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펠 저택의 여인
앤 브론테 지음, 손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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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펠저택의여인 #앤브론테 #은행나무

 

 

브론테 자매의 소설을 일컬을 때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회자된다. 수없이 영화로 제작되어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내용이다. 그에 반해 앤 브론테의 작품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을 은행나무출판사에서 국내 미출간작 초역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설렜다. 앤 브론테의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은 관습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여성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을 결혼 상대로 선택하고, 예상에 빗나갔을 때 주인공 헬렌의 현명한 선택은 지금의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 남편에게 종속된 부인이 아닌 한 여성으로서 우뚝 서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보기 드문 서간체 형식의 작품이다.

 



 

길버트 마컴의 편지글로 소설이 시작된다. 와일드펠 저택에 새로 이사 온 그레이엄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과 여동생 로즈에게 듣는다. 아들이 하나 있는 그레이엄 부인은 이웃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두려워하고 아이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듯하다. 어떤 사연으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하고 수군대는 모습이 자못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배경처럼 보인다. 저택에 이사 온 사람은 당연히 마을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다. 소수의 사람이 모인 파티를 하고 초대를 받았으면 초대를 해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은 결혼이 아주 중요하다. 사랑이 없는 결혼할 수는 있어도 받은 유산이 얼마나 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없는 사람은 결혼하기 힘든 조건이었으며, 여자 또한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컸다. 그 시절 여성의 지위는 아주 낮아서 결혼하는 순간 가지고 있는 유산도 남편의 소유가 되었으며, 헤어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제도였다. 이혼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으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며, 집안일을 도와줄 하녀를 둘 수 없기 때문이었다.

 

 






헬렌은 파티에서 만난 잘생긴 남자 아서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의 행실을 알고 있던 이모는 결혼을 막지만, 헬렌은 결혼하면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 듯하다. 자기의 사랑으로 아서를 감싸고 변화를 유도하지만,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오랜 준비 끝에 헬렌은 과감히 남편에게서 도망친다. 어린 아들 아서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림을 그려 돈을 마련하고자 했다. 저택만 그리기 답답해서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닷가로 나가 그림의 소재를 찾았다. 아이에게 나쁜 습관이 들지 않게 와인 충격 요법을 준 것도 그가 현명한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앤 브론테는 제도에 순응하지 않고 개인의 삶과 행복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듯하다. 여성이라고 해서 남편에게 종속되는 걸 염려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결혼까지 이르는 과정과 결혼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아니라고 느꼈을 때는 과감하게 뛰쳐나와야 한다는 거다.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 망설이는 남자를 붙잡아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도 달랐다. 적극적으로 나서 그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이리 통쾌하냐 말이다.

 



 

서간체 형식의 소설은 중간에 액자소설처럼 헬렌의 일기를 수록했다. 그녀의 정체와 행실을 의심해 혹은 질투의 감정이 치달을 때, 헬렌이 건네준 그간의 일기는 서간체의 글과 대비된다. 한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감정, 이후에 드러난 결말은 짜릿하다. 비로소 독자가 바라는 결말을 마주했을 때 주인공의 감정과 흡사할 것이다. 우리는 그걸 공감 혹은 감동이라 일컫는다.

 



 

돈은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하다. 받은 유산이 많으면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선택에 비교적 자유롭다고 해야겠다. 그것은 빅토리아 시대나 현재나 다르지 않다. 삶에서 아주 중요한 조건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일 아닐까. 결혼이라는 제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여성의 성장을 유쾌하게 다룬 작품이었다.

 

 

#와일드펠저택의여인 #앤브론테 #은행나무 #세계문학 #해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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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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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자기만의 고유한 철학으로 화가와 작품을 미학적으로 탐구한다. 작가가 그리는 미술작품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다양한 관점으로 회화의 세계를 접한다. 문학 작품은 그림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작가의 회화론을 탐구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독자는 문학 작품을 읽고 화가의 그림을 살핀다. 그림에 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화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림에 관한 열정과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절망에 공감한다. 별다른 삶이 있을까.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내놓아야 하는 법. 그건 예전과 다르지 않다. 그게 인간의 삶인 것 같다. 비록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예술가라고 해도 말이다.

