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권의 책을 들고 여기 저기로 돌아다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아직도 정답이 있기라도 한 듯, 애써 찾으려 한다. '여자 둘이 사는 이야기, 젊은 나이에 유럽으로 떠난 이야기, 누군가의 독서 이야기' 등등은 아쉬움으로 머물러 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그 나이에 이들처럼 살았다면, 달라졌을까.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강박같은, 그냥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벌써 손자들까지 본 동생은 편입하여 공부하는 걸까... 공부를 최고로 잘했던 동생은 여전히 올에이플과 일등을 하고 있다.. 나도 뭔가를 해야 할까.. 해야 하나.. 지난 해 아들은 마지막 학기를 혼자 살고 싶다하여 오피스텔로 내 보냈는데, 직장 구할 때까지 다시 들어오겠단다. 무지 자유로웠지만 월세가 너무 아깝단다. 하긴 학교도, 집도 모두 가까운 곳에 있으니, 그리고 조만간 자동차도 하나 더 필요할 듯 하다.. 난 거울을 볼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고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시력이다. 책 읽기가 힘들어 지고 있다. 안경을 바꿔야 한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된 그녀의 이야기, 심플한 이야기지만, 과거의 아쉬움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라, 이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오랫만에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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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김원희 지음 / 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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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내가 살아온 세상과 내가 지나온 시간을 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25쪽)

누구나 좋다고 하는 곳을 누구나 다 좋아할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여행의 색깔은 다채롭다. 우리는 남이 좋다고 하는 것을 본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아름다운 장소도 정말 많을 텐데, 그곳에 가본 사람이 없기에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81쪽)

이제 노년은 누구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이제는 자녀에게, 세상에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시대가 아니다. 다리가 아파도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149쪽)

나이가 들면 사랑을 무색하게 만든다. 누군가가 나이든 누군가에게 잘 대해준다는 것은 사랑이라 말하기보다, 애긍*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누군가가 나이든 그대를 모른 척하거나 적대시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그것은 그가 그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늙음, 그 육신의 추레함이 싫을 뿐이니까. (156쪽)

*애긍: 애처롭고 가엾게 여기다.

그래서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 책 속의 작은 공간 하나, 책 속에 묘사된 그곳의 하늘과 땅, 식당, 기차역, 사람들, 은밀한 사랑과 모험, 그곳은 어떨까?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그곳을 동경하고 그곳으로 떠나는 꿈을 꾼다.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어느 시간 그곳에 내가 있을 때의 환희.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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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 시간만 나면 만나려고, 만나야겠다는, 만나야한다는, 그런 마음을 들게 하는 아버지,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었다. 힘들고 지난했던 세월에서도, 딸들을 귀한 선물처럼 키워주셨던, 아버지와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아버지는 당연히 그러하다는 역할로만 보았던 아버지를 오롯이 개인으로 볼 수 있었다.

딸을 잃은 딸이 몇년만에 어머니가 입원하면서 혼자 지내게 되는 아버지를 돌보면서, 아버지의 삶을 조금 알게 된다.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된다. 자식들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부분과 아버지가 생각하는 자식들과의 관계도,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을 연결해 본다.   

읽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자전거를 태워주고, 학교로 잊고 간 물건을 가져다 주고, 생일을 꼭 챙겨주고, 공납금을 제일 먼저 내 주고, 국민학교 때 안경를 맞춰 줘 부러움(?)까지, 가방과 운동화를 신겨서 보내고, 피아노도 배우게 하고 피아노도 사주고, 딸들을 대학시절 하숙을 시켜주고, 딸 네명을 대학을 보내고, 백일 사진과 돌사진까지 모두 찍어주고, 친구처럼 같이 놀아주고 이야기 나누고 대해주신 아버지... 당신이 제대로 못 배워 우리에게 그저 먹여 준 거밖에 없어, 그런 것이 가장 한이 된다고 하신다. 어쩜 당신의 아버지가 전쟁 통에 깊은 산속으로 아들을 대피시켰던, 소설 속 아버지의 손마디처럼, 그래서 학교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신의 배우고 싶었던 소망을 드러내신거다.

