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일 -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스탠리 피시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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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 타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장, 아름다운 문장, 간결한 문장을 쓰고 싶다. 문장이 아름다운 작가로 김훈과 김연수 작가를 꼽을 수 있다. 김훈 작가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늘 감탄을 하곤 한다. 간결하고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정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누군가 그랬다.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처음 쓰는 문장이라고.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문장.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자신의 문장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책 속에서 읽은 좋은 표현을 마음에 새기고 흐트러짐이 없는 문장을 쓰고 싶은 건 모든 글 쓰는 사람의 염원일 것이다.

 

문학이론가이자 비평가, 법률학자인 스탠리 피시의 좋은 문장을 쓰는 글을 읽으며 느낀 건 역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사랑받는 작가들 제인 오스틴과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버지니아 울프, 샐린저의 문장을 발췌하여 문장의 형식을 말하고, 종속 혹은 병렬, 풍자 형식의 글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한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일 거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쓸때 첫문장 때문에 고민하고 마지막 문장때문에 애가 타는데 좋은 문장을 쓰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나는 문장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순수 미술이나 좋은 포도주를 음미하는 사람들도 이다. 나는 좋은 문장을 음미한다. "우와, 참 대단하지 않아?", "저 문장 좀 보라고!" 라는 감탄을 이끌어내는 문장을 찾아 헤매는 일이 내 업이다. (12페이지)

 

 

 

 

 

글을 내놓을 때 늘 부끄럽다. 글쓰는 방법을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좋은 글을 읽으며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볼 때면 부럽다. 어쩌면 그렇게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하는지. 늘 배우는 자세로 글을 읽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해서 능력이 금세 일취월장 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글을 읽고 쓰며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단어들을 열거한 목록을 넘어서 문장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문장 쓰기를 연습하고, 자신이 쓴 문장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일을 되풀이한다면, 자신이 쓰는 내용이 언제 실패로 돌아가는지 알게 되고 써놓은 문장이 별개 항목의 정보 더미로 전락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점 또한 파악하게 된다. (58페이지)

 

어떤 작가처럼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 새 글을 업로드 하고 그러다보니 좋은 글 즉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위 발췌 문장에서처럼 문장 쓰기를 연습하고, 자신이 쓴 문장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른 사람의 행동일 수도 있겠다.

 

 

 

아래 문장은 헤밍웨이가 작가들에게 제공한 조언이다.

문장을 짧게 써라. 명료하게 써라. 영어에 어원을 둔 간단한 단어를 써라. 중복을 피해라. 형용사를 피해라(에즈라 파운드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자신을 빼라. (124페이지)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고 있노라면 형용사가 많고, 중복된 단어가 많다. 헤밍웨이의 조언은 작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는 방법이다. 짧은 문장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글을 쓸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다. 물론 중간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처럼 중요한 게 없다. 첫문장 때문에 소설을 중도에 읽기를 포기한 적도 있을 정도다. 마지막 문장 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게 깔끔한 마무리인데 나는 늘 마지막 문장이 어렵다.

 

문장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문장의 형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떠한 형식으로 글을 쓸 것인가. 논리적 형식에 맞게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떠한 내용으로 어떠한 문장을 쓸 것인가. 결국 구체적인 연습을 통해 논리 형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 이제부터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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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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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가족, 친구 혹은 연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남녀간의 관계에서는 처음 만났을때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 생겼는지, 성격은 괜찮은지, 연인한테 잘해줄 것인지에 대한 탐색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적인 끌림이 아닐까. 만지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더 깊은 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싶은 감정을 갖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약간의 호감은 있지만 연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시간은 두 사람의 감정의 깊이에 따라 다르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캣퍼슨」은 처음 만난 사람과 데이트하며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술 영화 전용극장 매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마고는 영화를 보러 온 로버트를 만나 소위 썸을 타게 된다. 특별히 좋지도 않았지만 싫지도 않아 둘은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그후에 발생되는 감정은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휴가를 맞이해 대학을 떠나 집에 갔던 마고는 로버트와 함께 문자 메시지로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났을 때의 감정은 마고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함께 영화를 보고 그의 집으로 함께 간다는 것은 더 깊은 관계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로버트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마고도 아는 사실이다. 더불어 책을 읽는 우리까지 알 수 있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밖에 내지 못한다는 것. 그런 마음을 조금쯤은 공감할 수 있었다. 첫 데이트에서 좋아하는 것처럼 말했다가 거절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로버트의 차를 타고 그의 집(낯선 장소)으로 가는 과정에서 혹시 자기를 강간하고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아직 로버트를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랑의 감정과 자주 혼동하는 것이 호기심 혹은 약간의 끌림이 아닐까 한다. 한 번의 관계를 가진 뒤 그에게 상처를 줄까 봐 헤어지자는 말을 못하는 것 또한 지켜보는 이를 답답하게 했다. 그에게 연락하는 것을 피하며 자꾸 몽롱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실재하는 로버트보다 휴가기간때 주고 받은 메시지였다는 것. 어느 정도는 괜찮은 남자지만 다시 데이트를 하고 싶지는 않은 남자였다는 게 문제랄까.

