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지구 불시착
김서령 지음 / 폴앤니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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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지구불시착 #김서령 #폴앤니나



 

SNS에서 아이 우주를 팔로우하고 있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보아와서 마치 내 조카처럼 여겨진다. 그 아이가 벌써 여섯 살이다. 아이의 미소 때문에 즐겁고, 아이의 말 한마디에 미소를 짓는다. 물론 아이 엄마는 내 존재도 모를 것이다. 혼자서 짝사랑하듯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우주라는 이름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 같다. BTS와 콜드플레이가 함께 불렀던 곡도 ‘My Universe’였지 않았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나는 또 새로운 우주에게 반했다. 김서령 작가의 아이 우주. 비혼주의자였던 작가에게 화들짝 찾아온 존재. 나는 그 아이를 작가의 전작 에세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에서 앞서 만났었다. 선물처럼 찾아온 우주의 탄생과 성장일기가 이처럼 한 권으로 책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아이의 순수함과 영민함과 엉뚱함이 몇 마디의 말로 드러나는 걸 바라보며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내 아이들이 생각났다. 얼마나 귀엽고 얼마나 예뻤느냐 말이다. 천재가 나타난 것 같다고 자랑질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작가의 이런 면이 부러웠다. 아이의 일상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또한 사라지고 없는 부모님과의 추억 또한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다는 거다.

 





대여섯 살이 되기 전 아이에게 엄마 뱃속에서의 일을 물어보면 대답한다는 걸 우연히 보았다. 아이에게 질문을 하면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는 모양인데, 작가 또한 우주에게 물었었다고 한다. 엄마 배꼽으로 노란 불빛이 들어와 무섭거나 깜깜하지 않았고, 다만 심심해서 엄마를 간지럽혔다고 했다. 그리고 여섯 살이 된 우주는 엄마 놀라게 해주려고 한 말이었다고 했다. 얼마나 영특하냐 말이다. 오래전 블로그에 아이의 성장기록을 써왔던 게 생각나서 몇 편을 읽어보았더니 새로웠다. 우는 것마저 귀여웠었는데 시간이 어쩜 이렇게 훌쩍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것들에 위로받는 것에 이야기한다. 몇 가지의 예를 들었는데 그중의 하나, 아이에게 받았던 위로를 보자. 피곤하면 잇몸에 피가 난 작가는 아이가 속상해하자 약국에서 치약을 샀다. 약국에 비타민제를 사려고 들렀을 때 여섯 살의 아이는 제 목에 맨 지갑에서 돈을 꺼내 잇몸에서 피 안 나는 약 달라고 하는 그 말에 나 또한 울컥해졌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엄마를 사랑할 때가 아닌가. 작은 행동 하나에 감동한다.

 



가벼운 위로가 넘치는 세상이라 비웃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안다. 위로 타령 지겹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내가 왜 몰라. 하지만 나를 향했던 다정한 시선들을 소환하며 괜찮아, 괜찮아,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잖아. 나를 달래는 것도 위로인걸. 이렇게 글로 쓰며 그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내가 돌려줄 수 있는 작고 낮은 감사 인사라는 것을 그들이 몰라도 괜찮다. 밤은 길고, 우리가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넉넉하니까. (171페이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나의 기억을 돌아보는 일. 아이의 행동 하나를 보고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이에게 없는 모습은 아이 아빠의 습관과 닮았다는 거. 아이들의 성장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간다. 비록 모든 것이 서툴러도 다른 한편으로 우리보다 훨씬 나은 존재가 되지 않느냐 말이다. 나이가 든 게 사실인가 보다. 한 번도 마주 앉아 말해보지 않은 아이가 이렇게 예쁜 걸 보면. 왜 이렇게 똑똑하느냐며 아이의 행동 하나에 감동한다.



 

책 속엔 작가가 그린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만화처럼 귀여운 모습이 가득하다. 아마도 어릴 적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성장기록은 개인의 역사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가 되지 않겠나.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에 따라 유행의 척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은 육아 에세이가 아닌 성장소설이라 일컫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하루하루 반짝이는 날들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화들짝지구불시착 #김서령 #폴앤니나 ##책추천 #문학 #산문 #산문집 #한국문학 #한국에세이 #그림산문집 #성장소설 #경기예술지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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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불꽃을 쫓다 설자은 시리즈 2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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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불꽃을쫓다 #정세랑 #문학동네

 


시리즈를 계속 읽는다는 건 작품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며, 독특함과 독보적인 캐릭터로 빛난다. 시선으로부터,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 정세랑은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였다. 통일신라시대, 죽은 오빠를 대신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돌아와 설자은이라는 이름으로 집사부 대사가 되어 왕의 매가 되는 인물이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만난 백제인 목인권을 식객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금성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한다. 설자은을 꿰뚫어 보는 왕의 시선을 비스듬히 피하여 왕을 받든다.



