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숲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권수연 옮김 / 포레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파리에서 역사상 최악의 테러가 일어났다. 2001년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위치한 쌍둥이 건물에 비행기 두 대가 충돌하여 삼천 여명의 희생자를 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이슬람국가(IS)는 테러의 상징이 되었고 이슬람 근본주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렇듯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사람을 위협하므로 인해서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핍박받았던 역사의 거대한 줄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라가 지닌 정체성은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이데올로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만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장 크리스토프의 소설은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스릴러 황제라 불리는 저자의 신작악의 숲은 바로 이런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탐구이다. 이슬람국가(IS)는 아니지만 그와 비견 되어지는 폭력성의 역사를 지닌 중남미 역사의 거대한 줄기를 바탕으로 하여 심리학적 관점과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명암은 주인공 잔 코로바 판사라는 인물에 축약되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엘리트 반열의 여성이지만, 그녀는 지독한 우울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떠나간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며 매일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그녀는 심지어 떠난 남자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정신과 의사를 도청하기까지 한다. 참으로 찌질하다. 사건에 파묻혀 지내고 나름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판사이지만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며 외로움과 고독에 흐느적거리는 모습의 여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대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 여기에서 소설은 출발하고 있다.

 

그거다. 딱 그거다 .

 

그런데 잔 코로바가 도청하기 시작한 정신과의사 앙투안 페로, 이 남자 매력이 넘친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불면에 시달리던 잔을 매일밤 숙면을 취하게 한다. 이에 잔 코로바는 전남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정신과의사를 향한 열망을 가지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잔은 자신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존재이니.

   

#사건을 해결해야 할 의무

  파리에서 식인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시체의 일부는 범인이 베어 먹었고, 몇 개의 살과 장기는 불판에 구워먹기까지 했다. 벽에는 배설물과 피로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을 그려넣고 마치 祭儀(제의)의 한 장면처럼 꾸며 놓았다. (이 장면에 대한 상상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살해장면은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동료 판사 프랑수아 텐이 맡은 사건이지만 텐은 잔과 자연스럽게 수사를 공조하는 사이라 사건의 전말은 잔도 알고 있다. 게다가 잔은 과거 친언니가 살해당한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단서조차 찾지 못한 상태에서 두 번째 식인살인이 일어난다. 그러던 중, 잔은 앙투안 페로의 진료상담자들 중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세 번째 살인사건의 예고를 듣게 된다. 잔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앙투안 페로를 만나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알아내지 못한다. 세 번째 식인살인이 일어난 후에야 의심은 확정이 되어 아버지와 아들을 찾아나서지만 이미 앙투안 페로는 사라진 후였다. 세 건의 식인살인은 시신을 먹는다는 점과 피를 뽑는다는 것, 그림이나 기호로 제의장면처럼 꾸며놓았다는 것 외에는 어떤 단서도 없었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다는 전화를 남긴 채 텐은 불에 차 죽는다. 그것도 잔앞에서. 이것으로 잔에게는 사건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결정적 단서

  텐이 말한 결정적 단서를 찾기 위해 전화번호를 추적하자 아르헨티나의 농학연구소와 니카라과의 혈액원이 나오자 혈혈단신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난다. 그러나, 텐과 통화하였던 에드아르도 만세레나는 살해당한 후였고, 사건은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가운데 과테말라에서 식인 살인이 일어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때부터 숲에서 데려온 아이 요아킴의 실체가 서서히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숲에서 원숭이에게 길러지다가 인간의 아이로 학습받게 되는 과정, 군부의 잔인성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 여성들을 향한 잔인한 학대, 피바다를 이루었던 군부의 역사, 악어에게 뜯어먹어도 살아난 사람들이 이룬 기형적 집단은 요아킴이 창조해낸 원시부족들이었고 이들은 식인과 강간, 살해로 점철된 요아킴의 무리였다.

