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시선 34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에게 속하고 어디에도 영원히 속할 수 없는
말이야 천만번 못하겠는가 내 마음이 당신을 이리 사랑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당신꺼]라고 말하지 않는다
햇살을 곰곰 벗기면서 매일 다시 생각해도
당신이 어떻게 내 것인가 햇살이 공기가 대지가 어떻게,
내 것이 아닌 당신을 나는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

-[내꺼] 중에서(18-19쪽)

밥이 변해 똥이 되는 게 시간이라는 걸까 밥이 똥이 되는 것처럼 무언가 이 몸 안에서 변해 내가 되는 것을 흔쾌히 저지르는 게 삶이라는 걸까 딱 그런 문장은 아니어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무서운 거겠구나 정신 바싹 차려 살아야겠구나 저의 철학이 거기까지 나아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철학‘ 중에서(25쪽)

만약에 말이지 이 사랑 깨져 부스러기 하나 남지 않는다해도 안녕 사랑에 빠진 자전거 타고 너에게 달려간 이 길을 기억할게
사랑에 빠져서 정말 좋았던 건 세상 모든 순간들이 무언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

-‘사랑에 빠진 자전거 타고 너에게 가기‘ 중에서(45쪽)

이상하지 않니? 식량은 충분한데 한편에선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 죽어가는 아이들 옆에서 배불리 먹은 걸 토하다 죽어버린 사람들이 걸어다녀. 색색으로 물들인 죽음들을 쇼핑하는 누군가들---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무덤‘ 중에서(57쪽)

마흔,
나는 이제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그 모두를 사랑할 자신은 없어서
편협한 사랑이 용서되는 시인으로 남기로 한다

-‘마흔‘ 중에서(61쪽)

쓸쓸하다,는 형용사
하지만 이 말은
틀림없는 마음의 움직임

-‘쓸쓸하다‘ 중에서(91쪽)

있음과 없음
쾌락과 고통
절망과 희망
흰색과 검은색이 반대말인가

반대말이 있다고 굳게 믿는 습성 때문에
마음 밑바닥에 공포를 기르게 된 생물,
진화가 가장 늦된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에게 가르쳐주렴 반대말이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어린이들아 어른들에게
다른 놀이를 좀 가르쳐주렴!

-‘여전히 반대말놀이‘ 중에서(9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들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레알? 현실을 꿈이라 여기고 싶다. 먹먹하여 몇번이나 책을 덮었다. 마주하기 싫었다. 그 와중에 자기 삶을 오롯이 살아낸 허정숙은 대단하다. 딸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밀어 준 아버지가 있어서 일게다. 그리고 그만큼 받침해 줄 수 있는 지식과 힘, 여유까지... 주세죽, 고명자는 남과 북 어디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죽었다... 표지의 단발머리 세여자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다... 그런데 근대사를 드려다보면 몇몇 남자들만 있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그녀들을 호명하여 이념의 소용돌이 기간을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로 엮은 작가도 대단한 그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몽양은 잠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명자, 이거 너무 늦은 충고인 것 같네만 60년 살아본 경험에서 나오는 얘길세.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 만나지. 그중에 어떤 사람은 지나가버리고 어떤 사람은 머무르네. 한때 자기 몸처럼 소중했던 사람이 짧은 인연으로 끝나기도 하고 금석처럼 굳세고 단단할 것 같은 관계가 어이없이 깨지기도 하네. 사람들은 각기 자기만의 인생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니까. 저 스스로도 어찌 못 하는 것인데 남이 어찌할 수 있겠나. 억지로 어찌하려다 보면 집착이 되고 그게 우리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도둑질해가버린다네. 그러니 지나가는 사람은 지나가게 두고 머무는 사람은 머무르게 두게." (166쪽)

분할점령이 영구 분단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분단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들이 주어졌지만 불발의 역사에 그치고 만 것은 남북을 통틀어 그것을 현실화시킬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만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면 그건 여운형이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자신을 정의로, 타인을 불의로 설정하는 지점에서 역사의 비극이 싹튼다.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점령한 것은 분단의 시작일 뿐이었다. 분단을 완성한 것은 어리석음과 아집과 독선이었다. 극악한 식민지 상태에서 갓 벗어난 사람들에게 대화와 타협의 매너를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관대함과 현명함의 미덕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이 없는 환경에서 훈련되는 것이다. (174-175쪽)

임시정부 시절의 백범은 오른손으로 정치를 하고 왼손으로 테러를 했고 그것으로 항일투쟁의 별이 되었지만 해방 후에는 두 손을 동시에 쓰고 있었다. 이제는 동족들, 자신의 정적들을 상대로 말이다. (182쪽)

