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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엘리너 파전 지음, 이도우 옮김 / 수박설탕 / 2023년 12월
평점 :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는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의 마음을 훔친다. 책으로 가득 찬 작은 책방에 앉아 있는 소녀를 상상해본다. 책먼지들이 흩날렸을 공간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을 소녀. 읽지 못할 책이 없으며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보물찾기와도 같았던 공간에 머물렀을 소녀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 작은 책방의 먼지 속에서 태어난 책이다. 동화를 읽고 자란 소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를 읽는다. 추억과 감동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한평생 머리카락만을 위해 살았던 여섯 공주 이야기 「일곱 번째 공주」는 행복은 여왕이 아니라 자유롭게 삶을 살 수 있을 때라는 것을 말한다. 머리카락이 가장 긴 공주가 여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유모들은 공주들의 머리카락을 감기고 빗겨주었다. 세계의 왕자가 찾아왔을 때 여섯 공주의 머리카락 길이는 똑같았다. 일곱 번째 공주만이 빨간 손수건을 풀어 헤쳤을 때 소년처럼 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레몬 빛깔 강아지」는 가난한 나무꾼이 공주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안데르센의 동화처럼 닮았으면서도 다른 색깔을 지녔다. 지혜와 빛나는 재치를 발한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숲에 나가 나무를 베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조 졸리에게 남은 거라고는 낡은 의자와 구리로 만든 어머니의 결혼반지뿐이었다. 새로운 삶을 위해 길을 떠난 조 졸리는 레몬 빛깔의 스패니얼 개를 구하고, 금빛 털을 가진 새끼 고양이를 구했다. 팔이 부러진 왕실 숲의 나무꾼을 보살핀다. 길 잃은 동물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줄 알았던 조 졸리는 꿈속의 예언대로 행동하여 공주의 사랑을 얻는다. 흔한 이야기이지만 어렸을 적 상상의 나래로 빠지는 듯 흐뭇하다.
견습생 신분임에도 실력이 뛰어난 작은 재봉사는 이 나라 최고의 재봉사였다. 여왕은 일흔 살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아 왕위를 계승할 자녀가 없었다. 이웃 나라 왕의 고모 역할을 했던 여왕이 나라를 통치할 젊은 왕의 결혼을 재촉했다. 결혼 생각이 없었던 왕은 열아홉반의 나이, 허리둘레 19인치반인 사람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며 가장무도회를 열어 결혼할 귀족 아가씨를 찾겠다고 했다. 밤을 새워가며 드레스를 만들었던 로타는 드레스를 입고 가 무도회에 참석할 귀족 아가씨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공작 따님의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던 방 밖에 시종이 기다리고 있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 추었다.
네, 그랬습니다. 아시다시피, 시종은 그냥 시종이니까요. 단지 젊은 왕은 조금도 결혼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자리에 시종을 보냈던 것입니다. 시종은 로타에게 첫눈에 반했고, 첫 번째 무도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정해졌습니다. 요거트 아가씨든 캐러멜 아가씨든 밀크젤리 아가씨든, 안타깝지만 전혀 기회에 없었던 거예요. (111페이지, 「작은 재봉사」중에서)
「작은 재봉사」는 「신데렐라」와 이야기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신데렐라」였다면 젊은 왕이 시종으로 가장하여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가씨를 찾았을 거다. 하지만 「작은 재봉사」에서 젊은 왕은 결혼이 싫었으며, 시종은 시종일 뿐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동화다.
「샌 페리 앤」은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어둡고 찌푸린 얼굴을 한 채 완두콩을 따는 캐시 굿맨은 늙은 바이닝 부인의 감시를 받는다. 소녀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다. 들판 연못가를 바라보는 두 여성 마을 의사의 아내 레인 부인과 학교 선생님 반스 양이 있다. 냄새가 지독할뿐더러 쓰레기로 가득 찬 연못을 청소하기로 한다. 레인 부인과 반스 양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연못의 잡동사니를 주워 올렸다. 밤이 깊어지자 진흙투성이 팔로 집으로 돌아갔다가 연못 한복판에 있던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샌 페리 앤 인형을 구해주지 않았다며 울고 있었다. 도자기 인형의 머리를 찾자 캐시 굿맨은 ‘샌 페이 앤’를 외쳤고, 레인 부인은 ‘셀레스틴’을 외쳤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 소녀, 아끼던 인형을 잃어버린 소녀는 찌푸린 표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베푼 친절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부지런한 나라의 젊은 왕의 대신들은 그에게 이웃 나라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청혼을 위해 간 북쪽, 남쪽, 동쪽 나라에서 청혼을 부디 거절해달라는 시를 읊는다. 울타리로 막힌 서쪽 숲은 덤불숲이 가로막고 있었다. 왕이 쓴 시를 소중하게 간직했던 청소부 셀리나의 손을 잡고 서쪽 숲에서 청혼의 시를 읊는다. 고아원에서 발견됐던 셀리나는 서쪽 숲의 공주였다.
서쪽 숲은 우리 마음속의 동화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열리지 않은 미지의 숲. 마음을 열었을 때만 보이는 숲이다. 혼자서는 안되며 누군가와 함께했을 때라야 비로소 열리는 숲이다. 진실한 마음과 자질을 갖추었기에 가로막힌 울타리를 영원히 떼어낼 수 있었다.
꿈을 간직한 소녀는 동화와 더불어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책방을 사랑하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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