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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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드라마인 [냄새를 보는 소녀]의 주인공 박유천을 셜록 홈즈와 비교한 기사가 있었다.

 첫째,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진다.

 둘째, 잘생겼고 섹시하고 매력이 있다.

 셋째, 밀당의 고수

 넷째,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사실 이 비교는 상당한 모순이 존재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섹시'함과도 거리가 멀 뿐더러 밀당의 고수 또한 되지 못한다. 셜록 홈즈가 스스로를 '소사이패스'라 하며 차도남 이미지를 자처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 책 《셜록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은 셜록홈즈의 바통을 잇고 있지만 셜록 홈즈가 없는 추리소설이다. 원작자 아서 코난 도일이 아닌 '코난도일재단'의 요청으로 앤터니 호로비츠가  그 셜록시리즈의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코난 도일 재단에서 키운 작가라는 것만 보아도 실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앤터니 호로비츠는 8년의 집필기간 끝에 2011년에 《셜록 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을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코난 도일의 단편작이었던 [마지막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지막 사건>에서는 홈즈와 모리어티 교수와 만나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맞대결 한 후 추락사한 것으로 끝나는데 저자는 그 홈즈를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세바스천 모런 대령)은 대체 어쩐 일로 그곳을 찾았을까? 홈즈와 모리어티가 대결을 벌였을 때 그 자리에 있었을까, 그랬다면 왜 나서서 거들지 않았을까? 총은 어디로 갔을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사수가 실수로 총을 열차에 두고 내렸을까? 이렇게 앉아서 타자기를 두드리는 내가 보기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질문이건만 홈즈도 왓슨도 그 문제에 관한 한 그럴듯한 해명이 없다.-p22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전편의 [마지막 사건]에 이어 천연덕스러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치 아서 코난 도일처럼, 작가는 홈즈의 죽음이 아닌 홈즈가 라이헨바흐 폭포 뒤쪽으로 사라졌다는 암시로 매듭짓고 홈즈대신 체이스 사설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홈즈인듯 홈즈아닌 '체이스'는 아서의 동생으로 변호사를 때려치우고 사설탐정이 된 이력이 있는데 아서 코난 도일의 이력과 동일시 한 것은 캐릭터에 대한 작가의 의도적 설정이다. 반전을 위한 배려정도 되시겠다. 

 

영국인인 체이스는  ‘무미건조한 변호사의 세계를 거부하며 탐정이 되기 위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사무실 '핑커턴'에 입사했다.  미국을 범죄의 소굴로 바라보는 체이스의 시선에서 영국인이 바라보는 미국에 대한 감정이 읽혀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영국인들이 셜록 홈즈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체이스는 뉴욕 범죄의 우두머리격인 클래랜스 데버루를 체포하는 일이 떠맡게 되고 체이스는  스위스 라이헨바흐 폭포로 날아간다. 알려지지 않은 악당 클래랜스 데버루가 미국을 접수한 후 그 영역을 영국까지 확대하기 위해 영국에서 유명한 악당 모리어티에게 동맹을 요청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떠난 것이다. 그러나 날아간 라이헨바흐 폭포에서는 '모리어티'의 시신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모리어티의 옷에서 암호화된 편지만이 유일한 단서가 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과 매우 유사하게 그려가지만 사실 그것이 작가의 함정이다. 게다가 홈즈와 왓슨같은 환상의 케미를 자랑하는 체이스와 존스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호흡을 자랑한다. 존스는 소설에서 '셜록 홈즈'와 맞먹는 추리력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원작자 아서 코난 도일의 시놉시스를 충실히 따라가는 것 같으면서도 마지막 반전을 통해 뒤통수 한대 제대로 때려주기까지 하며 독자들을 농락하는 작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홈즈가 나오지 않지만, 홈즈만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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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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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드라마한  프로듀사가 한창 인기다. 신입피디의 어리바리함을 연기하는 백승찬 (김수현)의 풋풋한 청춘이 아침햇살의 눈부심처럼 반짝거린다.  청춘의 옷을 입은 김수현은 그렇다쳐도 방송 생활에 찌들대로 찌들어있는 라준모(차태현) 피디는 노련함에 깃든 인간적 고뇌가 무척 공감되는 캐릭터다. 쉽게 말하면 산전 수전 다 겪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피로감 같은?  거기에 팔딱팔딱 뛰는 활어 같은 생동감을 지닌 탁예진 피디(공효진)은 현실적인 순수함이 매력있다. 이들은 우아한 수면위의 백조의 모습이 아닌 -이미 다 편집한 본방송이 아닌- 수면 아래 열심히 발헤엄을 치는 백조의 속사정을 보여주듯이 -편집하기 전의 방송가의 쌩얼-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의 일초를 얻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투자하는 피디들의 민낯을 보면서 삶의 번외편을 보는 듯했다.

