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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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작가의 미완의 소설은 늘 안타깝다. 미완의 소설이기에 더욱 애절하다. 마지막까지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언어의 향연을 향하여 달려갈 수밖에 없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미발표 유작 마음의 심연을 읽는 일이 그랬다.

 


뤼도빅 크레송이 교통사고 후 2년 가까이 여러 요양원을 전전하다가 대저택 라 크레소나드로 돌아오며 소설이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 앙리 크레송은 아들이 안타깝고, 요양원에 있었던 뤼도빅의 모습을 보았던 마리로르는 그가 탐탁지 않다. 원래도 뤼도빅의 재산을 보고 결혼했던 터였다. 앙리 크레송은 뤼도빅이 정신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음을 알리기 위해 파티를 열기로 했다. 파티를 위해 불러온 사람이 마리로르의 어머니 파니 크롤리였다.


 


 

 

오랜 병원 생활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피폐하게 만든다. 뤼도빅이 입원했을 때 가족들 아무도 울지 않았을 때 유일하게 울었던 사람이 파니 크롤리였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죽은 남편을 잊지 못했던 파니가 뤼도빅을 만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시작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니는 마리로르가 뤼도빅과 잘 지내길 바랐다. 남편을 거부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이혼을 하든가 서로를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랐다. 하지만 파니는 뤼도빅이 이끄는 대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금지된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앙리 크레송의 두 번째 아내 상드라와 그녀의 동생 필립, 가족들이 있는 저택에서 둘은 눈짓을 교환하고 서로에게 다가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에게 들키는 법. 그 감정을 속일 수 없다.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놀라고 두려웠다. 누군가와 첫 포옹부터 그토록 내밀하고 자연스럽게 친밀해진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들은 두려움도 호기심도 부끄러움도 없는 또 다른 영역에서 서로를 발견했다. 그것은 운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194~195페이지)


 


 

 

어느 것 하나 결정되지 않은 결말 때문에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 더욱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들킬지도 모르는 금지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과 이후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는 것 또한 그저 우리의 상상에 그칠 뿐이다. 파티 당일에 소설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을 목표로 만들어진 소설이라 영화적 표현이 다분했으나 최대한 사강의 문체로 수정된 소설은 다른 그의 소설처럼 허무한 사랑을 하는 듯하다. 사강의 책 중 겨우 두 권을 읽은 사람으로서 사강의 문학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강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 다가갔다고 말하기도 다소 어렵다. 그럼에도 지극히 사강다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 없는 결혼은 얼마나 허무한지, 추한 모습을 보아버린 남편과 더이상 한 침대를 쓰기 어렵다는 거 조금은 이해해줘도 되지 않을까. 사랑 없는 결혼의 결말 아니던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우리 자신도 믿을 수 없다. 어느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는 게 마음이므로. 금지된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파국이 예상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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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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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을 접하니 더 고급스럽고 소장가치가 있다.
열린책들의 단점이 글의 행간이 좁아 읽기에 불편했었다. 그 점을 보완하여 행간을 넉넉하게 조정하였다니 기대해 볼만 하다. 소장만으로 감동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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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1-11-2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받았습니다.~
읽으려니 막막하지만 보기만해도 뿌듯하네요^^
 
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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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의 이야기는 국가가 가진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개인이 처한 다양한 감정과 문제는 곧 그 사회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힐더브란트 가족을 통해 우리는 가족 구성원의 고민과 결혼 제도에 관한 문제점들을 마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국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점 등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 중서부 교외의 한 마을에 부목사로 있는 러스 힐더브란트 가족 각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1970년대의 미국이 가진 문제점 중 가장 큰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빠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는 전쟁을 반대했다. 베트남 전쟁과 여성해방운동, 청소년과 마약 문제,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인종 차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책표지의 가족을 보라. 교회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가족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다. 그렇지만 빨간색 펜으로 X자가 크게 그려져 있다. 화목한 가족이 아니라는 것과 곧 붕괴하고 말 가족을 나타내는 것 같다.

 


러스 힐더브란트는 마을의 부목사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즐겁다. 화요일 봉사 모임에 오는 프랜시스 코트렐이 오는 게 더 좋았다. 오십이 넘은 그는 전형적인 속물에 가깝다. 십대의 청소년이 상담하러 오자 아내와의 성적인 불화를 말하여 미움을 사고, 청소년을 이끄는 릭 앰브로즈 전도사를 질투한다. 수련회를 갈 때 앰브로즈를 따르는 청소년들과 조를 바꾸며 그들 틈에 있고 싶다. 문제는 청소년 모임에 자기의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녀인 클렘과 베키, 페리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럽고 한편으로 역겹다.

 


러스와 그의 아내 매리언, 대학생인 클렘과 고등학생인 베키, 중학생인 페리가 주요 화자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데 각자가 느끼는 그들만의 고민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 매리언은 러스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쪄 러스가 자신을 멀리한다고 여겼다. 러스의 설교문을 직접 작성해주지만 러스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있다.


