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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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들판을걷다 #클레어키건 #다산책방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은 짧으면서도 강렬하다.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한다. 소설이란 작가의 경험과 문화, 역사가 드러나야 의미가 깊은 법이다. 상상력만으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다. 자라면서 느껴왔던 사회적 부조리, 가난, 차별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 우리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작품을 읽는 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일곱 편의 단편은 아일랜드의 한 시대를 엿보게 한다. 작별 선물에서 여자 주인공은 아버지의 암망아지를 팔아 비행기표를 마련해 미국으로 떠나는 딸이 주인공이다. 어머니는 딸을 아버지의 방으로 밀어 넣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가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으며 돈을 줄 듯 말 듯 딸과 작별을 고한다. 아들의 노동력을 무보수로 착취하기까지 하는 아버지였다. 딸은 가족들과 작별하는 시간을 그저 떠나야 하는 일과로 볼 뿐이다. 딸이 맞이할 도시는 모든 게 낯설지만, 희망에 차 있다. 그녀가 도착한 도시는 새로운 삶을 열어줄 새로운 문이다.

 


소설에서는 사제가 두 번 등장하는데 일반적인 사제와는 다르다. 푸른 들판을 걷다의 결혼식을 주재하는 사제는 한때 신부와 사사로이 만나는 관계였다. 사제와 결혼을 바랐던 신부는 그가 사제직을 내려놓지 않자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터였다. 그걸 바라보는 사제의 하루를 담은 내용은 어쩐지 쓸쓸하다. 들판을 홀로 걷는 사제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녀는 자기 인식이란 말의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대화의 목적은 스스로 이미 아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모든 대화에 보이지 않는 그릇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야기란 그 그릇에 괜찮은 말을 넣고 다른 말을 꺼내 가는 기술이었다. 사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면 더없이 따스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릇은 다시 텅 빈다. 그녀는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61페이지, 푸른 들판을 걷다중에서)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 디건이 나오는 산림 관리인의 딸을 보자. 결혼에 확신이 없었지만, 청혼을 거절하지 못한 마사는 결혼의 공허함을 느낀다. 은행에 집을 저당 잡힌 디건은 열심히 일해도 늘 돈이 모자라다. 외판원에게 장미 묘목을 사서 울타리 가득 심는 아내 마사를 질책할 뿐이다. 공허함을 달랠 방법은 떠나야 해결될 일이다. 디건과 마사, 이들을 가까워질 틈은 없는가. 모든 것이 불타는 장면은 공허함을 달래줄 그 무엇이다.


 

물가 가까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엮은 작품집에 실린 소설이다. 백만장자와 재혼한 어머니, 새아버지와 함께 생일을 지내려고 케임브리지를 떠나 텍사스 해변에 와있다. 리조트의 주인이기도 한 새아버지는 시니컬하다.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 비꼬는 말을 하는 새아버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케임브리지를 왜 벗어났을까 후회하던 남자는 수영을 하다가 하마터면 익사할 뻔했다. 절대 수영을 하지 않았던 할머니를 떠올리는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삶은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말하려 했을까.

 


굶주린 아이의 빵을 빼앗다시피 사서 자기의 배를 채우는 중사의 이야기 굴복은 인간의 비겁함을,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안하무인을 보는 것 같았다. 약혼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겠다는 편지를 받은 중사의 마음은 참사를 맞았던 걸 보상이라도 하려 했던 것일까.

 


발 씻은 물을 바깥에 버리지 않고 집안에 두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했던 설화가 첫 장에 나오는 퀴큰 나무 숲의 밤은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 사제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아이가 죽자 더 이상 아이 낳을 능력이 사라진 마거릿의 이야기다. 사제가 죽자 그의 집으로 와서 머문다. 옆집의 문을 두드리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아이를 다시 밸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부조리함을 인지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작별 선물에서 당신은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아버지의 망아지를 몰래 팔았다. 자기가 떠난 뒤에 망아지를 찾아갈 수 있게 조치를 확실히 했다. 그녀의 결정이 통쾌하다. 또한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 마거릿은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자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난다. 아일랜드에서 전해 내려오는 미신은 당연히 무시했다. 그렇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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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하나는거짓말 #김애란 #문학동네 