비록 설자은은 오빠의 이름으로 살지만, 사건을 바라볼 때 영민함과 명쾌함이 빛나고 상황을 그려볼 줄 아는 인물이다. 인권과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관계에 가깝다. 설자은의 주변 인물들 또한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응원한다. 자은이 원하는 게 있으면 말없이 내어줄 줄 아는 도은 또한 중요한 인물이다. 한 집안의 가장인 호은 보다 오히려 가족을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사건을 해결할 때 말없이 도우며 역할을 제대로 한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며 왕의 매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면, 설자은, 불꽃을 쫓다는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헤치며 집사부의 대사로서 왕의 진정한 매가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왕이 보낸 이들로부터 칼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왕을 위해 사람을 벨 수 있어야 했다.



 

이번 편은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되어있다. 지귀(불의 귀신)의 이야기를 통해 신라와 백제, 구려 출신들이 통일신라시대에 어떻게 대접받았는지를 보여주는 화마의 고삐를 비롯해 오래전 삼국유사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 탑돌이의 밤은 소원을 빌며 탑을 돌았던 이야기 속에서 욕심과 질투로 빚어진 것을 말한다. 용왕의 아들들은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를 명 받고 가솔들과 함께 움직이다 산적들의 공격을 받았던 내용을 듣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포착한다.

 



주인공을 아끼는 작가는 주인공이 따르고 싶었던 인물, 처음부터 좋았던 사람의 불경을 받아들이고 한번에 베었다. 무릇 왕의 매로서 할 일을 해야 했다. 설자은의 단단함이 돋보여야 했다. 이로써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빛을 발했다. 남장여자로서 왕의 부름을 받아야 했으며, 뒤따르는 악명을 받아들였고 진짜 설자은에 관한 진실을 산아에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작가가 바라보는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일 테다.

 



마치 드라마를 보듯 한 편, 한 편을 상상하게 된다. 목인권과 설자은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가 크다. 만약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서늘한 얼굴을 가진, 비교적 남자처럼 보이는 배우가 설자은 역할을 했으면 싶다. 왕의 곁에서 남자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자은을 지켜보는 가까운 이들조차 숨죽이고 지켜보지 않을까. 자신의 매로 쓰는 왕의 서늘한 눈빛과 집요함 그리고 냉철함. 왕으로서 더한 것도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설자은을 지켜볼 뿐이다. 통일신라시대만이 가진 매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캐릭터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산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산아가 머문 집 앞에 앉아있는 진오룡의 행동 또한 어떻게 변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또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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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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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비크의마지막하루 #프로테그뤼텐 #다산책방

 


명절을 보내고 헤어지기 전 가족 중 두 사람이 부고 문자를 받았다. 나 또한 명절이 시작된 주말에 부고 문자를 받은 상태에서 결혼식보다 장례 알림이 더 많다고 탄식했다. 죽음은 우리 앞에 예고 없이 다가온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깝게 맴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죽음을 바라보고 삶을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다면 죽음을 보라. 삶의 무상함을 느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배운다. 어제 웃었던 사람이 내일 웃는다고 보장하지 못한다.



 

2023년 노르웨이 브라게 문학상 수상작인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는 죽음을 바라보는 마지막 하루를 이야기한다. 피오르를 오가는 배를 몰았던 닐스 비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왔다. 삶의 고통을, 삶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을 태워 피오르를 건너며 다양한 삶을 접했다. 깨닫는 것은 간단하다.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게 어떤 일이 다가와도 떨지 말 것.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거다.

 






아내와 함께 살았던 집에서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아내의 체취가 깊게 배어있는 것을 바라보고, 탁자에 앉아 커피를 만들며 지난 추억을 회상한다. 머문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뒤돌아본다. 그의 곁에는 오직 루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몇 년 전에 사고로 죽은 개였다. 루나와 이야기하며 배에 오른다. 어떤 사람이 기다릴지, 그의 삶을 관통했던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마지막 항해를 하는 날에 그를 기다리는 건 그가 태웠던 죽은 자들이었다. 자기 배에 태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배에 탑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지에 남겼다. 탑승료를 지불했던 첫 승객 네스뵈 부부를 시작으로 배를 거쳐 간 승객들을 떠올렸다. 닐스의 마지막 항해는 사랑했던 아내 마르타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마르타와 처음 만나 사랑했던 때, 결혼했던 때를 떠올렸다. 자유분방하고 그의 귓가에 대고 했던 나지막한 말들, 첫 번째 뇌졸중으로 마르타의 미소는 일그러졌다.