  

#삶의 네거티브

  고독과 소외에 몸부림치며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대의 권태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주인공 잔은 요아킴이라는 살인마와의 사투후 이렇게 말한다.

  

 그냥 사는 것.

 이제 보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인간의 잔혹성을 인정하게 될 때 삶은 더욱 단단해진다. 보들레르가 나는 삶이다. 견디기 힘든 , 냉혹한 삶!”이라 외칠 수 있을 때 삶을 긍정하게 되듯이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요아킴이라는 살인마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는 '악의 근원' 으로 그린다. 마치 삶이 지닌 잔혹성이 곧 삶의 네거티브임을, 잔의 여정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현대의 권태를 뛰어넘으며 삶을 긍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안의 잔혹성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언론사에서 일을 하다 프랑스를 떠나 십여 년간 세계를 두로 돌아다다니면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이 소설이 정신분석에 그치지 않고 남미 역사 가운데에서도 소수 민족들이 겪었던 핍박과 박해의 기록이 가능한 이유가 아마도 그런 다채로운 경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플롯이었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 죽음의 공포를 자아내게 하였던 파리 테러를 기점으로 하여 이 책을 읽으니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을 철학적으로 사색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스릴러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하는 강렬한 전개방식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의 미덕은 잔의 철학적 사색덕분에 지적인 동화가 이루어져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점이었다. 중간중간 상상의 허를 찌르는 반전들이 행간에서 튀어나와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극의 전개를 헤매게 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이미 저자의 <크림슨 리버>가 헐리우드에서 영화화가 되어 블록버스터로 자리잡고 있듯이 이 소설도 영화화 하면 대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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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dmsgkr1 2016-01-2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6-05-02 15: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상생 2016-04-1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원한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요약하고 간추리고 정리한 솜씨가 대단하네요.
읽고 싶은 책이네요. 좋을 글 감사합니다. 항상 평안하세요

상생 2016-04-1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블로그에 퍼가고 싶네요
출처를 잘 명시하겠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거절해 주세요
제 블로그는 네이버입니다. http://blog.naver.com/karamos/

드림모노로그 2016-05-02 15:08   좋아요 0 | URL
에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늘 좋은 날 되세요 ~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이석연 편저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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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돌아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 독서를 하면서 좋은 글귀들을 많이 적어놓지 못한 것이다. 다이어리에 비어있는 여백이 그런 아쉬움을 더하던 차에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를 만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나의 게으름에 괜한 심통이 났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글 한 줄이 주는 깊은 울림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신기했다저자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 것 같은데 약력이 화려하다. 6개월 만에 고졸 검정고시 패스,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합격, 변호사,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내고 최근까지 법제처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을 독서노트로 꼽는다.

 

 

 

제 삶의 과정에서 직접 겪고 부딪히며 고민하면서 순간적으로 뇌리에 각인되거나 여운을 남기면서 스쳐 지나간 것을 그때그때 채취한 싱싱한 活魚(활어)로 가득한 독서노트에서 건져 올린 것입니다. 지금도 권수를 채워가면서 써가고 있는 제 독서노트는 책을 통해 얻는 지적인 성과와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기록한 저만의 보물창고이자 사유의 격전지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 법전, 세종실록, 인문과 고전을 종횡무진하면서 주제를 세 가지로 분류한 뒤 자신이 고민하고 기록한 흔적들을 9개의 장으로 세분화하였다. 법과 정의의 실현,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라는 사회속의 개인의 관점으로 읽기 좋은 장이 1하늘의 그물은 놓치는 것이 없다.’이고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 읽어보기 좋은 글들은 2유언은 지자에게서 멈춘다.’ 3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이 있었던가에서는 삶에서 위로받기 좋은 문장들이다.