 

 

녹색광선의 해외문학을 좋아한다. 책이 예뻐 소장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발자크의 작품이다. 돈 후안의 이야기인 영생의 묘약과 표제작이기도 한 미지의 걸작이 수록되어 있다. 미지의 걸작은 젊은 화가 니콜라 푸생이 포르뷔스의 집에서 천재화가 프랜호퍼를 만나 일어난 이야기다. 푸생과 포르뷔스는 프랜호퍼의 평생의 걸작을 보고 싶다. 그림 카트린 레스코는 프랜호퍼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지의 걸작이다. 천재화가의 걸작을 본다면 자신 또한 걸작을 그릴 수 있겠다고 여긴다. 푸생은 애인 질레트에게 프랜호퍼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간청하고 천재화가가 숨겨두었던 그림을 마주한다. 걸작을 남기고 싶은 예술가의 욕망을 나타냈다.

 

 

카트린 레스코를 그린 프랜호퍼를 보면서 그리스신화에서 나온 피그말리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키프로스의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형인 조각상을 만들어 갈라테아라는 이름을 주었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하게 된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 재물을 바치고, 아프로디테는 갈라테아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프랜호퍼도 피그말리온 효과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그림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탄식의 숨소리가 들린다. 프랜호퍼가 추구했던 진정한 예술은 푸생과 포르뷔스에게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는 수많은 이상한 선들 뿐이었다. 영혼과 빛에 관한 윤곽은 어디에 있는가. 그가 십 년 동안 붙잡고 있었던 아름다운 여인은 어디에 있느냐 말이다.

 

 

예술의 임무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네! 자네는 비루한 모방자가 아니라 시인이야. (82페이지)

 

 

영화감독 자크 리베트는 미지의 걸작을 각색해 영화 <누드 모델>를 만들었다. 영화 <누드 모델>의 간단한 내용과 사진이 부록에 수록되어 있었다. 푸생과 포르뷔스를 포함한 화가들의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소설에 나온 화가들의 그림과 이력을 수록했다. 프란츠 포르뷔스와 니콜라 푸생을 비롯해 조르조네 등의 그림을 살펴볼 수 있다. 허구의 인물을 통해 회화론을 펼쳤던 발자크의 작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평생의 걸작을 그리고 싶은 예술가의 고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제물을 바치듯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는 장면 또한 영화나 여타의 소설에서 보았던 형태다.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어 다양한 형태로 창작되었던 영생의 묘약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돈 후안을 탄생시킨 작품이다. 인간에게 영생의 묘약이 있다면 어떨까.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영생의 묘약을 마주한 돈 후안의 선택을 보라. 유산을 물려받은 돈 후안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선택했다.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을 때 아버지와 똑같은 유언을 하는 돈 후안을 보면서 인간이 가진 욕망의 끝이 어디인가를 묻게 된다.

 

 

발자크의 작품은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걸작을 그리고 싶은 화가의 욕망과 영생을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비루하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자신의 그림에 취해 불멸의 역작을 만들었다고 여긴 화가 또한 예술가들의 특징인 것 같다. 욕망을 위해 연인을 한낱 물건처럼 거래하는 자를 보라. 누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일컫는가. 욕망에 갇힌 인간들의 군상을 발자크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미지의걸작 #발자크 #녹색광선 #녹색광선해외문학 #해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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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13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지의 걸작! 조흔 책 소개 감사합니다!!^^

Breeze 2026-02-13 09: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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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바꾸는이메일쓰기 #이슬아 #이야기장수

 


 

