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둘째 주 목요일이면 전월 업무 브리핑이 있다. 대표님과 함께 팀실장들의 브리핑을 받고, 수정할 사항이나 다시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논의한 다음에 모두 나가고 나면, 마지막으로 내 차례다. 나까지 포함해서 세 시간 남짓은 기본이다.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터라 그 시간을 정말 필요한 시간, 앞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기며 좋은 마음으로 브리핑 시간에 집중하지만, 오늘같이 상반기 점검에라도 들어가는 날이면 진이 빠지고 만다. 같은 세 시간이라도 여유하나 없이 빽빽하고 조밀하게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메모도 다른 달의 몇 배 이상이고, 긴장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브리핑에서 나온 사항들을 서류로 만들어야 할 일이 당장 코 앞에 닥친다.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대표님이 아주 정확하게 짚어주고 방향도 제시해 주시니 내게는 정말 필요한 시간이다. 다만, 내가 왜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잠시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 속상할 뿐이다. 

브리핑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메일을 열어보니 알라딘에서 반가운 소식이 와 있었다. 지친 것도 잠시, 자괴감도 잠시.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는 당장 만들어야 할 서류들을 너무나 재미있게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야근을 하고야 말았다는 사실. 알라딘이 나에게 비타민이 되어 준 하루였다. 리뷰를 쓸 때마다 읽은 정성을 더해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쓰긴 하지만 꼭 책 한 권은 온 마음을 다해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알라딘에서 그 리뷰를 알아본다는 것. 그럴 때마다 그 사실에 그냥 고마운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것이다.

조금 여유가 있는 두어 달이 지나가고 이제부터 또 바쁜 하루들이 펼쳐진다. 퇴근 후, 책 읽는 시간에 피로가 좀 더 얹혀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오늘처럼 야근도 하고 브리핑으로 지쳤던 하루에도 퇴근을 하고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읽는 책은 하루의 그 모든 피로를 녹이고도 남는다. 여전히 <출판하는 마음>을 붙들고 있고, 몇 주 후에 있을 고등부 아이들과의 독서모임에서 나눌 <호밀밭의 파수꾼>도 읽어야 하고 박연준 시인의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도 빨리 읽고 싶고,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강남순 교수의 <배움에 관하여>도 이달에 꼭 읽고 싶은데 마음만 급하다. 그리고 이달에 읽어야 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도 있네. 밤에 조금씩 야금야금 읽고, 주말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 고 쓰면서 독서계획을 세워 본다. 우선은 일에 집중하고, 퇴근해서는 일 생각은 아예 접어놓고 책에만 집중하자. 고도 쓰면서 다짐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리뷰를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는 매일 감탄한다. 그리고 리뷰를 읽어보면 내용도 참 깊고, 그냥 읽은 것이 아님을 알 때는 더욱 놀랍기만 하다. 그 내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부럽기도 하고 그(녀)만의 독서력이 참 대단하다 싶은 것이다. 나는 애초에 리뷰가 목적이 아니라 잘 읽어내는 것이 목적이니 부러워하지 말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오래 꾸준하게 가보자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러움이 좀 가실까 싶은 마음. 

내일도 일은 산적해 있지만 마치고 책 읽을 생각을 하며 열심히 하자. 무언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아주 그럴 듯한 말이기도 하다. 내일은 한 끼를 먹어도 아주 맛있는 걸 먹고 일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고 퇴근하리라. 이렇게 책을 풍족하게 사서 읽을 수 있는 것도 나를 필요로 하며 월급을 제때제때 주는 직장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결론은 "대표님, 더 깊이 고민하며 업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분께 직접 드리지 못한 말씀이지만 고민의 흔적들은 그분께 언젠가는 가 닿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깊이 고민하면서 일하자. 그리고 책도 깊이 파고들자. 새삼 "깊이"라는 진중함과 진실함이 참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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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5-16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독서모임, 강연에 참석하는 시간이 생기면서 피곤해서 책이 눈에 안 들어올 때가 있어요. 책 읽고 글 쓰는 루틴이 조금 깨졌지만, 그래도 독서 의욕을 자극받아서 좋아요. ^^