 

1부 하늘의 그물은 놓치는 것이 없다 /1장 모든 법률가를 죽여라 /2장 역사는 그렇게 자유를 키워왔나니 /3장 천하 백성들의 즐거움을 낙으로 삼고

 

2부 유언(流言)은 지자(智者)에게서 멈춘다/4장 삐져나오는 못은 더 삐져나오게 하라 /5를 품은 자는 어떻게가 힘들지 않다 /6장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3부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이 있었던가/7장 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8장 상상력이야말로 행동하는 영혼 /9장 배움의 길은 나날이 새롭다

 

호모 비아토르는 여행하는 인간을 말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인간의 속성을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올 한해는 실속은 없이 바쁘기만 한 해였다. 내실 있는 독서도 하지 못하였고, 독서의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독서노트를 들고는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열심히 따라 쓰곤 한다. 팔닥거리는 활어들을 내 삶이라는 그물에 넣는 것으로 올 한해의 독서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어 다행이다2016년의 독서계획 카테고리에는 독서노트하나 만들어야겠다. 저자의 말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라는 말에 이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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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 2015-12-2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유산이라는 말에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드림모노로그 2015-12-30 17:34   좋아요 0 | URL
저도 한해가 가면서 남는 것이 없어 허탈해 하고 있는 중에 독서노트를 읽었네요 ^^
아이들에게 남길 유산이라 생각하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ㅎ~^^
희망찬 새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김세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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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의 어려움에는 대인관계에 있다. 직장 상사 뿐만아니라 주변인들조차도 상처를 받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게다가 환경의 영향인지 , 시대탓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나르시시즘'하면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연상되어지곤 하는데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하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르시시즘'이 자존감이라는 날개로 날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존감으로 포장되곤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는 자신에게 엄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공자의 말을 가감하게 무시하게 된다. 자신에게 후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자기중심적 사고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나르시시즘이라는 기조가 존재한다.

 

 독일 최고의 심리상담가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이런 '나르시시즘'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주목하여 무려 34년간의 연구와 실험을 하였다. 그는 조직 내 인간관계를 좀먹고, 지속적으로 개인의 내면을 파괴하며 우울, 중독, 번아웃 등의 심리장애 및 조기퇴사의 원인이 바로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을 하나의 질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1, 누군가로부터 비판받으면 나르시스적 인격은 분노와 수치심, 굴욕감을 느낀다. 이 인격은 그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를 부인한다.

2,나르시스적 인격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면서 착취 관계를 형성한다. 이 인격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즉 타인가의 공감 능력이 제로다.

3,나르시스적 인격은 자만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과도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실제 모습보다 자신을 더 크게 바라보며, 이 세상에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의 문제만 있다고 생각한다.

4,나르시스적 인격은 자신이 무한히 강하고, 크게 성공했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늘 특별히 대접받기를 원한다.

5,나르시스적 인격은 부단한 관심과 감탄을 요구하며, 시기심도 강하다.

6,나르시스적인 인격은 주목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자기애의 위기에 이르며, 자살 충동도 느낀다. 

 

