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새 아시아 문학선 22
메도루마 슌 지음, 곽형덕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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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판도라 

 

일본인들에게 오키나와는 어떤 의미일까.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닌, 영원한 이방인이며 영원한 타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곳이 오카나와이다.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와 문학에는 미군들의 성폭행 사건이 반드시 등장한다. 그 이유는 오키나와가 한때 미군정 치하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유였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일본 내 미군시설 면적의 약 75퍼센트가 오키나와 미군기지이다. 아시아의 하와이라 불리 울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지만, 오키나와의 역사는 그 아름다움에 가리워진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미국령이었다가 다시 일본에 속하는 와중에 오키나와인들은 미군 수용소에서 짓밟히며 속박당한 채 살아야했으며 태평양전쟁시에는 가미가제 특공대에 젊은 영혼들을 자살부대에 보내야 했다.

 

무지개 새의 저자 메로루마 슌은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키나와의 이런 불편한 진실에 천착하여 오키나와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물방울로 아쿠카가와 문학상을 수상하며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를 탁월하게 그려내었다는 평을 받는 그는 무지개 새에서는 미군의 폭력이 오키나와라는 섬을 어떻게 망가뜨려 놓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움에 가려져 그 안에 어떤 비극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지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문학을 빗대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가쓰야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폭력조직 두목 히가를 만나면서 가쓰야는 히가의 충실한 오른팔로 철저히 길들여진다.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자신을 폭행한 이에게 동화되어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한 모습이다. 히가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히가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쓰야는 동급 아이들에게 상납금을 받고 폭력으로 타인을 길들이는 법을 배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약에 취한 여자를 매춘에 이용하고 상대 남성을 사진으로 협박한다. 히가는 약에 취해 매춘을 더 이상 하지 못하면 다른 여자로 교체해 준다. 그러던 가운데 만난 마유라는 여자가 들어온다. 마유를 돌보면서 가쓰야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연히 마유의 등에 새겨진 무지개 새문신을 보면서 부터이다. 마유의 등에 있는 무지개 새는 가끔 반짝거리기도 하며 가쓰야에게 묘한 환상을 심어주는데 안타깝게도 무지개 새의 머리는 누군가 지진 담뱃자국으로 사라졌다. 여러 가지 빛깔의 무지개 새 문신을 볼 때마다 가쓰야는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지곤 하지만 머리가 없는 무지개 새는 마유와 가쓰야를 포함하여 오키나와인들이 날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만 같았다.

 

가쓰야에게는 오키나와에서 장사를 하는 엄마 그리고 두 형과 누나가 있다. 이들과의 대화는 최근 일어난 미군들이 소학교 학생들을 집단 성폭행 한 사건에 초점이 되어 있다. 이 사건으로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시민들의 집단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엄마와 두 형은 미군들에게 군용지 대여료를 받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할 행위가 아니라는 비난을 한다. 누나 히토미만 소학생을 성폭행한 미군을 비난하는데 가쓰야만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소학생 시절 누나가 미군에게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히토미는 동생 가쓰야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 일을 함구하게 하였고 가쓰야는 모른 척 하는 것으로 둘 사이의 비밀이 되어 있었다. 엄마와 두 형제들이 나누는 대화는 아마도 오키나와인들 대부분이 미군정에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일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미군들에 의한 성폭행이 거의 일반적인 분위기에서 오키나와인들은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길들여져 갔던 것인지 가쓰야가 중학교 때부터 접하는 폭력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약에 취해 이미 망가져 버린 마유 역시도 소학교부터 당한 성폭행으로 삶은 이미 재생 불가 상태였다. 마유가 접하는 남자손님은 중학생 딸을 둔 마유학교 선생님이였다. 마유는 선생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고 가쓰야는 폭력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약에 취해 더 이상 매춘을 할 수 없는 상태인 마유를 보며 가쓰야는 처음으로 히가를 피해 도망가기로 하는데 전설의 새인 무지개 새가 사는 얀바루 숲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곳은 베트남 전쟁 당시 특수무장을 한 군인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이었으며 히가를 피해 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미 가쓰야와 마유에게 희망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가쓰야는 무지개 새를 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폭력에 길들여진 가쓰야는 답답할 정도로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히가가 가진 힘 앞에서 굴욕적이고 비굴할 정도로 복종하고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을 촬영하면서도 연민을 가지지만 절대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캐릭터이다. 그러면서도 가라데 유단자이며 가족들에게 충실한 막내 역할을 하는 평범하면서도 훌륭한 인성을 가졌다. 오키나와의 교육이 바른 방식이었다면 절대로 나쁜 길에 들어설 수 없는 건실한 젊은이다. 그런 그가 여성을 사고 팔며 포로노를 찍어주고 히가라는 악당의 편에 선다.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 같은 감정표현조차 할 줄 모르지만, 마유를 만나면서 삶이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마유의 무지개 새문신을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혐오를 품는다. 얀바루 숲에만 사는 무지개 새를 보면 어떤 사람을 살고 어떤 사람은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무지개 새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이다. 삶이 지옥인 이들에게 무지개 새가 주는 의미는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전혀 없는 가쓰야와 마유 같은 약자들은 오키나와인에게 신적인 존재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마유의 칼이 가쓰야를 향하자 그는 죽음조차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그래 모두 죽어 없어지면 된다.”

