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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2권으로 나온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 은 화가인 일레인 리슬리의 성장을 그려 낸 ‘예술가 소설’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성장, 예술가란 키워드를 기억해두고, 책의 제목인 '고양이 눈' 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서 책을 읽어가며 고양이 눈이 등장하는 장면을 기다렸다.
투명한 유리 안에 빨강, 노랑, 초록, 파랑 꽃잎이 들어가 있는 구슬은 고양이 눈. 착색된 물이나 사파이어나 루비처럼 흠없는 구슬은 순수. 해저 색채 섬유가 부유하는 듯한 구슬은 물아기. 다른 구슬과 똑같고 약간 크기만 한 마노는 철공. 이 이국적인 구슬들은 여러 승자들의 손을 거쳐 간다. 그런 구슬을 사는 것은 반칙이다. 그것들은 따서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고양이 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슬이다. 그 구슬을 따게 되면 나는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을 꺼내 들고 빛에 비추어 돌려 보며 점검한다. 고양이 눈은 진짜 눈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고양이 눈 같지는 않다. 그것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존재의 눈처럼 생겼다. 라디오에 달린 녹색눈처럼, 먼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눈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푸른색이다.
책 소개를 통해 이미 주인공이 화가임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초반에서 회고전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1권은 7부에 36장의 이야기가 나뉘어 전개되고 있는데, 4부의 16장 즈음에 나오는 주인공의 인터뷰 장면에서 유년시절은 1940년대였으며, 그녀가 페미니스트 화가라고 불린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1930년대 말 문화의 불모지였던 캐나다에서 출생한 여성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져 가는 과정이 오롯이 녹아있는 소설이다.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 또한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자랐다. 애트우드의 가족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봄이면 북쪽 황야로 갔다가 가을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주인공 일레인의 아버지 또한 곤충학자이고, 작가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게 하는 풍경들이 1권에서 묘사되고 있다. 『고양이 눈』 은 '변형된 작가의 자아인 일레인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 이라고도 말해지는 이유다.
이야기는 노년의 일레인의 현재와 유년시절의 모습이 교차되며 흘러가며,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숲을 돌아다니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던 일레인은 아버지가 토론토에 정착한 이후에야 '소녀들, 살아있는 진짜 여자아이들(p90)' 사이에 있게 된다. 오빠와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뛰놀았던터라 여자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관습을 잘 알지 못한다. '남자아이들 사이의 암묵적인 관습은 잘 알고 있지만 여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금방이라도 뜻하지 않게 처참한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은 느낌(p91)'이라고 토로한다. 그런 일레인에게 캐럴, 그레이스 그리고 코딜리어라는 친구가 생긴다.
일레인의 친구들은 당대 사회의 관습과 규범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다. 즉 가부장적인 가정환경, 독실한 신자로서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고, 옷이나 가구들이 암묵적으로 비슷하게 유지되는 그런 가정. 그들에게 처음에 일레인의 가정의 모습은 신기하게 보였을테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레인에 대한 교묘한 무시가 시작된다. 따돌림보다는 은근한 학대에 가깝다. 요즘으로 치면 학교 폭력이라고 부를 일들이 벌어진다. 이 때의 일레인은 여덟 살에서 곧 아홉 살이 되었던 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너는 아버지에게 대답조차 하지 않았어. 이게 뭘 의미하는 지 알고 있겠지? 아무래도 너는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무슨 변명할 말이라도 있니?(p212)" 이것이 친구라는 코딜리어가 일레인에게 하는 말이다. 코딜리어의 행동은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코딜리어는 내 친구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고 나를 돕고 싶어하며,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 친구들, 여자 친구들이며,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나는 여자 친구가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잃게 될까 무척 두렵다. 그들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싶다.'(p218) 라는 일레인의 속마음이 내 가슴을 저민다. 이 때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던 어린 일레인을 지켜주는 부적 같은 존재가 '고양이 눈' 이다.
나는 내 고양이 눈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꼭 붙잡고 있는다. 보석처럼 소중한 그것은 내 손 안에서 그 공정한 눈으로 뼈와 천을 꿰뚫고 밖을 내다본다. 그것이 지닌 힘의 도움을 받아 나는 온전한 시력을 회복한다. 내 앞에는 코딜리어, 그레이스, 캐럴이 있다. 나는 그들이 걷는 모습을, 그림자가 한쪽 다리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이는 모양을, 카디건의 붉은 사각형과 치마의 푸른 삼각형처럼 구획된 색깔들을 본다. 그들은 앞에서 움직이는 작고 선명한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나는 내 의지에 따라 그들을 볼 수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코딜리어의 악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들의 잔인성은 점점 더 심해져 일레인을 큰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제서야 일레인은 깨닫는다. '그들은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아니며 심지어 친구도 아니다. 나를 그들에게 붙들어 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자유롭다'(p344) 1권의 끝에서야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나 일레인의 영혼에 잔흔이 남아있다는 것은 독자들은 이미 안다. 노년의 일레인의 모습에서 '코딜리어' 란 단어가 계속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권의 끝에서 일레인은 더 이상 얌전한 '여자아이' 보다는 오빠의 만화책에 나오는 인물처럼 고층 건물에 올라가고, 망토를 두르고 날아다니고, 범죄자들을 빨갛고 노란 빛을 뿜는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식으로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작가는 전작들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소녀들 간의 갈등을 작품 중심에 놓고, 그 모습을 당시의 사회를 들여다보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유년기의 이야기였던 1권이었으니, 2권에서는 일레인의 청소년기 이야기가 펼쳐지려나? '고양이 눈' 은 여전히 그녀의 부적인 것일까.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