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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밭 이야기 - 이해인 수필그림책 ㅣ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51
이해인 지음, 임희정 그림 / 현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십여년, 아니 이십여년 전이려나. 이해인 수녀의 수필집을 처음 읽었던 때가 말이다. 그 때 샀던 수필집 중에 ‘꽃삽’ 이라는 수필집이 있었다. ( 결혼하면서 남겨두고 왔던 책 중에 아직 남아있을 텐데 말이다. )

나는 왼쪽 표지의 책으로 읽었었다.
‘꽃삽,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는 이해인 수녀의 두번째 산문집으로 1994년 10월 초판이 발행되었던 책이다. 그리고 이 책 속에 ‘밭 가까이 살며’ 라는 수필이 있다. 수필로 읽었던 이야기를 이제 그림책으로 만나 아이와 함께 읽는다.

나의 밭 이야기
이해인 수필그림책
임희정 그림
현북스

바다가 바라보이는 방에 사는 수녀님들은 해 뜨는 바다, 해 지는 바다, 달빛이 넘실대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해인 수녀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밭 가까이에 살면서 멀리 있는 바다보다 가까이에 있는 밭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노라는 이해인 수녀.
정원에 핀 장미, 수국, 달리아, 글라디올러스아 같은 화려한 꽃들만 바라보았던 때가 살짝 후회되었습니다.
노란 쑥갓꽃과 흰빛, 보랏빛의 감자꽃들,
채소들이 피운 꽃들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풍겨 주었습니다.

꽃술이 강조된 그림작가의 일러스트는 이해인 수녀의 ‘꽃술’ 에 관한 다른 수필의 내용도 떠오른다. 나도 감자꽃과 쑥갓꽃은 처음 본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일러스트다.
'꽃구름밭' 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의 작업실 앞 밭에는 주로 꽃을 심어 손님이 오면 한번씩 그 꽃밭 앞에서 시를 읊기도 하고 가끔은 사진도 찍었다고 한다. 우울한 일이 생기면 밭에 나가 흙냄새를 맡으라고 일러주신 법정 스님의 말씀도 기억하면서 이해인 수녀 또한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일부러 밭에 나가 생명의 향기 가득한 흙의 향기를 맡는 다고 했다.
내가 밭 가까이 살지 않았다면 쑥갓꽃과 감자꽃의 아름다움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 방이 밭 옆에 있는 것이 새삼 감사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도 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을 잘 가꾸어야 좋은 밭이 되듯이 사람도 마음을 잘 가꾸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매일 이라는 새로운 땅에 씨를 뿌리고 하나의 열매가 익을 때까지 정성껏 돌보고 가꾸어야 하는, 그래서 기다림과 인내를 배워야 하는 일상의 삶을 노래하는 글 작가의 글은 매우 아름답다.
고 박완서 소설가는 이해인 수녀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수녀님은 평범한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데 천부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 혼자 거닐 때 평범한 동산이던 게 수녀님하고 같이 보면 놀랍도록 새롭게 보였다. 자연 속에 미운 거나 불필요한 건 하나도 없고, 어제와 같은 것 또한 없다는 것을 수녀님은 혼자만 느끼기 아까운 듯 힘 안 들이고 옆의 사람에게 옮아 붙게 만들었다. "
- 박완서 (소설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은 이 그림책 시리즈의 기획의도가 이해인 ‘수필’ 그림책이라면 좀 더 텍스트의 내용을 그림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해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다. 이해인 수녀의 일상을 사진처럼 찍어내는 느낌이 아니라.. 얼핏 ‘이해인’ 수필 그림책, 즉 인물 그림책으로 다가오게 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일러스트도 잔잔하고 아름답다. 이해인 수녀의 글을 애독하는 독자이자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사랑하는 독자의 욕심일테다. 다양한 장르로 좋은 글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부모가 읽던 책을 다시, 아이와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