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와 수다와 연애로 이루어진 세계는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채롭고 풍부하고 또 무궁무진했다. 굳어진 사실로서의 상속과 결혼이 아니라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상속하고 누구와 어떻게 결혼할지를 고민하는 앎의 과정이 오스틴 소설의 핵심이다. (8쪽)
그리고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오스틴 소설이 성장 소설, 가정 소설, 연애 소설, 부르주아 소설, 풍속 소설, 여성 소설로서도 각각 빼어난 완결성을 보여 주지만 이 모두의 조합을 뛰어 넘는 어떤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리얼리티의 힘을 품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그리고 이 힘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세계를 가장 정확하고도 풍부한 언어로 재현한 작가적 진정성에서 나왔다고 말해 왔다. (9쪽)
매너를 지키려는 노력은 종종 관습, 허세, 가면 등으로 변질된다. 오스틴은 이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동시에 진정한 매너의 미덕이 회복되기를 응원한다. 예의는 공손한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계질서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데, 오스틴은 상대방의 안위를 걱정하고 배려하고 보살피는 마음에 가깝게 그 의미를 수정한다. 그래서 예의는 규범과 예범의 체계를 공손하게 따를 때보다 그 체계에서 자유로울 때 더 잘 발휘된다. 오스틴은 예의를 공손함의 범주에 가두지 않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재의미화한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 그것은 곧 ‘사랑‘이다. (34쪽)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며 며칠을 보내는 메리는 여성에게 방과 돈이 없다는 현실, 즉 여성 빈곤의 역사를 마주한다. 여성과 소설 사이의 모순, 즉 소설이, 혹은 소설로 상징되는 어떤 정신적 노동과 지적 활동이 여성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이 드러난다.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가 해체되고 마는 것이다. (86쪽)
여성 소설가가 예술적 열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본것을 그대로 말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순도 높은 진정성을 품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남성처럼 써서도 또 남성처럼 쓰지 않아서도 안 된다. 기준이 남성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란 결국 작가 자신의 목소리로 쓸 때에만 보장되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거의 유일한 경우다. (94쪽)
기존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남녀 관계의 틀로 성을 사고 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서 "실재"와 접촉하는 언어를 창조해 내는 것이 여성 작가의 임무이다. 여성 문학의 요체는 여성이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데에 있다. ‘자기‘를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정의하는 데 머물지 말고 하나의 "실재"롤 끌어올릴 때 여성 소설가의 작품은 위대한 문학으로 도약할 수 있다. 울프가 전망하는 여성 문학의 미래는 "실재"의 세계를 담아낸다는 위대한 문학의 미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109쪽)
오스틴 소설에서 연애는 에로스라기보다 로고스이다. 열렬한 연애는 치열한 읽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만과 편견]의 두 단어 ‘오만‘과 ‘편견‘은 모두 읽기와 관련이 깊다. 오만은 오독을 부추기고 오독의 결과로 나타난 편견은 로맨스의 결림돌이다.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오만과 편견]을 감싸고 있는 인식론적 질문은 이것이다. (128쪽)
오스틴은 감정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석해야 할 앎의 재료로 다룰 뿐 아니라 그것을 ‘공감‘과 연결함으로써 감정을 일종의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앎의 토대로 본다. 앎을 얻으려면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상대의 감정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감정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오만과 편견]은 감정 교육읠 범례라 할 만하다. (168쪽)
읽기와 연애는 둘 다 몸에 깊이 연루된 일이라는 점에서 유비 관계를 이룬다. 읽기와 연애는 낯선 타자와의 만남이며, 낯선 타자는 몸을 오염시키는 잠재적 위협이다. 특히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여성에게 투영해 여성의 독서와 창작 활동을 성적인 타락에 비유하곤 했다. 읽기와 마찬가지로, 연애에도 양면성이 있다. 연애 역시 타인의 몸이 자신의 몸과 닿고 섞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여기에는 쾌락과 위협이 공존한다. 읽기와 연애는 모두 텍스트를 해석하는 행위이고, 해석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열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므로, 인식론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하며 폭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읽기와 연애는 궁극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행위이고, 몸에 일어나는 변화로 그 존재를 증명한다. (184쪽)
엘리자베스가 원하는 것은 막연하게 자신을 궁핍에서 구제해 줄 것이라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남성이 아니라 "판단력과 지식과 세상에 대한 식견"으로 보통 여자들이 누리지 못하는 어떤 사회적 중요성을 자신의 삶에 부여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동반자이다. 자신에게 맞는 남성을 만날 때까지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은 거절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청혼은 당당하게 거절하며, 남성의 호의와 관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즐길 만큼 즐기면서 선택을 고민한다. (217쪽)
오스틴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는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적 한계 안에서 오직 자신의 "진정성"으로 여성적 삶의 "실재"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오스틴은 분노와 저항에 매몰되지 않고 "실재"를 향해 걸어갔던, "갖지 않은 것은 원하지 않던", 그저 자신이고자 했던 소설가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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