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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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천명관 #창비

 



전쟁이 일어났던 과거의 어느 날, 한 소년이 엄마의 손을 놓쳤고 고아가 되었다. 배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소년은 살아내기 위해 거리에 섰다.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앵벌이였다. 소년은 흰 피부에 팔다리가 길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깡통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소년이 속한 곳은 판잣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해방촌의 벽도 없는 움막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아이들을 거둔 목사는 하루에 죽 한 그릇을 주며 착취했다.



 

천명관 작가가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에서 아코디언이 뜻하는 바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음악은 연주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도 희망과 위안을 주는 장르다. 힘들었던 시절 시름을 달랠 수 있었으며 타인을 위해 연주하는 이들에게도 힘이 나지 않았을까. 흥겨워하는 사람을 보며 더 흥이 나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동이와 눈 먼 소녀 연이, 걷지 못하지만 다양한 지식이 있는 거북이, 한 팔이 없는 깜상의 사연에서 역사나 드라마에서나 있었던 일들을 상상했다. 앵벌이를 시켰던 양 목사는 아이들에게 구름탄이라는 약을 먹였다. 그 약을 먹으면 구름을 탄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연이는 약을 먹은 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약에 중독된 깜상은 늘 외우던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하였다. 왜 악인은 어디에서나 등장을 할까.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아이들을 착취하는 인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소설에서 아코디언은 지나간 과거의 흔적이자 서러운 현재이며, 다가올 미래의 희망이기도 하다. 양목사가 사라진 곳에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미래의 희망을 기약했던 곳.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가 비록 좁고 허름하지만 살아갈 만하다는 걸 말하는 듯했다. 아이들끼리 평화로운 삶을 사는 듯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가 배경이기 때문에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동이가 아코디언을, 연이가 부르는 노랫가락에 깡통에 한가득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희망만 있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악인이 등장하는 법이다. 육손이란 자가 나타나 평화로운 장소를 불안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 만다. 조직적으로 앵벌이들을 관리하는 육손이의 지배 아래 아이들은 다시 무너진다.

 



동이에게 친구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 미키라는 이름을 가진 하우스 보이다. 영어를 사용하고 미군 부대를 자유롭게 다니는 아이로 동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음악가 앞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오디션을 보게 하여 앵벌이 말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미키 또한 전쟁고아로 앵벌이였기 때문에 동이에게 새로운 삶에 대하여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코디언을 치는 동안, 슬픔과 고통은 깊은 깨달음으로 정화되고 안개처럼 뿌옇게 가려졌던 진실은 거울처럼 선명해졌다. 그렇게 동이는 글자가 아닌 소리를 통해 벽 너머의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었다. (226페이지)

 



한편의 영화 같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전쟁고아들은 앵벌이로 나서게 되고, 상이군인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희망을 안고 있지만, 다시 고단한 삶의 한복판에 서서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앵벌이들은 서로를 돕고, 혹은 서로를 탄압하며 삶의 한 귀퉁이를 붙잡고 서 있는 모양새다. 예상한 스토리와 달라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희망의 미래를 예상했던 듯싶다. 동이가 오디션을 보고, 음악가가 되어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삶은 비정하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잃고 마는 세상이었던 걸 잊었다.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왜 현대가 아닌 과거인가. 때로는 과거가 오히려 더 현실 같다. 벽 너머의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악사를 보며 삶이란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다. 어쩌면 꿈꾸었던 미래가 아닐지언정 희망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작가는 그걸 말하는 듯했다.

 

 

#아코디언 #천명관 #창비 #한국소설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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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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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성해나 #한겨레출판

 



뜨거운 여름에 걸맞게 출간된 작품이다. 『혼모노』로 독자를 홀렸던 성해나는 이제 기담집 『인비인』으로 우리를 서늘하게 만든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그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것들을 말한다. 적당한 때에 소설이 끝나,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지 다음 편에 관하여 기대감을 높인다. 과거(어제)와 현재(오늘), 미래(내일)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글로 여름밤을 짜릿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 친구들의 톡방에 질문을 했을 때, 바쁘거나 혹은 관심 없거나 해서 답변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는가.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물어보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서운할 필요도 없고, 내가 원하는 답변만 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I와 대화를 나누거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AI와 인간과의 관계, 친밀해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까.