 

현대판 나르시스트 라고 할 수 있는 「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는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구혼자들을 자꾸 퇴짜놓는 공주가 깨진 거울 속 자기 모습에 반해 그 남자를 찾아 결혼하겠다고 했고, 그 남자가 사실은 거울에 비춰지는 자기였다는 것이 아니러니다.  「풀장의 소년」 은 테일러의 처녀 파티를 앞두고 오랜 친구인 캐스와 리지는 뭔가 자극적인 것을 선물해주고 싶어 오래전에 보았던 공포 영화 속 소년을 찾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성냥갑 증후군」은 오랜 연인인 로라와 데이비드를 보여준다. 좋은 직업과 높은 급여를 받는 데이비드에 비해 아직 직장을 갖지 못한 로라. 로라는 무언가에 물렸다며 긁기 시작하고 자신의 피부를 벗길 정도로 긁어댄다. 어느 날은 피부 속에서 움직이는 벌레를 잡았다며 점처럼 보이는 것을 비닐 봉투에 넣는다. 이를 본 의사는 로라에게 성냥갑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준다. 경제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지출의 82퍼센트를 사용하는 데이비드에 비해 겨우 18퍼센트의 지출을 할 뿐인 로라의 부담감이 만들어 낸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캣퍼슨」의 대척점에 있는 단편이라 할 수 있는  「좋은남자」라는 작품이 놀라웠다. 테드는 여자들과 깊게 사귀지 않는다. 몇 번을 만난 후에는 이별 통보를 하는데 최근 만났던 여성이 던진 물이 든 컵에 맞아 병원에 실려가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십대시절 애나를 좋아했지만 남자로 다가가지는 못하고 친구에 머문다. 우정이라는 영역 안에 숨어 있어야 애나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나를 좋아하는 동시에 그를 좋아하는 레이철과 만나게 되었다. 레이철을 좋아지기 시작 했지만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레이철과 헤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애나와 사귀게 되었지만 중간에 다른 여자를 만나 바람을 피웠고 레이철과도 바람을 피웠다.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남자'란 그 남자에 비해 자신이 너무 좋은 여자라고 마음속으로 은밀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남자다. 그는 그녀들이 스스로에 대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을 그녀들 눈에서 확인한다. (271~272페이지,  「좋은남자」)

 

테드는 스스로 좋은 남자라 여겼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테드가 좋은 남자라 할 수도 있다. 애나처럼 자신에게 향하는 감정은 모른척하고 자신이 얻을 수 있을 때만 가까이 다가오는. 이런 여자가 실제로 있을 것도 같다. 여자 입장에서 이런 친구를 바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데 친구인 관계를 원하기 마련이다.   