너희들 덕에 살고 있다, 소설 속의 아버지가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 라고(416쪽)' 말씀하시듯, 아버지도 '늘 너희들 덕에'라는 말씀을 하신다. 너희들이 있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도 하신다. 아무도 없고, 가진 게 하나도 없는 데서 순전히 그분의 노력과 애씀으로 우리가 살아있기에, 우리도 '아버지 덕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라고 말씀드린다. 따라서 덧붙여 나오는 말, 좀 더 배운 아버지를 만났더라면...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라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린다. 당신은 언제나 '고맙다'라고 응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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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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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버스가 출발한 후 아버지는 그 자리에 얼마나 더 서 있었을지를. 나를 태운 버스가 사라진 후의 어두운 신작로를 아버지는 무슨 마음으로 내다보았을지를. 아버지가 얼마 후에나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지를. (17쪽)

아버지는 어느날의 바람 소리, 어느날의 전쟁, 어느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날으 폭설, 어느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어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76쪽)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126쪽)

나는 아버지를 한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아버지 개인데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간혹 조부를 원망하며 학교에나 보내주실 일이지, 했던 혼잣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197쪽)

내가 웃으니 아버지가 재밌냐? 물었다. 내가 고갤 끄덕이자 아버지는 바로 그거라고 했다.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재밌게 여기면 금방 탈 수 있다고 했다. 넘어지려고 해도 뒤에서 아버지가 꽉 붙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228쪽)

다 지나간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업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231쪽)

세상의 기준은 이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소. 필요에 따라 변화하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니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312쪽)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띁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간 아닌가. 자네 아버지는 자네 옆에 그저 있어주고라도 싶은데 자네가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며 고통스러워했네. 자네가 죽은 사람처럼 기척이 없다고 애태웠지. (323쪽)

인간이든 동물이든 죽은 다음엔 짓무르고 분해되는 육체만 남을 뿐이지. 나는 평생 그 잊을 수 없는 냄새에 시달리며 살고 있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내 뒤를, 내 곁을 따라다니는 그 지긋지긋한 냄새...... 그러니 저 가엾은 생명을 묻어주고 가게나. (324쪽)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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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들어서면서 펼친 책을 이제야 덮었다. 한탸와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 문장 속으로 내가 갇히는 기분이 들어 숨이 막혔다. 생일도 지나고 어버이날도 지났다. 먼길을 오갔다... 그간 군에 간 조카 에미 때문에 가족톡톡방에는 조카찾기 시합하느라 즐거웠다. 똑같이 입고 마스크까지 낀 수십명의 아이들 속에서 바늘 찾기와 같은 거지...  이모들과 외삼촌, 사촌들까지 편지쓰느라 난리였다. 심지어 90살과 83살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편지까지 써서 보냈다. 아버지는 90세가 된 당신을 받아들이시는 게 힘든 거 같다. 정말 80대와 몇달 사이인데 엄청 차이가 있다. 정신이 조금씩 사라진다하시면서, 잠자듯이 죽도록 기도하신단다.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서 자식들을 위해 기도부터 시작하신다.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하러 가자해서 함께 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시끄러운 압축기 소리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세상 속에 있는 한탸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35년동안 파괴하는 일을 했는데 이는 딜레마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일하는 것의 물아일체의 경지이다. 책을 읽고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교양과 지성을 쌓았지만 책은 그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결국, 압축기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압축기 일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대학은 나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탸는 부브니 수압 압축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태도에서, 아무 생각없이 책을 다루는, 오직 일로만 여기는 그들의 모습, 심지어 현장학습 온 아이들이 책을 찢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는다. 한탸가 생각하는 일에 대한 자세가 그의 밖에서는 아주 하찮은 모습이다. 외부의 억압에서 책은 한탸의 구원과 마찬가지이다. 노동의 가치가 전혀 다르다. 나 또한 34년동안 어떻게 일을 해 왔는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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