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절판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왕의 통치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순진했을 것처럼, 우리 시대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순진하긴 마찬가지다. 이양의 규칙은 최고의 통치자를 찾아내기 위한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합법성을 부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을 막기 위한 방식이다. 유권자, 즉 데모스(demos)는 최선을 택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임무라는 것은 사실 그보다 훨씬 더 간단한 것이다. 즉, 한 사람을 선정하는 것이다. -22쪽

자신이 하는 모든 말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자유롭게 한다. 똑같은 의미에서,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예쁘기 때문에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이나 자유롭게 한다. 버릇없는 아이의 사고방식. 문제는 그녀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데 있다. -56쪽

당신의 정체성은 오직 당신 것이야.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가장 귀중한 자산이잖아. 당신은 그것을 지킬 권리가 있어. 단호하게 말이지.-69쪽

너무 늙어서 사악한 생각들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그대로 가둬 놓아야 한다면, 그것이 정말로 사악한 것일까? 결국 이 세상에서 사악한 생각 말고 노인에게 남아 있는 건 뭘까?-101쪽

개연성을 무시하는 것을 구어적으로 표현하면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삶이 규칙들에 의해 살아지는 삶보다(아마도) 더 좋지 않을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118쪽

그들은 정치란 본질적으로 진실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고, 혹은 적어도 모든 상황에서 진실을 얘기하는 것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길게 보면 역사가 그들이 옳다는 걸 증명해 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142쪽

하지만 의견은 기분에 따라 변한다. -145쪽

나는 영국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바와 같은 집단적인 축하 장면을 보면서, 내가 계속 이런 사람으로 고집스럽게 남아 있음으로써 인생에서 놓친 것, 나 자신을 소회시켰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얼핏 엿본다. 집단에 속하는(또 그 속에 있는) 기쁨, 집단적인 감정의 물결에 휩쓸리는 기쁨 말이다. 집단이 표준이고 혼자 있는 것이 비정상적인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이 무슨 깨달음이란 말인가?-188-189쪽

"네, 예쁘죠. 하지만 얼굴이 결국 사람을 어디로 데려다 주죠?" 우리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이 사람을 어디로 데려다 주는지 생각해 보았다. -194-195쪽

당신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내게 보여 줬어요. -224쪽

고등 동물만이 지루해할 수 있다. 니체의 말이다. 내 생각에 이런 발언은 고등 동물 중 하나인 인간에 대한 찬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삐딱한 찬사다. 즉, 이런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들떠 있다. 그것은 뭔가 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달하고 불안해하며 결국 사악하고 분별없는 파괴로까지 치달을 것이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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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습 나의 얼굴
David Keirsey & Marilyn Bates 지음, 김정택 외 옮김 / 한국심리검사연구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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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직관에 대한 두 가지 선호는 어떤 선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잘못된 의사소통, 오해, 비방, 중상과 모략을 낳는 근원이다. 이 차이는 사람들사이에 아주 넓은 장벽을 가로 지른다.-14쪽

우리가 받고 있는 학교교육은 감정(F)의 영역보다는 사고(T)의 영역을 훨씬 더 많이 다룬다. 그러므로 감정을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사람음 이와 더불어 사고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사고를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사람들은 감정의 측면을 발전시킬 기회를 동등하게 갖지 못하므로써, 감정의 측면이 상대적으로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게 될 수도 있다. -20쪽

판단형(J)의 사람들은 일의 종결에 보다 더 가치를 두고 추구하며, 인식형(P)의 사람들은 개방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면이 바로 J와 P를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이 될 수 있겠다. -24쪽

기질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힘들이 완화되거나 통합을 이루는 것, 상반되는 영향력들이 서로 완충되거나 상호 용인되는 것, 전체적으로 채색되거나 조율되는 것, 전체적으로 어느정도 종합되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것들이 일관성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의 기질은 그 사람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 마다에 서명을 하거나 무인을 찍는 것과 같아서, 한눈에 그 사람이 한 것임을 알게 한다.
......
따라서 형태(Form)란 획득회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며, 기질이란 살아있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천적인 형태라고 말하고 싶다.-32쪽