거짓말 게임을 시작해보자자기에 대하여 말할 때슬그머니 하나의 거짓말을 보태어 설명한다질문하고 대답하며 거짓말 찾기를 시작하여 상대방을 알아간다이런 소개법 괜찮겠다사람과의 관계를 편하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효과를 준다소설 속 거짓말은 이렇게 시작된다거짓말보다 말을 안 하는 쪽을 선택하는 편인데말을 꼭 해야 한다면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 대답할 수도 있겠다그 사람이 알고자 하는 답변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을 테니자연스럽게 거짓말이 그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김애란의 소설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기다린 만큼 애틋했다고등학교 2학년인 지우소리채운이 주인공으로 그림으로 이어진 이들의 관계는 빛을 발한다모르는 관계일 것 같은데가까운 곳에서 거리를 좁혀가는 관계를 형성한다지우와 채운소리는 힘겨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가까운 가족을 잃은 사람은 그 빈 자리를 더 느끼게 되는 법상실의 아픔을 견디며 혹시 내 잘못은 아닐까 침잠한다.


 

그림으로 소통하는 관계다지우가 올리는 <용식 일기>나 <내가 본 것>을 그림으로 그린다그림을 본 사람은 그림에 대하여 평하고 혹시 나를 가리키는 건 아닐까 고심한다우리는 빛을 찾아 헤매는 인간인지도 모른다어두운 구석나를 반겨줄 사람이 없는 듯한 세상에서 나를 비춰줄 빛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청소년들을 생각한다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용식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할 수 있고누군가를 불러야 했을 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법이다.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하나는 수면으로 드러내는 것이다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만큼 위로받는 것도 없다비록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해도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고시간이 지나면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다그때는 틀리다고 생각했지만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가족의 죽음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지우는 암에 걸린 엄마가 실족사가 아닌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 거라 여기고 상처받는다엄마가 없는 선호 아저씨의 집에서 살며 방학 동안 공사장에서 돈을 벌어 독립하고자 한다소리는 자기의 손에 닿는 생물체의 죽음을 감지할 수 있다생사를 알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아픈 엄마의 손을 잡아 확인했다채운은 교도소에 간 엄마를 위해 진실을 말하려 하고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소리는 그림으로 자신을 감추고자 하고지우는 만화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채운은 지우가 그린 만화를 보고 그게 자기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어 두렵다소리가 지우를 위해 지우의 반려 도마뱀을 돌봐주며 용식이 바라보는 지우의 이야기즉 용식 시점의 <용식 일기>를 그리는 장면은 감동적이다누군가를 위해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는 장면은 생각의 변화를 일깨운다.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 (235페이지)


 

지우와 소리채운이 각자에서 하나로 가까워지는 장면에서 우리는 삶의 다양성을 본다살아남은 사람은 주변 인물들과 함께 관계를 이어가며 살아가야 한다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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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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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아름다운정원 #심윤경 #한겨레출판

 

사랑스러운 동구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글의 아름다움을, 소설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좋은 소설이란 다시 읽어도 감동적이다. 이 책을 읽은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읽으며 동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공유하며 새로 읽는 것 같았다. 동구는 행복했을까?

 


다시 읽은 소설은 새로웠다. 내가 읽었다고 착각한 걸까, 라고 생각할 만큼. 할머니가 이렇게 엄마를 욕하고 무시하고 괴롭혔던가. 4대 독자라면서 손자한테 이 새끼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던가. 아버지는 또 얼마나 가부장적인 사람인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힘든 건 알겠는데 아내를 때리거나 해서는 안 되지 않나. 과거 우리 부모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건가, 소설의 내용을 어렴풋하게 기억할 뿐이었나.





 


1979년에서 1981년에 걸쳐 한 소년이 바라보는 세계를 담았다. 할머니를 비롯해 아버지, 어머니,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소년 동구의 시점에서 말한다. 동구는 계산은 잘하나 글을 또박또박 읽지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난독증이었다. 박영은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동구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다. 선생님에게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마음이 편해야 했다. 동구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동구가 속이 깊다는 걸 알고 동구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그런 선생님이 좋은 동구다. 훗날 선생님과 결혼하는 꿈을 꾸기까지 했다.

 


동구가 사는 동네는 인왕산이 내려다보이는 장소로 청와대가 가깝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나왔다시피 1980년대는 계엄령을 선포했던 해였다. 광주에 할머니를 뵈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박영은 선생님, 시국은 불안했다. 1980년대 광주 사태가 있던 때였다. 그건 대외적으로 드러난 사건이고, 동구의 가족에게도 비극적인 사고가 생겼다.


