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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인문학 -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
김동훈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사진 출처: 민음사 블로그)
내가 끌리는, 나를 끌어당기는 그 무엇.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욕망한다. 나의 그것 가운데 하나가 '애플'이다. 그 단순함. 그 깔끔함. 또, 존재 목적에 정확하게 합치됨. 나는 그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족(蛇足)이 없는 '애플'의 작품들. 나와 닮았고, 혹은 내가 닮으려고 하기에 함께 거닌다. 그렇게 아이폰을 소유하고 있고, 아이패드를 소유했었다. 그리고 계속 욕망한다. 그런데 그 객체는 다르지만, 나처럼 소유하고 욕망하는 사람들의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 모를 욕망. 즉, 무의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브랜드가 나의 감각에 던지는 눈길인 어떤 파장을, 그리고 나 또한 그 자극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반응하며 눈길을 주는 이유를 범주화해 보았다. '정체성, 감각과 욕망, 주체성, 시간성, 매체성, 일상성'들이었다. 이것으로 브랜드를 이해하고 인간의 신체와 감각에 대해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프롤로그 '지금은 브랜드의 땅' 중에서. (8~9쪽)
'브랜드 인문학'은 이렇게 6부로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잘 몰랐던 몇몇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부족한 안목도 살짝 넓혀졌다.
'접속과 배치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향하던 '욕망'이 몸에 배면 취향이 된다. (……) 저 브랜드가 내게 다가왔고 내가 그것을 택했다.
선택을 통해 브랜드와 접속한 우리는 나름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선택이 있기 전 브랜드와의 마주침과 나의 선택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자극은 우리 안에 묻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묻힌 우리의 과거를 들뢰즈는 앙리 베르그송의 이론을 따라 '잠재력'이라 불렀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특정 브랜드와 접속하여 생기게 된 우리의 정체성은 잠재력이 현실화된 것이다.
(……) 들뢰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활용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은 감각으로 자극받을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 욕망은 저마다의 잠재력을 깨우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은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2부 프롤로그' 중에서. (96~97쪽)
'창조력은 현실에서 잠재력과 함께 빛을 낸다.
(……)
잠재력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변화, 즉 운동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변화를 위해 감각자극을 말했다. 그 자극이 지속될 때 운동은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 그 잠재력 자체가 사실은 무한한 창조력인 것이다.' -'4부 프롤로그' 중에서. (250쪽)
이 책 '브랜드 인문학'의 작은 이름은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이다. 그 이름처럼 잠재력을 깨우라고 한다. 감각을 자극해서. 그 감각을 자극하는 열쇠는 브랜드에 있다. 내가 소유하고, 욕망하는 브랜드. 내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나의 잠재력이 현실화된 것이고. 그 정체성. 그 브랜드. 감각 자극으로 잠재력을 깨우자. 그 잠재력은 곧 창조력이니. '소비에 앞서 정체성을, 과시에 앞서 나다움을.(31쪽)' 잊지 않으며.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현대문학, 1952.
내가 소유하고, 욕망하는 브랜드인 '애플'. 단순함, 깔끔함, 존재 목적에 정확히 합치됨. 그 잠재력이 정체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내 무의식이 그 '애플'과 접속하여 형성된 정체성. 내가 '애플'을 부르고, '애플'이 나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브랜드가 되고. 꽃처럼. 하나의 몸짓이었던 꽃. 이름을 불러주어, 나의 꽃이 된다. 결국,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애플'은 나에게, 나는 '애플'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나의 잠재력은 깨어난다. 창조력으로 이어질.
'브랜드 인문학'은 서른두 가지의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각 브랜드의 탄생과 정체성을 그린다. 그 사유의 장(場). 그 바다에서 항해했다. 희열을 느끼기도 하며. 파도를 넘어 여정을 함께 했다. 항해하며 들은 수업. 준비된 수업이었다. 수강 신청 잘했다.
참고로 '애플'은 이 책에 안 나온다. 프라다, 스타벅스, 샤넬, 구찌, 루이비통 등이 나온다. 나오는 것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민음사'다. 이 책의 출판사. 애서가인 내가 관심 있는 우리나라 출판사.
덧붙이는 말.
저자가 《경향신문》에 「서양고전학자의 브랜드 인문학」으로 연재하다가, 민음사 양희정 부장의 손길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