 

무지개 새, 이 책은 가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으로 치닫으며 벼랑 끝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불편할 뿐 아니라 불친절하다. 남성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여성들은 너무 쉽게 짓밟히고 오키나와인은 미군들의 성폭행 사건이 비일비재해도 어린 여자들을 밤에 내보낸 부모들 탓이라며 먹고 살게 해주는 미군들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미군들을 옹호한다. 가쓰야는 가라데 유단자이면서도 히가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자에게 비굴할 정도로 복종하며 산다. 결국 그 악마가 찾지 못하는 얀바루 숲으로 도망을 선택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자신을 폭행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동화되어 폭력을 정당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비이성적인 모습이 오키나와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는 역사의 무게이다. 아름다운 섬, 아시아의 하와이, 치유의 명소로 이미지를 덧칠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미군들의 폭력으로 집단적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메도루마 슌l의 무지개 새는 어쩌면 일본인들은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 상자일지도 모르겠다. 상자를 연 순간 어느새 튀어나와 오키나와인 사이에 섞여 금단의 악들이 일본을 물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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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 반짝이는 설렘을 간직한다는 것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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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늙지 않는 비결은 더 오래, 더 자주 설렘을 느낄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만의 경험’, ‘나만의 이익을 쌓아 올리는 데 골몰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한 마음의 안테나를 활짝 열어둠으로써 둔감해지는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벼리는 것. 그것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에고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며, 타인의 시선에 길들기보다는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싱그러움을 회복하는 마음 챙김 방법이기도 하다..

-월간 정여울 두근두근

 

미셀 투르니에는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친구할 수 없다고 했다. 삶에서 감동하며 예찬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요즘은 길가를 지나거나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환한 미소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모두가 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열중한 나머지 웃을 시간조차 잊고 사는 모습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것에 대한 감동과 예찬이 줄어들어 간다. 그것은 사람이라든지 사물이던지 모두 같다. 아마도 익숙함이라는 나른함과 권태와 같은 나태에 서서히 잠식당해 감각을 상실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끔 두근거리는 순간은 찾아온다. 붉은 빛으로 느리게 물들어가는 저녁 시간을 걸을 때나 첫 봄에 피어난 꽃망울 터지는 소리라든지 하늘을 향해 한껏 목을 늘려 간절함을 품은 코스모스를 볼 때나, 꽃이 지기 바쁘게 초록 선율로 바뀌어 버린 산천을 볼 때 환희와 감동으로 뛰는 심장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두근거림을 매일 느낄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실패하면서도 삶을 계속하는 이유

