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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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말하는 듯한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우리 주변 인물과 마주 앉아 있는 듯하다. 상실을 겪은 이에게 안부를 묻고 가만가만히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별다른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말없이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옆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서 제 갈 길을 가도 다음에 만나면 또 의지가 된다.

 


이주란의 소설이 그렇다. 어느 날의 나에서도 느낀 바지만, 이번 소설에서도 그걸 느꼈다. 소설집이되 마치 연작처럼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느낌의 소설이다. 어머니를 잃고, 남편을 잃고, 직장을 잃은 상실감에서 그저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 사실은 힘들다. 무슨 말인가를 건네야 할 거 같고, 위로의 말이랍시고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주란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묻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겠지, 하고 기다려줄 줄 안다. 문득 그런 마음이 부러웠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부족한 것도 같다.




 


잘 도착했나요?

.

별일은 없고요?

기차 타고 조금 오는데 별일은요.

아무튼 잘 가셨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저도요. (46~47페이지, 별일은 없고요?중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서울에서 만나 문자를 나눈 관계. 안부를 묻는 그 한마디가 정겹다. ‘별일은 없고요?’라는 문장에서 많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염려와 안타까움, 혹은 무관심을 빙자한 관심 같은 것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로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된 수현은 직장 동료의 집에서 머물다가 고향도 아닌 곳의 원룸에서 살고 있는 엄마에게 신세를 졌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무심한 질문과 더 이상 묻지 않는 엄마 때문에 그곳에서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일손을 돕고, 엄마 회사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상이 편해 보였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잊고 싶은 것을 잊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며칠을 함께 지내기만 했을 뿐, 가족이 아닌 사람과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집에서 애도의 기간을 보내는 주인공과 함께 머무는 아주머니가 있다. 함께 동네를 거닐고 캔맥주를 마실 수 있는 관계. 때로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처럼 가까운 장소에서 함께 돕고 함께 음식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더불어 사는 인간의 삶을 보는 듯하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옆집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경험했기에 알 수 있는 감정들일 것이다.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문장이 와닿는다.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끔은 무섭게, 그래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나요? 저 역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고 상대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 느껴질 땐 조심스레 질문을 더 해보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듣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실패했습니다. (184페이지, 이 세상 사람중에서)




 


남편을 잃고 집안에 갇힌 것처럼 지낸 주인공에게 첫사랑인 남자의 이메일은 집 밖으로 나가게 한다. 국숫집과 추억 때문에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이에게 때로는 타인의 조용한 침범이 힘을 줄 때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말없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이다.


 

어른에서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힘들 때는 속도를 늦추고 멈출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며 밀려드는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이렇게 또 세상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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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니타 프로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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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메이드와 마주했을 때 얼굴을 기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는 하지만 얼굴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일 년에 몇 달, 장기간 투숙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호텔을 사용하는 손님보다 메이드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내용이라 궁금했다. 무엇보다 소통 장애가 있는 주인공의 활약과 성장을 기대했다.

 

몰리는 호텔 메이드로서 자부심이 강하다. 청소용품이 들어있는 카트. 사물함 문에 걸려 있는 비닐 커버를 씌운 메이드 유니폼을 사랑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호텔의 일부가 되어 아침이면 출근을 한다. 다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리젠시 그랜드 호텔의 오랜 단골인 찰스 블랙 씨와 지젤 블랙 부인이 머무는 스위트룸에서 블랙 씨의 주검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참고인으로 경찰서에 갔다가 어느 순간 용의자가 되며 몰리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소통에 문제가 있는 몰리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데이트 신청을 받고 싶은 로드니나 예의를 다하는 후안 마누엘을 친구라 믿고 도움을 주었으나, 몰리를 이용해 무언가를 취하려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소통의 중심에 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몰리는 혼자가 되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는 프레스턴 씨의 말을 기억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종종 의외의 상황을 만나고 의외의 사람을 만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으로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고통은 병처럼 전염된다. 맨 처음에 그걸 견디는 사람에게서 그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번진다. 진실을 말하는 것만이 늘 최상의 해결책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이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진실을 막기 위해 진실을 희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조차도 그걸 본능적으로 안다. (222페이지)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페이지를 다시 들춰 읽어보니 문장에서 숨은 장치를 이제야 발견하게 된다. 몰리가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는다. 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힘든 일을 겪어 봐야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몰리를 감정이 없는 사람 취급하던 이들의 마음도 변하지 않을까. 소설일 뿐이지만, 삶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장애가 있다고 하여 편견과 차별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하지 않았던 것. 자신만의 방법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했던 거다.


