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 내 안의 빛이 되어준 말들의 추억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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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정여울의 여섯 번째 책은 내 인생에 가장 빛나던 순간의 이야기인 반짝반짝이다. 정여울의 글은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 읽다보면 마음 한 구석이 온기로 가득 차오른다. 의성어로 표현되는 삶의 진경들과 평소 잘 접하지 못하는 화가의 소개가 함께 있는데 반짝반짝하는 순간을 표현해주는 화가는 프란츠 마르크이다. 절제된 색채와 형태만을 용인하는 당시 독일의 지배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무지갯빛, 총천연색으로 번져가는 색채의 향연(p15)이 제목과 잘 어울린다. ‘무지개의 색을 훔친 화가로 불리는 프란츠 마르크의 그림은 생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계의 틀어짐으로 인해 낮은 자존감과 자주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들로 불안정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나를 반짝이는 존재로 만들어준 말 한마디를 최근에 들었다. ‘당신은 나의 멘토십니다.’ 이 말은 모든 슬픔과 고민을 날려주는 미풍으로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타인을 반짝이게 해주는 그 사람의 언어를 통해 내게 없는 온유함의 힘을 느꼈다. 낮은 자조감과 열등감은 분노에 쉽게 노출되게 하였고 온유함의 언어보다는 날 선 언어를 쏟아내기 일쑤였던 내게 그의 온유함은 분노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따스한 햇볕이었다는 걸 다시금 떠올리게 하였던 것이다. 내 생을 반짝거리게 했던 배경은 온유함이라는 병풍이었다. 당연하지만 적당하게 분노할 수 있는 온유함이라는 지혜가 삶을 반짝거리게 한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조금씩 이해하였다.

 

온유함은 분노와 관련된 중용이다.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할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그런 사람은 온유한 사람일 것이다. 칭찬받는 것은 그의 온유함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사람은 대게 침착하여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의 지시에 따라 당연히 화내야 할 일에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기간에만 분노하니 말이다. -아리스토켈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우리 생을 반짝이지 못하게 하는 건 적당하게 분노하지 못해서이다. 분노를 쉽게 표출하고 분노의 언어를 쏟아내는 이유는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미디어에 익숙해져있고 현대인 누구나 권태로움이라는 무력감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태라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배움이 가장 좋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성취하는 경험은 일상의 권태로움을 벗어나 생을 더욱 반짝이게 하는 좋은 자극제이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기대치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이 만들어놓은 장벽이나 다름없다. 그 기대치란 장벽은 나의 욕망과 감정에 의한 판단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미움이나 질투역시도 내 판단의 잣대에 불과한 것이다. 이 장벽을 걷어내면 타인을 향한 권태의 원인과 실망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보이게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가 많을수록 권태와 절망도 깊어지는 법이다. 타인을 향한 기준과 잣대를 나에게 향하게 하면 지금 현재 분노와 미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생을 반짝이게 해주는 것은 조금씩 미움을 벗고 적재적소에 적당히 표현되는 온유함이다.

  

권태의 치명적인 원인 중 하나는 내 삶을 내가 제대로 꾸려가지 못한다.’는 무력감이다. 삶의 기쁨이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쁨을 반드시 외부에서 찾아내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우리를 권태롭게 한다.-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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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행복은 마음먹기나름

작년 한 해 내인생 처음으로 회색빛 우울이 찾아왔었다.
화가 자주 치밀었고 작은 말에도 예민하게 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환경적 요인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치유가 필요했다.
누군가 치유란, 나를 보듬고 쓰다듬을 수 있을 때 시작된다는 말을 하였다. 내안의 나를 마주하는 것에도 많은 용기가 요구되었다.
세익스피어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강도에 따라 행복해진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고 회색빛이 아닌 핑크빛 꽃길을 소망하였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길을 걸으면서
꽃 한송이에서 우주를 발견한 시인의 마음을 동경하며
우울하기만 했던 회색빛은 옅어져갔다.

