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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평점 :
오랜 시간 다문화 청소년과 탈북 이주민, 결혼 이주 여성을 돕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해 온 저자의 사물과 기억에 얽힌 사람에 대해 말하는 글이다. 소박한 일상에서 우리는 사물을 보고 사람을 떠올리는 삶을 살아간다. 아픈 남편, 딸 둘과 함께 한국과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가다.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과 영국 생활하며 느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 이웃들의 따스함 때문에 견딜 수 있는 이야기들은 퍽 다정하다.
우리나라의 산모는 미역국을 먹는다. 이 습관은 외국에 가서도 변하지 않는지 아이를 낳을 때 미역국을 끓여 밥을 말아서 병원에 갔다고 한다. 미역국에 불은 밥이 맛이 있을 리 없지만, 찬 미역국을 먹는다는 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이후 마른 미역을 담아 보낸 소포를 떠올리고 엄마의 마음(혹은 돌봄)을 이해한다. 결국 음식은 위로의 한 형태다.
저자의 남편 토니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된 팔찌를 손목에 끼고 다닌다. 팔찌에는 ‘저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라는 문구와 연락처가 적혀있다. 파킨슨병 환자는 떨림 증상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 팔찌를 보여주며 느려도 양해해 달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해 보였다. 남편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는데 팔찌를 보며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병을 받아들이고, 속도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도, 나는 ‘혼자’와 ‘같이’라는 두 바퀴의 균형을 찾느라 종종 휘청댄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한다. 혼자여야 하는 일이 있고, 같이 하면 더 좋은 일이 있다. 그러니 어느 한쪽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자. 다 혼자 하겠다고 모질어지지도, 늘 같이 하겠다고 애쓰지도 말고, 그저 순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자.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의 뒤를 따라가지만, 내 뒷모습을 보이게 될 날도 올 거다. 짝이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등을 보이면서 긴 시간 함께 가는 자전거 여행 같다. (39페이지)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려 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이 다정해 보일 것 같다. 낯선 곳을 가도 덜 무서울 것이며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다. 저자가 남편과 ‘같이’한 일 중에 자전거 타기가 괜찮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긴 시간 함께 해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삶은 기차 여행이다. 대강의 방향을 정했지만, 그렇다고 경로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경유할 수 있다. 어쩌면 목적지가 바뀔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함께 타고 있는 이들이 많아 안심이다.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사람으로부터 위안받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 힘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241페이지)
코로나 팬데믹은 사회를 변화시켰다. 실제로 만나지 않고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때문에 의지가 된다. 저자의 휴대전화 속 이웃들도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만들어졌다. 갑자기 전기가 나갔을 때 도움을 청하자 전기를 고쳐줄 수는 없어도 음식이나 간식을 줄 수도 있다. 불확실한 시대에 서로를 살펴보는 커뮤니티 그룹이 있어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외국에서 김치를 나눠 먹는 풍경을 그려본다. 누군가 김치를 얻었다고 두 통이나 주었다. 그 김치를 학교에 가져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저자도 몇 포기 가져와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김치 나눔의 정경이 아름답다. 저자는 말한다. ‘김치는 나눔이고 위로고 그리움이고, 고마움이다.’라고.
사물을 보고 떠올리는 건 그리운 기억들이다. 따뜻한 음식을 보며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에 대해 편견에 갇히지 않는다. 소수의 일원으로 시작되었던 삶이 여러 사람과 깊숙이 연대하며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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