 

마지막 반전은 놀랍다. 몰리가 지키고자 했던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숨을 쉴 수 없다. 따뜻하고도 짜릿함을 주는 소설이다. 아울러 플로렌스 퓨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 확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겠다. 소설에서 느꼈던 것과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 것이다. 기대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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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않는 꿈도 괜찮아 - 내적 성장을 위한 지친 마음 다스리기
김선현 지음 / 베가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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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것은 나를 위로하는 일. 글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데, 그림 관련 책은 글이 없어도 수록된 그림만으로도 좋다. 글 보다 오히려 그림이 주는 위로가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동안 보았던 미술 서적은 오래전의 그림 위주였다. 반면 이번 책은 최근에 그린 그림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그 즐거움이 컸다. 김선우, 콰야, 데이비드 호크니, 에드워드 호퍼, 아담 핸들러 등 수록된 그림만 해도 73점이 된다.

 





최근 MBTI로 자신의 성격을 나타내는 추세다. MBTI로 분류하여 그에 맞는 그림을 소개했는데, 자신의 유형에 맞는 그림과 자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그림을 소개했다. MBTI 성향을 그림으로 재 해석한 국내의 유일무이한 책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크다

 

나의 MBTI는 테스트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하는데, 첫 번째가 ISFJ이며 두 번째가 INTJ. 혈액형이나 다른 심리 테스트와 다를 바 없는 것 같긴 하다. 정확하게 맞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프롤로그와 목차를 읽고는 당연하다는 듯 MBTI로 알아보는 나만의 그림을 먼저 찾았다. 평소의 나는 글의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편인데 말이다. 내 성향에 맞는 그림에 관심을 두고 바라보았다. 성격 유형을 설명하는 부분보다 그림이 와닿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아서 해커, <그림에 빠지다>

 

 

큰 사고를 겪었을 때 잘 극복하는 듯해 보이는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애써 슬픔의 감정을 참으려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표출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게 된다. 감정의 표현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나의 감정을 제대로 알 수 있어야 컨트롤 할 수 있는 법이다. 초록색과 파랑이 많이 사용된 김선우 작가의 그림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파랑과 초록이 주는 화려한 색채만큼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방법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이겨내는 방법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치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그림도 있다. 사춘기를 호되게 보내는 중학생을 비롯해 고등학생, 불투명한 미래를 그려야 하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그림 치료법을 권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글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오래전에 내가 느껴왔던 치료 방법이다.

 

 



 

묘지에 앉은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겪는 아픔이지요.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그리워하되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 돼요. Life goes on. 삶은, 그렇게 계속되니까요. (138페이지)

 

미술 치료계의 최고 권위자가 권하는 치료법이니 확신을 가져도 좋겠다. 그림의 힘과 더불어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자신의 MBTI에 맞는 그림을 보고 비교해보는 즐거움이 크다.

 

MZ세대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과 그들을 위해 짧은 설명과 그림 수록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페이지를 펼쳐도 그림에 빠져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를 알기 위해 MBTI 테스트를 하듯, 나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책을 펼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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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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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태어나 걷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하듯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의 단어와 그 뜻을 알아가는 시간, 문학 작품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일.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까 한다.

 


초급 한국어가 아직 등단하지 못한 문지혁이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내용이었다면, 중급 한국어는 이후의 이야기다. 책을 두 권 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등단하지 못했으며 작가라고 말하지 못한다. 글쓰기에 관한 고민을 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비정규직 강사로 나온다. 작가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듯 자전적인 소설이다. 작가의 경험과 상황 그대로를 가져오면서도 다른 에피소드를 입혀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게 글쓰기, 즉 소설이 된다.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고, 각자의 작품을 써 토론하며 작품집을 만드는 게 문지혁이 맡은 커리큘럼이었다. 미국에서는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쳤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글쓰기를 가르쳐야 했다. 글쓰기 강의와 함께 아내 은혜, 아이 은채의 이야기가 있어 내용은 더 풍부해진다. 은혜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비대면 수업 시, 갑자기 들어온 아이 때문에 곤란했을 때 수업 내내 화면을 꺼놓고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아이에게 인사를 했던 것처럼 아이가 주는 감정은 남다르다. 모르는 사람도 다정하게 만드는 역할을 아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지만, 아직 작가라고 말하기에는 어색한 문지혁의 글쓰기에 관한 고민은 여전했다. 그와 달리 말을 배우는 은채의 에피소드는 여전히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맞춤법이 틀린 아이는 그와 상관없이 글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수업을 배우는 이들도 은채와 다르지 않다.

 


그가 글쓰기 수업에서 사용한 문학 작품을 살펴보자. ‘고통챕터에 사용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전에 읽었음에도 느낌이 달랐다.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아이의 생일에 맞춰 둔 케이크와 죽음, 항의하는 빵집 가게 주인이 건네준 빵이 의미하는 것들. 고통과 비극에 맞서 싸우는 게 다름 아닌 롤빵의 위로였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실패하는 이유는 자꾸만 멋지고 근사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플롯을 짜고, 비유를 고민하고, 문장을 다듬고 …… 이런 게 다가 아니에요 좋은 글은 거기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좋은 글은 뭐예요? 내가 잘 아는 글입니다. 나를 잘 드러내는 글입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글이에요. 그러러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 내 주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곧 텍스트예요. (154페이지)

 


수업 과정에서 사용하는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그에 관한 통찰이 묻어난다. 작가의 경험은 종종 소설의 토대가 된다.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자전적 소설을 읽을 때면 작가와 가까워지는 것 같다.