 

동구의 가족과 더불어 시대적 역사도 함께 흘러간다. 사고가 생기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남 탓만 하다가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구에게 영주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영주를 업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예쁨을 자랑했을 뿐 아니라 난독증이 있어 제대로 글을 읽지 못하는 동구에 비해 친구들 앞에서 글을 또박또박 읽는 영주를 바라보는 동구의 눈빛은 자랑스러움이었다. 불평불만 가득했던 할머니는 어땠나.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이 하나로 인해 가족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국을 강력하게 논하지 않으면서,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삶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열 살 소년 동구가 박영은 선생님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얼마나 귀여운가. 소주 두 잔을 마시고 취해 주사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박 선생님이나 주리 삼촌, 이태혁이 웃는 장면은 다시 읽어도 웃긴다. 아이에게 정치나 민주주의, 계엄령에 대해 말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곁에 사람이 없다는 것, 다시는 오지 못한다는 거로 안타까워할 뿐이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난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369페이지)

 


엄마를 살게 할 방법을 생각해낸 대로 동구는 행복했을까. 엄마랑 아버지도 행복했을까. 더 큰 아픔이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따로 또 같이 행복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립고도 애틋한 시간을 말해주는 소설이었다.

 


 

#나의아름다운정원 #심윤경 #한겨레출판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문학 #한국소설 #한겨레문학상 #한겨레문학상수상작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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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아무튼, 헌책 -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 아무튼 시리즈 65
오경철 지음 / 제철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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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헌책 #오경철 #제철소

 

어떤 헌책이든 그저 헌책일 뿐이라서 나는 그것을 사랑해마지않는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제일 먼저 정리한 게 책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책 중에서 한두 번쯤 들여다볼 책을 남겨 두었었다. 지금은 읽지 않은 책들과 출판사에서 증정 도서로 받았던 책 위주로 정리했다. 3~400권의 책이 바닥에 쌓였다. 절판된 도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작가의 책, 일 년에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을뿐더러 더 이상 신간을 읽지 않을 작가의 책들이었다. 헌책방에 팔려고 했으나 헌책방이 거의 사라지고 인터넷으로만 판매하는 상태여서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중고 서점에 몇 박스를 들고 갔고, 나머지는 폐지로 버렸다. 책이 좋아서, 절판된 책을 찾고자 전국의 헌책방을 수소문해 찾았으면서도 지금은 신간에 밀려 먼지만 쌓인 책들이 많았다. 정리했는데도 정리한 것 같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고 싶은 혹은 갖고 싶은 책을 찾을 때, 그게 절판본이라면 헌책방을 뒤져보았을 것이다. 애타게 찾으면서 누군가 갖고 있기를, 복간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분명 애서가다. 아무튼 시리즈를 간간이 읽으면서 하나의 주제로 된 산문을 읽는 게 좋았다. 헌책이라는 단어 하나에 구매하고 마는 나는 애서가인 게 분명하다.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오경철 작가의 에세이는 헌책에 대한 찬사이며 책들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책이다. 책을 소유하지 말자고 애써 다짐했지만, 다시금 그가 말하는 책들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었다. 읽어보고 싶다, 갖고 싶다, 생각하며 말이다. 책은 책을 부른다.

 


책을 버리고 온 날, 하필 TV프로그램에서 1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영화평론가가 나와 서점 같은 책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법, 책을 읽는 것과 소장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저자 오경철은 주로 헌책방에서 모습을 비춘다. 마치 산책하듯 헌책방을 어슬렁거리다가 좋은 책을 발견하여 구매한다. 그가 소장하는 책들은 아주 귀하다. ‘초판본반드시 소장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책외에는 어지간한 책은 집에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할 만하다.

