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 월가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전하는 일상의 기적
신순규 지음 / 판미동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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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일찍 노환이 찾아온 것 같다. 아직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노환으로 근시가 찾아오자 안경을 쓰면 눈이 아프고 안경을 쓰지 않으면 멀리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질 않으니 보인다는 문제가 이처럼 신경 쓰인 적이 없다. 안경을 새로 맞출까 해서 안경집에 찾아갔더니 노환은 딱히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듣고 왔다. 이제까지 과도하게 사용할때는 몰랐는데 막상 불편함이 느껴지자 그동안에 보며 살아왔던 일들이 한편으로는 감사해지기도 했다.  

 

며칠 전 월차를 내고 포항 호미곶을 다녀왔다. 차안에서 잠깐 몇 자 읽어보려 눈감으면 보이는 것들을 펼쳐놓고는 아뿔사 읽는내내 눈물이 났다. 시각장애인인 그가, 장애라는 장애물을 가뿐히 넘어 증권의 가치를 분석하며 인정받는 애널리스트로 성공한 그가 ,  보지 못한다는 슬픔을 격하게 느꼈을 때는 다름아닌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을 때였다고 할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보는 것의 소중함과 보지 못한다는 슬픔은 그것으로 충분히 가슴에 밀려들어왔다. 이후 난 바닷가에서 보는 모든 것들에 감사했다. 포항으로 떠나기 전 권태로 쭈글쭈글 늘어졌던 마음주름이 바다바람이 들어가자 다시 팽팽해졌다. 짧은 찰나였지만 그날 그 시간, 차 안에서 읽는 한 문장으로  마음주름을 펴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적어도 아이를 매일 볼 수 있었고, 적어도 현재라는 시간위에 서 있었다. 그것이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보기 때문에 잊고 있었던 기적,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가 가르쳐 준 것이다.

 

헬런 켈러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대학총장이 된다면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필수과목을 만들거라고, 저자 신순규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가 시각장애라는 장애물 앞에서도 성공한 삶으로 이끌어 주었던 마음의 토대였다. 그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가치 있는 품목을 고르기 위해서는 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증권시장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시력을 온전히 잃은 후에도 도전과 응전의 정신을 잃지 않았고  피아니스트의 꿈이 좌절되었을 때도, 결혼후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도, 직장을 구할 때에도, 보여지지 않는 삶의 가치에 충실하며 일궈온 마음밭의 궤적들이 이 책안에 절절히 담겨있다.

 

목적에서 눈을 떼면 보이는 것은 장애물뿐이다.”

 

시각장애인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권리를 잃은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거부할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사는 듯하다. 그래서 정적 보아야 할 것들,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들의 눈빛, 화가 났을 때도 감출 수 없는 엄마의 애틋한 표정, 외로움으로 어두워진 배우자의 얼굴빛 등을 보지 못한다. 대중매체나 소셜 네트워크에 사로잡히기 쉬운 오늘, 거기에서 눈을 떼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더 자주 바라본다면, 세상의 소음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소중한 신호를 더 의식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카프카는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 했다.시력이 급속도로 저하되면서 나는 비로소 카프타의 기적을 배운다.  이제까지 이렇게  본다라는 당연한 사실에 감사한 적이 없었고, 노환이라는 육체의 무너짐을 깨닫지 못했더라면, 저자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아이를 보는 이 단조로운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되뇌이곤 했다.  저자는 아름다운 삶의 귀감 그 자체였고,  무엇보다 그 이력들 속에 녹아있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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