 

총 11편의 소설로 다양한 관계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을 담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관계들, 사회적 혹은 개인적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했다. 작가의 단편  「캣퍼슨」이 뉴요커에 발표되어 온라인에서도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미투 운동과 열띤 논쟁을 일으켰던 작품이라고 했다. 그외 작품들을 엮은 소설집이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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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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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눈을 기다리는 계절에 들어섰다. 추위를 많이 타 겨울이 싫다고 하지만 눈이 오는 날은 좋다.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설렘이 찾아온다. 어렸을적엔 눈이 많이 내렸었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이 좋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곤 했다. 내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게 좋았다. 지금도 눈이 내리는 건 좋다. 걷기에도, 바라보기에도 좋은.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뼛속까지 들어오는 바람을 피해야 하고, 겨울이 두렵게 여겨질 수도 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괜찮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안온하고 안전하게 여겨졌다. (중략)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 날씨든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60~61페이지) 

 

누군가 내게 건네는 듯한 말 한 마디. 다른 무엇도 아닌 위로의 한마디를 듣고 싶을때, 내 마음의 소리에서 나온 말들. 이런 것들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다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 힘들었던 일들도,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다 괜찮아질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가 다른 사람까지 전염시킬 수 있다. 그저 제목이 좋아서, 그저 표지가 좋아 읽게 된 산문이 내 마음에까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한지혜 작가를 잘 알지 못했다. 소설 한 편 제대로 읽지 않았었다. 그의 산문을 읽는데 어쩐지 나와 같은 삶을 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개천에서 살았다는 문장에서부터, 가난하고 고단한 삶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 겨울에 쌀독에 쌀이 떨어졌던 일, 온 가족이 모여 집이 아닌 방에 모여 살았던 일화들을 말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았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버지의 가계부를 말한 거다. 하루에 들어간 얼마의 생활비, 간결하게 적어놓은 가계부에서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일,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을 말한 내용이었다. 때로는 숨기고 싶었을 일들을 이렇게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의 많은 것을 드러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글쓰기가 되는 건가. 갑자기 쓰러졌던 아버지를 2 년 동안 집에서 병간호를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덤덤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임신으로 입덧이 심해 다 게워내다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던 부분이었다. 뻥튀기를 먹고,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칼국수를 먹고 싶었던 그 마음을. 칼국수는 아버지가 해주신 것으로 작가와 아버지만 둘이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었다. 입덧은 과거에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인 것 같다. 추억의 음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임신 중 모든 걸 게워내다가 한가지 먹었던 게 시원한 물냉면이었었다. 누군가와 특별히 연관된 기억이 없는데, 물냉면이 간절했었다. 작가 또한 아버지가 해주시던 칼국수를 먹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의 음식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아마 그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참을 눈물을 흘렸었던 것 같다.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던 것 처럼 나 또한 엄마가 많이 보고싶어서였다.

 

 

 

가족은 지겹고 무겁지만, 그 하중으로 나를 지그시 눌러주는 어떤 안온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견뎌지기도 하는 것이다. (189페이지)

 

가족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 때로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또 가족때문에 살아지기도 한다. 타인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것처럼.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또한 가족의 힘이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와 세상의 부조리함, 또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를 말했다. 바깥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게 아닌 안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을 담았다. 직접 경험한 것과 상상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은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삶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경험의 산물 아니겠는가.

 

날씨가 추워져 곧 눈이 내릴 것 같다. 가만가만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한다. 눈 내리는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릴지 귀기울여 봐야겠다. 위로의 문장들이 가득해 나도 몰래 가슴을 쓸어 안았다. 우리는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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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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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베라는 남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읽어왔다.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글의 매력에 빠졌다. 이제 작가는 인생을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출간되는 작품마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는 인생소설을 썼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일생일대의 거래』다.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한다. 신문에 나올 정도로 모든 사람이 알만한 부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소홀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출장을 다니느라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떠났는데도 며칠이 지나서야 깨달을 정도였다.

 

자신이 가진 많은 재산을 아들을 위해 물려주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성인이 아들과도 화해하고 싶을 터. 아들은 고향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매일 저녁 아들이 일하고 있는 바 창밖에서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암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역시나 아픈 아이로 슬픈 가족을 위로하려 그림을 그리고 소파에 빨간색을 칠하고 있다.