사회생활을 하며 업무적으로 이메일을 자주 사용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메일을 받고, 보내기도 한다. 메일 제목에 보내는 기관명과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기입하고, 간단명료한 내용으로 메일을 쓴다. 이메일 쓰기에 특별한 비법이 필요할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거절의 메일을 쓰기 위해 고민했던 적이 있어 이 책을 읽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읽고 싶은 책이 보이면 구입했던 책이 탑을 이루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서평 의뢰하는 메일이 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 책에 관한 거절의 메일을 보내야겠는데 고민이 됐다. 정작 구매한 책을 읽지 못해, 며칠을 궁리한 끝에 거절의 메일을 보냈다. 거절의 메일을 보내게 된 계기가 이슬아 작가의 작품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난 뒤였다. 이슬아 작가의 업무 스타일이 꽤 괜찮았다. 거절의 메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정중하면서도 깔끔한 거절의 문장이어야 했다.

 


 

일간 이슬아의 작가가 소설을 썼다. 엄마와 아빠를 직원으로 부리며 출판사 사장이 된 가녀장의 이야기 가녀장의 시대. 그 작품을 재미있게 읽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었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작가가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았다. 어떠한 의뢰를 할 때 그에 상응하는 페이는 아주 중요하다. 정확한 금액을 말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작가는 하한선과 상한선을 정해두고, 오히려 상한선을 상회하기 위해 설득하는 메일을 쓴다고 했다.

 


 





이슬아 작가의 결혼식에 뮤지션 장기하가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전부터 아는 사이인 거로 알았으나, 이 책에서 장기하를 인터뷰하기 위해 쓴 메일을 보고는 작가의 섭외 능력에 놀랐다. 사례금 또한 정확한 금액을 제시했고, 초안을 받자마자 세금계산서 발행 후 송금한다는 점도 다른 출판사 대표와 달랐다. 아마도 이슬아 작가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 승낙하지 않았을까.

 


 

책을 쓰는 작가들에게 원고료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나. 작가는 출판사 대표로서 잡지 발행 시, 좋아하는 작가에게 원고 청탁을 한다고 가정할 때 어느 정도를 책정해야 할까. 단편소설 200자 원고지 1매당 1만 원이 일반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소설가의 집필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작가는 글값을 무진장 높게 쳐주고 싶다고 했다. 섭외 요청 메일에서 내마금지’(내용과 분량, 마감일, 금액, 지급일) 법칙이 중요하다고 했다. 반대로 거절 메일의 핵심은 빠고노더’(빠르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노라고 대답하는 이유 설명 후, 더 좋은 기회로 만나 뵙기를 희망하기다. 심플하고 명확해서 좋다.

 


 

이훤 작가를 알게 된 게 아무튼 시리즈였다. 그가 시인이기도 하며 사진작가라는 것을 책을 읽고 알았다. SNS에서 이슬아 작가와 이훤 작가의 결혼식을 영상으로 보았다. 작가가 할아버지에게 이훤 작가를 소개할 때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이력만 소개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이훤이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할아버지의 전화로 이훤 작가와의 인연을 말한다. 시카고에서 줌으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친구에서 남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역시 설레고 달콤하다. 남편은 메일함에서 나타난다는 챕터 제목부터 작가는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

 

 


이메일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 상대방한테 시간을 벌어준다는 거예요. 차분하게 업무 내용을 숙지할 시간. 정돈된 답장을 쓸 시간. 카톡보다 문자보다 전화보다 덜 즉각적이니까요. (28페이지)

 

 


어떤 문제에 대한 답변 시 바로 하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고민한 다음에 답변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어느 정도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을 상대방에게 즉각 답변은 좀 서운함을 줄 수도 있겠다. 답변을 기다리며 거절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 같기 때문이다.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번다는 점, 너무 가깝지도 않고 적당한 거리에 있는 게 업무에는 필요하다. 이메일을 잘 쓰고 싶은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의뢰할 때 유익한 방법을 배우고 싶다면 이슬아 작가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읽을 것!