사흘 간의 속전속결은 일찍이 글러버렸고 압록강 두만강 이북으로 축출당하는 처지를 간신히 면했지만 중국과 유엔이 붙어버렸으니 전쟁은 어느 세월에 끝날지 예측불허가 되어버렸다. 무수한 인민을 희생시키고 북반부 도시들을 잿더미로 만든 책임을 누구가는 져야 할 것이다. 전쟁을 발의한 것도, 밀어붙인 것도 수상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또한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것이며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탈린과 모택동을 설득했지만 수상의 예견은 어긋났다. 스탈린이 시골 청년 하나를 발탁해 국가권력을 안겨놓았더니 이 젊은이가 기고만장한 나머지 전쟁을 벌여 파국을 자초한 셈이다. 정숙은 수상이 마흔만 넘었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267쪽)

패전 책임이란 나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루저가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 어쩌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게임이라 이것도 하나의 전쟁이었다. (290쪽)

누가 잡든 권력의 속성은 똑같다는 생각, 어느 개인이 더 현명하든 덜 현명하든 집단이 되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권력을 포식한 집단이 권력에 굶주인 집단보다 낫지 않을까. 굶주린 이리떼보다 배부른 사자 떼가 낫지 않을끼. 이건 가장 저급하고 비겁한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인데 자신이 어느 결에 이토록 회의주의자가 되었던가, 하고 정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29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헌영이 발제를 했는데 그가 ‘반드시‘, ‘절대‘라는 단어들을 말할 때 세죽은 저도 모르게 몸이 저릿저릿했다. 그는 논리 정연했지만 그녀가 헌영에게 끌린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확신에 찬 문장들 사이사이 잠시 침묵할 때 그의 얼굴에 내려앉는 고독의 그림자, 거기서 세죽은 동질감을 느꼈다. 강인함과 단호함에는 어떤 서글픔과 외로움이 깃들어 있었는데 그걸 엿본 사람은 그날 그 자리에서 그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47쪽)

그런데 명색이 사회주의자라는 사람이 비싼 축음기를 사들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다니. 유학생 처지에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렇소.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했소. 정숙 씨는 솔직하고 명석하고 장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부르주아의 한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요. 하루만 굶으면 혁명도 동지도 팽개칠 수밖에 없는 게 부르주아의 생리요. 언제든 자산계급의 물적 토대로 돌아갈 수 있는데 왜 위험이나 희생을 감수하겠고. 모르긴 몰라도 정숙 씨는 서대문형무소 사흘이면 [자본론]을 철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말거요. 쉽게 말해서 우리하고는 계급적 속성이 다른 살마이오. 갈 데 없는 부잣집 외동딸이란 말이요. (62쪽)

정숙은 일본 역사를 칼잡이 역사라고 놀려왔다. 하지만 수백 년 문과 체질로 살아온 조선의 엘리트들이 지역, 학파, 족벌로 편을 갈라서는 끈질기게 옳으네 그르네 말로 물고 늘어지는 것도 지겨웠다. (149쪽)

1920년대는 해방된 여자들을 받쳐줄 경제적, 문화적 토대가 없던 시대였다. 신여성은 너무 일찍 핀 꽃이었다. 성적, 사상적 모험을 즐긴 신여성이라면 혹독한 응징을 당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허정숙이라는 신여성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너그러운 환경을 갖고 있었다. (158쪽)

1926년은 한 해 내내 공산당 사건으로 누가 검거됐다는 뉴스와 소문 속에 해가 뜨고 졌다. 정당이라는 근대적 개념으로 이 단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세 개의 일간지를 읽는 몇만 명의 인텔리 정도였고, 들은풍월과 소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 옛적 구월산이나 율도국에 있었다던 녹림당이나 활빈당 같은 어떤 것이 요사이 경성에 출몰했다는 얘기인가 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무렵 ‘공산당‘이란 어딘가 유럽산 장미의 향기를 풍기는 고급지고 이국적인 무엇이었다. 공산, ‘함께 만들어 함께 가진다‘는 말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161쪽)

그녀는 자신이 스캔들이나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파산이 아니라 육체의 기습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33쪽)

세죽은 단야와 함께 잠자리에 들 때 문든 헌영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녀는 단야의 얼굴에 겹쳐지는 헌영의 기억을 떨쳐내려 애썼다. 하지만 기억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다. 아니, 머리가 그의 이름을 잊는다 해도 몸에 새겨진 체취, 마음 밑바닥에 무늬져 있는 연민은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그녀에겐 영영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292쪽)

혁명이 완료되면 달라질 거다, 라는 생각이 바로 이상주의라는 것 아니겠소. 나는 그런 이상주의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버렸소. 정치란 양의 얼굴을 한 늑대요. 어떤 정치에도 최선은 없소. 진보는 상대적인 것이고 더 나은 쪽을 택한다는 것뿐이오. (395쪽)

하지만 세상은 드러나는 것과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부조리는 개인뿐 아니라 역사도 비켜가지 않았다. (39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건데. 그 나이가 부럽다. 단 하루의 여행도 어려웠던 그 때가 떠오른다. 지금의 일상은 당연하게 나의 것이 된 지 오래이고, 웬만해서는 마음이 미동조차 않는다. 점점점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일단 이번 주말은 동해로 가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