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충분한 삶 - 일상을 불충분하게 만드는 요구와 욕구를 넘어
헤더 하브릴레스키 지음, 신혜연 옮김 / 샘터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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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TV 비평가로 활동했으며, <뉴욕> 매거진에서 청춘들의 고민 상담 섹션을 진행하며 날카롭고도 유쾌한 글을 통해 인기 칼럼니스트로 떠올랐던 헤더 하브릴레스키의 「What If This Were Enough」  번역본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 책은 우리 문화에 자리 잡은 가장 심각한 망상과 거짓된 이분법을 살펴보고, 일반적인 행동에 대한 우리의 부정확한 가치 판단을 검토하며 고통과 거짓, 로맨틱한 환상과 성적인 유혹, 탐욕과 완벽주의, 절제와 소박함, 자기희생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 책에 실린 각각의 에세이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서서히 내면화해 버린 모순되는 메시지들을 살펴보려는 노력이다. 


- p7, 프롤로그,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 지금의 나 자신,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이만하면 충분한 삶 

What If This Were Enough 

헤더 하브릴레스키 지음 

샘터 



각 에세이들은 <우리의 오해>, <세상의 유해>, <나와의 화해>, 이렇게 세 장으로 나뉘어 있다. 첫번째 장인 <우리의 오해> 에서는 물건과 소유, 수치화된 세계, 음식에 대한 지나친 열정, 전문가라는 사회악, 일상의 기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장에서는, 저자가 에세이에서 인용하거나 예시로 드는 인물들과 글들이 다소 낯선 것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몰입이 어렵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문가라는 사회악' 편에서 소개하는 티모시 페리스는 여러 책을 출판하고,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인물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미국 기업가, 투자자, 작가 및 라이프 스타일 전문가' 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를 잘 모르고,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문장들, '그는 궁극적인 미국의 영웅이자 위대한 개츠비이고 덧없는 우상이자 얼굴 없는 황제다.' 같은 부분들에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례와 다른 이들의 문장을 발췌하며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쉽게 와닿기도 한다.


"전문가들을 믿지 말라. 그게 마케팅 전문가든 인생 전문가든." <중략> " 그들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무엇으로 거리를 두든 그것은 다 환상이고 가짜다. 실제로 우리는 모두 일심동체이며 우주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는 똑똑한 작은 조각들이다."


- p78, 전문가라는 사회악



또한 '참된 길을 찾기 위해 어떤 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 당신은 이미 다 갖췄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타인과의 공감과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격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며 오염된 환상에서 벗어나보라고 조언한다. 


두번째 장 < 세상의 유해> 에서는 사회의 숨겨진 여러가지 것들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으나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것들을 말이다. 거짓된 미소를 강요하는 사회라던가, 디즈니랜드의 환상 속에 숨겨진 것과 같은 것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우리가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의 속살을 드러내보인다.


우리는 안전하고 평온한 환상을 위해 모든 개인적인 힘과 통제력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지금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끄럽고 신경에 거슬리며 훨씬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기업이 제공하는 현실도피는 이제 우리를 추악한 현실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우리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로 양처럼 고분고분 끌려와있다. 그리고 지금 불신의 눈으로 서로 응시하며 묻는다.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거지? 대체 뒤에서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p144,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




미국 드라마나 프로그램에 익숙한 독자라면 책 속의 미국 대중문화 비평이 더욱 재미있게 다가올 것 같다. <베벌리힐스의 진짜 주부들> 이나 <왕좌의 게임>, <어킹 데드> 정도 밖에 접해보지 못한 나는 책 속의 다른 프로그램들에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에 대해 극단적 에로티시즘을 담은 성인소설이라는 점 이외에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 어떻게 담겨있는지에 대한 비평 또한 흥미롭게 읽었다. 


물질주의의 유혹부터 사랑과 성공에 대한 우리의 오해까지,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는 가장 유해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메시지 가운데 일부를 분석하는 동시에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세상을 항해할 새로운 방법을 마지막 장의 <나와의 화해> 에서 제안한다. 평범해보이는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대수롭지 않은 많은 선택과 너그러운 행동들이 '만족스러운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하나임을 이야기한다. 


더 많이 가질 수록 깨닫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발견과 사소한 대화 그리고 즉흥적이고 엉망진창인 순간들이라는 것을, 그런 순간들이 우리 행복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나머지는 전부 마음을 산란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 p292, 잃어버린 보물



저자는 24시간 내내 정신없이 가상을 좇는 대신 현실에서 숨 쉬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눈과 마음을 열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 지금의 나 자신,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것과 친해져야 한다고 전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원하지만, 행복해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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