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기 쉬운 삶 - 상처 주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
토드 메이 지음, 변진경 옮김 / 돌베개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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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왜 고통 받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처에 취약체질이 있다. 사람들이 의미 없이 하는 행동과 말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상처받고는 속앓이를 하며 힘든 시절을 보낸 기억은 아마 누구에게나 생의 관문처럼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상처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좋아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면에 어떤 사람은 그 상처가 마음의 암이 되어 자라게 방치하며 암울한 시간들을 보낸다.

상처를 금방 딛고 일어서는 힘이 절로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때 우리가 자주 쓰는 방법은 상처 받지 않은 척 하는 처연함을 가장하는 것이다. 이런 처연함은 고통을 주는 문제들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철학과 교수인 토드 메이는 세상의 관점을 이런 상처 받지 않음의 관점으로 바꾸면 고통에서 보다 자유로워 질 것이라 한다.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저자는 자신의 고통을 바탕으로 인간의 특이적 체질인 부서지기 쉬운 삶을 사유한다. 그는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상처 받지 않으려는 상처 받지 않는 처연함의 삶의 방식을 1장과 2장에서 다루는데 부서지기 쉬운 삶의 큰 그림은 우선 삶의 과제를 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삶의 과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삶의 과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호감이 가는 경력도, 친밀한 관계도 없으며, 의미 있는 어떤 일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으며, 취미도 없으며 그런 사람은 자신의 삶에 어떤 특징도 없는 것으로 스스로의 삶에서 익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과제는 고통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디딤돌이다.

 

삶의 과제를 정하고 난다면 그 과제를 가치 있는 일과 가치 없는 일로 나누고 가치 있는 일에만 중점을 갖는다. 삶의 과제를 가지고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장애와 부딪힌다. 그 장애란 때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것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도덕적 딜레마와 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다가와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때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종교나 약, 철학, 또는 문학도 하나의 치유법이 된다. 그 가운데 토드 메어가 주목한 것은 불교의 사성제이다. 모든 번뇌의 중심에는 과거와 미래의 무게로 인한 것인데 현재라는 시간에 집중하게 된다면 상처를 받지 않는 초연함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당신의 삶의 상황은 골칫거리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순간에 어떤 문제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내일이나 10분 뒤가 아니라 지금이다.

지금 문제가 있는가?“

-에크하르트 톨레

 

우리는 흔히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상처 받지 않는 처연함을 가장하곤 하는데 이것은 만들어진 위로일 뿐이다. 그렇기에 4장에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임을 말한다. 고통에 초연하기 보다는 상처에 취약한 것이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일상에서의 고통이란 것은 은 스스로 부과한 것이거나 불필요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게다가 때론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와도 삶에서 (1장에서 내가 세운 삶의 과제가 아니라면 )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처에 초연함은 고통을 단기적으로 해결해주는 것 같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으며, 받아들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상을 통해 감동도 받지만 때론 세상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또한 부서지기 쉬운 삶에 노출되어 있기에 고통이 극한에 이르면 두 번 다시 일어설 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고통을 받아들임을 통해 상처를 받지 않는, 보다 양질의 철학적 치유를 부서지기 쉬운 삶에서부터 배울 수 있다.

 

 

인간의 노력이 빚어낸 가장 최고의 것조차

비극을 기반으로 한다는 인식을 지닌 채

우리는 나아간다.

 