 

이 책은 드라마 프로듀사의 번외편 같았다. 부제는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이지만 피디들이 겪었던 살이의 흔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책과 함께 거닐었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 매일 같이 다니던 단골 만화방의 곰팡내를 떠오르게 한다. 도서관보다 만화방을 더 좋아했던 나는 매일같이 구석에 쪼그려 앉아 황미나의 만화를 섭렵하는 즐거움으로 그 시절을 보냈다. 미스터 블랙에서부터 너의 이름은 미스터 발레타인에 이르기까지 황미나가 있어 그 시절이 행복했다.  <빨간책> 안에는 그렇게 오래 된 기억들이 낡은 서랍의 봉인을 여는 것처럼  줄줄이 소환되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라디오 피디이면서 다작가인 이재익과 김훈종, 이승훈 피디 세 명이 말해주는 불온서적은 그래서 즐거웠다.  

 

삼인 삼색이 전해주는 불온서적들은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언제쯤 어른이 될까/2부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3부 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피디들이 소개하는 책 가운데 나는 김훈종 피디의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다.’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첫 부분에서 조은의 시 언젠가는’ 이 주는 울림도 좋았지만  뒷부분 오자서 이야기까지, 마치  내 삶에 화두를 던져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소 길지만 옮겨놓는다.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의 원수인 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향인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그는 오나라에서 공자 광의 편이 되어 오나라 왕 요를 암살하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도록 돕는다. 오왕 합려가 바로 이렇게 탄생한다. 합려는 왕위를 차지한 후에도 큰 근심거리가 있었으니, 암살된 전왕 요의 장남 경기가 호시탐탐 복수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자 경기는 용맹하면서도 지혜롭기로 명성이 자자했기에 합려는 어떤 수를 쓰든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경기를 제거해야 오나라가 온전히 합려의 수중에 들어가고 그래야만 국력을 키워 원수인 초나라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자서는 합려의 근심거리를 덜어주려 요리라는 인물을 천거하게 된다.

 

요리는 행색이 볼품없고 초라해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유독 오자서는 그를 신임했다. 이에 감복된 요리는 공자 경기를 암살하기 위해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고육지책을 쓰게 된다. 처자식을 죽이고 팔 하나를 잘라버리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당연히 경기는 처자식과 팔 하나까지 잃은 요리를 신임했고, 그에게 중책을 맡겼다. 요리는 공자 경기가 배를 타고 합려를 공격하러 나선 순간,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고 공자 경기를 칼로 찌른다. 경기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합려에 대한 요리의 충성을 높이 사며, 부하들에게 요리를 죽이지 말라고 명한다, 이에 요리는 자신이 죽인 경기가 실은 지극히 휼륭한 마음과 자질을 갖춘 후계자였음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이렇게 어진 인물을 암살하기 위해 처자식과 팔 하나를 버린 자신이 미워졌고 후회에 빠지게 된다. 요리는 절망과 후회 속에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대체 요리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몸과 가족까지 희생해가며 언더커버의 길을 간 것일까. 그의 선택은 과연 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될 수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요리의 선택이 그 무엇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빨간 책 p150