영화 디태치먼트에는 매순간 실패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삶에서도, 지역사회의 골칫거리들을 가르치는 일에서도 그는 실패하였다. 무분별한 약물중독과 섹스와 어른들의 무관심과 부모의 학대에 익숙한 십대들은 자신을 가르치려는 선생 헨리에게 거부감을 갖는다. 헨리는 자신의 실패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자신이 매번 실패하면서도 삶을 계속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듯 우리를 집단적인 바보로 전락시키는 시스템에 저항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만 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인식을 고양하고, 우리의 신념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배워야만 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영혼을 지켜내고 보존해야만 하는 거야. 배움을 통해서.”

 

그러나, 아이들은 헨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보여주는 개과천선이나 계도로 인한 변화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헨리는 여전히 혼자였고 불량한 아이들을 품어주려 했던 헨리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를 좋아해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헨리 눈앞에서 자살하기까지 한다. 이 영화의 불친절함. 헨리를 끝가지 절망으로 밀어붙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일까. 헨리는 늘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과 세상을 희망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에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적당히 애착하고 적당히 분리되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무심함의 디패처먼트의 헨리는 어쩌면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상실감과 고독감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매일 실패하여 눈물짓지만 그럼에서 헨리는 살아갈 것이다. 그에게는 아주 작은 밀알의 희망,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1퍼센트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두근두근하는 순간들은 그런 1퍼센트의 희망과 맞닿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헨리의 무표정함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그려진다. 삶의 민낯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숨 막히는 중노동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은 실패자라 고백한 헨리는 삶의 민낯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월간정여울의 마지막 편인 두근두근과 함께하는 화가는 에곤 실레이다. 캔버스에 한 획을 긋는 듯한 붓터치가 싱그러운 설렘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독감으로 28세 이른 나이에 사망한 에곤 실레는 주로 자화상이나 기묘한 표현들을 그리곤 하였는데 보수적인 미술 시대풍토의 반감을 사곤 하였다. 두근거리는 설렘의 이미지보다는 뭔가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느낌이다.

 

월간정여울의 책들은 내게 소중한 글들로 자리매김하였다. 시와 영화감상, 인문,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헤라자드의 끝이 없는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그간의 저서들을 통해서도 남성작가들은 따라올 수 없는 감성 인문학을 선보여 왔지만. 월간으로 기획한 아날로그 인문서는 무척이나 획기적인 도전이라 보여진다. 그 대장정의 걸음이 여기서 끝난다하니 아쉬움이 드는 책이다. 월간정여울의 시리즈를 읽으며 울고 웃었던 기억이 좋은 여운으로 오래오래 가슴 속에 머물고 있을 것 같다.

 

내 삶의 목표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이 크나큰 사랑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사랑을 타인에게 남겨준 채 떠나는 것이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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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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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청소년 범죄, 수위는 점점 높아져 흉포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도저히 어린 아이들이 저지른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청소년 범죄의 현주소를 되짚어 보게 한다. 최근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고 흉포화 되자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천종호 판사의 강연회가 열렸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통해 또는 유투브 동영상으로 천종호 판사의 호통 재판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기에 무척이나 기대하였던 강연이었다. 직접 본 천종호 판사님은 권위적인 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소탈한 모습의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포근한 인상이었다.

 


이 책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은 소년 재판을 8년 하고 떠나가는 천종호 판사의 마지막 소회가 담겨있다. 비행 청소년들을 향한 호통으로 법정을 눈물바다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소년 재판을 하며 청소년들의 재판 절차의 문제, 청소년들에게 미흡하기만 한 제도적 모순들을 묵도하며 그가 깨달았던 것은 비행 청소년들은 따뜻한 말 한 마디에도 바르게 자란다는 것이었다. 국가나 사회가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을 찍지만 천종호 판사의 눈에 비친 그들은 가정에서도 법정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여리고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소년재판을 끝내야 하는 법정에서 아이들이 다시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애타는 아버지의 마음은 곧 호통으로 이어졌다. 죄의 유무를 따져 처벌하는 판사가아닌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환경을 조성해주며 품행 교정을 가능하게끔 하며 비행과 범죄를 벗어나 자립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소년 법정의 판사가 되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판사이다. 호통을 통해서라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하고,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있으면 해결할 수 있도록 관계 회복의 단초를 제공하며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까지 배려한, 삶의 안내자로서 아이들을 비롯한 소송 관계자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 호통은 천종호 판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호소였다.