엘버트 하버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쓰면서
외우고 그대로 따라하면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하였다.
마음으로부터 간절한 소망은 언제나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집에서 나올 때에는 언제나 턱을 당겨 머리를 곧게 세우고,
가능한 한숨을 크게 쉬어 햇볕을 들이마실 것.
친두에게는 웃음으로 대하고 악수를 할 때는
진심으로 다해 손을 잡을 것.
오해받을 걱정은 하지 말고,
적개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하고 싶은 일은 마음석에서
우선 굳게 결정하라.
그리고 한눈팔지 말고 목표를 향해서
굳은 의지로 돌진하라.
크고 훌륭한 목표를 완수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라.
그러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는 그 염원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기회가 자기 수중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능하고 성실하게 살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반드시 되도록 노력하라.
언제나 그런 마음을 잊지 말라.
그러면 시간이 당신을 실제로 그런 인물로 만들어줄 것이다. 마음의 작용이란 실로 신기한 것이다.
올바른 정신 상태를 갖고 용기와 솔직함을 지녀라.
그리고 늘 명랑함을 유지하라.
올바른 정신상태는 창조성을 발휘한다.
모든 사물은 소망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간절한 소망은 꼭 달성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일은 대부분 마음먹은 대로 된다.
턱을 당기고 머리를 곧게 세우라.
신이 되기 위한 앞 단계, 바로 이것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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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타인을 비난하기 전

타인을 갖가지 증오 표현으로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누군가를 항상 마음 깊이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훨씬 어렵고 섬세한 일이다. 그것은 지성과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진심 어린 존중과 배려에는 돈이 들지 않지만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은 자존감을 높이고, 행복감을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공공선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준다.

-월간정여울 『반짝반짝』중에서

링컨의 젊은 시절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젊은 시절 링컨은 사사건건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상대방을 비난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조롱하는 편지를 써서 길에 흘려놓고 가기도 하였고 변호사 개업을 하였을 때도 상대방을 공격하는 글을 신문에 자주 실었다. 이로 인해 링컨을 평생 원수로 품고 살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링컨이 타인을 향한 공격과 비난을 멈춘 사건이 일어났다.
사치를 즐기고 호전적인 성격의 아일랜드 태생 정치가 제임스 시일즈를 비난하는 내용을 ‘스프링필드 저널’에 익명으로 투고하였는데, 불같이 화가 난 제임스 시일즈는 범인을 찾아내었고 결국 링컨에게 결투를 요청한다.
결투를 하면서 심장이 오그라든 경험을 한 링컨은
타인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 사건으로
“ 남에게 심판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도 말라.”가
링컨의 좌우명이 되었다. 링컨은 이후 자신을 악평하던 이를 요직에 앉히기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정치가가 되었다.

타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결국
화약고 주변에 불꽃을 던지는 행위와 다름없다. 자존감이란 화약고를 건드려 폭발하기 쉽다. 그 폭발은 사람의 생명도 앗아가기도 한다. 신조어 중에는 벌레 ‘蟲’충 자를 붙여 사용한 단어가 많다.

온라인상에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부정의 표현을 담아
상대방의 틀린 맞춤법이나 발음을 고쳐주면 ‘진지충’이라는 비난을, 아이를 데리고 카페를 찾는 엄마들은 ‘맘충’이라는 비난을,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할아버지를 ‘틀딱충’이라 비하한다.
자신과 취향이나 습관이 맞지 않을 때 언제든지 ‘충’자를 붙여
비난과 혐오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링컨이 남을 공격하고 비난하기만 하였을 때,
제임스에게 받은 결투로 그 행위를 멈춘 이유는
자신이 비난을 하면 상대 역시도
더 큰 비난으로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맘충’으로 비난을 받자 반대로 ‘애비충’이 생겨나듯이
혐오는 고스란히 혐오를 부르는 대상에게 옮겨가 다른 갈등을 만들어낸다.
칼라일은
“위대한 인간은 소인을 다루는 방법으로 그 위대함을 나타낸다.” 라고 말했다.
남을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남을 존경하고 배려하는 것은 지성과 감수성이 필요하다. 비난은 바보도 할 수 있지만 깊은 인격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음은 쉽게 갖출 수 있는 인격이 아니다. 돌아보면 한때 나도 타인의 비난과 공격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타인의 비난에 참을 수 없었고 공격에 분노를 느꼈지만, 그러한 대처 역시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다시 나를 더 깊은 죄책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하였다. 그때 알았다.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었던 건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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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달그락 - 하루를 요모조모 마음껏 요리하는 법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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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은 월간정여울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의성어가 표현해주는 책의 오마주가 참 좋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일상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가득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는 포트에서도 커피와 스푼이 만났을 때, 차가 지나가는 소리, 바람이 불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 모두 것들이 달그락 달그락 거리며 존재를 빛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조차 달그락 거리며 즐거운 소리를 내는 하루의 시작, 음악은 추억을 타고 그리움으로 심장을 물들인다. 사물과 나와의 시간, 그 사이를 채우는 달그락 소리. 달그락 달그락에는 그런 사소한 일상의 소중한 반짝임을 담았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치유의 언어와 에두아르 뷔아르의 그림과 함께 한다.