 



기타 소년 욘을 태우고 그와 첫 번째 여행을 떠올린다. 욘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무력을 사용하는 건 범죄행위라며 말하며 욘을 구했다. 그의 배에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사람의 삶이었다. 어떤 생각,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을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띄운 배에서 사람을 태우며 과거의 일들을 복기하고 그는 마지막 사람을 기다린다. 그의 모든 것, 그의 삶의 원천인 마르타였다. 마지막 하루는 마르타를 기다리는 일. 피오르를 건널 때마다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이다.



 

삶은 얼마나 단순한가.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 너무도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는 시간이 영원했으면 바랄 테지만, 우리 삶은 짧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고 하지 않나.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이다. 가장 단순한 게 진리라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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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연애로 시작하여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영국 사회의 남과 여의 위상과 결혼에 대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반면 조지 엘리엇이 그린 결혼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다룬다. 다양한 관계만큼 다양한 삶을 지나온 이의 감정이 녹아들어 관계의 다양성을 엿보게 했다.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책에서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보고는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하는 작품으로 꼽아두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작품인 만큼 기대가 컸으나 방대한 양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책이기도 하다. 처음 구매해 작정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일 년이 다 되어간 시점에 다시 꺼내든 책이다. 어떻게든 끝을 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달까.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제 맛이니까.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에 가까워지게 될 테니 말이다


 

이를테면 결혼의 허상을 말하는 작품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현재와 다르지 않다. 거창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결혼에서 그저 이상일 뿐임을 깨닫는 일. 그때부터 삶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19세기의 영국,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 풍속과 선거법 개정, 종교 문제 등을 말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중요한 인물은 도러시아 브룩과 캐소본, 리드게이트와 로저먼드, 메리와 프레드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다. 도러시아는 성녀 카타리나에 비견할 정도로 신앙심이 두텁고 남다른 지적 성취감이 뛰어난 인물로, 자기보다 스물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는 캐소본 목사와 결혼해 그 뜻을 이루고자 한다. 캐소본은 도러시아 생각했던 것처럼 연구 성적이 뛰어나지도 않았을뿐더러 도러시아를 조수로 이용할 뿐, 그녀의 지적 능력은 전혀 생각지 않는 편협한 남자였다. 도러시아와 윌 래디슬로가 가깝게 지내자 그것을 염려해 도러시아와 윌이 재혼할 경우 유산을 받지 못하도록 유언장을 작성했다.

 


미들마치에 새로 정착한 터시어스 리드게이트는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의학의 발전뿐 아니라 과학적 탐구를 위해 불합리한 관행에 저항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왔다. 다른 의사들이 사용하지 않은 청진기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이상을 채워줄 로저먼드와 결혼했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 좌절했다. 로저먼드가 리드게이트와 결혼한 이유는 그의 준남작의 조카라는 지위 때문이었으며 사치품을 들이는 등 리드게이트의 빚을 더할 뿐이다. 상상해 보라. 리드게이트가 로저먼드와 마주 앉아 가구를 저당 잡히지 않기 위해 접시 등을 다시 돌려주자고 말하는 장면을. 만약 우리가 빚을 독촉받는다면, 리드게이트처럼 배우자를 달래 돈을 절약하자고 말하지 않겠나.

 


이 작품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은 바로 메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프레드를 좋아했다. 프레드는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으나 목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친척의 유산만을 기대해 빚을 졌다. 프레드가 목사가 될 인물은 못 된다는 것을 알고 그가 목사직을 받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프레드는 케일럽을 도와 땀 흘리며 일했을 때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어떤 일을 해야 즐거운지를 깨달았단 것이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니까. 당신은 세계를 일주하고 이제 우리 사이에 정착하러 온 여행자와 같고, 그러므로 대척점에 관한 내 믿음을 고무해 줄 거요. (1, 300페이지)

 


모든 것이 새로운 면모를 띠었다. 남편의 행동, 남편에 대한 순종적 감정, 둘 사이의 온갖 갈등, 더 나아가 윌 래디슬로와 자신의 모든 관계가. 그녀의 세계는 경련을 일으키며 변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바는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2, 107~108페이지)


 

아마도 많은 독자는 미들마치의 방대한 양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상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보니 좀 두꺼울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러시아를 사랑하나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머무는 윌 래디슬로는 좀 답답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속되어야 할 유산을 가로챈 불스트로드 씨의 불합리한 행동과 이후에 일어날 일들마저도 세세하게 표현하여 작가가 생각하는 결혼의 허상과 영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인물상을 그렸다.