 

나의 호통은 법정에 선 소년들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바라는 내 나름의 간절하고 간곡한 호소이다.”


 

천종호 판사는 무척 가난했다. 한국 전쟁 때 피란민이 거주하는 판자촌이 즐비한 부산의 아미동 까치고개에 있는 빈민가가 그의 고향이다.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갔다.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공부였다. 가난으로 인해 비행에 빠지는 청소년들의 슬픔과 아픔을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가난으로 점철되었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는 말처럼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은 가족해체로 제도 밖에서 방황하는 소외계층의 자녀들이다. 법정에서 선 소년들에게 천종호 판사가 주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희망, 가난한 삶에 드리워진 암울의 장막을 거두고 희망이라는 빛을 따라 일어서는 용기였다.

 


청소년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비난은 모두 비행청소년들을 향한다. 하지만, 천종호 판사는 그 아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을 제공한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결의 실마리 역시도 어른에게 있다. 아이들의 비행을 부추기는 온라인 중독과 사이버 폭력은 개인과 가족을 넘어 사회와 함께 나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점점 증가하는 흉포화 되는 청소년 범죄로 인해 소년법이 폐지된다면 모든 사건을 형사재판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만약 개정안이 받아들여져 형법상 비 범죄연령이 10세까지 낮아지게 되면 초등학생 5,6학년 학생도 형사법정에 세워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들은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게 되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여야 하며 소년원은 폐지되고 소년교도소를 만들어야 한다. 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청소년 범죄는 전체의 5퍼센트 안팎이고, 더 나아가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은 전체의 1퍼처센트 미만일 뿐이다. 그런 이들을 엄벌하기 위해 소년법을 폐지하면 나머지 95퍼센트의 사건도 형법을 적용해야 하며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도 모두 전과자가 된다.

 

세상 어디에도 혼자 크는 아이는 없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어른들이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의 실마리도 어른들이 풀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천종호 판사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른으로 살아가며 아이들 문제에 무관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지금의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이들의 영역이 있다. 그건 사춘기라고도 하여 문제가 툭 불거지기도 하며, 내 아이는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이 빚어내는 과잉보호의 늪이다. 가정에서조차 케어가 되지 않는 아이들도 많고 학교내에서는 왕따와 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어른들의 암묵적인 동의와 무관심으로 비행 청소년들은 사회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법적인 처벌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 ‘호통하나로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려놓았듯이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비행 청소년이 아닌 사랑이 필요한 아이로, 문제아가 아닌 부모의 맘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어른의 몫을 해야겠다.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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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사람인가
발타자르 그라시안 &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 장 드 라 브뤼예르 지음, 한상복 엮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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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인생 1막은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즐겨라.

고전에 힘입어 우리는 더 깊이 있고 참다운 인간이 된다.

인생 2막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좋은 것들을 즐겨라.

조물주는 우리 모두에게 재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고,

때로는 탁월한 재능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들에게서 다양한 지식을 얻어라.

인생 3막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보내라

행복한 철학자가 되는 것만큼 좋은 인생은 없다. -그라시안

 

책선물을 받고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인생책이라 할 수 있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와 비슷한 맥락의 책이지만한상복 역자가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와 장 드 라 브뤼예르의 잠언을 틀로 삼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읽다보면 무척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많다오히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물질의 세례를 받고 있지만정작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함은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더욱 강팍하게 만들고 있는 주범인지도 모른다.