기질은 아주 명료하게 행동을 결정한다. 왜냐하면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갖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바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37쪽

사람들은 자기와 반대되는 타입의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만약에 결혼에 실패했을 때도 10년이나 20년이 지난후에 또 다시 자기의 반대 타입의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는 것이다. -149쪽

NT아동은 어떤 내용이나 지시를 딱 한번만 일러주는 것을 좋아하며 반복해서 듣는 것을 참지 못하는 데 비해, SJ학생은 자세하게 지시받는 것을 좋아하며 내용이 반복되더라도 대개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한편 SP아동은 지시가 명확하든 명확하지 않든 간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나서는 자기 생각대로 처리해 버린다. NF아동은 지시받은 요점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에게 지시를 내릴때는 말로도 해주고 써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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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아래 강의실
신영복.김창남 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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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대학은 오늘의 사회적 수요에 응하는 현실적 가치를 지향(指向)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비판적으로 지양(止揚)하는 창조적 공간이어야 한다. 대학은 무엇보다도 '오늘로부터 독립'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로부터의 독립'은 물론 다양한 의미로 읽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화폐 가치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경쟁과 효율과 속도라는 신자유주의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25쪽

세상을 주류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비주류의 시각에서, 사회적 강자으 시각에서가 아니라 약자의 시각에서 보려는 사람들의 조금 더 있다는 점이다.-84쪽

경험적 인식이 없이 이성적 논리에 의해서만 실천의 동력이 만들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35쪽

서로의 차이가 받아들여지는 순간 차이는 다양성으로 변하다. 차이가 다양성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176쪽

일을 열심히 하고도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자세, 남들의 칭찬과 인정과 관련해서도 "그저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그 사람을 화합과 신뢰, 협력의 중심으로 세울것이라는 '역설적' 진리 말이네. 우리는 성서가 말하는 바로 이 '역설적 진리'를 성공회대학교 교육의 지표(指標)로 선언한 것이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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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창비시선 173
김용택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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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그 집

-김 용 택

하늘 아래 아름다운 집 그 집은
아버님이 지으셨다.
아버님은 깊은 산 속을 돌아다니며
곧고 푸른 솔나무를 베어 말렸다가
지게로 하나하나 져날라
빈터 그늘에 차곡차곡 쌓았다

기둥과 서까래와 상량 나무와 개보*와 무루 판자감이 몇 년만에
다 모이자
아버님은 목수를 불렀다.

잘 마른 소나무에 검은 먹줄이 까맣게 튕겨지고
하얀 속살이 깎이고 잘리고 환한 구멍들이 뚫렸다.
붉은 조선소나무 무늬가 보이는 대패밥,
붉은 나이테가 보이는 나무토막으로
모닥불을 놓아두면
동네 사람들이 저절로 하나둘 모여들어
하루 종일 집 짓는 구경들을 했다
어던 어른은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하루 종일 우리 집에서 술도 먹고 밥도 먹으며
온갖 연장으로 지게도 만들고 쟁기도 만들었다.
하얗게 다듬어져 쌓인 나무 옆에서
파랗게 타오르던 연기
꼬물꼬물 조선소나무 무늬가 타던 불꽃.

아버님은 강변에서
보는 족족 모아두었던 주춧돌을 가져왔다
기둥이 검은 산에 하얗게 수직으로 일어섰다. 사방으로 기둥을 세우고
뚝딱뚝딱 나무메로 두둘겨 집을 맞추어 갔다.
-50쪽

