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4일 한겨레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말로 살지 말고, 일로 살라

볼테르의 <캉디드>

원제 : Candide, ou l'Optimisme

 

볼테르의 <캉디드>(1759년)는 순진한 낙천주의를 풍자한 철학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순박한 청년 캉디드는, 낙천주의를 설파하고 그를 위해 논쟁하기 바쁜 스승 팡글로스의 가르침대로, 신이 이 세상을 가능한 한 최선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남작의 딸 퀴네공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성에서 쫓겨난 캉디드는 세상을 방랑하며 난파, 지진, 질병, 약탈, 전쟁, 광신과 종교재판 등 온갖 재해와 불행을 경험한다. 그런 가운데 비관주의자 마르탱을 만나 논쟁하고 혼란에 빠진다. 천신만고 끝에 콘스탄티노플에 이른 캉디드는 그 근교에서 농원을 가꾸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에서 우리는 많은 평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낙천주의와 비관주의를 벗어나 인간의 운명은 오직 밭을 일구어가듯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가는 것이라는 볼테르의 계몽적 메시지를 엿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적 입장에서 이 작품을 좀 더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볼테르의 경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극단의 낙천주의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은 최선을 향해 갈 것이라고 믿을 것이고, 극단의 비관주의자는 어떤 경우라도 세상은 최악을 향해 갈 것이라고 믿을 것이기 때문에, 행위의 반성과 삶의 개선을 추구하지 않게 된다. 맹신은 사람들을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캉디드 일행이 콘스탄티노플 근교에서 만난 노인은 가족과 함께 작은 농원을 가꾸면서 살고 있다. 손님에게 신선한 과일과 향내나는 커피를 대접하며 그는 삶의 보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동은 우리를 커다란 세 가지 악,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에서 해방되게 하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이 작품이 진정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낙천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맹신 때문에 무력해지는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볼테르는, 그릇된 믿음은 각자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논쟁의 과열을 불러온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볼테르는 그의 저서 <철학 사전>에서 ‘미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미신은 온 세상을 불 위에 올려놓지만, 철학은 그것을 끄는 일을 한다.” 즉 미신은 사람들을 불필요한 논쟁으로 달아오르게 하지만, 철학의 역할은 사람들을 냉철한 생각으로 초대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함께 진정한 철학은 사람들을 ‘말의 삶’에서 ‘일의 삶’으로 인도할 때 그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다. <캉디드>에서 가장 혹독한 풍자의 대상은 성직자와 법관이다. 그들은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말로 권력을 행사하고 부를 축적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말로 착취하지 말고, 일로 베풀라! 말로 살지 말고, 일로 살라!
물론 볼테르를 포함하여 철학자들도 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다른 가능성이 있다. 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우선 자신의 말을 실천할 때 철학자는 일로 베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볼테르가 철학사에 남긴 가장 큰 공헌은 그 자신이 바로 실천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또한 중요한 것은, 철학은 말과 글이 일이 되고 놀이가 되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화적 창조자로서 철학자의 역할이 있다. 이는 왕성한 문예 활동으로써 볼테르 자신이 몸소 실천해 보인 것이자, <캉디드>의 대단원에서 그가 던진 메시지이다.
못 말리는 팡글로스의 낙천주의 설명 앞에서 캉디드는 말한다. “정말 멋진 말이군요. 하지만 이제 우리의 정원을 경작해야지요(Il faut cultiver notre jardin).” 여기서 볼테르가 쓴 ‘경작하다(cultiver)’는 말은 복합적이다. 철학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는 철학자의 문화적 창조를 내포한다. 철학은 말과 글이 일과 놀이가 되는 삶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유용함’과 ‘즐거움’ 두 가지가 다 충족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캉디드가 돌아다닌 곳 중에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도록 꾸며진 장소”는 한 곳밖에 없었다. 이상향인 엘도라도뿐이었다. 유용함과 즐거움이 함께 충족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볼테르의 철학이 이상으로 설정하고 지향했던 것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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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절판


적어도 나에게는 사람만큼 흥미로운 텍스트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변질되는 건 언제나 언어 때문이다.-9쪽

'김인수는 3학년이다' [...]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쓴 그의 몇몇 글들은 문체에 관하여 그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인지 말해주었다. -김훈-16쪽

우리는 아마 누구도 절대적인 진실을 말할 수 없어요. 그런 욕망을 버려야죠. -김훈-18쪽

그런데 건축이란 것이 다른 사람의 사는 방법을 조직하는 것이거든요.-승효상-122쪽

즐기면서도 저급하다고 욕하는 게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중요한 속성 아닌가?-신동엽-142쪽

별, 별, 그렇게 많은 별,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 별을 보는 순간 내 이 썩어 있는 가슴 덩어리가 느껴지면서 차라리 피라도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이상일-177쪽

요즘은 어디 나가는 것도 싫고 방구석의 찌뿌드드한 따분함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이우일-192쪽

무대 위에 배우가 아무리 많아도 항상 시선이 가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카메라가 관객의 시선을 정해주니까 어떤 면에서 배우의 카리스마를 운운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아니죠.-장동건-210쪽

진정한 신유목민이란 지리적인 이동보다는 정신적인 이동이 잦은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정신적인 영토를 찾아 끊임없이 떠나는 과정이야말로 신 유목민의 중심적인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양혜규-221쪽

건축이라는 건 단순히 집짓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조직해주는 거라고요.-조성룡-237쪽

