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니? 에프 그래픽 컬렉션
틸리 월든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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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월든의 작품은 매 작품마다 섬세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12년 동안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살았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전작 「스피닝」 에서는 피겨 스케이팅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겪는 폭력과 따돌림, 첫사랑, 커밍아웃 등의 사건들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혼란스러운 성장기의 문턱을 넘어온 이들에게 아릿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듣고 있니?」 는 내면의 상처를 겪고 도피 중인 두 여성 비와 루의 우연한 만남과 짧고도 긴 여정을 그려내며 상실, 고통, 슬픔, 우정,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픽노블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윌 아이스너의 이름을 딴, 미국 최고의 그래픽노블에 주어지는 ‘아이스너 상’ 을 수상한 작품이다.

 

듣고 있니?
Are you Listening?
틸리 월든 글, 그림
에프

막연한 목적지로 가는 중인 것 같은 루와 누군가 또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의 비는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두 여성의 로드 트립은 유명한 로드 무비인 「델마와 루이스」 를 떠올리게도 했다. 루와 비의 여정에도 가는 곳마다 이상한 일들이 생겨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신비한 고양이를 시작으로, 그 고양이의 인식표에 써있는 서부 텍사스로 가는 길은 불안정한 세계로 변하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서 위협을 받으며 도망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그들은 길 위에서 점점 서로에 대해 신뢰를 쌓아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꺼내놓게 된다. 

 

  “치유와 회복력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 북리스트 (미국도서관협회)  
 

작가는 무게감 있는 텍스트를 절묘한 판타지에 녹여낸다. 일러스트는 때로는 느슨하고, 때로는 초조하며, 어떨 때는 바람이 실제로 부는 느낌을 받게 한다. 해 질 무렵의 어스름한 시간과 밤이 연상되는 색감을 활용해 두 인물의 심리와 변모하는 풍경의 불안정함을 다채롭게 표현하고도 있다. 또한 각 컷의 프레임도 인물의 혼란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어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인물들의 심리가 불안정해지면 이미지의 프레임도 녹아내리는 듯하거나 지그재그로 표현되며 불안정함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이런 섬세한 표현들은 읽는 이들이 그녀들의 여정에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만든다. 

 


그들이 도착한 서부 텍사스의 서부 마을은 무엇인가 모르게 신비한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다른 이가 건네는 말들은 이야기 내내 작가가 건네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

 

서부 텍사스는 크고 작은 게 완벽하게 섞인 곳이죠. 
땅, 하늘 ... 다 나름의 정신을 가졌죠. 나름의 마음도요. 

<중략>

모든 사람, 모든게 잠재적인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어요. 
그저 그걸 볼 수 있는 세상과 무리 가운데 서 있기만 하면 돼요. 

- 듣고 있니?, p254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혹은 놀라운 일이... 정말, 큰일이 생겼을 땐, 산도 산산이 부서질 것 같고, 하늘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뭐 산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죠. 정말 잔혹한 일이에요. 
하지만 여기선, 모두 듣고 있어요. 

길도, 구름도, 나무도... 
당신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어요. 
당신이 본 건 모두 스스로가 만든 거예요.
그걸 다시 못 보는 것도 그런 이유죠

- 듣고 있니?, p256

 

작가는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시작했다. 책을 펼치면서 어떤 의미인가 궁금했던 이 문장은 책을 덮고나니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여행 안내서들은 기만을 다룬다.
바다는 정신적 속성이다.
지도는 모두 허구이며,
여행자들은 모두 서로 다른 개척지에 이른다.

- 에이드리언 리치, 「여정(Itinerary)」

 

여행의 끝에서 '좋은 여행이었다' 며 서로 헤어지는 그들의 뒤에는 '그냥 많은 땅들' 이 그 자리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치유하고 회복해 나가는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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