 



소설에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다양한 상황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가족에게 상으로 들어왔던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을 보라. 벚나무 책상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파삭하게 마른 잿빛 구슬이 나온 광경과 이후에 행해진 것에서 적당히 나쁜 짓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면모를 살피게 된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악행 따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지 않나. 소설의 표제작이기도 한 「인비인」은 과거 일본이 행했던 생체실험의 한가운데에 있게 한다. 조선 태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대학을 다녔던 자가 일본인 교수에게 잘 보이려 그의 연구를 위해 하얼빈으로 건너가 일어났던 이야기다. 가타마리라고 불렀던, 조선 여자가 낳았던 덩어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를 가리켜 1800명을 학살하고 생체실험한 전범이라고 하자 ‘요시무라 교수의 조수이자 하수인이었을 뿐’이라고 외치는 한 노인의 넋두리가 귓가가 윙윙거린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여행을 다니고 뭔가 생산적인 일에 매달리려 취미생활을 하는 것 같다. ‘삶이 버거우신가요? 타인의 삶을 매수하세요. 당신의 삶을 매도하세요.’라는 글을 우연히 봤다면 궁금하지 않을까.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도할 수 있다면 무료한 일상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자화상을 말하는 듯, 그렇게 타인의 삶을 매수하는 경매장에 참석하는 이야기 「매일(買日)」을 보자. 이왕이면 돈 많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을 고를 것 같지만, 주인공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삶을 선택한다.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이름으로 살고 싶은 자의 욕망을 말한 작품이었다. 그녀가 선택한 김수현의 삶이 궁금하지 않은가. 자꾸만 뒷장을 넘기고 있다.

 



그걸 의식이라도 하듯, 작가는 새로운 삶을 선택한 김수현의 외국 버전 「프랭크 오자와」라는 소설로 안내한다. 성공한 삶으로 보이는 프랭크 오자와는 왜 자신의 삶을 헐값에 넘겼을까. 투자자로서 성공한 삶, 꿈도 못 꾸었을 저택에 이전의 친구였던 제이컵과 곤이 찾아오며 새로운 양상을 띤다. 이전의 이들은 자기를 이해하고 포용하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이전의 자기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고 자책에 빠진다. 프랭크 오자와는 왜 자기 인생을 넘긴 걸까. 타인이 보기에는 완벽해도 무언가 어긋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고(蠱)」였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상용화되어 더 나은 성과를 보일 것을 예견했던 일론 머스크의 일화로 소설이 시작된다. 서울권 의대에 합격하지 못한 이익은 한의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 한의원을 개원했지만, 손님이 없어 빚에 허덕인다. 고(蠱)란 독충들을 항아리에 가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독충을 독약으로 만든 것이다. 그걸 중독 시켰다가 약으로 푸는 방법으로 손님들을 끌어모은다. 이익은 고를 만들기 위해 안드로이드 옵티머스 ‘도윤’을 들였다. 처음에는 이익의 말을 잘 듣는가 싶었다. 어느 순간 도윤이 이익을 부리는 것 같았다. 인간이 AI를 부리지만, 언젠가는 AI가 인간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미래의 상황을 예견하는 것만 같았다. 독약을 만드는 안드로이드, 그를 부리는 이익.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성해나의 소설을 읽으며 자꾸 놀라게 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발상과 구조,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다. 우리 곁에서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생물체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일들이 나타난 작품이다. 다시 성해나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놓치지 마시길.

 

 


#인비인 #성해나 #한겨레출판 #기담집 #단편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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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요가 - 한 권으로 완성하는 갱년기 리셋 솔루션
산토시마 가오리 지음, 한귀숙 옮김 / 버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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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요가 #산토시마가오리 #버터북스




 

이사를 하고 나서 요가를 안 한 지 2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요가 대신 걷기를 열심히 하는데 걷기는 요가와 다른 면이 많다. 건강해지고 있으나 뭔가 해야 할 일을 안 한 듯하다. 몸을 이완하고 마음을 단련했던 시간을 참 좋아했다. 집 근처에 요가원이 없으니 안타깝다. 그런 차에 이 책을 보았다. 갱년기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 아니나 미리 봐둬서 나쁠 것은 없고, 내가 했던 요가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비교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요가 강사이자 아유르베다 테라피스트인 산토시마 가오리는 갱년기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도 관리를 잘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권하는 식이요법이나 요가도 쉬운 편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의자를 이용할 수 있는 체어 요가와 골반저근을 깨우는 요가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요가는 곧 자세다. 요가 하는 사람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앉지 않는다. 다리를 꼬지도 않는다. 습관적으로 허리를 곧게 편다. 이런 작은 습관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다.




