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줄까요 - 닥터 호르헤의 이야기 심리치료
호르헤 부카이 지음, 김지현 옮김 / 천문장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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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사람이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고쳐주는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치유하고 고쳐나가야만 하죠. 나는 지금 데미안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뿐이에요. 특정한 반응을 유도하려고 애쓰지도 않아요.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치료‘보다는 교수-학습 과정과 비슷해요. 생각보다 느낌을 더 중요시하고, 계획보다 실제 행동을, 소유보다는 존재를,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중요하게 다루죠." (75-76쪽)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의지하고 살아온 거예요. 은연중에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면서 살아온 겁니다. 사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생각을 하도록 계속 배워왔기 때문이죠. 두려움은 느끼지 않기 위해 우리가 지불한 대가는 복종입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우리의 행동과 생각도 그에 맞춰 복종해왔던 거예요. 하지만 그건 진짜 우리의 모습이 아니니 언젠가는 어긋나게 됩니다." (127쪽)

호르헤는 분노, 사랑, 슬픔은 몸의 배터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 그리고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들. 감정과 행동을 서로 단절되게 만들면 소외감을 느끼고, 갈피를 못 잡아 당황하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지금 내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상황에 몰려서 이미 일어난 감정의 파고를 억누르려 하고 있었다. (258쪽)

"데미안, 내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게다가 살아가면서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말이죠. 그러니까 삶이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을 겪어가는 것이라 인정하고 그런 상황을 수용하는 마음으로 즐기려는 것뿐이에요."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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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에 발표한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 그 시대에 여성이라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제약된 세상에서 글을 쓴 그녀의 글이 지금, 여기에서 읽어도 우리의 오만과 편견을 여지없지 부숴지게 한다... 여성의 읽기, 글쓰기, 몸, 말하기를 오로지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엘리자베스를 통해 보여준다... 감히 그 시대에 이러한 사고를 하고 글을 썼다는 자체만으로도 존경스럽다... 그럼 나는 어떻게 글을 쓰면 될까, 지금 실재하는 면을 진정성으로 있는 그대로 쓰면 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눈치, 오만, 편견, 자랑, 비하, 열등감, 피해의식등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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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 - <오만과 편견> 새롭게 읽기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2
조선정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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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와 수다와 연애로 이루어진 세계는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채롭고 풍부하고 또 무궁무진했다. 굳어진 사실로서의 상속과 결혼이 아니라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상속하고 누구와 어떻게 결혼할지를 고민하는 앎의 과정이 오스틴 소설의 핵심이다. (8쪽)

그리고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오스틴 소설이 성장 소설, 가정 소설, 연애 소설, 부르주아 소설, 풍속 소설, 여성 소설로서도 각각 빼어난 완결성을 보여 주지만 이 모두의 조합을 뛰어 넘는 어떤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리얼리티의 힘을 품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그리고 이 힘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세계를 가장 정확하고도 풍부한 언어로 재현한 작가적 진정성에서 나왔다고 말해 왔다. (9쪽)

매너를 지키려는 노력은 종종 관습, 허세, 가면 등으로 변질된다. 오스틴은 이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동시에 진정한 매너의 미덕이 회복되기를 응원한다. 예의는 공손한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계질서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데, 오스틴은 상대방의 안위를 걱정하고 배려하고 보살피는 마음에 가깝게 그 의미를 수정한다. 그래서 예의는 규범과 예범의 체계를 공손하게 따를 때보다 그 체계에서 자유로울 때 더 잘 발휘된다. 오스틴은 예의를 공손함의 범주에 가두지 않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재의미화한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 그것은 곧 ‘사랑‘이다. (34쪽)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며 며칠을 보내는 메리는 여성에게 방과 돈이 없다는 현실, 즉 여성 빈곤의 역사를 마주한다. 여성과 소설 사이의 모순, 즉 소설이, 혹은 소설로 상징되는 어떤 정신적 노동과 지적 활동이 여성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이 드러난다.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가 해체되고 마는 것이다. (86쪽)

여성 소설가가 예술적 열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본것을 그대로 말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순도 높은 진정성을 품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남성처럼 써서도 또 남성처럼 쓰지 않아서도 안 된다. 기준이 남성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란 결국 작가 자신의 목소리로 쓸 때에만 보장되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거의 유일한 경우다. (94쪽)

