수 없다. 함께 경험한 일들도 서로의 감정이 다르니, 각자의 경험치에서 느끼고 대처하니, 나의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를 말해보지만, 멀뚱한 너를 볼 뿐이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156쪽)." 마음 아픈 일이 한두가지 아니지만, 아프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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