   

   김수영은 살아있는 모든 문학은 볼온하다라는 말을 했었다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며 진보의 편에서 서서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문학의 불온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문학은 불온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는데에 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 드라마 '프로듀사'에는 신디(아이유)가 데미안을 읽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그 순간은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있는 내면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던 싱클레어와 질풍노도의 시기에 함께 했던 빨간책들은 그래서 불온하다. 수면 위의 백조처럼 평화롭고 우아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 LTE급으로 발헤엄을 쳐야 한다. 나는 가끔 책을 읽는 것이 백조의 발헤엄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넘쳐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고요와 평안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불온한 것들이 쌓여 내면에 층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  참, 이재익 피디에게 종교로 남겨진 책이라던  '코스모스'는 올해가 가기 전 읽을 책으로 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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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여지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노동여지도 - 두 발과 땀으로 써내려간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의 풍경
박점규 지음 / 알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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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1950년 미국인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고 있다.”

 

 장하성 교수는 그의 책 <한국 자본주의>에서 그래프를 제시하였다.(국민일보)그래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50년  미국(1963시간)의 노동 시간보다 많다. 이것을 볼때 자타공인의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속도전의 특혜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한국의 노동 현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현대 자동차를 필두로 정규직 고용의 댐이 무너지고 생산현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졌다. 결과적으로는 재벌들은 풍요로와 졌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빈곤해 갔다. 해마다 비정규직 사원의 자살이 보도 되고 있지만 해마다 재벌들의 꼼수 역시 늘어갔다. 청춘을 다바쳐 일한 공장에서 해고 되고 공장 굴뚝을 올라간 노동자들은 더이상 나올 눈물이 없고 삼성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직업병으로 죽어도 재벌가들은 요지부동인 세상이 바로 노동 갓한민국의 얼굴이다.

 

 

이 책의 저자 박점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에서 함께 해 온 노동운동가이다. 저자는 2013년 3월 수원에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의 실제 주인공인 유미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여 울산, 인천, 군산, 평택, 서울, 안양, 대전 등 노동의 현장을 생중계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넘쳐나는 비정규직 사원들은 장그래를 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차별과 소외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한 장그래의 노력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그나마 희망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장그래가 정규직의 꿈을 이뤄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노동현장의 가혹한 현실만을 말하진 않는다. 불가능 할 것 같은 노조와 병원장이 함께 일궈낸 공공병원이 있었고 성과급을 받는 대신 후배들을 정규직으로 만든 현실이 분명 존재했다. 경제학자 브루노 프라이는 그의 책에서 돈보다 민주주의가 행복에 더 중요하다.” 라 했다. 연대와 희망만이 우리의 노동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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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 - 세계 영화사의 걸작 25편, 두 개의 시선, 또 하나의 미래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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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워낙 바쁘다보니 김혜수 주연의<차이나타운>을 본 이후로 한편의 영화도 보질 못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두 시간동안 펼쳐지는 삶의 메타포들이 하나의 언어가 되어 생동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정여울은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그 느낌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 안팎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상영되기 시작된다'라고, 영화는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영화에서 흘러 들어온 삶의 메타포들은 기호화 되어 삶과 함께 체화되어 간다.

 

 영화에서 반추하는 삶이라는 파노라마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수많은 다양성은 상징성을 띠고 있지만, 그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치열한 사유가 필요하다. 영화 속의 기호들, 일테면 근대사회를 상징하는 시계라는 것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영화를 읽어내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여 준다. 

 

 서문에 강신주는 《씨네샹떼》를  시간의 지층을 뚫고 들어가 그 작품의 동시대성을 기꺼이 발굴해내는 작업이라 표현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거시적으로 시간이라는 프레임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미시적으로는 그 시간을 반추하는 동시대성으로 나뉘어진다.  현대 영화산업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뤼미에르 형제로 거슬러 올라가 극장 문화의 시원을 마련한 시네마토그라프 이후 변화하게 되는 네 번의 지형도가 순서대로 펼쳐진다. 