기존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남녀 관계의 틀로 성을 사고 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서 "실재"와 접촉하는 언어를 창조해 내는 것이 여성 작가의 임무이다. 여성 문학의 요체는 여성이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데에 있다. ‘자기‘를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정의하는 데 머물지 말고 하나의 "실재"롤 끌어올릴 때 여성 소설가의 작품은 위대한 문학으로 도약할 수 있다. 울프가 전망하는 여성 문학의 미래는 "실재"의 세계를 담아낸다는 위대한 문학의 미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109쪽)

오스틴 소설에서 연애는 에로스라기보다 로고스이다. 열렬한 연애는 치열한 읽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만과 편견]의 두 단어 ‘오만‘과 ‘편견‘은 모두 읽기와 관련이 깊다. 오만은 오독을 부추기고 오독의 결과로 나타난 편견은 로맨스의 결림돌이다.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오만과 편견]을 감싸고 있는 인식론적 질문은 이것이다. (128쪽)

오스틴은 감정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석해야 할 앎의 재료로 다룰 뿐 아니라 그것을 ‘공감‘과 연결함으로써 감정을 일종의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앎의 토대로 본다. 앎을 얻으려면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상대의 감정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감정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오만과 편견]은 감정 교육읠 범례라 할 만하다. (168쪽)

읽기와 연애는 둘 다 몸에 깊이 연루된 일이라는 점에서 유비 관계를 이룬다. 읽기와 연애는 낯선 타자와의 만남이며, 낯선 타자는 몸을 오염시키는 잠재적 위협이다. 특히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여성에게 투영해 여성의 독서와 창작 활동을 성적인 타락에 비유하곤 했다. 읽기와 마찬가지로, 연애에도 양면성이 있다. 연애 역시 타인의 몸이 자신의 몸과 닿고 섞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여기에는 쾌락과 위협이 공존한다. 읽기와 연애는 모두 텍스트를 해석하는 행위이고, 해석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열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므로, 인식론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하며 폭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읽기와 연애는 궁극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행위이고, 몸에 일어나는 변화로 그 존재를 증명한다. (184쪽)

엘리자베스가 원하는 것은 막연하게 자신을 궁핍에서 구제해 줄 것이라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남성이 아니라 "판단력과 지식과 세상에 대한 식견"으로 보통 여자들이 누리지 못하는 어떤 사회적 중요성을 자신의 삶에 부여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동반자이다. 자신에게 맞는 남성을 만날 때까지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은 거절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청혼은 당당하게 거절하며, 남성의 호의와 관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즐길 만큼 즐기면서 선택을 고민한다. (217쪽)

오스틴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는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적 한계 안에서 오직 자신의 "진정성"으로 여성적 삶의 "실재"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오스틴은 분노와 저항에 매몰되지 않고 "실재"를 향해 걸어갔던, "갖지 않은 것은 원하지 않던", 그저 자신이고자 했던 소설가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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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글을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아름답다 해야 하나, 멋지다고?, 괜찮은, 아주 좋은 글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밖에. 소설 두편과 수필 두편, 특히 '긴 봄날의 소품', '유리문 안에서'가 마음에 많이 머문다. 유리문을 통해 내다 본 바깥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관조하듯, 담담하게 담고있다. 그야말로 수필은 이렇게 쓰는거야에 정답같다, 적합하고 적절한 표현으로. 또한 번역을 굉장히 잘했다. 저자의 마음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 했다. 연중 쓸쓸함, 허전함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계절에서 그의 글 속으로 들어가보면 진짜 가을을 만나게 된다. 가을이 이렇구나를 느끼게 해 준다... 드디어 내가 번역한 글이 책으로 나왔다. 만감이 오간다. 이후야 어찌됐든, 지금은 기쁘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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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봄날의 소품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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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오늘 나쁜 일을 한다고 치세. 그게 성공하지 못하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네." "그러면 내일 똑같이 나쁜 일을 하네. 그래도 성공하지 못하지. 그러면 모레 또 같은 일을 하네. 성공할 때까지 매일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거지. 365일이라도, 750일이라도 나쁜 일을 똑같이 되풀이하네. 되풀이하다 보면 나쁜 일이 뒤집혀 좋은 일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언어도단이야." "언어도단이지." (76쪽)

"저렇게 아무렇게나 끌을 쓰는데도 생각한 대로 용케 눈썹이며 코가 만들어지는구나"하고 나는 너무나도 감탄한 나머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자 조금 전의 그 사내가, "무슨 소리, 저건 눈썹이나 코를 끌로 만든 게 아니네. 저대로의 눈썹이며 코가 나무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끌과 망치의 힘으로 파낸 것일 뿐이야. 마치 흙 속에서 돌을 파내는 거소가 같은 이치니까 절대 실패할 리가 없지"하고 말했다. 나는 이때 비로소 조각이 그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과연 그렇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9쪽)