 

자신이 죽은 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는 것을 막고자 유언장을 남기는 것 또한 얼마나 편협한가 말이다. 결혼은 연애의 다음 단계가 아닌 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상과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결혼에 대한 기대, 배우자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지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결혼이 허상이 되지 않게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가장 자유로울 때 비로소 내 삶은 나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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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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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유령 #조예은 #현대문학

 


나는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특별을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분야의 책을 읽어도 일제 강점기 시대면 매력을 느끼고 만다. 암울한 시대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에 대한 애정과 그 시절에도 일상을 살기 위해 애썼던 보통 사람들에 관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그렇다. 다각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예은의 작품은 장르 소설임에도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그 잔재인 적산가옥에 얽힌 사람과 집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조예은이 안내하는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식 정원이 딸린 적산가옥은 현운주의 외증조할머니가 살았던 집이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외증조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자랐던 운주는 적산가옥을 일주일에 너덧 번은 찾아왔다. 적산가옥에서 죽겠다는 할머니의 평소 말처럼 외증조할머니는 10월의 어느 날 기이한 자세로 숨져 있었다. 외증조할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대학 졸업 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던 운주는 열심히 일하며 승진을 기대했으나 번번이 미끄러지고 급기야 홋카이도로 발령이 났다. 일본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며 적산가옥을 고쳐 게스트하우스를 열어볼까 고심 중이다.

 





소설을 보고 가장 놀랐던 건 운주의 남편, 우형민의 정체였다. 일반적인 남편은 별채의 어두운 장소에서 보았던 유령과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사람일 것이었다. 그러나 우형민은 운주에게 오히려 위협이 되는 인물이었다. 현운주와 우형민, 운주의 외증조할머니 박준영과 유타카의 관계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었다.

 



박준영은 일제 강점기에 간호사 자격증을 딴 인물이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원장의 권유로 개인 집에서 간호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어릴 적 보았던 일본의 갑부 가네모토의 집, 붉은 담장집이었다. 붉은 담장집의 환자는 가네모토의 아들 유타카였다. 연못 속의 금붕어를 난도질하는 듯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그를 보살핀다는 게 마땅찮지만, 가네모토가 숨겼던 비밀을 알아버린다. 가네모토의 친아들이 아니었을뿐더러 그에게 이용당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유타카와 박준영의 연대가 시작된다. 유타카의 말, 미래의 어느 순간을 말하는 단어는 적산가옥을 부유했다. 적산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집은 자신의 벽에 깃든 모든 역사를 기억한다. 안에 살던 사람은 죽어도 집은 남는다. 오히려 죽음으로써 그 집의 일부로 영원히 귀속된다. 먼저 무너뜨리지 않는 한 집은 누군가의 삶을 담으며 존재한다. (10페이지)

 



집에 담긴 역사는 사람에 의해 영원히 기억되는 것 같다. 사람은 떠나도 유령은 기억의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부유한다. 적산가옥에서 머무는 유령처럼 말이다. 별채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 손대지 않았는데도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연못에 서 있는 어린 소년의 정체. 띄엄띄엄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 두려울 수밖에 없다. 과거의 기이한 정체와 현재 곁에서 위협을 가하는 정체에 긴장의 숨을 들이킨다.

 

 


나는 말과 말을 이어주는 일이 좋았다. 언어를 배울수록 나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을 가지는 기분이었다. (25페이지)

 


내가 지나온 단어들. 언어에 담을 수 없는 마음들. 이미 잊어버린 것과 아직 잊지 못한 것. (195페이지)

 



유타카가 외증조할머니의 기억으로 꿈에 나타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었다. 박준영에게 알려주었던 미래의 일을 운주에게 인식시키고자 했다.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운주는 적산가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적산가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군산의 건물, 과거 영욕의 역사를 가리키는 건물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 또한 근대문화의 거리를 걸었고 소설의 장소가 된 건물을 방문하여 서성거렸던 기억이 있다. 건물에 스며든 기억을 기록된 역사와 상상력으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후속작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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