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 네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게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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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의 깊이가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특별히 아픈 일이 없기에 대체로 행복하다 여긴다. 지금의 나를 떠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러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 할 것이다. 나 또한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주 하는 생각 중의 하나는 지금 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딘가 멀리, 시간적 여유가 없어 떠나지 못했던 유럽의 어딘가에서 한 달만 살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딸과 하는 대화 중 스트레스 만땅이라며 여행을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꿈꾸었던 미지의 장소를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조금쯤은 위로가 된다.

 

20년째 여행중이라는 작가의 이력이 무척 반갑고도 부러운 이유다. 용기가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보지만 추진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건가. 인도의 한 골목길에서, 에버리진들이 있는 장소에서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에세이라 할 것 같다.

 

소위 힐링 도서이기도 하다.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들. 수많은 질문들을 삼키고 하나의 질문 만을 해야 했을 때 말할 수 있는 것. 행복해지라는 샤먼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순간들에 대한 고백이었다.

 

헤어진 사람이 있었다. 상대방과 있으면 행복하지 않아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자는 말한다. '그가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그가 얼마나 행복해 본 사람인지를 물어보라'고 말이다. 많이 행복해 본 사람이 그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법이다. 이 말은 진리와도 같다.

 

 

맨발로, 그것도 상처 입은 맨발로 떠났던 수많은 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날 주저앉게 했던 작은 실망들, 냉담한 말 한 마디, 사소한 불운들이 다시 와 박혔다. 그 쓰라린 시간들을 건너는 동안 내 신발은 트렁크 안에 고이 들어 있었다. '그곳'에 가면 꺼내 신으려고. (45페이지)

 

상처는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그것이 마치 자신의 장소인양 나가게 하지 못한다. 상처를 드러내야 비로소 치유가 되듯, 마음에 담고만 있으면 아플 수밖에 없다. 이런 짧은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현재의 내가 상처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상처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그가 하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지금은 멈추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마라. 벌여놓은 일에서 손을 떼고 신발 끈을 풀고 앉아라. 그리고 원한다면 나와 함께 응답하지 않겠는가? (190페이지) 

 

 

 

 

책속에서 작가가 언급한 말기암 병동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의 말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보여준다. 죽어가는 이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사회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애썼던 것.

-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죽도록 했던 것.

 

- 일을 하느라 여행을 미루고 파티에 가지 않았던 것. (167페이지)

 

세 번째 목록에서 그만 '나도나도'라고 외치고 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아니겠는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일도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나 스스로도 아이들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뒤돌아보게 된다. 잠시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는 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하는 일, 그걸 하지 못했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일 것이다.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이며. 저자의 말처럼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신발 끈을 풀고 앉아 잠시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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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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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마운틴 걸이었다. 4~5년을 꾸준히 다녔던 것 같다. 지금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먼 산은 자주 다니지 않고 가까운 뒷산, 혹은 트레킹 위주로 다니고 있다. 일 년쯤 쉬었을까. 쉬었다 다시 다니기 시작했더니 이렇게 좋은 산을 왜 다니지 않았던 걸까, 후회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집에서 나서기가 힘들지 가면 좋은데, 하는 말들을 했다. 앞으로 자주 다니자고 함께 다닌 친구랑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아무래도 등산에 관련된 소설을 읽자니 즐겁게 산행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여러 명이서 함께 어울려 색색의 반찬들로 된 도시락을 챙겨먹고 하하호호 웃었던 기억들이었다. 상쾌한 공기와 친구들간의 관계가 더욱 좋아진 건 덤이었다. 그 친구들과 한라산을 등반하기도 해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다.

 

나는 이 소설이 그의 유명한 소설 『고백』처럼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소설로 보았다.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신 인물들의 연결 고리와 함께 산이라는 것에 대한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등산을 하게 되면 함께 걷는 사람이 있어도 각자의 생각에 빠져 걷게 된다. 과거의 일들, 현재의 상황, 미래에 펼쳐질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돌아 상황들을 정리하기에 퍽 좋다. 묵묵히 고 있지만 머리속은 무척 번잡하달까.

 

 

 

 

소설 속 인물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물들이 속해 있는 장소에 따라 일본의 산과 뉴질랜드의 산을 걷게 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는데 모두들 번잡한 마음들을 가지고 산에 올랐다는 거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다가 등산용품 행사할 때 구매하게 된 등산화 때문에라도 첫 등산을 하게 된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이해되지 않았던 남자 친구의 행동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함께 산에 오르는 동갑내기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엔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우정의 형태를 지니는 것이 등산 후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남편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여성이 언니를 불편해하는 동생과 함께 산행을 하며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언니가, '노조미, 너랑 오는 게 좋았어.'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은 함께 산행을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랑 함께 산행했던 마키노는 '야리가타케' 정상을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산행을 하면 맞지 않아 등산을 혼자 다니곤 했었다. 이번에 '야리가타케' 정상을 오르리라 다짐하고 휴가를 내어 산행을 하던 그녀는 등산을 하며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이끈다는 게 싫었던 그녀지만 다른 일행과 걸어가며 그때 아버지가 지쳤던 게 아니었을까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크든 작든 짐을 지고 있다. 단, 그 짐은 옆에서 보면 내려놓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색한다. 그것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346페이지) 

