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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평점 :
#아코디언 #천명관 #창비
전쟁이 일어났던 과거의 어느 날, 한 소년이 엄마의 손을 놓쳤고 고아가 되었다. 배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소년은 살아내기 위해 거리에 섰다.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앵벌이였다. 소년은 흰 피부에 팔다리가 길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깡통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소년이 속한 곳은 판잣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해방촌의 벽도 없는 움막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아이들을 거둔 목사는 하루에 죽 한 그릇을 주며 착취했다.
천명관 작가가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에서 아코디언이 뜻하는 바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음악은 연주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도 희망과 위안을 주는 장르다. 힘들었던 시절 시름을 달랠 수 있었으며 타인을 위해 연주하는 이들에게도 힘이 나지 않았을까. 흥겨워하는 사람을 보며 더 흥이 나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동이와 눈 먼 소녀 연이, 걷지 못하지만 다양한 지식이 있는 거북이, 한 팔이 없는 깜상의 사연에서 역사나 드라마에서나 있었던 일들을 상상했다. 앵벌이를 시켰던 양 목사는 아이들에게 구름탄이라는 약을 먹였다. 그 약을 먹으면 구름을 탄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연이는 약을 먹은 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약에 중독된 깜상은 늘 외우던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하였다. 왜 악인은 어디에서나 등장을 할까.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아이들을 착취하는 인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소설에서 아코디언은 지나간 과거의 흔적이자 서러운 현재이며, 다가올 미래의 희망이기도 하다. 양목사가 사라진 곳에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미래의 희망을 기약했던 곳.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가 비록 좁고 허름하지만 살아갈 만하다는 걸 말하는 듯했다. 아이들끼리 평화로운 삶을 사는 듯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가 배경이기 때문에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동이가 아코디언을, 연이가 부르는 노랫가락에 깡통에 한가득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희망만 있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악인이 등장하는 법이다. 육손이란 자가 나타나 평화로운 장소를 불안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 만다. 조직적으로 앵벌이들을 관리하는 육손이의 지배 아래 아이들은 다시 무너진다.
동이에게 친구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 미키라는 이름을 가진 하우스 보이다. 영어를 사용하고 미군 부대를 자유롭게 다니는 아이로 동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음악가 앞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오디션을 보게 하여 앵벌이 말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미키 또한 전쟁고아로 앵벌이였기 때문에 동이에게 새로운 삶에 대하여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코디언을 치는 동안, 슬픔과 고통은 깊은 깨달음으로 정화되고 안개처럼 뿌옇게 가려졌던 진실은 거울처럼 선명해졌다. 그렇게 동이는 글자가 아닌 소리를 통해 벽 너머의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었다. (226페이지)
한편의 영화 같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전쟁고아들은 앵벌이로 나서게 되고, 상이군인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희망을 안고 있지만, 다시 고단한 삶의 한복판에 서서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앵벌이들은 서로를 돕고, 혹은 서로를 탄압하며 삶의 한 귀퉁이를 붙잡고 서 있는 모양새다. 예상한 스토리와 달라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희망의 미래를 예상했던 듯싶다. 동이가 오디션을 보고, 음악가가 되어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삶은 비정하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잃고 마는 세상이었던 걸 잊었다.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왜 현대가 아닌 과거인가. 때로는 과거가 오히려 더 현실 같다. 벽 너머의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악사를 보며 삶이란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다. 어쩌면 꿈꾸었던 미래가 아닐지언정 희망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작가는 그걸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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