방이, 마루가, 부엌이 하얗게 그려졌다.
아, 하얗게 깎인 나무들이 그려내는 집 모양이
깊은 산그늘 속에 둥 떠올랐다
상량떡을 먹고 서까래가 올라가자
동네 사람들이 지게 지고 괭이 들고 삽 메고 모여들었다.
닥채로 지붕을 엮어 덮었다. 다시 그 위에 장작을 얹어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논흙이 올라갔다.
사람들은 텃논에 흙구덩이를 내어
마당에다 쌓고
그 위에 짚을 썰어 섞고 물을 부어 흙을 맨발로 밟아 이겼다.
머리통만한 흙덩어리를 만들어
지붕 위로 휙휙 던졌다.
흙덩이들이 지붕 가득 날아올라
점점 하늘을 막았다.
흙을 밟아 이기는 흙 속의 굳센 발,
어기영어기영 휙휙 흙덩이를 던지며
가뿐가뿐 받던 아름다운 손,
웃고 떠들며 쉬지 않던 입,
공만한 흙덩이 하나가
마지막 하늘을 막았다.
나는 큰방 자리에 서서
잠깐 캄캄했다.

지중에 저릅대로 만든 날개가 올라가 덮였다.
아버님이 달빛이나
새벽빛으로 엮은
닐개가 지붕을 덮자
노랗고 따뜻하고 둥그스럼한 초가 지붕이 되었다.
대나무로 벽을 엮어 흙을 바르고
납작납작한 두들장이 놓여지고
방에 불이 들어가고
굴뚝에서 연기가 솟았다.
-50쪽

방마다 흙에서 뭉게뭉게 김이 나고
흙냄새가 집안 가득 피어올랐다.
집, 아, 아름다운 동네 사람들의 생각과 손과 발, 온몸으로 지어진
그 집, 그 집 지붕 위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해와 달이, 별들이 떴다
지곤했다
눈이 내려 쌓이고 고드름이 얼고
비가 내렸다.
구렁이, 참새, 쥐, 굼뱅이들이 그 집에 집을 지었다.
그 집에는 소, 개, 돼지들이 깃들어 살고
그 집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 세 의 남동생과 두 명의 누이가 살았다.

그 집에서는 산이 보였다.
그 집에서는 마루에 누워도 물이 보였다.
그 집에서는 물을 차고 뛰는 하얀 물고기들의 저녁놀이가 보인다.
아이들이 크고 세월이 갔다. 그 집에서 오랜 세월이 더 흐른 후
그 집을 지은 아버지는
그 집 큰 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솔나무를 베어 왔던 그 산에 둥그렇게 묻혔다.

아, 아름다운 그 작은 집, 그 흙집에서 나는 지금 산다.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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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냉정하게 보다 용기있게
어빈 D.얄롬 지음, 이혜성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8년 6월
품절


에피쿠로스는 '의학적 철학'을 실천한 철학자였다. 그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철학자들은 인간의 영혼을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철학에는 하나의 목표, 즉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에피쿠로스는 그것을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믿었다. 피할 수 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생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불쾌감을 남겨 준다고 했다. -15쪽

슬픔과 상실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경험이 되고 또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만든다. -54쪽

자신이, 자신만이, 자기 삶의 결정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그것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 자신이 외부적인 방해물에 압도다하게 된다 할지라도, 자신에게는 그 방해물에 대항할 수 있는 태도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118쪽

죽음을 의식하고 그 그늘을 가슴 속에 품으면서 사는 것이 이롭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 두라. 이런 인식이 한때는 빛났으나 지금은 어두워진 인생의 서글픔을 희석시켜 줄 것이고 그런 생각을 계속한다면 당신의 인생을 상승시켜 줄 것이다. 인생을 가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모든 사물을 깊이 있게 사랑하게 하는, 이런 모든 경험은 당신도 언젠가는 없어질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166쪽

나는 단지 인간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인간관계가 존재하는 세상만이 나에게는 상관이 있다. 내가 실존이 없는 텅빈 세상, 자기 인식에 대한 주관적인 마음이 없는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나에게는 슬픔도 애통도 없다. 다만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파급효과가 중요하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자기와는 다른 자기 인식의 요소를 적용해 보는 것, 이것이 파급효과다.-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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