우리는 위태로운 존재이지만,

반드시 파멸할 운명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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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 지혜와 평온으로 가는 길
혜민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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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것도 습관이다. 한때 나는 이 바쁨에 몸을 맡기며 존재감을 확인하곤 했던 것 같다. 입에는 바쁘다 바쁘다하며 잡생각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거부하면서 내 멋대로 사는 것에 취해 살았다. 새벽에 등산을 하고 출근을 해서 업무 중 짬짬이 공부도 하면서 서평도 쓰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무엇이라도 배웠다.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올 틈도 가족들에게 구속되거나 아줌마로서의 어떤 일도 부담을 느끼지 못하며 나에 몰입해 사는 시간들이 무척 소중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노안이 왔고 시간도 나이를 먹는지 이제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고 싶어져 조금씩 일도 줄이고 책도 줄이고 나에게 쏟던 시간을 줄여나기 시작했다. 나를 몰아대던 그 조급함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쁘게 산다는 자체에 나를 무척 뿌듯해 했고 남들에게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더 미친 듯 나를 몰아댔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며 나와의 약속을 자주 잊었고 자신이 한 말을 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를 어필하며 만나도 수십 통의 전화로 대화에 진정성이 없었다. 바뻐서인지 모든 것이 엉성하고 진중한 면이 느껴지지 않자 그 사람을 만나면 종종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 돌이켜보니 내 모습도 저러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각종 모임에 임원을 하다 보니 매번 행사업무로 바빴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서 8년 동안 새벽 등산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한 달에 책을 5권에서 6권정도 읽고 서평을 쓰고 있지만 몇 년 전만해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서평을 썼으니 정말 너무 타이트한 일상이었다. 게다가 학과공부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 때 그 시간들을 온전히 내가 평온하고 충실함을 누렸냐고 한다면, 절대 아니다. 나는 그 바쁜 시절의 기억들을 잘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조차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바빴기 때문이다. 왕성한 독서 기록이 내가 읽어 왔던 책들을 알려주고 있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아이들의 삶에 조금씩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면서 시간의 다이어트가 절실히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온 것이 지금의 고요이다.

 

혜민 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 내게 무척 필요한 말들이며 많은 위로가 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모든 말들이 내게 들어와 심작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바쁨으로 떠나보냈던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바쁨으로 덜성숙한 채로 헤어지고 말았던 아쉬운 이들이,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남을 챙겨줄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이 준비되어 있었더라면 절대 서운하게 떠나보내지 않았을 이들이 기억나 마음이 아팠다. 내가 바쁜 것이 행복이라 착각하며 나를 몰아대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은 천천히 가더라도 진한 인간미를 나누었을 것을 하는 후회들이 공허한 가슴을 채우곤 한다. 그때는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사는 게 힘들어

오늘은 걷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걸음을 그냥 반보씩 천천히 걸어요.

천천히 걷다 보면 느껴져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걸음으로 걸으면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갔기에

지금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혜민스님은 우리가 힘들고 지친다는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삶의 고요함을 잃어버리고 살아서라고 한다. 나도 바쁘게 산다는 것이 나를 지치게 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아바타를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면 분명 바쁨으로 인해서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음이 보인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온전히 한다는 것은 매우 소소해보이지만 큰 행복을 가져온다. 지금이라도 잠시 멈추고 나의 고요를 들여다보게 된다면, 분명 나의 아픔이 심장 아래서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삶에는 내면의 나를 어루만져줄 시간이 간절해질 때가 오는 법이다.

 

나는 바꾸지 않고

세상이 내 마음에 맞게 바뀌길 원하기 때문에

삶이 고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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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 장석주의 인물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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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이렇게 끔찍하단 말인가? 삶이란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수프와 같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 수프를 마셔야 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중에서

 

삶은 마셔야만 하는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 문명의 발달에 가짜 행복에 잠식되어 살아가는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진리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그렇게 행복한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들의 행복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온 몸에 브랜드 옷을 휘감고 각종 보석을 주렁주렁 걸쳤지만 영혼은 메말라 각종 우울증 약과 공황장애, 정신불안을 달고 사는 것이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를 매일 마시는 우리네 삶을 반추한다. 현대의 모든 이치가 정신적인 것들을 등한시 하게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 살다보니 사고는 점점 단순해지며 합리적인 사고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에 지나치게 즉흥적으로 반응하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며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여 마녀사냥을 일삼는 온라인 문화를 보아도 우린 모두 심각한 정신적 상해를 가하는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있다.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정신적 의미는 점점 쇠퇴해가며 욕망에만 충실한 삶, 이것이 현실이다.