 


 

 

매리언의 문제는 러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거다. 매리언의 상담가 소피는 그녀에게 독립된 여성으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즉 여성해방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거부하지만 어느새 자기 의지대로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가 사랑이라고 여겼던 사람도 결혼이 가진 큰 장점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닥쳐오지 않은 일이 두렵지 않았고, 페리를 보고서 그 결과를 처리하는 일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두 발은 밑바닥을 찾았고, 그 아래에는 신이 있었으니까. 결말에 이른 그녀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773페이지)


 


  

 

이 가족은 신과 연결되어 있다. 목사 가족이라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이토록 신을 가까이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베키와 매리언이 신을 느끼는 것, 비록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의 가족에게 남아 있음을 아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의 잘못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나도 쉽다. 러스가 매리언을 탓하는 것도, 스스로의 잘못과 질투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그런 까닭인 것 같다. 매리언을 보면서 느낀 것은 소피가 부르짖었던 것처럼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동을 하여야 비로소 화해나 소통이 된다는 거다. 러스나 매리언을 비롯해 클렘이나 베키, 페리는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서 있다. 어느 한쪽으로 선택했을 때 따라오는 결과물은 만만치 않다. 가로막힌 길 끝에서야 되돌아올 수 있는 법이다. 힐더브란트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 끝에 가서야 비로소 그들이 가진 소중한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화합, 더 세부적으로 결혼 제도가 가진 문제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해결하기 어렵고 소통은 더 어렵다는 거. 그나마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이 가족은 붕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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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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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한 제2차 국민지원금을 신청할 때다. 건강보험료를 참고로 그 대상을 선별하며 국민의 약 90%가 대상이 된 거로 알고 있다. 그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당연히 고소득자로만 여겼었다. 하지만 제외자 중 서울, 경기에 거주하고 있으나 주소지가 어느 섬일 경우,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자들도 신청이 되지 않는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했다. 주소지가 아닐 경우 휴대폰 어플로 신청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인원이 상당하다고 하던데, 사각지대에 머무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러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잊었다.

 


언젠가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노상에서 리어카로 장사하는 사람들을 일제 정비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올림픽을 앞두고서였는지, 월드컵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또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부지기수를 일어날 것이다.


 


 

 

서울과는 거리가 먼 광역시에서 살고 있는 나는 처음 서울을 갔을 때 놀란 게 지하철의 노숙자들이었다. 나를 해코지할까 봐 무서워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애환이나 고통을 잘 모를 것이다. 그저 어떤 사정으로 노숙인이 되어 생활할 거라는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도쿄의 우에노역 근처 우에노온시공원에서 노숙하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1933년생으로 부모와 일곱 형제자매 틈에서 맏이로 돈을 벌기 위해 도쿄로 상경했다. 공원에서 노숙자들은 다양한 사연들을 안고 있다. 공원을 지나는 사람들은 노숙자들과 상관없는 일상의 언어들로 말한다. 그들의 대화에서 아이들이 어릴 적을 떠올린다. 무얼 해달라고 하지 않았던 아들이 유일하게 타고 싶었던 헬리콥터를 돈이 없어 태워주지 못했던 것들을.

 


그의 아들은 천황 폐하의 친왕이 태어났을 때 태어났다. 일본의 경사여서 그의 아들 이름 또한 친왕의 이름을 따 지었다. 황실 사람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러 오게 되면 특별 청소라는 명목으로 강제 퇴거가 이루어졌다. 강제 퇴거 결정을 이삼일 전, 혹은 일주일 전에 알려주어 노숙인들은 갈 곳을 잃었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환경 정비라는 명목하에 노숙자들을 정리하는 것을 차별과 배제의 차원으로 보았다.


 

재일한국인인 저자는 이러한 강제 퇴거를 오랜 시간 취재하였고, 그 취재를 바탕으로 차별 대상인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을 썼다. 작품 말미에, 영문판에 수록된 작가의 말은 상당히 길다. 2019년 대형 태풍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큰 피해를 입었다. 도쿄의 다이토구에 마련된 대피소에 우에노역 주변에 노숙하는 남성이 입소를 거부당했다. 다이토구 주민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가 재일한국인으로 받은 차별과 배제에 대하여도 말한다.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의 차별은 예전에 접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다.


 

가즈가 살아온 이야기 또한 낯익다. 그는 열 명 가까이 되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체육시설을 짓기 위해 홀로 도쿄로 올라온 주인공이지만 아들의 죽음으로 희망을 잃었다.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고향에서 살아가지만,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다시 절망에 빠진다. 스물한 살인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가 더이상 손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간단한 짐을 챙겨 집을 나왔다.


 


 

 

인생이란 첫 페이지를 넘기면 다음 페이지가 나오고, 그렇게 차례로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는 한 권의 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책 속의 이야기하고는 전혀 달랐다. 글자들이 늘어서 있고 쪽수가 매겨져 있어도 일관된 줄거리가 없다. 끝이 있는데도 끝나지 않는다. (10페이지)


 

살아갈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선택한 노숙인의 삶. 다양한 사연들로 찾아온 그들은 자기의 죽음이 가족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저 가족과는 상관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다가오는 전철에 뛰어든 것처럼. 누군가의 삶은 이토록 부질없는가.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만 느끼는 감정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 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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