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살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그런데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텍스트가 생겨난다. 텍스트를 읽으면 시대를 알게 된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런데 현실과 아주 다른 텍스트가 만들어진다. 텍스트를 소통시키는 컨텍스트의 힘이 시대를 좌지우지 한다. 우리를 좌우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른 채 살고 있다. 이러한 텍스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불행하다고 저자는 말하는 거 같다. 세상이라는 텍스트안에서  우리는 진실된 컨텍스트로 살아야 한다. 이미 앞서가 있는 텍스트가 우리의 미래까지 어떻게 하지 못하게 말이다. 이 상황에서 책을 읽을까 말까를 망설이기 보다는 그래도 읽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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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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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넓게 말해서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즉, 세계가 텍스트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텍스트는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거짓을 앞세워 자신에 앞서 있던 세계를 희롱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텍스트는 그것 자체로 일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 와중에 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도 생겨났다. -4쪽

텍스트를 담는 그릇이 있고, 그것을 퍼뜨리는 매체 네트워크가 있다고 할 때, 세 번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그 그릇과 네트워크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 것인가'이다. 이것을 매체를 둘러싼 일종의 권력이라 부를 수 있겠는데, 이렇게 본다면 '매체'는 텍스트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거대한 컨텍스트를 가리키는 말로 다시 규정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컨텍스트가 끊임없이 텍스트 내용 자체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텍스트를 제어하기도 하고, 매체가 가진 테크놀러지의 독특한 측면들을 텍스트가 극대화해서 활용하기도 하는 등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36-37쪽

인간의 법을 지키지 않은 자라면 형제라 해도 죽인다는 것, 신의 법을 따른다면 형제는 죽일 수 없는데도 인간의 법에 따라 죽인다는 것, 이것이 로마적 실용성의 사회적 단면인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다. 로마를 보는 우리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옳음과 옳음의 대립과 같은 상황 때문에 마음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45쪽

로마인들은 행복했다. 자신의 몸을 바쳐 지켜내기만 하면 자신의 불멸성을 보장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제국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 거래를 통한 이익이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각인되었다는 것, 이 점이 로마를 지탱한 근본적인 힘이었다. 이러한 로마가 무너졌다는 것은 불멸성 보장체제가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이 붕괴는 한순간에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게 아닌데'라는 의심은 헌신의 감소를 낳고, 헌신의 감소는 또다시 체제의 허약함으로 귀결되고, 그러다가 로마는 무너져 내린 것이다. -52쪽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직접적으로 이러한 대단함에서 나왔겠지만, 그 말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고, 그 길을 따라 로마로 모여드는 물자와 사람, 정보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들이 바로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어주는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 가도가 덤불 속으로 사라져갔다는 것은 길에 수레나 사람이 다닐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어떠한 정보도 교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국의 붕괴는 우선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는 아무런 교류도 없었고, 라틴어라는 공용어는 잊혀지고 방언의 시대가 되었다. 덤불로 뒤덮인 가도, 마을과 마을 사이의 무성한 숲, 야만족의 끊임없는 침입과 더불어 모든 네트워크가 마비되고 두절된 것이다. -54쪽

텍스트를 수용하는 집단과 텍스트를 담는 매체가 텍스트의 유통과 전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임은 이미 앞서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러면 이것을 좀더 다듬어보기로 하자. 거듭 말하지만 텍스트는 외따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이 널리 열심히 읽히는 것은 텍스트를 생산하고 그것이 전달되는 중간의 여러 절차들과 조직들 전체가 유기적으로 작용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 전체는 크게 세 가지 층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텍스트의 내용이요, 다른 하나는 그 텍스트를 만들어 내고 공유하는 조직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 텍스트를 기록하고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테크놀러지, 즉 좁은 의미의 매체라는 층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가 서로를 긴밀하게 제약하면서 성립한다. 이를테면 텍스트를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방식은 텍스트 자체에 영향을 끼질 수도 있고 그것을 공유하는 조직의 형태에도 파급력이 있을 수 있는데, 이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점은 모든 요소들의 그러한 관계들은 순수한 텍스트적인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텍스트의 내용 자체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컨텍스트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이다.-68-69쪽