 

 희미하지만 흑백영화 속에 존재하던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몸짓에 담겨 있는 의미를 전혀 몰랐다. 한낱 코미디 영화에 불과하다 여겼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자본주의와 인간사이의 비극적 관계'를 보여주는 메타포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임을 철학자와 문화평론가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시놉시스에서 줄거리를 기술한 후 두 논객의 반복된 설명이 있어 영화를 모르더라도 영화가 머릿 속으로 그려진다.  찰리 채플린이 몸짓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 ' Naver mine the wors!' (말 따위는 신경쓰지마! -「모던타임즈」무성영화의 자막- 에서  '몸짓'으로만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유성영화의 '말'이 아닌 '무성영화'의 '몸짓'을 선택한 찰리 채플린의 고집은 강신주를 통해 조르주 아감벤의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제스처'와 일맥상통함을 지닌 철학으로 부상하며 근대사회의 거울은 채플린이라는 거장을 통해 웅변되는 세계나 다름없었다.

 

 이후 세계대전을 경험하게 되면서 세계의 파국은 네오리얼리즘(아탈리아 영화)을 탄생시킨다. 전쟁의 현실을 목격한 인간들은 사냥터보다 더 잔인한 야만의 순간을 네오리얼리즘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영화는 [독일 영년]의 소년 '네오'를 통해서 비참한 세계를 인지하게 하며 '네오'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서 폭력성을 고발한다. 그래서 세계대전 이후의 영화는  '아이의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전쟁의 공포를 막 벗어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영화는 1960년대 이르러 프리섹스의 시대로 접어든다.  소년에서 어른으로의 면모를 갖추며 개인의 은밀한 욕망을 본격적으로 대변하기 시작하면서 ' 살인 ', '섹스','변태성욕','패션','광기' 등 다양한 욕망의 언어들을 스크린에 담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영화로 유명한 작품은 [싸이코], [하녀]가 있다. 25개의 영화 중 유일한 한국 작가의 작품 하녀를 통해 강신주는 1960년대를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누벨바그라는 혁명의 중심에 있던 영화로 [미치광이 피에로]가 소개된다.  이 시기는 현대영화산업의 획을 이루고 있는 좀비영화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누벨바그 영화는 혁명도 좌절도 겪는, 뭐든지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의미하기도 한 세대를 그린 일련의 영화들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염세적이거나 냉소적인 입장을 초지일관 밀어붙이지도 않아요. 젊으니까 금방 회복되어 다시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하죠.

 

 20세기 후반 -방황하는 영화-까지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져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와 작가를 소개하고, 영화의 시놉시스와  철학자와 강신주의 대담에 이어 철학자가 보는 시선이 한 면 실려 있고 비평가의 시선으로 보는 지면이 한 면 실려 있다. 한권의 책에 비평과 철학, 영화사까지 압축을 해 놓은 영양가 높은 책이다. 

 

