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박정애 지음 / 사계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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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내가 그리는 포물선과 너무 다른 포물선을 이해해보겠다는 명분으로 이런 가상의 소설을 얼마나 자주 마음 속으로 써보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는 내가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을 정도인데 이게 혹시 망상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소설가, 그것도 내가 이름을 알고 있던 소설가의 작업은 이런 과정들의 결과물로서 잘 다듬어진 말끔한 한편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왜 하필 포물선이라고 했을까. 포물선이란 형태는 일단 올라갔다가 정점을 찍은 후 내려와야 완성된다. 계속 올라만 가서도, 정점에 머물러 있어도 포물선이 아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이 포물선을 몇번이나 그리며 살까. 또 얼마나 많은 다른 포물선과 만나게 될까. 내려오는 시기에 만날 수도 있고 정점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목만 보고 벌써 내 생각은 망상인지 상상인지 한참을 혼자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그리는 하나의 포물선. 그렇다고 여러 개의 포물선이 얽히고 섥히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아니다. 단출한 한 가정. 40대 부부와 중학생 딸, 아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흔하디 흔한 한 가정. 작가는 여러 개의 포물선이 얽히고 섥혀 만드는 극적인 스토리 텔링이 목적이었다기 보다, 평범해 보이는 가정조차 그 본질은 서로 다른 포물선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이지만 똑부러지는 딸에 비해 어리숙하고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이며 학교에서 적응도 잘 못하여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게 하는 아들. 부모 덕 못받고 컸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열의가 더 컸던 대기업 회사원 아버지. 학생이라치면 모범생이었을 교사가 직업인 엄마. 아들때문에 좌절한 부모는 결국 해외 이민을 고려하게 되고, 실제로 현지 답사를 하며 알아보기도 하는데 결과는 더욱 큰 좌절로 인한 포기이다. 하지만 포기를 포기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은 그래도 가족, 결국은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작가 자신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지만 두 자녀 모두 학교라는 제도권에서 교육을 마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용의 흐름에 억지나 과장의 느낌이 없고 자기 얘기 술술 풀어내듯이 자연스럽다.

학교에서 적응을 하든 못하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아들 내면의 착한 본성, 그리고 서로 불평 불만이 많으면서도 그 착한 본성을 믿고 알아주고 싶은 가족의 본질때문에, 가족들의 문제 없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때문에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평범한 이름 때문에라도 듣고 잊어버릴 수 있었던 작가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가 이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된 것은 예전에 읽은 <환절기>라는 소설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마지막 열 줄, 누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그 열 줄 문장에서 작가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푹 젖고 말았다.

소설 한 편에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마는 울고 나서 마시는 차 한 잔, 비벼 먹는 밥 한 그릇 정도의 힘이라도 있기를 소망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볼까.

엄마와 아빠와 자식이 돌려 읽고 그 '차이 있는 불안'의 속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를.

제 불안에 눈멀어 자식을, 배우자를 짓누르지 말기를.

오래된 불안을 다독거리며 움싹 같은 희망에 손 내밀어 보기를. (169쪽 작가의 말)

그래, 작가는 결국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움싹 같은 희망. 불안 속에서 다독거려 살려내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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