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아는 이가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다. 오랫동안 무신론자였던 그는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먼저 그녀의 종교와 가까워졌고, 세례받기 직전 자신의 신앙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잠깐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무사히 신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자신은 "여자친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태신앙을 가진 나는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하고 있고,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 신앙이라는 것이 마치 숨쉬는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의미를 온전히 헤아려 보지도 않은 채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내게 하느님은 '사랑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힘이 들 때 매달리고, 고통이 지나간 뒤에는 감사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저 하늘 위에 있는 존재였다.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 저 사람은 여자친구와의 사랑이 끝나버리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끝나버릴지 모르지만, 어쨌든 신에 대한 믿음을 '사랑'으로 시작한 그 앞에서 나는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파이의 삶(이 책의 원제에 'story'가 아니라 'life'가 쓰였다는 점을 기억해두고 싶다) 속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신을 대하는 어린 파이의 순진무구함이었다.
파이는 자신이 힌두교도이며, 힌두 사원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영을 의식하며, 힌두의 눈을 통해 우주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파이는 힌두교가 "사랑 넘치는 자비심의 어마어마한 우주적인 힘"(p.70)이라고 매혹적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충분히 (자신의 종교에) 만족하는 힌두교도"인 파이는 열네 살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십자가 위에서 '멍들고 피흘리는' 희생자가 바로 기독교의 '신'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왜 예수는 인간처럼 죽어야만 했는가, 신이란 온 우주를 품고 있는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여야하지 않는가라고 파이는 사제에게 묻는다. 사제는 그 모든 질문에 '사랑'이라는 말로 답하고, 파이는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하느님의 아들 때문에 며칠을 괴로워한 끝에 기독교도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로부터 일 년 뒤 파이는 이제 이슬람교도가 된다. "형제애와 헌신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종교"의 방식으로 기도할 때, 그는 "언젠가 죽어야 할 인간으로 무릎을 꿇었고, 영원불멸한 존재로 일어났다."(p.85)
이렇게 이 열 다섯의 소년이 자신 안에서 힌두의 신들과 예수와 알라를 만나는 사이, 아이러니하게도 세 종교의 사제들은 저마다 파이가 자기 종교의 신자라며 부모를 설득한다. 당황한 파이의 아버지는 그에게 왜 기도를 하고 싶어하느냐고 묻는다.
"신을 사랑하니까요."(p.98)
나는 이 대목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사랑이란 부족함을 채워주는 행위이고, 부족함이 없는 신에 대해 감히 나는 사랑한다는 단어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도 어떻게 해야 신을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다. 단순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해서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시험해 보기라도 하듯 파이를 극한의 고통 속으로 몰고 간다. 파이는 그 속에서 신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신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존재의 기본원칙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임을 깨닫는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명확하지 않고, 분명치도 않고 즉각적이지도 않다."(p.86)
그는 구명보트 안에서 리처드 파커와 단둘이 남았을 때 단순히 리처드 파커를 지배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주는' 행위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한없는 '이해'가 아닌가. 그렇지만 리처드 파커는 작별인사도 없이,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훌쩍 그를 떠나버린다. 파이는 그때를 생각하며 악몽을 꾸지만, 그것은 여전히 "사랑으로 얼룩진 악몽"이다.
이 모든 시련이 끝난 뒤 파이는 성모님을 본다. 아니 그는 "그분을 봤다고 느꼈다." 그 자신도 왜 성모님이었을까 자문한다. 그분은 파이에게 사랑 넘치는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는 "신의 존재가 최고의 보상"이라고 느낀다.
무엇보다 파이는 신의 존재란 인간적 상실에 대한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리처드 파커에 대한 사랑은 서투른 이별로 끝났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바로 신의 사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