나르시시즘의 전형적인 인물은 애플의 경영자 시티브 잡스로 꼽고 있는데,  스티브잡스는 완벽하지 않으면 모든 이들에게 폭언과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서슴지 않게 헀던 그는 위험한 정신병적 나르시시즘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갑질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에는 이러한 정신병적 나르시시즘이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하지만 나르시시즘을 정신병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의 내면에는  나르시시즘이 도사리고 있다. 본능처럼.  그렇기에  이 나르시시즘을 보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나르시스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행동패턴과 행동양상에 대한 분석도 다루고 있다. 지독히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항상 불안감과 자존감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나약함과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나르시스트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내면이 불안정하게 형성되는 과정을 밝히며 심리적 방어기제로서 유년기 경험에서 비롯하여 사회 구조가 어떻게 나르시시즘을 충동질하는지를 보여준다 권력과 카리스마로 지배하고 군림하려드는 스타일의 독재자형’,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보살펴주는 대신 헌신과 조수노릇을 요구하는 위대한 후원자형, 능력을 과시하며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려 드는 현혹자형을 비롯해, 자기 능력에 대해 은밀하게 회의하고 갈등하는 경향이 심하며 성과로 보상받으려는 여성적 나르시시즘, 권력 지향적이고 경쟁적인 남성적 나르시시즘 유형 등 다양한 나르시시즘이 발현하는 양상들을 짚어준다이런 분석을 통해 나르시스적인 사람들과 어느 부분에서 마찰을 빚는지, 어떤 시각에서 이들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단서를 발견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나르시시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현대를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사고이기도 하다. 성공지향적인 사회에서 자기중심적이지 않다면 성공은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나르시스트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때론 곤혹스럽다. 자기확신이 너무 강해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어 동업자로서는 최악의 파트너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나르시스트를 분석한 내용들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내 안에도 나르시시즘이 얼마나 많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재미있는 심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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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 월가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전하는 일상의 기적
신순규 지음 / 판미동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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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일찍 노환이 찾아온 것 같다. 아직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노환으로 근시가 찾아오자 안경을 쓰면 눈이 아프고 안경을 쓰지 않으면 멀리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질 않으니 보인다는 문제가 이처럼 신경 쓰인 적이 없다. 안경을 새로 맞출까 해서 안경집에 찾아갔더니 노환은 딱히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듣고 왔다. 이제까지 과도하게 사용할때는 몰랐는데 막상 불편함이 느껴지자 그동안에 보며 살아왔던 일들이 한편으로는 감사해지기도 했다.  

 

며칠 전 월차를 내고 포항 호미곶을 다녀왔다. 차안에서 잠깐 몇 자 읽어보려 눈감으면 보이는 것들을 펼쳐놓고는 아뿔사 읽는내내 눈물이 났다. 시각장애인인 그가, 장애라는 장애물을 가뿐히 넘어 증권의 가치를 분석하며 인정받는 애널리스트로 성공한 그가 ,  보지 못한다는 슬픔을 격하게 느꼈을 때는 다름아닌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을 때였다고 할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보는 것의 소중함과 보지 못한다는 슬픔은 그것으로 충분히 가슴에 밀려들어왔다. 이후 난 바닷가에서 보는 모든 것들에 감사했다. 포항으로 떠나기 전 권태로 쭈글쭈글 늘어졌던 마음주름이 바다바람이 들어가자 다시 팽팽해졌다. 짧은 찰나였지만 그날 그 시간, 차 안에서 읽는 한 문장으로  마음주름을 펴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적어도 아이를 매일 볼 수 있었고, 적어도 현재라는 시간위에 서 있었다. 그것이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보기 때문에 잊고 있었던 기적,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가 가르쳐 준 것이다.

 

헬런 켈러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대학총장이 된다면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필수과목을 만들거라고, 저자 신순규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가 시각장애라는 장애물 앞에서도 성공한 삶으로 이끌어 주었던 마음의 토대였다. 그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가치 있는 품목을 고르기 위해서는 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증권시장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시력을 온전히 잃은 후에도 도전과 응전의 정신을 잃지 않았고  피아니스트의 꿈이 좌절되었을 때도, 결혼후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도, 직장을 구할 때에도, 보여지지 않는 삶의 가치에 충실하며 일궈온 마음밭의 궤적들이 이 책안에 절절히 담겨있다.

 

목적에서 눈을 떼면 보이는 것은 장애물뿐이다.”