안주인은 눈이 쑥 들어가고 코가 움푹 패었으며 턱과 볼이 뾰족하여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는 여자로, 언뜻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여성을 초월하고 있었다. 신경질, 비뚤어짐, 고집, 오기, 의심 등 모든 약점이 온화한 이목구비를 실컷 가지고 논 결과 이렇게 비뚤어진 인상이 된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134쪽)

고양이는 특별히 화를 내는 기색도 없었다. 싸움하는 걸 본 적도 없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누어 있는 자세에도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없다. 한가롭고 편하게 몸을 옆으로 뉘고 햇볕을 쬐고 있는 것과 달리 움직일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아니 이것으로는 아직 형용이 부족하다. 께느른함의 정도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움직이지 않으면 외롭지만 움직이면 더욱 쓸쓸해지게 때문에 가만히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43-144쪽)

바람이 높은 건물에 부딪혀 생각처럼 똑바로 빠져나갈 수 없어서인지 갑자기 번개 모양으로 꺾여 머리 위에서 비스듬히 포석까지 불어 내려온다. (147쪽)

10월의 해는 조용한 산골짜기의 공기를 하늘 중간에서 감싸 직접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 너머로 도망친 것도 아니다. 바람 없는 마을 위로 언제나 떨어져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뿌옇게 있다. 그사이에 들과 숲의 색이 점차 변해간다. 신 것이 어느새 달콤해지는 것처럼 골짜기 전체에 세월이 더해간다. (181쪽)

더구나 나는 작년 연말부터 감기에 걸려 거의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매일 이 유리문 안에만 앉아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전혀 모른다. 기분이 좋지 않아 책도 읽지 않는다. 그저 앉았다 누웠다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내 머리는 이따금 움직인다. 기분도 다소 변한다. 아무리 좁은 세계라고 해도 나름대로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작은 나와 넓은 세상을 격리하고 있는 이 유리문 안으로 때때로 사람이 들어온다. 그들은 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한다. 나는 흥미에 가득 찬 눈으로 그들을 맞이하거나 보낸다. (209-210쪽)

불쾌감으로 가득 찬 인생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는 자신이 언젠가 한번은 이르러야 하는 죽음이라는 지경에 대해 늘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삶보다 편한 것이라고만 믿고 있다. 어떤 때는 그것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지고의 상태라고 생각하는 일도 있다. (226쪽)

마주 앉은 O와 나는 무엇보다 먼저 서로의 얼굴을 보고 거기에 아직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 그리운 꿈의 기념물처럼 남아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예전의 마음이 새로운 기분 안에 어렴풋이 가미되어 있는 것처럼 온통 어슴푸레하게 흐려져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무서운 ‘시간‘의 위력에 저항하여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 지금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과거라는 불가사의한 것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231쪽)

이것이 그들의 허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허영은 돈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이었다. (262쪽)

비뚤어진 내 마음은 별도로 하고 나는 과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다는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다. 동시에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일부러 평이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은근히 그 사람의 품성에 창피를 준 것과 같은 해석을 한 경험도 많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93쪽)

나는 가끔 그 여자를 만나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만나보면 필경 할머니가 되어 있어 옛날과는 전혀 다른 얼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바짝 말랐을 것이다. (303쪽)

어머니는 내가 열서너 살 때 돌아가셨지만, 지금 멀리서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환상은 기억의 실을 아무리 더듬어가도 할머니로만 보인다. 어머니의 만년에 때어난 나에게는 끝내 어머니의 젊고 싱싱한 모습을 기억할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303-304쪽)

약한 바람이 때때로 화분에 심어진 구화란의 긴 잎을 흔들었다. 정원수 안에서 휘파람새가 가끔 서툴게 지저귀었다. 매일 유리문 안에 앉아 있는 내가 아직 겨울이다, 겨울이다,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봄은 어느새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명상은 아무리 앉아 있어도 형태를 이루지 못했다. (309-310쪽)

집도 마음도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유리문을 활짝 열고 조용한 봄 햇살에 싸여 넋을 잃은 채 이 원고를 끝낸다. 그런 후 나는 이 툇마루에서 잠깐 팔꿈치를 구부려 베개로 삼고 한숨 잘 생각이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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