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타러 간 총각 비룡소 전래동화 25
장철문 글, 최용호 그림 / 비룡소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운명을 인정하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 길을 떠난다.’ 라는 '구복 여행' 모티프는 세계 여러 나라 옛이야기에서도 종종 발견되고는 합니다. 행복 추구가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 옛이야기인 『북풍을 찾아간 소년』에서는 한 소년이 북풍이 날려 버린 오트밀을 되찾으러 북풍을 찾아가고, 자신의 복을 빼앗으려는 사람을 혼내 주면서 복을 지키는 반면 우리 옛이야기 『복 타러 간 총각』에서 가장 빛나는 점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 줌으로써 복을 얻는다는 점이라던 타 출판사 해설글에 언급된 내용을 떠올려봅니다. 이 이야기는 ‘복’이 물건처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교훈을 담아, 요즘처럼 힘겹고 벅찬 세상살이를 하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진정한 ‘ 복 ’과 ‘ 행복 ’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옛이야기 그림책입니다.



나눔을 통한 복 받기

선재가 애초의 가난함을 모두 벗고 ‘복 받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 복을 지었기 때문이지요.

우선 이름모를 할아버지에게 넉넉치않은 죽을 말 한마디 없이 나누어먹는 선량함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은연중에 깨달아갔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왜 난 이리 가난하지' 라며 열패감에 젖어있던 선재는 산속에서 하늘에서 죄를 짓고 내려와 외로운 삶을 사는 색시를 만남으로써 ‘삶의 문제’가 오로지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것’이 아닌 것을 깨달음으로 차츰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구요. 또 자신이 정성스레 가꾸는 나무에 꽃이 피지 않아 다시 태어나지를 못함을 슬퍼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고민과 운명의 짐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방향은 용(이무기)에게서 배우죠. 여의주를 두 개나 갖고도 용이 되지 못하는 이무기를 통해 ‘내 욕심만 부리며 사는 것이 복된 삶이 아니다’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삶을 깨달은 총각은 자신에게 도움을 부탁한 세 사람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남들과 어울려 ‘상생의 삶’으로 행복을 얻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교훈은 책 속 한마디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 어디 정해진 복이 따로 있다더냐? 여기까지 걸어온 그 정성으로 살다 보면, 복을 받는 날이 있겠지! "

자신의 처지에 푸념만 늘어놓는 사람과 푸념 대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결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험한 서쪽나라에 복을 타러 떠나 갖은 역경을 헤쳐갑니다. 적극적 의지는 삶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죠. 이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바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그리고 선한 의지로, 남들과 나누며 행동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룡소의 '복 타러 간 총각'은 입말체로 구성한 텍스트는 들려주는 맛과 듣는 맛을 살려 아이에게 읽어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종이판화 기법을 사용한 그림은 단순히 이야기를 반복하는 장면 대신 그림 자체가 갖는 이야기 공간을 확보해주는 듯 합니다.

( 하드보드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종이의 높낮이가 다르게 칼로 오리고 찢어낸 후, 롤러로 잉크를 올려 프레스로 찍고 채색하는 과정을 거친 그림들은 판화의 특징인 흑백의 표현 외에 거칠거칠한 질감의 중간 톤이 살아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

내용적으로 보면 아이들을 위하여 보편적으로 알려진 기존의 설화를 약간 순화함으로 서천서역국이 서쪽나라로, 이무기가 용으로 표현되거나, 주인공의 심리적인 변화는 살짝 축소된 감이 있습니다. 집에 있던 타 출판사 세 곳의 전래동화와 비교해볼 때 주인공의 어찌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삶에 대한 묘사도 줄었구요. 대신 주인공의 선량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가 살짝 추가된 듯 합니다. 전래동화를 처음 접하는 시기의 어린 친구들에게도 좋겠네요.

"주인공은 신분제도 같은 현실적 제약에 얽매어, 운명에 순응하기를 강요받던 우리 선조들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라고 분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러 길을 떠나고, 결국 원하던 복을 얻는 이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추구하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이 책에서 주인공이 추구하는 ‘복’은 물질적인 부유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만나고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었던, 순리에 맞고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질 만능 시대 한가운데에서 남과 비교하여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많이 누려야 행복할거다.' 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용히 반성해보게 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