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헌영이 발제를 했는데 그가 ‘반드시‘, ‘절대‘라는 단어들을 말할 때 세죽은 저도 모르게 몸이 저릿저릿했다. 그는 논리 정연했지만 그녀가 헌영에게 끌린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확신에 찬 문장들 사이사이 잠시 침묵할 때 그의 얼굴에 내려앉는 고독의 그림자, 거기서 세죽은 동질감을 느꼈다. 강인함과 단호함에는 어떤 서글픔과 외로움이 깃들어 있었는데 그걸 엿본 사람은 그날 그 자리에서 그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47쪽)

그런데 명색이 사회주의자라는 사람이 비싼 축음기를 사들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다니. 유학생 처지에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렇소.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했소. 정숙 씨는 솔직하고 명석하고 장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부르주아의 한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요. 하루만 굶으면 혁명도 동지도 팽개칠 수밖에 없는 게 부르주아의 생리요. 언제든 자산계급의 물적 토대로 돌아갈 수 있는데 왜 위험이나 희생을 감수하겠고. 모르긴 몰라도 정숙 씨는 서대문형무소 사흘이면 [자본론]을 철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말거요. 쉽게 말해서 우리하고는 계급적 속성이 다른 살마이오. 갈 데 없는 부잣집 외동딸이란 말이요. (62쪽)

정숙은 일본 역사를 칼잡이 역사라고 놀려왔다. 하지만 수백 년 문과 체질로 살아온 조선의 엘리트들이 지역, 학파, 족벌로 편을 갈라서는 끈질기게 옳으네 그르네 말로 물고 늘어지는 것도 지겨웠다. (149쪽)

1920년대는 해방된 여자들을 받쳐줄 경제적, 문화적 토대가 없던 시대였다. 신여성은 너무 일찍 핀 꽃이었다. 성적, 사상적 모험을 즐긴 신여성이라면 혹독한 응징을 당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허정숙이라는 신여성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너그러운 환경을 갖고 있었다. (158쪽)

1926년은 한 해 내내 공산당 사건으로 누가 검거됐다는 뉴스와 소문 속에 해가 뜨고 졌다. 정당이라는 근대적 개념으로 이 단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세 개의 일간지를 읽는 몇만 명의 인텔리 정도였고, 들은풍월과 소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 옛적 구월산이나 율도국에 있었다던 녹림당이나 활빈당 같은 어떤 것이 요사이 경성에 출몰했다는 얘기인가 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무렵 ‘공산당‘이란 어딘가 유럽산 장미의 향기를 풍기는 고급지고 이국적인 무엇이었다. 공산, ‘함께 만들어 함께 가진다‘는 말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161쪽)

그녀는 자신이 스캔들이나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파산이 아니라 육체의 기습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33쪽)

세죽은 단야와 함께 잠자리에 들 때 문든 헌영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녀는 단야의 얼굴에 겹쳐지는 헌영의 기억을 떨쳐내려 애썼다. 하지만 기억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다. 아니, 머리가 그의 이름을 잊는다 해도 몸에 새겨진 체취, 마음 밑바닥에 무늬져 있는 연민은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그녀에겐 영영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292쪽)

혁명이 완료되면 달라질 거다, 라는 생각이 바로 이상주의라는 것 아니겠소. 나는 그런 이상주의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버렸소. 정치란 양의 얼굴을 한 늑대요. 어떤 정치에도 최선은 없소. 진보는 상대적인 것이고 더 나은 쪽을 택한다는 것뿐이오. (395쪽)

하지만 세상은 드러나는 것과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부조리는 개인뿐 아니라 역사도 비켜가지 않았다. (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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