 

의자를 이용한 체어 요가를 다양하게 소개해 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따라할 수 있게 사진과 글을 이용해 설명했다. 총 13가지 체어 요가는 가족이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몸을 펴고, 자연스럽게 팔을 흔들며 걷는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하다 보면 두통이 생긴다. 그럴 때 퇴근 후 저녁을 적당히 먹은 다음 산책에 나선다. 새소리,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개와 함께 걷는 사람을 바라보며 풀숲을 걷는다. 언덕을 오를 때면 숨이 차올라도 우리가 계획한 코스를 완주하고 나면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적당히 땀을 흘리고 샤워 후 앉아 있으면 삶의 즐거움이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다시 일할 수 있는 마음을 얻는다고 해야겠다.




 

갱년기 증상을 겪는 사람 중에서 많은 이가 숙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잠이 많기도 하거니와 불면증이 심하지 않아 잘 자는 편이다. 다만, 자기 전 10분만 보겠다는 스마트폰을 삼십 분 이상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깊이 잠들지 못한다는 걸 경험했다. 습관이 중요한 것 같다. 스마트폰을 적당히 볼 것. 산책을 자주 할 것. 소화가 쉬운 음식,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할 것. 중요한 점을 알면서도 자주 놓치는 듯하다.

 




갱년기에 요가가 좋다는 건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몸을 이완하고 마음을 수련하는 활동이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땀을 흘리며 요가를 하고 나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힘든 자세를 유지하느라 걱정과 고민 같은 건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요가 하는 동안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유지하면 된다.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섭취하고 요가 혹은 걷기를 하면 좋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사는 동안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게 좋다. 손길에 닿는 곳에 책을 두고 언제든 따라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QR코드를 클릭하면 영상으로도 볼 수 있어 유익하다. 자, 요가를 따라 해 봅시다!

 

 

#갱년기요가 #산토시마가오리 #버터북스 #아유르베다 #이너유닛회복 #체어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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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 혼란을 끌어안는 쓰기에 대하여
정세랑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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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독자가될게요 #정세랑 #마음산책

 



한 권의 책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꾸준히 써야 하고, 결과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조금씩 쓰는 습관이 필요하다. 작은 메모들이 쌓여 커다란 산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진리다. 메모장이 모여 산을 이룬 장면을 생각하니, 유명 관광지에 있던 것들이 생각났다. 그저 예술작품으로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작가들은 글쓰기라는 숙제에 대하여 고민하는 듯하다. 작가의 글쓰기 방식은 당연히 궁금하다. 하지만 미래의 창작자가 궁금해하는 글쓰기는 좀 더 다를 듯도 하다. 주로 언제 써야 하는지, 어떤 주제를 설정해야 하는지 세부적인 사항이 궁금할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독자에서, 좀 더 나아가 자신의 글을 써보라고. 툭 던지듯 말한다. 글을 쓰고 싶어도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선물 같은 책이랄까. 하물며 독자들에게 건네는 응원 같은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



 

창작은 그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겠지만, 창작자는 신이 내려주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독자와 달리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인물에 대하여 좀 더 깊이 구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누구라도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미래의 창작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소설이 좋다. 작가가 그리는 세계관 속에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배운다. 작가란 상상의 세계가 남다른 존재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창작자인가’를 묻는 편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쓰는지, 들리지 않던 새로운 목소리를 담고 싶은지를 묻는다.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떨 때는 익숙한 주제보다 새로운 시각을 주는 작품이 좋다. 생각할 거리,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다른 장르보다 소설이 더 좋은 나는 꽤 많은 작품을 찾아 읽는다. 전작주의자 같은 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 나는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 즉 독자라는 신분이 좋다. 변화 없는 일상에서 하나의 선물처럼, 마치 여행하듯 타인의 삶을 훔쳐본다. 쓰는 자의 고단함을 알기에 독자로 머무는 것에 만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물에 대하여 다양한 질문을 건네야 한다.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를 주어야 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 몇 명 되지 않은 인물들이면 단조로울 수 있으니 여러 명의 주변 사람들을 배치하여 주인공의 마음을 흔들고 헤집어야 한다. 괴로운 상황을 즐길 수 있으며, 나라면 이렇게 행동하겠다는, 어쭙잖은 충고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리라.

 



표절에 대한 것도 미리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작품이 출간되면 그 내용을 살펴본다. 읽다 보면 비슷한 주제와 설정을 만나곤 하는데 자칫 표절로 이어질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다. 발 빠른 자가 먼저 완성한 쪽이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늦은 자는 고이 간직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 같은 꿈을 꿨나 봐요.’라고 말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작가와 미래의 어느 세계에 있는 듯 상상력의 세계를 표현하는 작가들이 있다. 예전의 나는 ‘SF소설은 나랑 안 맞아’,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았던 거였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라 미래의 나를 상상하지 못하겠다고만 여겼다. 지금은 어떤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든, 현실적인 미래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걸 몰랐다.



