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너 자매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수의 시대여름, 이선 프롬을 읽으면서 이디스 워튼을 더 읽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초역인 버너 자매는 기대했던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그 시대에 실제로 존재했을 법했다. 뉴욕의 골목, 허름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자매. 자매가 만나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인물을 보며 작품이 쓰인 그 시대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수록된 작품은 중편 버너 자매, 단편 징구로마열이다.


 

버너 자매는 뉴욕의 허름한 거리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가난이 주는 무게는 큰 법이어서 자매의 생일 선물조차 쉽지 않다. 옷 수선과 바느질로 근근이 하루를 버티는 버너 자매는 소소하지만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앤 엘리나가 동생을 위해 생일 선물로 탁상시계를 선물한다. 에블리나는 탁상시계를 선물 받기 전, 시계를 보기 위해 광장의 시계탑까지 뛰어가야 했다. 째깍째깍 들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에 행복하기만 한 자매였다.

 




시계가 고장 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자매는 생김새가 다른 만큼 각자 맡은 일을 했다. 작은 가게에서 바느질로 물건을 판매하는 앤 엘리나와 물건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에블리나는 배달을 주로 하며 바깥의 일에 매진했다. 고장 난 시계를 고치러 시계방에 가면서 한 남자가 자매의 삶에 들어왔다. 일이 끝난 저녁 시간에 자매의 작은 방을 방문해 머물다 갔다. 남자의 등장은 평온했던 자매의 삶을 바꿔놓는다.

 


래미 씨의 방문 후, 자매는 서로를 시기했다. 원작 영화가 있는 매혹당한 사람들의 결말을 예상했다. 자매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운다. 결국 자매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도의 결말 말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렀다. 남자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자 단점을 알아채지 못했던 거다. 사랑에 빠진 에블리나의 열정 때문에 비교적 많은 사람을 상대한 앤 엘리자 또한 사람 보는 눈을 키우지 못했다. 그로 인한 비참한 결론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겨우 몇백 달러의 돈에 눈이 멀어 마음을 훔쳤다. 중독된 사람의 특성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디스 워튼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모습만을 비출 뿐이었다. 물론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앤 엘리자는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계속 걸을 것이므로. 평온한 삶에 파문을 던지는 건 의외로 아주 간단한 것 같다. 돈 이나 사람의 마음을 훔치면 된다. 그리고 달아나면 아웃이다.

 


버너 자매를 읽으며 바뀌어버린 자매의 삶에 안타까워하다가 징구로마열을 읽는데 두 작품은 풍자극에 가까워 웃음이 났다. 먼저 징구를 보자.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부인들이 모여 런치 클럽을 결성한다. ‘런치 클럽은 점심을 먹은 후 독서 토론을 하는 모임이다. 클럽이 유명해지자 유명인사를 초대하곤 했다. ‘저명한작가 오스릭 데인이 마을에 도착하던 날 모임에 초대했다. 오스릭 데인의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이 나뉘기 마련, 자기를 내세우려는 부인들의 속물적인 모습이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유명한 작가를 초빙하니 토론의 주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른 상태에서 질문이 이어지는데, 작가 또한 곤혹스러운지 불편해한다. 한 부인이 징구에 대하여 질문하며 토론을 시작하는데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장면은 블랙코미디를 엿보는 듯하다.

 


로마열은 여자의 우정이란 종이 한 장처럼 얇기만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여성들의 우정이 모두 이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순전히 단편 로마열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중년의 두 미국 여성이 딸들을 데리고 로마 여행 중이다. 처녀 때 친구였던 부인들은 각자의 삶에 바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다시 친구가 되었다. 겉으로는 친한 친구지만 상대방을 질투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보다 더 아름답다거나 부자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편지 한 장에 얽힌 이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표면적인 우정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각자가 속한 세계에서 계급의 상승을 꿈꾸지만, 희망 사항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드러나듯, 결혼을 일종의 계급 상승으로 보았던 것도 잘못이다. 동화적인 발상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여성의 지위와 내면세계에 좀 더 파고들었던 소설이었다. 앞으로도 이디스 워튼 읽기는 계속될 것 같다.

 

 

#버너자매 #이디스워튼 #을유문화사 ##책추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소설 #소설추천 #영미소설 #영미문학 #세계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징구 #로마열 #징구와다른이야기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