 

시각장애인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권리를 잃은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거부할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사는 듯하다. 그래서 정적 보아야 할 것들,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들의 눈빛, 화가 났을 때도 감출 수 없는 엄마의 애틋한 표정, 외로움으로 어두워진 배우자의 얼굴빛 등을 보지 못한다. 대중매체나 소셜 네트워크에 사로잡히기 쉬운 오늘, 거기에서 눈을 떼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더 자주 바라본다면, 세상의 소음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소중한 신호를 더 의식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카프카는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 했다.시력이 급속도로 저하되면서 나는 비로소 카프타의 기적을 배운다.  이제까지 이렇게  본다라는 당연한 사실에 감사한 적이 없었고, 노환이라는 육체의 무너짐을 깨닫지 못했더라면, 저자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아이를 보는 이 단조로운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되뇌이곤 했다.  저자는 아름다운 삶의 귀감 그 자체였고,  무엇보다 그 이력들 속에 녹아있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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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이유 - 얼떨결에 서른 두리번거리다 마흔 내 인생을 찾는 뜨거운 질문
도다 도모히로 지음, 서라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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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상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무의식중에 서서히 익숙해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프랑스에는 삶은 개구리요리가 있다. 손님이 앉아있는 식탁위에서 바로 조리를 할 수 있도록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요리하는 음식이다. 이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따뜻할 정도의 온도에 개구리를 담가 놓는다. 따뜻한 물온도에 기분이 좋아진 개구리는 엎드려 있다 이내 잠이 든다.  점점 데워지는 온도에 자기가 삶아지는 것도 모른 체 기분 좋게 죽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방향조차 모르고 있다면 현실의 안일함에 빠져 위기가 닥친지도 모른채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사회생활을 한지 2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20년동안 세 번의 직업이 바뀌었는데, 직업군이 세 개가 전혀 연관성이 없다. 지금의 직장도 적성에 맞지 않아 여러 번 그만두려고 했는데 어찌어찌 지내다보니 벌써 5년이 되어간다. 딱히 불만은 없지만, 요즘의 나를 보면 마치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안일함과 나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젊었을 때의 패기나 열정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등떠밀려 마지못해 일하는 모습이 요즘의 내모습이다. '얼떨결에 서른 두리번거리다 마흔' , 그렇다. 난 두리번 거리고 있다.

 

제목 《내가 일하는 이유》는 직장생활 3년만에 그만두고 이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마흔 다섯 살에 커리어 컨설턴트 자격증을 따면서 자신이 느꼈던 일의 가치를 재정립해주는 책이다. 이과전공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출발점에 섰을 때 마음에 들어왔던 문구는

 

일이란 나의 능력과 흥미,

가치관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렇지 않은 일은 지루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도널드E. 슈퍼

미국의 직업 심리학자

 

 저자는 주어진 인생이라는 응용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므로, 삶에 주어진 법칙을 이해하면 저절로 이 인생의 응용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방법을 고민하고 유명한 경구들이 알려주는 지혜가 그 열쇠라는 듯, 책에는 명화와 가슴에 새길만한 경구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장황하지 않고 진부하지 않으며, 간결한 명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았다.

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직업이다.

그런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이다.

-파스칼 [팡세]-

 

 

인생의 굵직한 목차를

생각하자

 

저자가 '나에 맞는 일'을 고민할 때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만한 일을 찾지 못했을 때 , 자신이 깨달았던 달란트는 '자신처럼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 모르거나 목적이 없다고 고민하기 보다는 인생의 굵직한 '목차'만 정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열정도 없이 비전 상실 증후군에 잠식되어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직장생활에서 삶의 문제는 역시 방향성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환기하게 되었다.잊고 있었던 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동시에 삶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게 해주는 감사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부록에 실려있는 우종민 교수의 '감곡중의'를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으로 리뷰를 마친다.

 

1단계 감사 이 일에서 감사한 점은 무엇일까?

2단계 목적 이 일의 목적은 무엇일까?

3단계 중요성 이 일은 왜 나에게 중요할까?

4단계 의미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큰 목차만 정하자. 대략적인 방향성만 정하는 것이다. 방향성도 정하지 않으면 첫 발을 뗄 수가 없다. 걷다 보면 처음 만들었던 목차가 여러 번 바뀔 것이다. 다양한 것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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