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무언가를 받고 싶었다. '사랑하는 **에게' 라고 적어 달라 했다. 글씨를 잘 못쓰는데라고 몇번 말했고, 적을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아 은근 좋았다. 사랑하는 너의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어 계속 남아 있을 거니까. 개인에 따라 더럽혀지지 않고 당장은 사라질지라도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흰 것에 관한 이야기를 추억하며 읽었다. -나에게서 흰 것의 의미는 때묻지 않고 너만 바라본 마음, 기다린 마음, 너에게 건낼 때 나의 가녀린 흰 손과 흰 손수건, 너를 위해 쳐준 비창, 뽀얀 막걸리, 무엇이 좋을까요하고 마음이 건너간 그 시간들, 같이 부른 노래, 함께 다닌 길, 긴가민가하는 알까말까하는 조바심, 너의 마음을 많이 차지하고 싶은 열망, 사랑의 크기를 확인하고 싶은 노력등... 하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91쪽)'야 감당할 마음이 생길 거 같다. 나의 흰 것들이 지금으로 건너 올 때는 언제든 결별을 열어둬야 한다는 거. 아직도 흰 것으로 남아 있을 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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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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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11쪽)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71쪽)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넘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 (91쪽)

당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다르게 보았다. 당신의 몸으로 걸을 때 나는 다르게 걸었다.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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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공간, 동네와 세상에서 일상의 틈새에서 고생하는 사람들, 부당한 일들,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 이름들, 공간들, 건축들 등등을 지나치지 않고 보고 있다. 지나치지 않고 섬세한 마음으로 보고 기록한 글이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했을 때는 이미 손쓰지 못하고 망가져 버리고 지나가 버린 일들이 많다. 앞으로는 하기 전에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지금이 지나면 과거가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개인에게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지금의 욕망이 이성을 넘어서는 일이 왕왕 있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과거이기에. 그래서 자꾸 타인에게 투사를 한다. '너나 잘하세요'를 들으면서 나하나 잘하면 되는데도 그게 어렵다. 

비가 많이 많이 온다. 어디가 넘쳤다고 한다. 매년 넘치는 곳이 지금도 넘치는데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다고 아직도 그러고 있다... 그리고 햇님나면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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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사람 사이 - 건축가 이일훈, 카메라로 세상을 읽다
이일훈 글.사진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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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다 벚꽃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건만 꽃놀이 광경은 어디서나 소란과 소음의 마당이다. 왜 그럴까. 주최하는 이들이 벚꽃을 즐기는 방법 대신 사람 모으는 방법만 찾기 때문이다. 구경꾼들은 서로 떼밀릴 뿐이니 꽃이고 사람이고 정신없긴 마찬가지다. 모든 축제를 동과 양의 축제로 몰고 갈 필요가 있을까. 꽃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정과 질의 놀이가 아니던가. (31쪽)

30~40년 전에는 무슨 신기술이라도 되는 양 도시의 물길을 콘크리트로 다 덮더니 요즘은 생태, 친환경을 앞세우며 다시 뜯어내느라고 난리다. 공사할 때 돈 들이고 뜯느라고 더 큰 돈 들인다. 거리의 나무도 심었다 뽑았다, 보도블록도 깔았다 걷었다......, 무엇 하나 깊은 생각이 없다. 삶터에 고일 시간이 없으니 환경은 늘 어수선하다. 역사 깃든 피마길은 버리고, 광장도 공원도 아닌 이상한 그림 같은 유원지, 광화문에 새로 만드니 그 역시 어설프다. (87쪽)

구멍가게 간판부터 정치까지 광고 행위의 본질은 꼬드김이다. 꼬드긴다라는 말은 연날리기에서 쓰는 말로, 연이 높이 올라가도록 연줄을 잡아 젖히는 것을 말한다. 연줄을 무조건 당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흐름과 세기를 잘 살펴 젖히는 요령이 필요하다. 꼬드김만 계속 한다고 연이 잘 날지는 않는다. 머릿살과 허릿살의 균형이 맞게 마름질 잘된 연을 꼬드기면 높이 날지만 성글게 만든 연은 꼬드길수록 허공에서 찢어지고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꼬드김은 사탕발림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꼬드기지 못하는 광고는 죽은 광고다. 광고 전문가들은 사탕발림의 흑심을 점잖게 광고의 호소력이라고 말한다. (149쪽)

집을 짓는 일이란 작은 사회를 경영하는 일이다. 수많은 공사가 연결되니 그에 따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복잡하다. 얽히고설킨 일의 과저오가 세사오가 만나는 방식이 까다롭다. 집 짓는 일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람이 땅(자연)을 만지는 일이며, 동네(사회)를 이루는 일이다. 주변 상황을 존중하고 환경을 살리면 자연에 대한 겸양이지만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양과 폐해가 된다. 뭐든 지으면서 생각하지 말고 짓기 전에 생각하자. 짓다 만 집에서도 배울 게 있다. 급하는 하는 삽질과 망치질, 잘못하면 대대로 이 땅에 죄 짓는 일이다. (157쪽)

