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에세이시트, 사상엔 북학파, 문학엔 백탑파인 이덕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덕무의 문장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읽게 된 책이다. 『문장의 온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문장의 온도』 이 소품문 속 에세이를 다루었다면 『시의 온도』는 이덕무의 시를 모은 책이다. 그가 쓴 128편의 명시를 추려낸 책이다.

 

조선에서 시나 문장을 쓴 학자들이 중국의 문학을 참고로 했다고 알고 있다. 조선 시인의 책을 어렵게 구해 시를 베끼고 시인의 글들을 사랑하였다. 반면 이덕무는 중국의 문인들과는 전혀 다른 그만의 시를 썼다는 게 중요하다. 즉 어느 누구의 시와도 다른 조선의 시를 썼다는 거다.

 

이덕무 마니아로 스스로 칭하는 한정주는 이덕무의 글쓰기를 여덟 가지의 비결로 요약했다. 첫째,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글을 써라, 둘째,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라. 셋째, 일상 속에서 글을 찾고 일상 속에서 글을 써라. 넷째,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보고 적어라. 다섯째,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로 글을 써라. 여섯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라. 일골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말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글을 써라. 여덟째, 온몸으로 글을 써라. 다시 말해 나의 삶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글에 담아 써라. (9~10페이지)

  

 

이덕무의 문장 들을 읽고 있노라면 일상의 삶의 그대로 보여진다. 쌀 한 톨 없이 가난한 삶에서도 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 그대로 글을 썼다는 거다. 수많은 문장들 속에 그의 삶을 엿본다. 그가 교우했던 인물들이 그의 문장을 보고 칭찬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문장들을 말이다.

 

시를 지으려면 무엇보다 시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갖춰야 한다. 좋은 시와 나쁜 시를 볼 줄 아는 안목과 식견이 있어야 좋은 시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짓지 않는다고 해도 시를 감상하는 방법을 안다면 시 읽는 재미와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시는 시적 언어를 통한 압축과 생략의 문학이기 때문에 산문에 비해 읽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41페이지)

 

진실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한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을 만난 이덕무의 삶은 최고의 행복을 누린 삶이었다고 할 만하다. (82페이지)

 

서얼 출신의 이덕무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백탑파의 일원들이었다.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를 비롯해 홍대용, 박지원, 서상수, 유금, 이만중, 이재성과도 교유했다. 무엇보다 이덕무의 괴이한 시를 깊이 이해하고 앞장서서 지지하고 옹호해 준 사람이 박지원이라는 사실이다. 박지원은 이덕무에게 롤 모델이자 스승이었으며 또한 벗이었다.

 

가을 샘 흐느끼며 무릎 아래 지나가니

어지러이 솟은 산속 책상다리하고 앉았네

낮에 먹은 술 저녁 무렵 올라오니

활활 달아오른 귀, 단풍 닮았네   - 『아정유고 1』 유득공, 박제가와 밤나무 아래에서 쉬며 (115페이지)

 

이덕무와 유득공은 가난함과 굶주림을 함께 나눈 벗이었다고 했다. 궁핍한 생활을 알고 있으니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집에서 가장 좋은 책을 팔아 배불리 먹었던 일화를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유득공 역시 아끼던 책을 팔아 술을 사서 서로 나눠 마셨다는 일화였다.

 

간혹 가난 때문에 병 얻으니

내 몸 돌보는 이 너무도 소홀하네

개미 섬돌에도 흰 쌀알 풍족하고

달팽이 벽에도 은 글씨 빛나네

약은 문하생 향해 구걸하고

죽은 아내 좇아 얻어먹네

병 얻어도 오히려 독서 열중하니

굳은 습관 일부러 고치기 어렵네    『아정유고 2』  여름날 병들어 누워 (167~168페이지)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병을 얻어도 독서에 열중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습관처럼 책을 읽는 이덕무의 모습과 굳은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는 말에 얼마나 책을 읽으면 그렇게 되나 싶다.

 

밀랍을 녹여 매화를 만드는 것을 윤회매라 한다. 벌이 꽃을 채집하여 꿀을 만들고 꿀이 다시 밀랍이 되고, 밀랍이 다시 꿀이 되는 변화가 마치 불교의 윤회설과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책 속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굉장히 아름다운 매화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남쪽이라 이른 꽃을 피운 매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적이 있는데 매화가 지고 다시 피는 것 보다 영원히 바라보려고 그런 게 아닐까. 

 

서얼 출신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이덕무가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었을 때도 오두막집에 살며 권력을 좇거나 부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간서치라 불린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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