시대 흐름으로 서술되어 영화라는 큰 틀을 이해하기 쉬울 뿐더러 시대마다 대표적인 작품을 통해 동시대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였고 다음으로는 좀비영화의 시원이나 다름없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었다. 오래 전부터 좀비 영화에 담겨 있는 철학을 무척 궁금해 왔었는데 이번 기회에 궁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진짜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다룬다. 그 이름은 좀비다. 1968년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아직 좀비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았다. (비록 이름은 없었지만) 좀비라는 캐릭터가 제 막 눈 뜰 무렵 이들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좀비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형제였고, 시대의 희생물이었으며, 좀비는 단순히 무서운 존재여서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존재여서 공포스럽다. 일그러진 얼굴과 표정을 살짝 감추고 보면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 있는 시채들의 밤]은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차라리 예술사에서 종종 목격하는 어딘가 미완성된 느낌을 주지만 시대를 품고 있는 회화나 조각에 비유할 수 있다. B급 영화도 A급 영화보다 더 심오할 수 있는 법이다.조지 로메로 감독이 성취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25강까지 진행된 영화강의는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된다.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보고 난 후 남겨진 몸짓의 기억으로 삶을 은유한다. '영화의 중심은 이미지가 아니라 제스처에 있기에 영화는 본질적으로 윤리와 정치 분야에 속한다.' 라는 아감벤의 말처럼 이 책은 철학자와 비평가가 읽어내는 정치철학이다.  하나의 예술로 체화 된 영화를 읽어내는 것은 우리가 문학에서 삶의 메타포를 읽어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다. 영화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이제까지 놓쳐왔던 영화속의 수많은 삶의 메타포들을 되짚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결국 삶이죠, 웃는 것, 우는 것, 잠자는 것, 꿈꾸는 것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작품을 두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경험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둔 속에서 나오는 스크린을 응시하면서 온전히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매체는 아직까지 영화가 유일하다고 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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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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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동양고전을 지혜의 바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동양고전의 첫발을 떼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 첫발을 떼고 싶어서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를 추천받았었다. 그러나, 책이 아무리 좋아도 앎의 깊이가 없다면 그 책의 진가를 알지 못하듯이 나의 동양고전 첫 책이었던 [강의] 역시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가지 수확이 있었다면그 어려웠던  동양고전의 첫 발을 떼어준 것이다. 그런거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이 책은 신영복 교수님이 대학에서 한  <인문학> 강의와  그간에  출간했던 책들을 모아 발간한 것이다. 인문학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보여지는 요즈음, 이제 과잉을 넘어 상품으로까지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음식인문학을 비롯하여 심지어 팬티인문학까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학문이라는 언저리에만 머물고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세상은 지나치게 유동적인데 인문학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었다.

 

 지그먼트 바우만은 인류가 고체처럼 견고한 사회를 지나 유동적인 근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사실 이 유동성은 현대사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이 가져 온 변화속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문학 역시도 견고성을 벗어나고 유동성 있는 담론을 고민해야 한다. 신영복의 《담론》은 유동성의 인문학이라 할 수 있다. 삶과 사람의 이야기와 저자의 체험이 만나 가슴에서 발까지의 인문학을 완성시킨다.  

 

무릇 공부의 시작은 완고한 인식틀을 망치로 깨뜨리는 데서 출발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공부는 여기에 머물러 있다. 인식틀이 깨지는 경험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동양고전을 읽었을 때 ,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 순간들, 눈이 번쩍 떠질만큼의 경이로움은 머리가 담당한다. 하지만, 그저 감동에서만 머물러만 있다면, 공부의 참된 깨달음은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그 감동이 발을 움직여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인문학이자, 유동의 공부이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먼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p20

 

진정한 공부는 변화와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p30

    

 몇 년동안 책을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면서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고민은 책의 감동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넓다는 것이었다. 책과 현실의 괴리감을 좁혀가는 것이 어려운 문제풀이 과정과도 같았고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을 상쇄할 만큼의 기쁨은 다시 또 책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늘 머리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공부의 마지막 여정인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은  머리에서 느낀 감동만큼 현실에서 힘이 발휘 되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에서 느꼈던 강렬한 떨림이 심장에 전파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향해 발을 뗄 때 삶의 담론이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유동하는 시대,  인문학이 지향해 나가야 할 궁극의 경지가 아닐까. 

 

대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오늘'로부터 독립한 사유공간., 비판담론 · 대안 담론을 만드는 공간이 바로 대학입니다. 지식인도 그 사회적 입장에 있어서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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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6-10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틀 전에 이 책 받았는데 빨리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드림모노로그 2015-06-10 12:54   좋아요 0 | URL
한문 교수님께서 강의 하시던 사자성어와 공자. 굴원. 한비자. 장자가 신영복 교수님에 의해 전혀 다른 해석으로 탄생하네요 ~ 전과는 다른 차원의 동양고전을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즐거운 독서~~^^시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