 

라 로슈푸코는 프랑스 대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정치적 책략에 휘말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루이 13세 시절왕비의 편을 들어 권력자 재상을 타도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가 투옥되는가 하면 루이 14세 때에는 실세 마자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두 차례의 큰 부상을 입고 은퇴해 살롱헤서 독서와 대화를 나누며 제2의 인생을 살았다그는 우리의 미덕은 위장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며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일지언정지식과 덕행을 쌓음으로써 자기 완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설파한 것과는 반대로 착한 척하는 것은 삶의 본질과 멀어지게 할 뿐이라는 통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다그의 잠언은 거의 독설과 날카로운 지적들이 많지만 수많은 굴곡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신랄하면서도 인간 본성을 꿰뚫는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이라는 것 또한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이며 그 잣대에 맞춰 살아가다보면 어쩔 수 없는 가면을 써야만 한다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태어나면서 누군가를 향한 페르소나를 쓴다진정한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우리는 가면을 강요받기도 한다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가장 좋은 가면이다하지만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씌워진 가면을 조금씩 깨어야 할 때가 온다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은 나를 속박하는 무기로 작동되어 오히려 나를 나이게 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다 남의 눈치를 보며 온갖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내 삶이 자본주의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 모순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자본주의는 이기심과 이익을 동력원으로 삶아 굴러가는 시스템이다그러면서도 이기심은 나쁜 것이라고 주입시키니시스템 자체가 이중적이며 모순적이다.-p6

 

사람은 이기적이다이기적인 본성에서 출발하지만 그래도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며 나름의 공존의 지혜를 터득하며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삶에서 어긋나거나 뭔가 나와 맞지 않는 타인을 한 번쯤은 대면하게 된다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생활패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의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지난 일을 되풀이하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나약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을 비난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뿐이다이런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가 사라졌을 때 대상을 수시로 바꿔 자신의 불안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결국 누구나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했다 싶으면 공격성을 드러낸다자본주의 아래에 씌워진 휘황한 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착한 척하느라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있는 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더 낫다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으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세 명의 현자들이 알려주는 공존의 지혜이다스스로에게나 사랑하는 이에게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너무 착하지도그렇다고 악하지도 않게그대로의 나인 채로 살아가라.’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나를 지켜내는 동시에 상대 또한 불평불만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는 현실주의적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p12

 

어느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하지만 모든 이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은 더욱 불행한 일이다모든 이에게 쓸모 있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이며 분란에 휘말려들기 쉽다.-그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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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주는 건 그만하겠습니다 - 나를 막 대하는 인간들에게 우아하게 반격하는 법
로버트 I. 서튼 지음, 문직섭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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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또라이, 저기도 또라이, 또라이 천지다. 또라이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또라이를 간단하게 처치할 방법이 있을까부제 나를 막대하는 인간들에게 우아하게 반격하는 법을 달고 있는 참아주는 건 그만하곘습니다는 일명 또라이 퇴치법을 담은 내용이다

 

스탠퍼드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스탠퍼드 행동과학 고등연구센터CASBS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또라이를 해결할 수 방법을 알려 달라는 약 8천통의 이메일을 받게 되면서 또라이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또라이 심층분석을 통해 공인 또라이를 진단하는 방법을 시작하여 또라이를 상대하는 도망과 회피, 버티기와 반격의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또라이에 대한 무지(참아주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열 가지 거짓말

현실 부정 : “상황이 그렇게 나쁜 건 아냐.”

개선되고 있다는 허상 : “정말 나아지고 있어.”

헛된 희망 : “머지않아 상황은 훨씬 더 좋아질 거야.”

오지 않을 내일에 대한 기대 : “중요한 일만 끝내고 나면곧바로 더 나은 일을 찾아 나설 거야.”

고통의 가치에 대한 맹신 : “많이 배우고 있으며 정말 원만한 관계도 유지하고 있으니혹독하고 모욕적인 환경도 견딜 만한 가치가 있어.”

구세주 콤플렉스 : “일을 이만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어.”

