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광들
옥타브 위잔 지음, 알베르 로비다 그림, 강주헌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작년인 2017년, tvN의 방송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이 있다.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라고. 이렇듯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산다. 산 책을 다 읽지 못할 만큼. 애서가인 나. 나도 책을 모은다. 그저 소소하게 모은다. 그렇게 책을 모으다가 책 수집하는 병에 걸린 나. 난치병인 줄 알았다. 언젠가는 나으려니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랬다. 불치병이라고. 안 낫는다고. 그래도 병이 깊지 않으니 다행이려나. 물론, 이 병이 깊은 사람들도 있으리라. 애서가를 지나 애서광이 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열한 가지 이야기.


 '그때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았지요, 남작 부인. 우리 둘은 몽상에 젖어 완전히 다른 세계,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았지요? 그 시간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요? 여하튼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고, 박자에 맞추어 스카롱의 시를 나지막이 웅얼거렸습니다.' -'시인 스카롱의 새해 선물' 중에서. (352쪽)


 그 이야기 가운데 하나. '시인 스카롱의 새해 선물'이 있다. 연애편지다. 소싯적 사랑의 열병에 많은 이들이 써 본 그 연애편지. 나도 썼었고, 이 애서광도 썼다. 난 연애편지 초보였지만, 이 애서광은 그것마저도 달인이다. 나의 연애 세포는 비활성화되어 혼자가 되었지만, 이 애서광은 연애 세포가 활성화되어 둘이 되었을 듯. 손에 손잡고. 시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알려지지 않은 낭만주의 작품들'이 있다. 전 늑대사냥 대장, 고(故) 레옹 베르나르 디뉘의 장서가 경매된 이야기다. 내가 하늘로 간다면, 서재의 책들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아 소중한 책들. 중학교 다닐 때, 읽고 또 읽어 나를 키웠던 김용 할아버지의 무협 소설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국 할머니인 애거서 크리스티 할머니의 추리 소설들. 그밖에 수없이 많은 내가 사랑하는 책들. 내가 이 책들과 이별했을 때, 새로이 만나는 이는 여전히 사랑해줄까? 난 누군가를 떠나 내게 온 책들도 사랑해주고 있다. 중고 도서로 그 책들. 누군가의 날인. 누군가의 서명. 어떤 책은 사연이 있으리라. 부디 내가 없더라도 슬픈 운명을 만나지 않기를. 그나저나 소설로 돌아가서, 경매에 참석한 그는 어떻게 됐을까? '30권'을 낙찰받는다. '전대미문의 가치를 지닌' 책들을. '빵 한 조각 값'으로.


 책의 앞날을 다룬 이야기도 있다. '책의 종말'이라는 이야기다. 1895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에서.


 '인쇄술이 이미 최고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 종손들은 인쇄로 책을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쯤이면 인쇄술이 시대에 뒤진 방법이 될 것이고, 지금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사진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의 종말' 중에서. (243쪽)


 '행복한 청자는 집에서나 주변을 산책하면서, 혹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유적지를 둘러보며 학습하는 동시에 건강을 관리하는 즐거움, 달리 말하면 지적인 양식을 섭취하는 동시에 근육을 단련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주머니에도 들어가는 작은 녹음 장치가 발명되어, 알프스 산맥과 콜로라도 캐니언을 등반하는 동안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의 종말' 중에서. (253쪽)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말하는 것이리라. 옛 애서광들은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예언했었다. 대단하다. 이제 책의 앞날은 또 어떻게 그려질까? 그런데, 난 아직까지 종이로 된 책을 좋아한다. 책장의 넘길 때의 그 감촉과 소리. 그 애정을 놓을 수 없다. 너무 구식인가. 어쩔 수 없다. 그게 나인걸. 서재나 더 넓었으면 하는 바람만 있을 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책의 진화는 살짝 궁금하기는 하다.


 이 세 이야기에 여덟 이야기가 더 있다. 읽어보시라. 현실과 허구. 과거와 미래. 이들이 버무린 이야기. 환상을 품은 이야기다. 애서가들에게 꽃을 바치는 이야기다. 좋다. 알베르 로비다(1848~1926)의 그림도 좋다. 이 이야기의 지은이 옥타브 위잔(1851~1931)은 프랑스의 작가 겸 애서가라 한다. 그도 책을 모으는 병을 갖고 있었으리라. 역시, 나와 동병상련이다. 그나저나 일본의 '츤도쿠(積ん読)'1처럼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읽어야 하리라.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를 읽어야 하고, 이어서 나를 일깨울 수 있어야겠다. 그러면 글자 없는 책이지만, 언제나 빛나는 책도 읽을 수 있으리라. 책 안에 길이 있다.   



 

  1.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쌓아 두고 결코 읽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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