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불혹을 넘기고 나서 생각에도 리셋하는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의 삶은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경주와 같았다면 이후의 삶은 질주해오며 놓쳤던 풍경들을 다시 되짚어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마치 모래시계처럼, 모래가 다 떨어지고 나면 다시 꺼꾸로 시간을 되돌리는 기분과도 같다. 아니 어쩌면 모래시계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물구나무인지도 모르겠다. 물구나무를 서면 위와 아래가 바뀌고 오른쪽이 왼쪽이 되곤 하듯이 말이다.

 

이 책 《물구나무》는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물구나무서기를 못하였던 친구들 여섯명을 이십 칠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면서 느끼는 감회이다. 물구나무를 서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에 중심이 자기 자신이었던 시절에 대한 은유이다. 그 시절에 만났던 단짝친구들-미연, 하정, 문희, 수경, 승미, 민수-이 이칩 칠년이라는 세월의 풍화앞에서 자신들만의 최적층을 만들며 쌓았던 신산스러운 삶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세상을 크게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순수함이 살아있던 시절, 내게도 화장실도 꼭 같이 다니던 친구 네명이 있었다. 그렇게 죽고 못살던 친구들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른 이유 없이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시 형편상 친구들을 만날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것도 같지만 한 친구가 호주로 이민간다고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만난 적이 없다.

 

 

 

"인생이란 게 사는 동안은 꽤 긴 듯하지만 지구에 이별을 고할 때 뒤돌아보면 찰나 같을 것 아니겠어? 겪는 동안은 모든 어려움과 질곡이 힘들기 그지없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맞아 세상에 이별을 고할 때, 이왕이면 다채롭게 살았던 인생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여기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미련도 없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과거 어느 순간의 고생이 생각날 때는 내 인생에 다양한 무늬 하나를 또 만들어 넣었구나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그러면 신기하게 숨이 쉬어져. 시원하게.”

 

  이 의 주인공들 나이는 마흔 여섯 살이다. 불혹을 넘어선 나이라는 점에서부터 소설은 이상하게도 무한공감대가 형성 되었다. 중년이라는 삶의 교집합은 순수했던 고교시절에 단짝으로 붙어 다녔던 여섯 명의 친구들을 2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민수의 감회를 읽을 때였다. 산전수전 공중전이라는 세월의 풍화를 겪고 난 후 이들은 물구나무서기를 하지 못했던 시절에 부끄러워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놓는다. 다정한 아버지로 인해 늘 부러움을 샀던 문희는 이십 칠년만에 친아버지가 아니라 새아버지였다는 고백을 하고 학교다닐때 가장 똑똑했던 수경이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이혼위기에 있다는 사실과 키가 작고 왜소하였던 승미는 금융기관 대표가 되어 커리어 우먼으로 변신해 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는 돌싱맘이 되어 있었고 아버지와의 불화를 털어놓는다. 프랑스 남자와 영화같은 결혼을 한 미연을 통해서 민수는 하정의 갑작스런 죽음에 얽혀 있던 실마리를 풀게 된다. 하정의 삶을 통해 민수는 삶의 의미를 반추하며 남아있는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비하게 된다. 

 

"물구나무서기처럼 삶은 위와 아래가 뒤바뀌는 거지.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두렵기도 한 것이 인생이지.”

 

 