근거 없는 자신감 : “상황은 분명 어렵지만난 강한 사람이야이 정도에 흔들리지 않아!”

자신이 다 할 수 있다는 오만함 : “물론 상황이 어렵지만나는 일과 삶을 잘 구분하니까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을 거야.”

자발적 고통 감내 : “나에게 분명히 힘든 상황이지만다른 사람에게는 더 힘든 상황일 거야그러니 내가 불평할 자격은 없어.”

억지스런 자기 위안 : “여기도 힘들지만다른 데는 더 끔찍할 거야.”


저자는 또라이에 대한 무지로 인해 또라이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모른 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또라이를 대하고 있다 충고한다. 더군다나 온라인에 넘쳐나는 또라이들, 공인된 또라이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할 수만 있다면 관계를 끊어야한다고 충고한다. 조사에 의하면 사이비폭력을 겪은 이들의 60% 는 무시하였으며 8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은 그 방법이 효과적이라 대답했다. 그 가운데 20% 센트는 자신을 괴롭히는 또라이에게 정면으로 대항하였으며 상황이 개선되었다고 하였다. 벗어나는 건 번거롭지만 또라이에게서 도망가는 기술은 맞서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라이를 안 보고 살면 좋겠지만 또라이를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마주치는 횟수를 줄여야 한다. 눈치만으로 또라이를 피하는 7가지 회피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1. 일정거리 유지하기/2. 교묘하게 사라지기/3. 반응하지 않는 연습 /4.‘자발적투명인간 되기/5. 인간 방패 내세우기/6. 나만의 숨 쉴 공간만들기/7. 동료들과 조기 경보 시스템만들기

 


회피의 기술이 있는가 하면 참아주는 기술도 있지만,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또라이를 참아주다 보면 또라이가 나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라이에게 대하는 반격의 기술 여섯 가지를 활용하면 조금은 효과가 있을 듯하다. 또라이에게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솔직한 자세로 대응하기/ 적극적으로 반격하기/애정공세와 아부를 통해 반격하기/ 달콤하지만 헛될 수도 있는 소소한 복수하기/ 또라이를 교정하고, 제압하고, 쫓아내는 시스템 활용하기 / 이러한 것들도 소용없는 또라이라면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의 방법이다.


다른 사람을 또라이로 낙인 찍는 건 신중하게,

자신을 또라이로 인정하는 건 신속하게 하라.


살아가면서 또라이 한 번 안 만나본 사람 없겠지만 불과 몇 년 전에 어마무시한 또라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나와 직접적인 마찰은 없었지만 내 동료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그 괴롭힘을 상상을 초월하여 동료는 또라이를 고발하기까지 이르렀다. 거기서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또라이가 아니었겠지만 또라이는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이유로 나에게까지 해코지를 하였다. 또라이들은 상상의외로 막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이후 나는 무시로 일관하며 투명인간으로 그 또라이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또라이의 집착과 괴롭힘을 당하는 동료의 고통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과 약점을 가지고 산다. 또라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또라이들은 자신의 단점과 약점은 철저히 무시하고 타인의 잘못만을 물고 늘어진다. 그 또라이도 그랬다. 자신의 행동은 무조건 옳았고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었다. 자신의 나쁜 행동이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또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 시대의 힐링멘토 김창옥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늘 유쾌하기만 하신 분이 공황장애를 극복하게 되었던 과정을 설명해 주는 강의였다. 그는 여기도 또라이 저기도 또라이, 또라이가 너무 많아서 어딜 가나 또라이만 넘쳐나서 사는 게 고통스러워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공황장애로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라이가 넘쳐나는 세상만 보았던 자신의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상과 수련을 통해 깨닫게 되자 이후 또라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라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이들을 또라이로 보며 적대시하게 되면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타인을 공격하는 또라이를 만나거나 또라이라 의심되는 사람을 직면하게 된다면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단순하게 처리하고 상황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다. 다소 유쾌하고 즐겁게 다양한 또라이들을 상상하며 읽게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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