 

고요할 것만 같았던 일상은 흔들리기도 한다. 이때 달그락 달그락 거리던 사물들의 소리는 덜컹덜컹거리거나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어지기도 한다. 멀쩡하던 커피 포트는 고장나기도 하고 커피잔이 깨어지기도 하는 일이 발생하듯이 삶 역시도 예고 없이 일그러지기도 한다. 일상이 일그러질 때, 당황하지 않고 보낼 수만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론 많지 않다. 나 역시도 그러니까.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인간관계가 갑자기 돌변하여 가시밭길을 걷는 고통스런 관계로 돌변하기도 하고 영원할 것 같은 우정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미움의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찔러댄다.

 

영화 데몰리션에는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가 갑자기 고통사고로 떠나버리자, 모든 것을 때려부수는 남자가 나온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일상이 아내의 사고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내가 죽은 병실 앞에서 고장 난 자판기 앞에 한참을 서있다. 그리고는 자판기 회사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자판기가 내 돈을 먹었는데 뱉어내질 않는다고. 그런데 어느 새 자판기 회사에 보내는 편지는 일기가 되어 갔고, 그는 고장 난 자판기가 마치 자신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아내가 죽던 날, 냉장고에서 물이 샌다고 불평하던 아내의 말을 기억하고는 냉장고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냉장고를 고치지 않아서 아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컴퓨터와 문, 커피머신 까지 모든 것을 분해해 버리지만 결국은 모든 것들은 되돌리지 못한다. 해체된 기계부품들을 보며 아내와의 모든 추억들을 해머로 부셔버리는 남자. 물건이 고장 나면 고치거나 부수거나 새로 사면 되지만, 한 번 망가진 삶은 고칠 수도 부술 수도 없다. 사물과 삶을 동일시하였지만, 결국 남자는 깨닫는다. 자신의 삶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치유하는 길 뿐이라는 것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한 남자가 달그락 거리던 인생이 와장창 깨어졌을 때 전속력으로 도망쳐 숨으려 했던 것은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것에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고통 앞에서 달아나려 하는 것은 누구나 같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의 일그러짐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여울은 말한다. 그것이 아무리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라면서 불행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음에도 용감해질 기회, 진정한 나 자신이 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 거기서 우리의 슬픔이 시작된 것이다. 타인이 내 삶을 쥐락펴락한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보듬고 쓰다듬기 시작해야만 치유는 가능하다. “세상과의 싸움이 가능해진 상태, 정신분석은 그것을 치유라고 부릅니다.” 치유는 행복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상태에 가깝다. ‘행복한 사람이 되게 만든다기보다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의 진정한 목적이다. 착한 척, 기쁜 척, 행복한 척하지 않기. 바로 그 솔직한 받아들임에서 진정한 치유는 시작된다.....

 

사물의 존재는 달그락이지만 삶은 소소함이 모여 이어진다. 냉장고를 고쳐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던 죽은 아내의 말이 시간이 흘러서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라는 말이었음을 알게 된 남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고장 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언젠가 한 번은, 누구나 한 번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 도망가지 않고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 달그락 달그락은 아주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워주고 있는지 알려주는 치유의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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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밑줄

예컨대 프로이트는 한 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마리아!라고 외치는 틱 증상을 보이자, 정신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환자는 학창 시절 마리아라는 소녀를 좋아하여 항상 마음속으로 ‘마리아’라는 이름을 되뇌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도중 이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는 증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틱 증상은 몇 십 년이 지나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뒤에도 지속된다. 지나치게 억압하려 했기에, 과도하게 통제하려 했기에 오히려 ‘마리아’라는 짓눌린 이름은 틱이라는 증상 또는 실수를 통해 무의식의 고통을 드러낸 것이다.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다시 해도 무의식이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면 전속력으로 도망치다 제일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이 바로 내가 피해 달아난 그 사람 또는 그것이 된다.”

이렇듯 마음속 이야기는 ‘증상’이라는 무기로 우리의 신체를 공격한다. 정신분석의 키워드는 ‘인정’이다. 그것이 아무리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라면서 불행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음에도 용감해질 기회, 진정한 나 자신이 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 거기서 우리의 슬픔이 시작된 것이다. 타인이 내 삶을 쥐락펴락한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보듬고 쓰다듬기 시작해야만 치유는 가능하다. “세상과의 싸움이 가능해진 상태, 정신분석은 그것을 치유라고 부릅니다.” 치유는 ‘행복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상태에 가깝다. ‘행복한 사람’이 되게 만든다기보다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의 진정한 목적이다. 착한 척, 기쁜 척, 행복한 척하지 않기. 바로 그 솔직한 받아들임에서 진정한 치유는 시작된다.

-월간정여울 『달그락 달그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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