 

장석주의 신간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를 읽으며 삶은 캄캄한 밤하늘에서 별을 찾는 일처럼 어둡고 좁은 인생길에서 저 멀리 빛을 보내고 있는 진리의 등대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한다. 너무도 고독하고 외롭고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을 때 등대처럼 진리의 불빛을 비쳐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길이 더 이상 외롭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빛 비춤을 해주는 사람들을 장석주 작가는 영혼에 푸른 버드나무처럼 드리워졌다 하여 열 다섯의 성인을 소개해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외로움과 고독, 슬픔과 아픔, 사랑과 고통을 빼고 좋은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외로움과 고통이 아플지라도 겪어야만 하는 것은 그것들을 통해 좋은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로움과 고독의 관문을 겪은 후 찾아오는 정신적 성숙을 통해 내면에 몰입함으로써 찾아오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다. 세속적인 시각에서 장석주 작가가 소개하는 열 다섯의 성인들은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다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다. 수많은 암살 위협과 음해 속에서도 사랑과 자애로 열반에 들어간 붓다의 삶이나 대문호로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가난한 민중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금욕적인 삶을 선택하였던 톨스토이의 길 위에서의 죽음이 그러했다. 불운할 뿐 아니라 불행하기까지 하였던 공자는 평생을 상갓집 개로 천대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 최고의 철학자가 되었다.

 

랭보의 삶에 비하면 다른 이들의 삶은 그나마 행복하다 할 수 있으리. 자신 스스로를 저줍다은 사람을 생각했던 랭보는 스스로의 삶을 탕진하는 데 열중했다. 동성애에 빠지기도 했으며 탈선과 방랑만이 그의 청춘을 물들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출신과 나라를 저주했고 자신의 삶 역시도 저주받았다 생각했기에 그의 시는 저주로 가득찼고 지옥을 찬양했다. 그렇게 그는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평생을 방랑만하며 살다가 다리에 악성 종양이 생겨 38세 이른 나이에 불행하고 짧은 생을 마친다. 체 게바라와 프리다 칼로, 니체, 스티브 잡스 역시도 불행의 아이콘인 동시에 시대의 변혁을 가져온 혁명의 아이콘들이다. 이들은 모두 불행하게 살았지만 그 불행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과 삶에서의 철학을 완성해 가고 있다. 비록 육체는 죽었으나, 영혼은 불멸하여 수천, 수백 년이 지나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빛으로 스며들어 호흡하고 있다. 현재의 삶,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녀도 마실 수밖에 없다면 컴컴한 밤하늘에도 나를 위해 반짝이고 있을 이들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자.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자신 내면의 소리를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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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림모노로그 > 당신의 욕망은 누구를 위한 욕망인가? 《행복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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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절대지식
#타면자건
#멘탈이 메탈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라는 속담이 있다.
①어떤 일을 당해도 꿈쩍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
②아무 소용 없는 짓을 함을 이르는 말
-개구리는 위험을 감지하면 꼼짝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개구리의 피부색은 어느 정도 보호색을 띠고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데, 만일 움직이면 천적들에게 몸이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위험해진다. 그래서 물을 끼얹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사람의 얼굴에 물을 끼얹으면? 바로 싸움이 날 것이다. 따라서 모욕을 당하고도 섣부르게 화를 내지 않고 꿋꿋하게 참고 버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비슷한 고사성어로는 #타면자건 唾面自乾 이 있다.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어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누사덕(屢師德)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성격이 온화하고 아무리 남이 무례하게 굴어도 태평하게 넘겼다. 어느 날 그의 아우가 대주(代州)에 자사(刺史)로 임명되자 아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형제가 다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건 좋지만, 그만큼 남의 시기도 두 배가 되는 것이다. 이 시기와 모략을 면하려면 어찌하면 좋겠다 생각하느냐?“ 하니 아우가 이르길,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그냥 잠자코 닦아냅니다. 매사 이렇게 하여 형님께 누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형 누사덕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이 내가 염려하는 바이니라. 누군가 내게 침을 뱉었다는 것은 네게 매우 화가 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그 자리에서 침을 닦아버리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는 게 되어 더 화를 돋울 것이다. 적은 양의 침 같은 건 안 닦아도 자연히 마르니 가만히 얼굴에 침을 받아두는 게 제일이다.”-『십팔사략』

현대에는 비슷한 말로 #멘탈이 메탈이란 표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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