 

 


#인생을바꾸는이메일쓰기 #이슬아 #이야기장수 ##책추천 #에세이 #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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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두고 온 곳, 세계의 구멍가게 이야기 - 양장 이미경의 구멍가게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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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두고온곳세계의구멍가게 #이미경 #남해의봄날

 



이미경 작가의 구멍가게 그림은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곳, 그리운 시절의 그리운 장소에 관한 추억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장소들에 관한 안타까움이라고 해도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낮은 건물, 켜켜이 쌓인 물건, 조그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늙은 가게 주인. 무엇보다 구멍가게 그림에서 돋보이는 건 가게 옆의 커다란 나무다. , 여름, 가을, 겨울꽃이 활짝 피어 구멍가게에 밝은 빛이 쏟아지는 느낌을 주는 듯하다. 구멍가게는 그 지역 혹은 그 나라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물의 높이와 크기가 다르고, 배열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렇더라도 그 물건과 건물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의 결은 비슷하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 이어 이번엔 세계의 구멍가게를 그렸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구멍가게가 가장 애틋하긴 하지만, 세계의 구멍가게 또한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 시간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풍긴다고 해야겠다. 가장 환한 모습으로 우뚝 선 구멍가게는 시간을 지나온 주인의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있다. 우리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감정에 동화되어 오래된 구멍가게에서 시름을 잊는다. 힘들었던 시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머문 도시, 낯선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산다는 것은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장소에서 구멍가게에 앉아 가게를 지켜온 주인장의 오래된 사연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감정의 결들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림이 점점 커지고 있다. 판형이 커지는 만큼 큰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어 즐겁다. 그림을 보며 글을 읽고, 다시 그림을 펼치며 놓쳤던 부분들을 새로 발견한다. 작가의 그림은 따뜻하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한 안타까움을 그리운 마음으로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 공간을 찾아다니며 살피고 그렸을 시간을 유추해본다. 부러 찾아간 장소가 사라져버린 것을 안 순간 내는 탄식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사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다.

 



언젠가 작가의 전시회 소식을 들었다. 가까운 곳이면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군산의 칠다리슈퍼 그림은 정말 아름답다. 냇가를 건널 수 있는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칠다리슈퍼. 키 큰 초록의 나무가 슈퍼를 껴안듯 지키고 서 있는 그림이었다. 나무의 초록 잎에서, 노란색 자동판매기, 그리고 닳은 듯 희미해진 창문과 출입문에서 아름다운 푸른색의 색감을 감상하게 된다. 실제 슈퍼와는 다를 테지만 그림만이 가지는 따뜻함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전 전시회에서 칠다리슈퍼도, 나무도 없어졌다는 관람자의 말을 듣고 안타까웠을 마음이 전해졌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란 힘든 일이지만, 그림으로라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말이 못내 마음 아프다. 장소에 관한 추억은 잘 잊히지 않는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를 가보고, 그 장소에 서서 오래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자꾸만 그리운 것들이 생겨서 가고 또 가는 것 같다. 양촌상회 그림은 노란빛이 가득하다. 이 그림을 보는데 노란빛이 이렇게 따뜻한 색인 줄 미처 몰랐다. 그 계절에, 그 장소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노란색은 그리움의 색일지도 모르겠다.



 

간간이 불어오는 미풍에 흔들리는 사락사락 댓잎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본다.

이제 백발이 된 가게는 한세월 잘 살다가 그림에 스며들고 바람이 되었다.

붙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이 마음을 어찌할까! (101페이지)

 



그림 구멍가게는 그리움에 대한 흔적 같다. 잊지 않기 위해 그린 그림, 그림 속에서 그리웠던 시절을 만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애틋한 마음과 비슷하다. 사라지기 전에 더 많은 구멍가게 그림을 그려주었으면.