서재에 올려놓은 <물구나무> 책을 남편이 보더니 어? ...앵커 . . 연이네 ? 맞아? 하며 물어본다. 남편의 반응에 웃으면서 맞아. 그분. 이번에는 소설이야. 워낙 완벽하고 똑부러진 이미지였던 그녀여서인지 남편은 소설이라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좋았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인생 수다를 떠는 것처럼 친숙했고 이 시대의 신산한 여성의 삶을 무겁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웃다가 울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책을 덮었다. 그래 나이든다는 것은 물구나무 서 듯 세상을 보라는 뜻일지도 몰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암사에서 출간되는 나쓰메 소세키의 2차분 전집은 [우미인초], [산시로],[그후], 이후 [갱부]이다. 이번 2차분 전집의 공통분모는 '청춘'이라 할 수 있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 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의례에서 한 번쯤은 겪어 보았던 일말의 감정들을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갱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죽음에 대한 관조적 성찰이다. 이제 막 열아홉인 주인공 ''가 죽기 위해 가출한 것도 계획적이거나 오랜 시간 고민하여 행동에 옮겼다기보다는 10대 청소년들이 다 그렇듯이 충동에 의한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유복하게 살았던 ''가  죽고 싶어 집을 뛰쳐나왔지만 그런 '나'에게 다가온 현실은 '갱부'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브로커와의 만남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보호막이었던 집을 뛰쳐나온다라는 것은 막연한 가출이 아니라 보호막을 걷어 찬 성인으로서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잣집 도련님과 갱부, 이 어마어마한 직업의 간극에서 보듯 세상물정 몰랐던 도련님은 순진하게 (물론 죽음앞에서 이것저것 가릴 형편은 아니었겠지만) 브로커를 따라가는데 이틀 동안 기차를 타고 산을 올라 깊고 깊은 광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순례의 길과 다름없다.  힘든 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던 '부잣집 도련님'이 겪는 생전 처음의 배고픔과 굶주림이라는 고통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 간 구리 광산에서 만난 갱부의 얼굴은 뼈인지 뼈의 얼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각진 얼굴을 하고 있으며 짐승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공 '나'는 처음으로 자기가 떠나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직감한다. 반대로 짐승 같은 갱부들은 풋내기와 같은 어리숙한 모습의 신참을 보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들의 적개심 가득한 얼굴은 흡사 해골을 연상케 했고 그들의 대화는 동물들의 은어와 같이 알아들을 수도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 목격하게 된 갱부의 장례식 행렬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나'는 갱부가 되기 위한 테스트를 거친다.  갱 입구에서부터 지옥의 냄새를 맡은 '나'는 갱부가 될 수 있을까?

 

 

 

 

순식간에 생명이 확실해진다죽음에 다가가면서 좋은 기분으로 삼도천앞까지 간 사람이 수로를 터벅터벅 돌아오는 과정을 생략한 채 불쑥 속세의 한가운데에 출현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죽다 살아난 경험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철모르는 십대때 나도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집을 나선 댓가는 혹독했다. 돈도 없었고 잘 집도 없었다. 다행히 갱부의 주인공 '나'처럼 브로커 같은 유형의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하루도 채 넘기지 못하고 기어 들어간 집의 안도감은 두번 다시 가출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했다.  주인공 '나'가 가출하여 사회의 새로운 면모에 눈을 뜨게 되는 것처럼 나와는 다른 세계를 살짝 맛 본 것으로 족했던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세계란, 시비와 인정에는 문외한이었을 것 같았던 갱부들에게서 삶의 진경을 배우게 되면서 열린 세계이다.  죽음의 입구와도 같았던 갱 앞에서 '죽다 살아난 경험'을 했던 '나'는 카뮈가 말하였듯 죽음이란 생명이 가진 시간적 한계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죽음으로 인해 새 빛을 얻는 갱부의 삶, 어쩌면 그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사로서의 영감을 주는 수원지가 아니었을까. 마치 모든 소설의 첫 시작이자, 나쓰메 소세키의 첫 소설 같은 느낌의 갱부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5-02-02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을 나오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길`을 찾고 싶은 마음일 테지요.
비록 `몸은 준비가 안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더라도요.
<갱도>에 흐르는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인생을 물구나무와 비유하다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 시점을 통과하고 나면 물구나무를 서는 것처럼 힘겨운 살이가 아닐까.백지연의 소설, 생각보다 멋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물선 2015-01-3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까지 쓰셨네요..
 
