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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흔히들 동양고전을 지혜의 바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동양고전의 첫발을 떼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 첫발을 떼고 싶어서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를 추천받았었다. 그러나, 책이 아무리 좋아도 앎의 깊이가 없다면 그 책의 진가를 알지 못하듯이 나의 동양고전 첫 책이었던 [강의] 역시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가지 수확이 있었다면, 그 어려웠던 동양고전의 첫 발을 떼어준 것이다. 그런거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이 책은 신영복 교수님이 대학에서 한 <인문학> 강의와 그간에 출간했던 책들을 모아 발간한 것이다. 인문학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보여지는 요즈음, 이제 과잉을 넘어 상품으로까지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음식인문학을 비롯하여 심지어 팬티인문학까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학문이라는 언저리에만 머물고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세상은 지나치게 유동적인데 인문학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었다.
지그먼트 바우만은 인류가 고체처럼 견고한 사회를 지나 유동적인 근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사실 이 유동성은 현대사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이 가져 온 변화속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문학 역시도 견고성을 벗어나고 유동성 있는 담론을 고민해야 한다. 신영복의 《담론》은 유동성의 인문학이라 할 수 있다. 삶과 사람의 이야기와 저자의 체험이 만나 가슴에서 발까지의 인문학을 완성시킨다.
무릇 공부의 시작은 완고한 인식틀을 망치로 깨뜨리는 데서 출발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공부는 여기에 머물러 있다. 인식틀이 깨지는 경험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동양고전을 읽었을 때 ,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 순간들, 눈이 번쩍 떠질만큼의 경이로움은 머리가 담당한다. 하지만, 그저 감동에서만 머물러만 있다면, 공부의 참된 깨달음은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그 감동이 발을 움직여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인문학이자, 유동의 공부이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먼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 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p20
진정한 공부는 변화와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p30
몇 년동안 책을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면서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고민은 책의 감동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넓다는 것이었다. 책과 현실의 괴리감을 좁혀가는 것이 어려운 문제풀이 과정과도 같았고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을 상쇄할 만큼의 기쁨은 다시 또 책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늘 머리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공부의 마지막 여정인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은 머리에서 느낀 감동만큼 현실에서 힘이 발휘 되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에서 느꼈던 강렬한 떨림이 심장에 전파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향해 발을 뗄 때 삶의 담론이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유동하는 시대, 인문학이 지향해 나가야 할 궁극의 경지가 아닐까.
대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오늘'로부터 독립한 사유공간., 비판담론 · 대안 담론을 만드는 공간이 바로 대학입니다. 지식인도 그 사회적 입장에 있어서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