 

슬픈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애쓰는 아이를 보며 그맘때 아들을 떠올렸고, 아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하나도 없음을 알았다. 그는 두려웠던 거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을 뒤로하고 멀리했다.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삶의 마지막에야 자기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머물고 있는 병동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가진 사신이 있었다. 모든 죽음 앞에 있었던 그 여자는 회색 옷을 입고 있었고, 아픈 소녀 또한 회색 옷을 입은 여자를 피해 달아났다. 죽음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도 우리 주변에 늘 널려있는 게 또한 죽음이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사신은 늘 우리곁에 있는 것인가.

 

 

나한테는 그럴 권한이 없어. 죽음을 죽음으로 맞바꾸는 건 못 해. 목숨을 목숨으로 맞바꾸는 거라면 모를까. (31페이지)

 

1초는 항상 1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한 가지가 그 1초의 가치다. 모두가 항상 줄기차게 협상을 한다. 날마다 인생을 걸고 거래를 한다. (99페이지)

  

10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소설을 두 번 읽었다. 우리 삶에서 무엇이 가치있는가. 나에 관한 기억이 그대로 사라진다고 해도 누군가를 위해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묻는 소설이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여러 분이 선택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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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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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의 임신한 소녀가 납치되었다고 했을때 가장 염려한 것은 소녀의 생명이며 과연 납치범들의 눈을 피해 살아 나올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아이의 생명은 어쩌면 소녀의 생명보다 조금은 뒷전일 수 있는 법. 소녀는 어찌하여 열여섯 살의 나이에 임신했으며 납치범들에게 붙잡혀 왔을까가 궁금하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학교에 가던 소녀가 납치되었다. 소녀는 임신한 상태. 아이를 가진 몸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소녀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즉 소녀의 목숨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 보다는 소녀를 납치한 사람들이 왜 이리 어수룩한가다. 소녀들의 유괴사건을 조사하던 FBI 수사관의 수사망에 그대로 노출되는 실수를 저질렀다. 유괴범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각자의 특출난 재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오로지 유괴범만 보통의 사람, 많은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납치된 소녀들보다 유괴범의 생명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즉 납치된 임산부 소녀 리사 일랜드는 감정을 잘 느끼긴 하지만 딴생각이나 비생산적인 사고를 억제하는 데 특출난 것으로 밝혀졌다. 소시오패스는 아니지만 기쁨이나 무서움이나 사랑 같은 느낌이 닥쳐오면 마음속에 있는 스위치로 그 느낌을 끄거나 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리사는 납치되었으나 납치범에게 울며불며 매달리지도 않고 정확한 계산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그녀가 사용할 무기를 만들기 위해 심심하다며 텔레비젼이나 라디오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납치범은 바보처럼 그것들을 가져다 준다. 지하실에 과학실험실을 차려놓을 정도로 특출난 재능을 가진 리사는 납치범이 가져다 준 텔레비젼과 라디오, 급할때 사용하라며 가져다 준 양동이의 손잡이 부분을 사용해 무기를 만들었다. 즉 어수룩한 납치범에게 응징을 가하고 탈출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시뮬레이션을 하듯 모든 방법들을 만들어 두었다.

 

어린 소녀들을 유괴하는 경우 대부분은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이 유괴범은 다르다. 소녀들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다. 소설은 납치된 리사 일랜드의 시점과 유괴사건을 조사하는 로저 리우 특별수사관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로저가 조사하던 유괴된 소녀와 다른 화자 즉 리사가 다른 대상이라는 점이다.  

 

로저 리우가 FBI의 유괴사건만 담당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특출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로저 리우 수사관이 드디어 리사의 신고를 받았을 때 소설은 정점을 찍는다. 리사가 납치범을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로저 리우는 리사와 어떻게 조우하게 될까가 큰 관건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실수가 일어나는 법. 쉽게 진행될 줄 알았던 리사의 복수극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마음 졸이며 읽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이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 유괴사건에 맞닥뜨린 수사관이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이 소설에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녀가 이끌어간다. 납치한 유괴범을 응징하는 것도 복수하는 것도 소녀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마음의 스위치를 켜 엄마에게 다정한 감정을 내비치는 것도, 자신과 동류로 보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도 자주 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여겨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리사를 이어 그녀보다 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소설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즉 시리즈를 기대하는 바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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