 


책이 잘 팔리지 않자 출판사에서는 새로운 책을 출간하는 것 외에 기존의 도서를 특별판으로 구성해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나 또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판본별로 구매하기도 하는데 저자가 번역서는 어지간해서 사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읽힐 만한 책들은 끊임없이 다시, 새로 번역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헌책방은 기실 이러한 책들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찾는 장소다. 이러한 발견 자체에 책 수집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발견하는 순간 고스란히 생명력을 다시 얻는 책,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나만은 그 소중한 가치를 알기에 더없이 귀한 책, 내가 헌책방을 들락날락하는 까닭은 이러한 책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146페이지)

 


안목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는 눈에 따라 좋은 책을 발견하고 소장할 수 있다. 미술을 보는 눈처럼 책을 보는 눈도 아주 중요하다. 헌책방에 있는 책 중에서 좋은 책이어도 보는 눈이 없으면 헌책방의 그저 한 권의 책일 뿐이다. 좋은 그림을 판별하듯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도 필요한 법이다. ‘진귀한 고서를 알아보는 데에는 과거의 언어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하다.

 


나는 가끔 헌책방이야말로 책의 우주 같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곳은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이기도 하다고. (198페이지)


 

공감하며 또 배웠다. 책을 사랑하는 방법을, 책에 대한 안목을 배웠다. 하릴없이 헌책방을 거닐고 싶다고 생각했다. 혹시 아나, 좋은, 귀한 책을 발견할지. 책을 부르는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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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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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땅식료품점 #제임스맥브라이드 #미래지향

 

차별은 언제나 존재했다. 과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가가 생긴 때부터다. 미국의 예를 들자면, 피부색으로 구별했으며 유색인이라 하여 함께 버스 타는 것도 금지했던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백인과 구별하여 차별했다. 긴 역사상 존재해왔던 차별과 정의, 종교, 인권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과 경험의 역사로 인한 인종 차별과 종교를 소설로 풀어낸다. 어메이징 브루클린1960년대의 커즈하우스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었다면, 하늘과 땅 식료품점더 앞서간 1930년대의 이야기다. 인종 차별이 더 심했던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기에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초나와 치킨힐 주민들을 말하는 소설이다.

 


도시개발업자들에 의해 새로운 타운하우스를 계획 중이던 치킨힐의 오래된 우물에서 시체 한 구가 떠오르며 소설은 시작된다. 경찰은 이곳에 남은 유일한 유대인 노인 말라가를 살인 용의자로 점찍고 찾아가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기 전으로 돌아간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흑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식료품점이었다. 식료품점의 딸인 다리가 불편한 초나는 식료품점의 2층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초나의 남편 모셰는 유대인으로 극장을 운영한다. 백인들에게만 열었던 극장을 흑인들도 오게 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소설의 큰 축은 초나와 모셰다. 초나와 모셰를 돕는 네이트와 애디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진행되어 각자가 처한 상황에 삶의 다양성과 차별에 대처하는 법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흑인과 유대인, 백인이 서로를 대처하여 개인이 가진 것과 구별하기 위해 행동한다. 어떠한 일이 닥쳤을 때 가만히 앉아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정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의 차이다. 초나는 불의를 참지 못했다. 여성이라고 해서 주눅 들지 않았고, 배고픈 흑인들에게 말없이 먹을 것을 건네주는 사람이었다.


 

여기에 한 소년이 있다. 사고로 귀가 들리지 않은 아이, 부모가 없는 소년이었다. 네이트의 여동생의 아들 도도는 그를 시설로 보내려는 사람을 피해 초나의 보살핌을 받았다. 백인이자 KKK단원인 닥 로버츠에 의해 초나가 죽고 도도가 잡혀가자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도도를 구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편견과 차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가 다르고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하여 차별했던 과거의 역사는 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일지도 모르겠다. 방식만 달라졌을 뿐 인간의 마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미국의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은 현재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정작 우물에서 발견된 시체는 누구인가를 잠시 잊었다. 중요한 사건은 잊고 차별과 종교적 이해 부족에서 오는 갈등에 집중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누군가 죽었었다는 걸 기억했다. 누군가는 여러 사람에게 오래도록 기억하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죽어 마땅한 삶을 사는 걸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도도가 갇혀있던 펜허스트처럼 인권은 무시된 장소에 감금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악조건에서도 도도는 몽키팬츠를 만나 위안을 받고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게 맞다. 몸짓 언어로 서로 소통하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행동한다. 치킨힐에서 영웅과도 같았던 초나와 비슷하다. 차별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사람을 기리기 마련이지 않겠나.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미래다. 역사를 비추는 거울처럼 이야기는 재탄생되어 우리에게 배울 점을 준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 종교적 갈등을 넘어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나아야 하지 않겠나.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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