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 원태연 필사시집
원태연 지음, 히조 삽화, 배정애 캘리그래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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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시간을 걸어가고 있을 때에는 잔잔한 평화의 시간들이 간절하더니 모든 것이 안정되니 매너리즘이라는 것이 마음을 차지하고 있어 다시 폭풍 같은 시간이 그리워지곤 한다. 요즘 가장 두려운 건 늙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육체의 노쇄함보다도 더 두려운 건 정신적 쇠락이다. 어떤 시인은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멈추면 안된다. 그것이 나에 대한 증명이라 하였는데 사랑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나의 시간들이 문제다. 사랑과 아름다움이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다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사랑과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기 시작하였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의 시작점에서 아름다웠을 가을하늘 한 번 쳐다볼 여가도 없이 지냈던 것 같다. 반성으로 지쳐갈 때쯤 원태연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어 다행이다. 조잡한 문장의 나열이 없이 짧은 문장 안에 감성을 담아내는 시인의 글귀들이 정겹고 아름답다.

    

 

 

 

아주 오래된 비밀/원태연

 

행복할 때 조심해

세상은 니 행복을 훔쳐 간다

진짜야!

곰곰이 생각해봐

하루 이상 기분이 좋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이 세상엔 니가 행복한 꼴을 못 보는 존재들이 득실거리거든

그 못된 것들은 먼지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니 생각 속에 꼭꼭 숨어 살고 있어

니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

그 행복을 훔쳐가기 위해서

그것들이 잘 쓰는 방법 중 하나는

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거야

어때?

이해가 좀 가?

그럼 이제 고개 들어

희망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게 아냐.

  

 

위 시를 읽고 이제 중학생이 된 딸에게 편지를 써 주었다. 딸에게 알려주고 싶은 비밀이었다. 시인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정제된 언어로 지혜를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때 시 좀 쓴다고 끄적거리던 나의 마음을 부끄럽게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감성의 마중물을 심연에 부어주는 그런 느낌이 참 좋았던 시집이다. 필사를 하면서 마음이 많이 잔잔해져서 매너리즘 극복에 걸맞는 처방전이었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잊지 말아야겠다. 존재의 증명을 위해.

 

     

    

시인의 눈물/ 원태연

 

시인이 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정해놓은 시간은 아니고

술이 달거나

음악이 귀에 들어오거나

쓸데없이 뭉클해지거나 하면

시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는

한숨과 체념이 연과 행으로 나누어져

읽다보면

한참을 읽다보면

어느새 시는

먼 얘기 하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이 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주인을 잘못 만난 마음은

병원에라도 데려다주고 싶을 정도로

무지 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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