 

오늘의 볼품없이 짧은 메모가 훗날 작품의 기둥과 보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쓰는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메모라도 무방하다. 메모의 무작위성이야말로 메모의 힘이다. 번뜩 떠오르는 이미지, 아직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인물의 대사, 전개를 모르는 사건 등 뭐라도 좋다. (193페이지)

 



작은 메모 하나 허투루 버려서는 안 되겠다. A4 한 장을 채우는 게 힘들뿐더러, 글 한 줄 쓰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작은 메모 하나가 한 장의 글을 쓸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지 못해도, 꾸준히 쓰는 것만큼 좋은 습관도 없다는 걸 알려준 작품이었다.

 


 

#당신의독자가될게요 #정세랑 #마음산책 #산문 #한국문학 #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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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라이프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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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라이프 #히가시노게이고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학이야말로 별다른 선택을 하지 않아도 즐거움을 준다. 마치 찍어내듯 작품을 내는 것 같은데도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재미를 선사한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추리소설 팬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닛타 고스케가 나오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매스커레이드 라이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닛타 고스케는 이번 작품에서 경찰을 그만두고 호텔 리어로 변신했다. 『매스커레이드 게임』에서 도움을 받았던 나오미와 함께 활약을 이어간다.

 


호텔 코르테시아에 경시청의 아즈사 경감이 찾아오며 새로운 사건이 시작된다. 규에이사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일본 추리소설 신인상’ 수상작 선정을 위한 심사가 이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수상 후보자인 작가가 살인 용의자이며 그를 중요 참고인으로 연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경찰 출신인 닛타 고스케가 보안과장으로 있으므로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추리소설 신인상 후보자인 살인 용의자만 있으면 재미가 없다. 추리소설이란 다양한 인물의 군상과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 줄 모르는 인물의 등장이 매력 아닐까. 하필 그때 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버지가 닛타가 근무하는 호텔에 등장한다. 30년 전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한데 어우러져 진행되는 방식이다.


 

호텔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호텔리어는 가면을 쓴 이들을 존중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신인 문학상 후보자가 살인 용의자다. 살인을 위한 치밀한 계략이 추리소설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 형식이라 짜릿함과 두려움을 안겨주었다는 게 옳은 말일 것이다. 또한 문학상을 만든 출판사의 행태에 대하여도 말한다. 수상작 발표와 동시에 출간해야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것이고, 그게 판매 부수로 연결된다. 하지만 유력한 수상 후보자가 살인 용의자라면 출판사는 그 부담을 떠안을 수 없다.

 





그 어떤 작품보다 매력적인 후보작이지만, 그가 살인범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부담을 안고 있는 건 출판사뿐만 아니라 문학상 수상 후보를 가려야 하는 심사위원도 마찬가지다. 유력 후보가 중요 참고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위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부담감에 공감하게 되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술술 읽힌다. 소설 속 액자소설, 즉 신인상 후보작인 「남은 목숨」의 내용도 파격적이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연인이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고 느꼈던 희열을 다시 안겨주기 위해 사냥감을 찾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문득 욘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렛미인』이 떠올랐다. 피를 필요로 하는 소녀를 위해 사람을 숲으로 데려가 거꾸로 매달았던 한 남자의 순애보 말이다. 번역자도 말했지만, 이와 별도로 「남은 목숨」도 소설로 나온다면 상당히 짜릿할 것 같다. 다섯 가지의 살인, 다섯 가지의 트릭을 사용한 작품이라니. 기대되지 않은가 말이다.

 


가면으로 지켜온 인생 말입니다. 호텔을 방문하는 고객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호텔리어는 그 가면을 존중하고 절대로 벗기려 해서는 안 된다. (207페이지)

 


마음 속에 가면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때로는 가면을 쓰고 때로는 가면을 벗고서 살아가죠. 그렇기에 인생이 풍부하고 즐거워지는 거고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427페이지)

 


경찰을 그만두었다고 하지만, 닛타 고스케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리하다. 아즈사 경감이나 독자가 보기에도 호텔 직원으로 있기에는 안타까운 인물이 아닌가 말이다. 복수의 사건이지만 깔끔한 진행 방식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감추고 싶은 모습,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작품이라고 봐도 좋겠다. 그나저나 닛타 고스케는 다시 경찰로 돌아갈 수 없나. 물론 호텔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해결하지만, 경찰은 경찰일 때 가장 멋진 모습이 아니던가.

 


사건의 해결이 다소 밋밋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호텔이라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닛타 고스케의 또 다른 활약을 기대해 본다.

 

 

#매스커레이드라이프 #히가시노게이고 #현대문학 #닛타고스케 #일본소설 #일본문학 #매스커레이드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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