횡은 가로지른다는 뜻, 달리는 자동차가 주인이고 건너는 사람은 종이다. 횡은 위태로운 글자다. 비명횡사의 바로 그 횡이다. 계단으로 이루어진 육교나 지하도는 노약자 입장에선 또 다른 장애물이다. 보행자 중심으로 개념을 바꿔야 구조가 바뀐다. 횡단보도 아닌 다른 말은 없을까. 왜 자동차가 항상 우선인가, 다른 장치가 없을까. 더 효과적인 도로 설계와 디자인은 무엇일까...... 등등의 탐색이 계속 되어야 한다. (173쪽)

어떤 상황에 대한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는 결국 자신과 연결되는 관계의 거리다. 하지만 관계있음과 없음은 물질의 존재 여부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모든 관계란 있는 듯 없는 듯, 먼 듯 가까운 듯, 직접적인 듯 간접적인 듯, 오래된 듯 새로운 듯, 큰 듯 작은 듯 연결되어 있다. 세상 만물과 갖은 현상들은 한 줄로 엮인 망태다. 관계의 그물 속에 영향받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보이지 않는 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이 공동성의 지혜다. 인위적 지형에 새겨진 표시는 시간과 함께 사라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그 누구는 혹시 당신과 나의 친근한 벗일지도 모른다. (183쪽)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말은 공간적으로는 시선의 사각지대와 착시를 말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달려 나가는 앞길 지나면 그 길이 곧 뒤가 됨을 이르는 것이리라. 뒤를 보는 거울에 새겨진 말, 다가올 앞을 가리킨다. (219쪽)

`오신`날은 일 년에 단 하루다. `오신` 뜻대로 하자면 일 년 내내 365일을 님들이 `오시는` 날로 여겨야 마땅하리라. 성탄을 빛내려면 일 년을 예수처럼 사록, 부처림 `오신` 의미를 살리려면 평생을 부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오신` 뜻대로 마음 아픈 이와 서러운 이들을 위로하려면 `오신` 날 하루가 아니라 일 년을 하루같이 `오시는` 날로 여길 일이다. 오시는 날이 바로 모시는 날이고 사람 바로 사는 날이다. 언제 어디서나 마땅한 일이 가장 어렵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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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일기'는 가장 내밀하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이라 감추고 싶고, 누군가는 읽고 싶은 글도 된다. 그런데 시인 스스로 드러낸 일기였느니, 가감승제가 들어간 글이라 본다. 시인일기와 몇권의 책을 뒤적이며 점점 무거워지는 피곤에 몸을 가누기 힘들어 시간만 나면 누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데도, 한밤에 몇번씩 잠을 깨서 잠자리를 옮겨가며 몸을 누였다. 낮에는 일에 몰두하니 몸과 머리가 늘 깨어 있는 거 같다. 가끔씩 사라진 '명사'를 되찾기 위해 몇번씩 머리를 굴리고 문장으로 설명을 해 봐야 하는 현상이 요즘 일어나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니 피곤할 수 밖에. 

그간 심리검사를 통한 학생이해라는 주제로 샘들과 이야기했다. 동일한 그림에서 전경과 배경의 차이로 다르게 인식하는 부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선택하여 아는 만큼 해석하는 태도등등을 이야기했다. 여전히 돌아서면 똑같은 오해를 할거다.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게 가능키나 한건가. 그래도 측은지심으로라도... 방금 읽은 시인도 열과 분을 참느라 고생하고 계시던데. 그럼 그들이 나를 이해시켜 줘야할까. 그들이 나를 위해 이해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가... 모르겠다. 그래서 점점 누구를 만나는 게 힘들 수도 있다.

그리고 아프신 후 보고 싶어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언제나 오십대로 내맘을 차지하고 계셨는데 팔십오세의 할아버지였다. 얼굴을 마주하고 맛있는 거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세월을 막아 세우고 싶었다. 시골의 밤하늘에는 별이 보인다. 달과 별을 따다 줄 아버지였는데...  

무더위가 넘쳐 몰려오니 1994년 6월이 생각난다. 그 달에 아이가 태어났다. 더위가 갈때까지 울었다. 아울러 쌍벽을 이루는 추위는 1991년 2월이다. 엄청난 추위로 온갖 탈것이 모두 얼어서 눈과 빙판길을 돌아돌아 새파란 얼굴의 하객들로 가득했던 어느 결혼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추위와 더위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기에 견딜만 하다. 

벌써 7월이다. 앞으로 7월을 몇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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