아직도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뭐든 경계 짓지 않고 보고 느끼려고 해요. 존재하는 건 뭐든 의미가 있잖아요.-조성룡-240쪽

술을 먹는다고 쳐. 술을 이렇게 먹는 거랑, 술이 너무 고픈 인간이 이렇게 먹는 거랑 다르잖아. 성격이 다 나오는 거지. 술 한 잔 마시는 것에도 캐릭터가 담겨 있는 거야. -주현-264쪽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필요한 건 한두 명의 좋은 친구다. 완벽한 신뢰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한대수-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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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0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쪽, 210쪽 추천합니다.^^

부엉이 2006-06-0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보고 장동건과 DJDOC를 다시 보게 되었답니다~^^
 
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구판절판


나는 근대성이란 한마디로 사람들을 '고향'에 묶어두는 인식론적 기제라고 생각한다. 신분 질서에서 해방된 '인민(人民)'들에게 민족과 학연, 지연, 가족, 순결, 원죄 등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을 부여해주는 표상의 장치, 그것이 근대성의 기본 원리가 아닐까. -10쪽

무엇보다 속도에 대한 신앙체계를 전복해야 한다. 먼저 속도는 빠르지 않다! 속도와 빠르기를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균질화와 선분화에 포획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83쪽

느림의 또 다른 표상은 자기속도를 지니는 것이다. -84쪽

느림 또는 느리게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런 조급증(또는 협심증)과 결별하여 전혀 예기치 못한 시간(들)을 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중심이나 체계로 환원되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능력에 따라 고유한 질을 표현할 수 있는 '자기속도'.-85쪽

요컨대 역사는 결코 연속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중세 후기와 근대는 불연속적 지대라는 것이다. 욕망이 억압되었다가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각기 다른 욕망의 배치가 있다. -165쪽

자기의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고, 욕망에 충실하며, 관습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에서 말이다.-286쪽

그런 점에서 유머야말로 주체와 객체,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무기이자 전략이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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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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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바로 아버지일 때에만 아버지는 저한테 너무 강한 분이셨습니다. -16쪽

아무튼 아버지와 저는 그렇게 달랐고, 다르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위험했습니다. -20쪽

'어느 날 밤 거인의 모습을 한 아버지가 느닷없이 최후의 심판관이 되어 나타나서는 나를 침대에서 들어내 파블라취로 끌고 나갈 수도 있다, 그만큼 나란 존재는 아버지한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26쪽

아버지가 제게 내리신 계율을 아버지 스스로가 지키시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저를 짓누르는 힘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39쪽

왜냐하면 지배에 대한 생각은 다른 사람 안의 마지막 저항의 목소리 마저도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지요.-43쪽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관계는 또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그건 사실상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였지요. 제가 말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44쪽

저는 제 행동에 대한 믿음을 잃고 말았습니다. -50쪽

인색하다는 건 깊은 불행 속에 처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불행의 징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모든 사물에 대해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제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이미 손에 쥐고 있거나 입에 물고 있는 것, 아니면 적어도 손에 쥐려고 하거나 입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뿐이었지요.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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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품절


그때부터 그녀는 후각을 상실했고, 그와 더불어 따뜻함이나 냉정함 등 모든 인간적 감정도 잃어버렸다. -27쪽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않았다. 단지 아래로부터 퍼져 올라오다가 뚜껑에 덮인 것처럼 지붕 밑에 갇혀서 그를 감싸고 있는 나무 냄새를 들이마실 뿐이었다. 냄새를 들이마시고 그 냄새에 빠져 자신의 가장 내밀한 땀구멍 깊숙한 곳까지 전부 나무 냄새로 가득 채운 그는 그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나무 인형, 즉 피노키오가 된 것처럼 그 장작더미 위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한참 뒤, 거의 30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무>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냄새가 없는 대상을 지시하는 추상적 개념어들, 특히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듯을 지닌 단어들을 익히는 일이었다. -33쪽

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그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르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34쪽

말이나 눈빛, 감정이나 의지보다 향기가 훨씬 설득력이 강했다. 향기의 설득력은 막을 수가 없었다. -95쪽

이렇게 공식들을 기록해 둠으로써 그는 자신의 도제의 내면세계에서 솟아 나오는 그 놀라운 창조적 카오스의 세계를 가두어 둘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105쪽

그르누이는 이 과정에 매혹되었다. 그가 인생에서 뭔가 감동이라는 것을ㅡ물론 그 감동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채 차갑게 타올랐다ㅡ맛본 적이 있다면 바로 불과 물과 수증기, 그리고 골똘히 고안해 낸 어떤 도구를 이용해 물질로부터 향기의 영혼을 빼앗는 이 과정에서였다. -110쪽

끝을 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요로운 자신의 상상력의 샘에서 그는 단 한 방울의 구체적인 냄새 에센스도 퍼 올리지 못했다. -114쪽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외부 세계가 그에게 제공하는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내면이 훨씬 더 놀랍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24쪽

그루누이의 마음속 우주에서는 사물은 없고 단지 사물의 냄새만 존재했다(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를 적절하고 그럴듯한 하나의 풍경으로 묘사하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우리의 언어는 냄새로 맡을 수 있는 세계를 묘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142쪽

사실 <인간의 냄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
-167쪽

그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주변에 냄새의 공간을 형성하지도, 파동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170쪽

사람들이란 멍청하기 이를 데 없어서 코는 숨 쉬는 데에만 이용할 뿐 모든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191쪽

그런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르누이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
이 향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 낸 나 자신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향수의 마법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이 향수는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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