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방송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드라마한  프로듀사가 한창 인기다. 신입피디의 어리바리함을 연기하는 백승찬 (김수현)의 풋풋한 청춘이 아침햇살의 눈부심처럼 반짝거린다.  청춘의 옷을 입은 김수현은 그렇다쳐도 방송 생활에 찌들대로 찌들어있는 라준모(차태현) 피디는 노련함에 깃든 인간적 고뇌가 무척 공감되는 캐릭터다. 쉽게 말하면 산전 수전 다 겪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피로감 같은?  거기에 팔딱팔딱 뛰는 활어 같은 생동감을 지닌 탁예진 피디(공효진)은 현실적인 순수함이 매력있다. 이들은 우아한 수면위의 백조의 모습이 아닌 -이미 다 편집한 본방송이 아닌- 수면 아래 열심히 발헤엄을 치는 백조의 속사정을 보여주듯이 -편집하기 전의 방송가의 쌩얼-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의 일초를 얻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투자하는 피디들의 민낯을 보면서 삶의 번외편을 보는 듯했다.

 

이 책은 드라마 프로듀사의 번외편 같았다. 부제는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이지만 피디들이 겪었던 살이의 흔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책과 함께 거닐었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 매일 같이 다니던 단골 만화방의 곰팡내를 떠오르게 한다. 도서관보다 만화방을 더 좋아했던 나는 매일같이 구석에 쪼그려 앉아 황미나의 만화를 섭렵하는 즐거움으로 그 시절을 보냈다. 미스터 블랙에서부터 너의 이름은 미스터 발레타인에 이르기까지 황미나가 있어 그 시절이 행복했다.  <빨간책> 안에는 그렇게 오래 된 기억들이 낡은 서랍의 봉인을 여는 것처럼  줄줄이 소환되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라디오 피디이면서 다작가인 이재익과 김훈종, 이승훈 피디 세 명이 말해주는 불온서적은 그래서 즐거웠다.  

 

삼인 삼색이 전해주는 불온서적들은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언제쯤 어른이 될까/2부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3부 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피디들이 소개하는 책 가운데 나는 김훈종 피디의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다.’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첫 부분에서 조은의 시 언젠가는’ 이 주는 울림도 좋았지만  뒷부분 오자서 이야기까지, 마치  내 삶에 화두를 던져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소 길지만 옮겨놓는다.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의 원수인 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향인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그는 오나라에서 공자 광의 편이 되어 오나라 왕 요를 암살하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도록 돕는다. 오왕 합려가 바로 이렇게 탄생한다. 합려는 왕위를 차지한 후에도 큰 근심거리가 있었으니, 암살된 전왕 요의 장남 경기가 호시탐탐 복수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자 경기는 용맹하면서도 지혜롭기로 명성이 자자했기에 합려는 어떤 수를 쓰든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경기를 제거해야 오나라가 온전히 합려의 수중에 들어가고 그래야만 국력을 키워 원수인 초나라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자서는 합려의 근심거리를 덜어주려 요리라는 인물을 천거하게 된다.

 

요리는 행색이 볼품없고 초라해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유독 오자서는 그를 신임했다. 이에 감복된 요리는 공자 경기를 암살하기 위해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고육지책을 쓰게 된다. 처자식을 죽이고 팔 하나를 잘라버리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당연히 경기는 처자식과 팔 하나까지 잃은 요리를 신임했고, 그에게 중책을 맡겼다. 요리는 공자 경기가 배를 타고 합려를 공격하러 나선 순간,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고 공자 경기를 칼로 찌른다. 경기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합려에 대한 요리의 충성을 높이 사며, 부하들에게 요리를 죽이지 말라고 명한다, 이에 요리는 자신이 죽인 경기가 실은 지극히 휼륭한 마음과 자질을 갖춘 후계자였음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이렇게 어진 인물을 암살하기 위해 처자식과 팔 하나를 버린 자신이 미워졌고 후회에 빠지게 된다. 요리는 절망과 후회 속에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대체 요리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몸과 가족까지 희생해가며 언더커버의 길을 간 것일까. 그의 선택은 과연 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될 수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요리의 선택이 그 무엇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빨간 책 p150

   

   김수영은 살아있는 모든 문학은 볼온하다라는 말을 했었다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며 진보의 편에서 서서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문학의 불온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문학은 불온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는데에 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 드라마 '프로듀사'에는 신디(아이유)가 데미안을 읽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그 순간은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있는 내면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던 싱클레어와 질풍노도의 시기에 함께 했던 빨간책들은 그래서 불온하다. 수면 위의 백조처럼 평화롭고 우아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 LTE급으로 발헤엄을 쳐야 한다. 나는 가끔 책을 읽는 것이 백조의 발헤엄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넘쳐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고요와 평안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불온한 것들이 쌓여 내면에 층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  참, 이재익 피디에게 종교로 남겨진 책이라던  '코스모스'는 올해가 가기 전 읽을 책으로 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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