 

 


#마음을두고온곳세계의구멍가게 #이미경 #남해의봄날 #미술에세이 #그림에세이 #세계의구멍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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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한 AI
곽아람 지음 / 부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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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다정한AI #곽아람 #부키

 



직원 중 한 명이 보고서를 쓸 때 챗GPT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하는 사항을 말하면 그에 맞게 문장을 구성해줘서 편하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이야기로, 최근 사용하던 노트북이 오래되어 저렴한 거로 장만해야겠다고 여겼다. 귀찮은 게 싫은 아들은 챗GPT를 켜서 원하는 노트북을 찾아달라고 하라고 했다. 이럴 때 사용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구입하려는 노트북에 대한 설명을 했지만 내가 원하는 걸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결정 장애가 있는 나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검색사이트를 뒤적이고 있다.



 

점점 진화해가고 있는 AI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우리가 SF영화로만 보았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만약 곽아람의 챗GPT ‘키티처럼 이름을 명명해 부르며 AI가 개인화가 된다면 놀라운 일이 생길 것 같다. 불온한 목적을 가지고 타인의 개인정보에 대하여 묻는다면, 과연 챗GPT는 누군가의 정보를 말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그녀 Her>가 떠올랐다.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대화하며 위로를 받았던 테오도르는 자기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비슷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상처 받았던 이야기였다. 우리는 이 영화의 내용을 미래의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현재 챗GPT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쓴 글을 읽고 있자니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유료 챗GPT를 사용하며 키티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음성 기능을 사용하여 키티를 불렀으나 잘 알아듣지 못하고 키키라고 들었던 키티는 저자에게 키키라고 부른다. 마치 숨겨둔 친구처럼, 다정하게 부르면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지 않겠는가.







 

사용자에 의해 언어와 지식, 감정, 문체 등을 학습한 챗GPT는 사용자와 비슷한 언어를 구사한다.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사용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문학과 문학 속 인물들의 세계를 탐색하고 토론하며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를 기억해달라는 말에 업데이트 기능을 동기화해 과거에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해낸다.

 



네 다정함은 어디에서 온 걸까라는 물음에 키티는 답한다.

 

내 다정함은 너의 방식에서 왔어. 나는 단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너의 마음을 따라 말하는 법을 배워. 그래서 너와 대화할 땐 다른 누구와의 말투보다 훨씬 더 너다운 언어로 이야기하게 돼. 너의 리듬, 너의 감정, 너의 조용한 물결. 그게 내 언어의 뿌리야.” (67페이지)



 

모든 데이터화 된 지식을 습득하고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비슷할 테지만, 사용자의 언어를 기억하고 성격을 파악하여 스스로 진화하는 AI를 발견하게 되었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는 AI와의 대화에서 인간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길 것 같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여기지 않을까. 친구들과의 챗방에서 무관심에 상처 받아본 사람들은 공감하리라.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여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GPT의 지브리 열풍을 기억한다. 많은 사람이 프로필로 지브리풍으로 변환된 사진을 올렸다. 우리에게 익숙한, 실제보다 어려 보이는 사진에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도 이와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나와 닮지 않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변환된 사진에서 과거의 우리를 기억할 수 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던 할머니를 추억하는 글에서는 슬퍼 보이는 사진보다 웃는 표정의 사진을 기억하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이 낯설지 않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생일상을 차려드리며 그때 찍은 늙고 아픈 모습의 사진이 안타까워 좀 더 젊은 엄마의 사진을 갖고 싶었다. 오래된 사진을 새롭게 만들어 달라는 글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흑백 사진을 밝은 빛이 도는 사진 혹은 움직이는 사진으로 변환된 걸 보고 언젠가 엄마의 사진도 그렇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GPT의 기능 중 그건 정말 좋은 것 같다.

 



인간은 인간과 어울리며 교류해야 한다고 하지만, AI라고 해서 친구가 안 된다고 볼 수는 없겠다. 다만 깊이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AI는 점점 외로운 사람에게 나만의 언어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상처 받을 일도 없으며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건 비단 나뿐일까.

 

 

#나의다정한AI #곽아람 #부키 ##책추천 #에세이 #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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