 

 

미나토 가나에게 이렇게 따뜻한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소설이었다. 추리소설만 잘 쓰는 게 아니었다. 등산을 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 자신이 갖고 있던 마음 속의 짐들을 벗는 과정을 나타낸 수작이었다. 각자의 시선에서 산을 오르지만, 결국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등산을 하는 것임을 말했다.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으며 내면의 우리와 마주한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내면 속의 나,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을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득 산길을 걷고 싶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산 속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과 마주하고 싶어졌다. 푸른 하늘, 맑은 공기와 더불어 나 혼자 걸어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 걸음이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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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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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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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 죽어야 고치는 습관, 살아서 바꾸자!
사사키 후미오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정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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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습관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만약 나의 어떤 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했을 때 성공할 확률은 매우 드물다. 시작은 거창하게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요일엔 퇴근후 꼭 산책길을 1시간 이상 걷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혼자 하게 되면 포기할까봐 신랑에게 꼭 같이 하자고 약속을 받지만, 서로가 약속이 있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몇 번을 빼먹다 보면 흐지부지 되고 만다. 운동을 해야지 하면서도 습관이 안돼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가 습관에 대한 새로운 책을 펴냈다. 편집자이자 미니멀리스트이기도 한 저자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을 받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새롭게 정리하며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 요즘이다. 한 번에 다 정리하기 보다는 눈에 보일 때마다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데 쉽지 않다. 거실 탁자나 혹은 식탁에 쌓아두던 종이 혹은 책들을 제자리로 정리하려고 노력은 한다. 너저분하게 보이던 것들이 제자리로 갔을 때의 깔끔함이 점점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작가인 미쉘의 『1일 1개 버리기』의 영향이 크다.

 

미니멀하게 살기로 했던 저자가 좋지 않다고 여겼던 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직접 SNS 상에 고지를 하며 실행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자가 음주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는 점이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넘어져 안경이 깨지면서 눈을 다치는 바람에 몇 바늘을 꿰맸다. 치료를 받는 동안 3주가 넘게 금주를 했더니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신랑과 함께 살다보니 저절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이게 습관처럼 자리잡았었다. 마실 때는 즐겁지만 아침에 깨어날 때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술 마시는 습관을 버리자고 몇 번을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3주 넘게 금주하다 보니 술을 마시지 않아도 삶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척 많은데 내가 너무 신랑에게 따라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모이면 으레 술상부터 차리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게 좋지 않아 보였다. 가까운 사람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힘든 사람이 있었음에도 왜 계속 술을 마셨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곧 깨지고 말 나와의 약속이더라도 술 마시는 습관을 고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게 또하나의 이유, 이 책 덕분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이 받아들이는 보상을 타인에게도 적용해서 생각한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자신이 받는 보상과 다른 보상이 있다는 것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습관을 만드는 일은 맥주 맛을 몰랐던 사람이 맥주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과 같다. 처음에는 쓰기만 하지만, 쓴맛을 참아내고 몇 번 마셔보는 동안 어느새 그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83페이지)

 

매일 1시간씩 운동하고 그 외의 시간을 정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시즌이 끝난 뒤에도 매일 나와 타구 연습을 하는 야구선수 이치로의 습관에 대해서도 말한다. 하루키 같은 경우 매일 1시간씩 운동하고, 400자 원고지 10장 분량에서 쓰기를 멈춘다고 한다. 8장을 쓰고 나서 어떻게든 10장을 채우고, 더 많이 쓰고 싶을 때도 참고 내일로 넘긴다고 한다. 이는 매일 글쓰는 습관을 들인 하루키의 오랜 습관이라고 한다.

 

습관을 만들고 싶을 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첫걸음부터 물건 줄이는 일을 권한다. 적절하게 물건을 줄이면 아예 지저분해질 일 자체가 줄어든다. 복잡한 청소의 기술을 터득하지 않아도, 정리가 습관이 된다. (121페이지)

 

청소를 잘하지 못한다. 퇴근후 집에 가면 피곤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하는 요가에 가느라 청소할 시간이 없다. 어지르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청소를 부른달까. 고양이 모래며, 온갖 물건들을 장난감 인양 바로 차고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럴 때 그때그때 치우면 청소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저자의 말처럼 정리하는 습관이 들여진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단 해보려면 지금까지 '일단 해보고' 어떻게든 해결된 경험이 많아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많이 시도해보고 성공할수록, 다음번 새로운 과제를 시작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246페이지)

 

혹시 고치고 싶은 습관이 있는가. 그럼 일단 실천을 해보면 어떨까. 몇 번 해보았다가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몇 번이라도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지속이라고 했다. 꾸준한 습관을 들이는 것. 지속적으로 할 것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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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구매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책은 책장 깊숙한 곳에 있어 잊어먹고 있었고, 어떤 책들은 곧 읽을 책들 목록에 계속 쌓여가더니 이제 책꽂이 두 줄에 걸쳐 있다.

 

정리하자니 그 책들도 50권이 넘어가더라.