[백과전서]는 기본적으로 지식을 다시 분류하려고 한다. 지식뿐만 아니라 현상을 분류하는 방식은 원칙상 임의적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든 제멋대로 현상을 구분할 수 있으나 이것이 널리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권력자는 권력을 통해 정당화하거나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임의적 구분을 통용시킬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면 사물과 지식은 분류 도표로 확립되어 질서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배과전서파는 지식 분류가 가진 이러한 권력구조를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전통적 질서를 해체하는 전략으로 새로운 지식 분류를 채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백과전서] 편집 작업에 착수했다. -80-81쪽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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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글을 읽었다. 그런데 뭔지 모를 불편감이 들었다. 목수정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그대로 하면서 살고 있다. 참으로 용기가 있다. 타인의 삶을 드러다보면서 내 삶도 보게 된다.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랬을 때 누군가 나의 할 일을, 보이지 않는 우렁각시가 있었다. 수정씨는 나보다는 갭이 작다. 개인의 가치와 행동에서의 차이가... 그리고 물질적으로 부유하지 않다는 게 마음에 든다. 마음은 풍성하고 삶의 질은 굉장히 높을거라는 것 또한...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수정씨의 삶의 방식이 큰 대안처럼 자꾸만 내게 다가와 불편했다. 꼭 이렇게 살지 않았다면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이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할까... 사적이고 내밀한 촘촘하게 그래서 뼛속까지 다 드러낸 글에서 오히려 내가 눈을 감게 되고 모른척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좀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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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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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간 단련된 수험생의 딱딱한 머리가 말랑말랑해질 뜸도 없이, 우리의 소원은 '미제타도'이거나 '노동해방'임을 또 다시 주입시키던 선배들. 그들은 과연 그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거나 독립적 자아로 사고한 적이 있었을까?-16쪽

이처럼 부러운 현실을 구축하는 힘의 핵심은 연대Solidarite다.
개인주의를 소중한 사회적 미덕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이만큼 정치적 진보를 이룬 것은 그 바탕에 연대의 미덕이 신념처럼 확고하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똘레랑스가 프랑스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여러 개의 벽돌이라면, 연대는 그 벽돌 사이를 메우는 유연하게 메워 주는 풀이다. 이 풀은 원한다면 언제고 떼어내고 다시 결합할 수 있어 아나키스트적 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67-68쪽

불필요한 경쟁심리로 에너지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삶이 기준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자신의 가치에 두게 만들었다. 당연히 더 성숙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기분이 든다. -86쪽

우리의 삶은 왜 어느 한순간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살지 못하고, 왜 늘 다른 곳에서 보상받기를 원하는지 가슴치며 물었다. 결론은 역시 그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경제적 효율이 최우선의 가치로 작동하기 때문이었다. -112쪽

나의 진정한 욕망을 파악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 옷, 반찬, 영화, 작가, 길, 동네, 나무에 이르기까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일이 묻고 그 목록을 다 모아보면, 자기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나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한 우물' 이데올로기의 강박으로 부터 탈출이다. "한 우물을 파야한다."는 시대를 초월하는 금과옥조이다. -162쪽

가장 비싼 핸드백을 일률적으로 들고 다닌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저버린다는 의미다. -210쪽

선택의 기준이 늘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진 한국사회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나의 무뎌진 감각과 취향을 숨쉬게 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의지를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222쪽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관계 맺기인 연애를 특정 시기, 특정 연령층의 전유물로 규정하고 비좁은 김밥의 틀 속에 밀어 넣어버린 사회. 어쩔 수 없이 옆구리로 삐져나오는 비명과 분출되는 욕구들은 모두 어두운 음지속에 처넣어 버리는 사회. 이 숨 막히는 사회적 모순을 비집고 우리가 건강하고 싱그러운 연애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46쪽

서로의 삶에 독립된 영역과 자유를 적절히 보장하는 방식은 그 관계를 더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든다. 사실 사랑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방법이야말로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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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날, 프로이트의 의자에 앉아 가만가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같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입이 근질거렸다. 저자가 내귀에 소곤대며 들려주는 무의식의 저편은 울컥했다가 금방 헤헤거렸다가, 아하! 그렇구나... 나와 그와 그녀를 이해했다. 나또한 그들과 같이 읽고 싶었다. 정말 가만가만히 가을이 온 것처럼 가만히 듣기만 해도 된다... 그러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안하고,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진짜 '나'를 보게 해준다.  

'한밤의 FM'을 봤다고 하니, 아니란다. '심야의 FM'이다. 난 왜 자꾸 한밤이라고 생각했을까... 말로 인한 오해? 영화에서는 아나운서의 말을 빌려서 범인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동일한 말을 누가 듣느냐, 상황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굉장이 다르다. 말을 듣는 사람과 말을 하는 사람의 초점에 따라, 그리고 진실의 부피와 책임 또한 제각각이다. 말.말.말 잘들어야 하는 게 먼저일까. 잘하는 게 먼저일까. 달걀과 닭은 무엇이 먼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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