 




작가가 글쓰기 수업에 사용하는 작품 리스트를 살펴본다. 셰익스피어, 제임스 조이스, 체호프, 카프카, 오코너, 카버, 오스터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어머니를 잃고 2년을 써 내려간 메모를 모은 책이다. 바르트가 제과점에 빵을 사러 갔다가 어머니가 말했던 단어를 듣고는 집으로 돌아와 혼자 운다. 5년 전 엄마를 잃은 나는 엄마의 부재가 실감 나지 않았다. 불시에 찾아온 감정에 통곡했던 적이 있었다. 얼마 전에 엄마를 잃은 남편 또한 그러지 않을까. 순간순간 찾아온 감정에 혼자서 슬퍼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의 글쓰기도 이와 같아야 할지 모릅니다. 귀담아듣고, 오랫동안 바라보고, 새롭게 발견하는 것. 글쓰기란 그런 일이고 노력이고 태도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몰랐던 곳, 새로운 지점, 깊은 통찰에 이르게 됩니다. 바르트가 자신의 슬픔을 발견한 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에 자신의 슬픔이 놓여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175~176페이지)

 


일상의 다르고 깊은 시선이 새로운 글쓰기의 태도라고 말한다. 작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작가의 깊은 시선과 통찰이 글쓰기로 이어져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여전히 글쓰기에 관한 고민이 보였고, 삶의 기쁨과 원동력이 되는 소중한 존재와 문학적인 성찰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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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노자 - 오십부터는 인생관이 달라져야 한다
박영규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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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모상을 치르고 생각이 많아졌다. 인간의 삶이 영원할 것 같지만 아주 짧다는 사실과 그동안의 삶을 반추해보았다. 내가 잘못했던 일이 먼저 떠올랐고, 내게 주신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한편으로 인생이 이렇게 짧고 허무한데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아웅다웅하지 않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최소한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깨달음을 얻었다

 


나이 오십은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소위 백세 시대의 딱 중간이다. 덜도 더도 아닌. 그 나이에서 우리는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의 삶을 생각해야 하는 때다. 그때는 옳다고 여겼으나 지금은 아닌 것들이 많다. 떠올려보면 후회가 많은데, 지금도 똑같이 행동한다면 문제일 터다. 마음을 다잡고 인생의 후반기를 생각하는 게 좋은 때다.




 


오십이 넘은 나이, ‘인생 전반전에 대한 반성문이자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나에게 바치는 나만의 도덕경이라고 저자는 밝혔다. 따라서 인생의 전반전을 살아온 우리에게 제시하는 삶의 지침서라고 봐도 좋겠다. 멈춤과 비움에서 오는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오십은 삶에서 꽤 의미 있는 나이이긴 한가 보다. ‘오십에 읽는시리즈의 동양철학서가 꽤 나온 걸로 보면 말이다. 내 경우는 전부터 도덕경을 읽고 싶었던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꽤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그리고 읽어야 할 동양철학서로 인식될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밝힌 도덕경의 중요한 골자는 멈춤과 비움 그리고 통찰이다.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운 한신과 장량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토사구팽이 권력의 속성임을 안 장량은 지방으로 내려가 민생을 살피는 데 주력했고, 한신은 본인이 황제가 되려고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멈춤의 지혜를 알지 못했던 결과다. 저자 또한 삶의 속도를 늦추고 멈추는 습관을 들였더니 다른 세상이 보였다고 말했다.

 


산책을 하며 내 길을 걷고, 발견하고, 세상과 연결되고 소통한다. 산책이 없으면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며 내가 좋아하는 일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산책을 할 동안 나는 모든 걸 버린다. 과거의 나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버린다. 그럼으로써 나는 모든 걸 얻는다. 비워진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들이 채워지고 비워진 마음속에 새로운 영감들이 채워진다. (215페이지)

 


산책을 하며 마음을 비우고, 비운 만큼 채워진 순간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 점심 후 근처 공원을 이삼십 분 걷는다. 초록 잎들이 올라온 나무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시름을 잊는 듯하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비우는 일을 반복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대변인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과격한 논평으로 말빚을 졌던 일화를 밝히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우고 싶다고 말한다.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는 게 말로 지은 업이며, 말이나 글로 남긴 자취는 지울 수 없다는 거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언을 하게 된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경청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어머니들이 먼저 가셨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먼저 가시고 아버지들만 남았다.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지만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새삼 느끼고 있다. 아울러 부모님들을 보며 우리의 미래를 예상한다. 거울처럼 비추는 부모님들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자연 속에 한낱 스쳐 지나갈 뿐이면서 애면글면하며 살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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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4-23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한 정신의학과 의사가 쓴 책에서 가끔 환자가 책을 권해달라고 하면 노자의 도덕경을 권한다고 했더군요. 그래서 저도 마침 이 고전에 관심이 가던 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