붉은 밤의 도시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5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박인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버로스? 처음 듣는 작가지만, 독창적이고 충격적이고 매혹적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평을 보고 구매했다. 왠지 카뮈 이방인의 연장선 같은 느낌? 혹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몸꽝 멸종 프로젝트 - Dr.심의 몸 개그, 그것이 알고 싶다
심현도.이형진 지음, 성낙진 그림 / 청춘스타일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출산이후 20kg가 살이 쪘다. 살이 갑작스럽게 찐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마다 불어서 미처 뚱뚱하다는 자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무척 뚱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거울 속의 나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동안 거울도 안보고 살았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고 한다면 비겁한 변명일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자신을 이쁘다고 생각한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나는 내가 무척 이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한해두해 살이 붙으면서 행동이 점점 둔해지고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 몸꽝이 되어버리자 나도 모르는 낭패감에 사로잡혔다.  다이어트 약을 먹고 식단조절도 해보고 운동도 해 보았지만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수많은 실패 끝에 최근 산에 다니면서 10kg이상 체중 감량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지금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고 앞으로 10kg는 더 뺄 생각을 하며 다이어트 책을 섭렵하던 중 이 책 <몸꽝멸종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었다.

 

 

 

책과 함께 온 측정계가 뭐에 쓰는 물건인고 했는데 피하지방 측정계라는 스킨 폴드 캘리퍼이다. 미국에서는 일반화된 측정 기구이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한 도구이다. 피부의 피하지방 측정을 통해 자신의 비만도를 테스트 할 수 있으며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자신의 체지방량, 체지방률, 근육량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테스트 결과 '좋음' 으로 나왔다. 비만이 나올까봐 은근 걱정했는데 .. 

 

매일 아침마다 산에 오르면서 만보기로 걸음 수를 체크 하다보면 운동 하지 않는 한 체력소모량이 전혀 없다. 산에 가면 하루에 만보를 겨우 채울수 있고  산에 가지 않는 날은 이천 보 이상을 넘기기가 힘들다. 하루 꼬박 삼시 세끼를 먹는데 칼로리 소비가 전혀 없다면 고스란히 살로 축적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헬스토피아 대표이며 연예인들의 트레이닝을 하였던 저자 심현도는 현대인들의 영양소 과잉 섭취로 인한 비만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지적하며 간헐적 단식과 금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현대인의 과한 영양섭취가 비만을 가져오고 있는 현실에서는 가공 식품이 아닌 자연식품 위주로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몸꽝멸종 프로젝트》는 다이어트 방법이라기 보다는 건강한 몸을 위한 기본적인 상식들이다.  재미있는 일러스트와 함께 설명해주고 있어 단기간에 핵심적인 지식을 터득할 수 있다. 영양제에 대한 바른 섭취방법과 피트니스센터에서 근육을 키우는 방법과 식단 설계, 다이어트의 잘못된 상식까지 짚어주고 있다.

  

   다이어트에 유산소 운동이 제일 좋다고 하여 한때 런닝머신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그 당시 런닝머신을 구입하여 집에서 매일같이  했는데 단 1kg도 빠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몸에 있던 연료를 다 소비하여 저장되어 있던 지방을 태우려면 체내 ATP와 크레아틴, 당과 산소를 먼저 태워야 하는데 런닝머신과 같이 주구장천으로 하다보면 탄수화물과 단백질만 소비되는 것으로 끝나 지방을 소비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저자는 빠르게 뛰다가 걷다가 느리게 뛰기와 근력 운동을 병행해서 에너지 대사를 활성화시키는 운동을 해야 마지막 남은 지방까지 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산에 다니면서 살이 빠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산에 다니려면 근력과 지구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저절로 속도가 조절이 된다. 빠르게 뛰어 올라가기도 하고 천천히 걷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지방을 태울 수 있는 단계를 거쳤던 것이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가벼워진 몸을 볼 때마다 즐겁기도 하다.  다이어트에 대한 바른 상식과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한 권으로도 충분하다. 책을 덮고 나면 당신도 몸꽝 탈출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5-01-3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측정했을때 비만이었어요ㅡᆢㅡ
책은 내용은 상당히 괜찮더라구요.^^


드림모노로그 2015-01-31 14:19   좋아요 0 | URL
쪼그만 게 알차지요 ㅎㅎㅎ
책에서 조언하는 대로 해보면 진짜 살 빠질 것 같아요.
산다니는 게 최고예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