안나 2018-05-16 12:03   좋아요 0 | URL
요즘은 바빠서 책을 얼마 전의 리듬대로 읽진 못하지만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읽는 게 그냥 좋네요. 천천히라도 꾸준하게 읽고 쓰고의 삶을 누리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사이러스님도 그러실테고요 :)
 

어린이날, 조카들과 함께 식사하고 공원에서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한낮의 햇볕을 피해 까페에 왔다. 마침 토요일에만 휴대폰을 볼 수 있는 조카들은 각자 조용하게 휴대폰 속으로, 동생과 나는 각자 들고 온 책 속으로 흩어졌다.


은유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을 어제 받아들고는 읽던 책을 뒤로하고 먼저 읽는다. 친애하는 이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역시... 그렇지... 존경하는 마음이 더 얹어지는 순간들. 


이병률, <끌림>의 편집자였다는 사실은 너무도 놀라웠다. 지금까지 내가 사서 선물한 <끌림>은 아마도 백 권은 넘을 듯. 너무 좋아서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그 책을 그녀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놀랍고 기뻤다. 나는 그녀를 오래 전부터 좋아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구나. 왠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마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애정의 다함에 대해 나는 나를 자꾸만 의심해야 한다. 한순간의 안도가 한 권의 책을 망칠 수 있다. 어려운 이름, 책. 그렇다고 당신에게 내 싸다구를 후려쳐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내 귀싸대기는 내가 후려 치는 걸로. (25쪽)

제목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지지 않는 편이예요. 제목을 정하기까지 제가 최소한 세 번 이상은 집중해서 읽거든요. 마치 내 책을 보듯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엄청 집중하는데 그럴 때마다 튀어오르는 제목들의 진심을 제가 아는 탓에 작가와의 싸움에서도 웬만해서는 굽히지 않아요. 그런 만큼 책임감이 강하게 들죠.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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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5-06 0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작가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글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 편집자라고 생각해요. 저도 끌림은 갖고 있는 책인데 그렇군요. 끄덕끄덕.

안나 2018-05-06 12:02   좋아요 0 | URL
끄덕끄덕 ^^ 저도 언젠가부터 책을 읽으면 편집자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오래 전의 그때는 <끌림>이 왜그렇게 좋던지요. 제게 좀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

cyrus 2018-05-08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글이 잘못 썼는지 스스로 의심해요. 내가 후려치는 귀싸대기. 정말 적절한 표현이네요. 북플에는 내가 잘 되라고 귀싸대기(비판) 날리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요.

안나 2018-05-08 15:44   좋아요 0 | URL
비판의 시간을 가져서 발언의 기회를 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북플이나 서재에서는 다른 이의 글에 비판을 가하는 것이 쉽지 않죠. 비판을 하기에 비판을 하는 본인의 글이 자신있는 것도 아닐 테구요. 그래서, 결론은 ˝내가 후려치는 귀싸대기˝의 실력을 잘 기르는 것으로. ^^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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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책입니다. 박연준 시인이 쓴 프리다칼로,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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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마음에 남아 - 매일 그림 같은 순간이 옵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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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으로 써내려간 고백들이 그냥 나온 문장들이 아니라 삶으로 겪어내고 견뎌내어, 온 마음으로 진하게 우러나오는 글들임을 확인할 때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주 멈춰섰다.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깊이 위로받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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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
노경원(소유흑향) 지음 / 시드페이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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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서점> 정지혜 대표가 편집자 시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라고 한다. 그동안 시도하다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고, 다시금 도전해보자. 라는 마음이 들게 한 책이다. 교회 제자 생일에 무슨 책을 선물할까 고민하던 중에 만난 책. 아이에게 꼭 필요한 책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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