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일기
빅토리아 빅터 지음, 전영애 옮김 / 두레아이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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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도 이런 악동이 있을까. 아니, 이 정도 되니까 악동 (bad boy)이라 불릴 만 하고, 엄마 아빠로부터조차 이 세상에 아무 쓸모 없는 몹쓸 녀석이란 소리를 그렇게 자주 들음에도 그 부모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안드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열살 소년 조지의 본심은 무엇일까. 읽으면서 분석에 들어갔다.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아니면 부모에 대한 반항심에서? 이 사회에 대한 반항이라고 하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되고 말이다.
이 아이는 일단 어떤 장난거리가 머리에 떠오르면 그 다음을 생각 안한다. 그렇게 여러번 가족으로부터 구박도 받고, 벌도 받고, 맞기도 하는 등 온갖 모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해보고 싶은 욕망과 궁금함, 호기심을 저지시킬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나중에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나면 항상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자기는 그럴 뜻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거나, 그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면서 사람들의 소동을 이해 못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 동물들, 물건들에 그렇게 손상과 피해를 입히고 다니면서도 그의 상상을 초월한 모험과 장난은 멈추질 않는다. 책 속의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마조마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혹자는 이 책의 악동 조지에게 그 나이에 병행하는 사회화 과정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그저 재미있게 읽히게 하려고 썼을 수도 있겠으나, 이 사회의 가리워진 위선을 악동 조지를 통해 폭로하는 쾌감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표면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뒤에 숨어 있는 전혀 다른 속마음들이 조지에 의해 완전히 폭로되는 대목들이 유난히 많이 나오고 있고, 바자회나 파티가 그렇게 자주 열리는데에는 순수 사교나 친목 도모의 의도보다는 전혀 순수하지 않은 목적에 의해 의도된 것들이 많다는 것, 특히 조지에게는 혼기에 이른 누나들이 셋이나 있는 관계로 결혼과 관련하여 1800년대 말의 사회의 풍속과 사람들의 심리, 더불어 인디언과 흑인에 관한 인종 편견 등 그 당시 사회상이 '숨어서 그러나 잘' 드러나고 있었다.
이 책은 근래에 쓰여진 책이 아니다. 저자 빅토리아 빅터 (1831~1886)가 쉰살이 다 되어 썼다는 이 책은 처음에 뉴욕에서 익명으로 출간되었다가 미국과 영국에서 여러 판으로 찍혀 나왔고 독일에서는 번역가의 이름만 표지에 나와 있어 진짜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사람들에게 읽히다가 나중에서야 진짜 저자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왜 끝까지 익명을 고수하고자 했을까? 사람들에게 그냥 재미로 읽히기를 원했다면 그렇게 꼭 익명이기를 바랬을까?
악동의 마음은 어린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분출되지 못하도록 조절되고 있다가, 이런 악동의 픽션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하면서 더 재미있게 읽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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