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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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허무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각오로 살아야 허무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를 딛고서 끝까지 갈수 있을 것인가.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10)

'허무를 직면하다'라는 제목으로 쓴 프롤로그 중 일부이다. 그가 제목에서 뜻한 바가 무엇인지 이 구절만 읽어봐도 파악이 될 것 같아 옮겨 보았다.

왜 인생은 허무할까. 없던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그 물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마치니까. 시작과 끝을 보면 그렇다. 살면서 남긴 자취와 흔적 (업적까지는 아니더라도)을 생각하면 허무하지만은 않다고 보는 의견도 부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허무함을 인정하고 나니까 훨씬 생각이 가벼워짐을 느낀 후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매를 먼저 맞아놓은 기분이랄까,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어떤 것 먼저 들을래 할때 나쁜 소식 먼저 듣고 난 후의 후련함이랄까.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99)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삶을 소울 재즈에 비유하여, 이미 그려진 악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 하는 '연주'가 핵심이라고 했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라는 것. 목표를 이루었느냐 보다 더 핵심은 그 목표까지 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예측 못했던 그 무엇에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목표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목표가 있었으니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있는 것이니까.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203)

현실을 포장하는 것이 정신승리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일 수 있다. 정신승리가 현실승리는 아니며, 정신승리는 정신의 공갈 젖꼭지라고까지 했다. 

같은 종류의 위로를 계속하는 것은 물론 한계가 있다. 낙방은 낙방. 실연은 실연. 패배는 패배.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인지와 납득은 다르다. 낙방, 실연, 패배를 인지했다고 해서 마음이 곧바로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선뜻 납득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마음이 그 불편한 현실마저 수용해냈을 때 그것이 바로 정신승리다.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패배다. 하나의 패배를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패배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패배도 모든 면에서 패배인 것은 아니다. 모든 관점에서 다 패배인 경우는 없다. 어떤 패배를 해도 인생 전체가 패배로 변하는 경우는 없다. 현실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탄력을 갖는 것이 진정한 정신승리다. (211)


마지막으로 요즘 내가 덮어두고 있던 문제를 다시 일깨워주는 구절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가 생텍쥐페리의 <전시조종사>의 한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다.

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페리, <전시조종사> -


생텍쥐페리는 저 글에서 먼저 누가 패배자인지를 정의한다. 남들이 성당을 완성하기 기다린 뒤, 관리나 하려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의자를 들고 앉을 자리나 확보하려 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인생에서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엇인가 걸었다가 실패한 사람은 패배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걸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임승차자가 패배자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많은 이익을 계산해 얻었어도 무임승차자는 패배자다. (242)

대성당은 어디에 있는가? 대성당은 어떻게 지을 수 있는가? 나는 가슴 속에 대성당을 품고 있는가?


자기를 찾아온 죽음의 사신을 잠깐 기다리게 하고 마지막 할 일을 마친 뒤 이제 가자고 사신에게 얘기한 할머니 이야기,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에서는,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동안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인생은 허무하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직면하고 더불어 산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며 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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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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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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