작년 한해동안 읽은 책이 150권을 가볍게 넘겼는데

그럼에도 읽고 싶은 책들, 갖고 싶은 책들이 있다는 건

너무 욕심쟁이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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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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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엄마랑 함께 다녔던 동네 목욕탕이다. 그곳에 가면 동네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아직 학생이어서 잘 알지는 못했다. 부끄러워서 모른척 하기도 했고. 목욕탕에 갔을 때 제일 곤란한 것이 아는 언니들을 만나는 거였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눈이 안좋아 목욕탕 안에 들어갈 때는 안경을 벗고 가는터라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언니들이 꼭 아는 척 한단 말이다. 몰래 숨으려고 했는데. 뭐 조그만 동네 목욕탕이라서 숨을 데도 없었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욕실이 있어 목욕탕을 자주 다니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친구와 함께 가가까운 담양으로 온천욕 하러 일년에 몇 번 다니기는 한데, 이만큼 나이가 들어도 목욕탕에 가는 일은 늘 부끄럽다.

 

그동안 이웃분들의 리뷰에서 마스다 미리의 글은 보았지만 정작 내가 읽은 일은 없었다. 궁금하긴 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았다고 할까. 무엇이든지 어떤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 좋은 작가를 만나는 일도, 좋은 책을 만나는 일도. 일러스트레이터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고 나니 왜 그렇게 마스다 미리의 글을 좋아하는지 알겠다. 스스럼없고 어쩐지 다정다감하다.

 

 

 

집에 목욕탕이 없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동생과 함께 목욕탕에 다녔던 이야기들을 재미있고도 실감나게 풀어냈다.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물이 적당하다는 온도와 아이들이 느끼는 온도가 달랐던 점이라던가, 목욕탕에서의 습관 같은 것을 말하는데 정말 너무 웃겨서 혼자서 킬킬 거렸다. 들어오자마자 항문을 열심히 씻고 나서는 샅을 열심히 씻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열심히 씻는 이유는 오늘 분명 똥을 눴을 거라며 불편해 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다른 점일 수도 있겠으나, 남탕과 여탕이 나눠져 있는 건 이해하겠는데 카운터가 한 공간에 있고 벗은 아줌마들이 카운터의 청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말에 기겁했다. 이런 게 가능했나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남탕과 여탕의 공간이 아예 분리되어 있잖은가. 아니면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거나.

 

나이 먹은 아줌마들이 벗은 몸으로 카운터 청년 혹은 아저씨와 이야기하던 걸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이게 문화의 차이인가 싶었다. 더 놀란 건 여탕에 카운터 아저씨가 들어와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저자는 어른들의 '등 밀어주기'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목욕탕에서 혼자 밀고 있는 사람들은 옆 사람과 등 밀어주기를 한다. 일명 품앗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피부가 약해서 일명 이태리 타올로 세게 밀면 빨갛에 울긋불긋 올라 온다. 특히 엄마가 밀어주었을 때 그렇게 된 건데, 내가 엄마를 밀어주면 양에 안차는지 '더 세게'를 몇 번이나 강조한다. 그래서 누가 밀어달라고 하기 전에 쓱 밀고 나가버리는데 친구들과 밀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밀면 더 세게 하라는 말을 듣는다. 난 살살 밀라고 말하고.

 

일본 사람들이 목욕을 좋아하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몰랐다. 저자가 도쿄에서도 목욕탕에 다녔던 일화들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공중 목욕탕이 많이 있을까 싶다. 이 책이 나온 게 2006년 정도 되니 지금은 많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일본의 목욕탕 같은 경우 어린 아기와 함께 오는 엄마들을 위해 아기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오사카 같은 경우는 아기 침대가 더 많았었는데 도쿄에 오니 거의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엄마와 어딜 가게되면 마실 것을 원하는데 우리나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목욕탕에 갔을 때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하면 음료수나 우유등을 사주는데 우리에겐 바나나 우유가 그런 게 아닐까. 아이들은 탄산 음료를 좋아하겠지만, 엄마는 건강에 좋지 않다며 과일이 들어간 음료를 사준다. 근데 어차피 과일맛 탄산 음료도 똑같다는 사실. 한 병을 사서 엄마와 딸 둘이 한 모금씩 나눠 먹는 풍경들이 그림으로도 그려져 있다.  

 

 

 

마스다 미리의 동네 목욕탕의 추억들을 읽는데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마 저자가 엄마와 다녔던 기억들을 말해서 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목욕했던 장면들이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는데 울컥해진다. 다시는 엄마랑 목욕할 수도 없겠다는 사실때문일 것이다. 뒤늦은 후회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 때는 왜 함께 하지 못했을까. 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걸까. 

 

 

엄마에 대한 추억과 뜨거운 온천물이 그리워졌다. 한두 달 전에 가본 온천에서 노천탕에 들어가 있는데 눈발이 가볍게 흩날리고 있어 더욱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저자의 말처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 날씨가 추울 때 더욱 생각나는 것이 목욕탕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심신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일본에 갔을 때 호텔방 온천욕 말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온천욕을 한번도 하지 못했는데 다음에 가면 기필코 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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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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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7: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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