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여름 숲속의 집에서 이틀밤을 묵었다. 숲속이라 지네가 탁자 밑으로 기어나와 모두들 앉아 있던 자리에서 펄쩍 뛰어 지네 잡기에 돌입했지만, 한가지 드는 생각은 우리가 오염되지 않은 숲속에 있기 때문에 지네도 나오는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했다. 창문 틈에 있는 배수구멍을 화장지로 막고서야 안심했지만 밤잠은 설칠 수밖에 없었다. 숲은 벌레와 함께 공생해야 하는 곳이므로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의 하나이다.

 

여름 별장으로 옮겨가는 사무실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무실의 일원이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소설속 마리코나 유키코처럼 사무실의 여름에만 도와주는 일이어도 괜찮겠지. 도쿄와는 다른 여름 별장에서의 일정이 시작되는 하루는 어쩌면 꿈에 그리던 여름날의 휴가와도 같을지 모른다. 다만 직장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일도 해야하는 몇달을 보내야한다는 단점이 있을 테지만 말이다.

 

소설속 건축사무소의 신입사원 사카니시 군의 시선으로 표현되는 글은 그리움이었다. 함께 머물렀던 존경하는 선생님의 기억이 묻어나는 곳. 특별할 것 없는 그들의 여름별장에서의 일상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을거라는 사실이었다. 사카니시는 국립 현대도서관 입찰 경쟁을 위해 3년만에 새로 뽑은 신입사원이었다. 대학다닐때 무라이 건축사무소의 무라이 선생님이 건축했던 교회를 몇달에 걸쳐 실측했던 그의 열정에 선생님이 뽑아준 것이었다. 사키니시의 선생님에 대한, 무라이 건축사무소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왔다. 유명한 건축가가 속해있는 사무소에서 그에게 사사받는 것이란 굉장히 큰 감동일 것 같다. 더구나 그가 존경해온 건축가라면 더더욱 큰 영광이겠지.

 

소설은 여름 별장에 도착한 후부터 시작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나가는 무라이 선생님. 선생님이 일어날 때 서고에서 지내는 '나' 사카니시 또한 눈을 떴다가 아침을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국립 현대도서관 입찰 경쟁에 맞춰 건축 사무소의 직원들은 도서관을 설계하고, 혹시 낙찰될 때를 대비해 도서관의 의자 하나, 레스토랑의 위치 등 세세한 면까지 미리 만들어보는 일을 한다. 사카니시는 선생님의 요청으로 현대도서관의 스태킹 체어를 설게하는 일을 맡았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스태킹 체어와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스태킹 체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설계를 시작했다.  

 

목소리란 참 이상하다. 목적도 마음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키코의 온갖 것이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것 같고 그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사람을 잘 설득한다. 귀에 쉽게 들어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설명으로 다 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 남는다. 그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말의 의미 그 자체보다도 소리로서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62페이지) 

 

 

 

스물세 살의 청년인 사카니시는 무라이 선생님의 조카 마리코와 가깝게 지내며 여름을 나고 있었다. 여름 별장은 모두에게 추억의 장소였다. 무라이 선생님의 친구가 가깝게 머물고 있었고, 지인의 집을 돌봐주기도 하는 곳. 별장이 처음 생겨나던 시기의 이야기며, 벼락으로 인해 집이 무너졌지만 굳이 넓은 장소가 필요하지 않아 남은 곳만 이어 붙였던 여류 소설가의 별장까지 갖가지 사연들이 있던 곳이었다.

 

집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설계할 때 불이 잘 나지 않을 집,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집, 그런 것에 가능한 한 신경쓰지. 그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하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만일에 도쿄 전체가 전부 불타버리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 집만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202페이지)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건축물은 영원할까?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건축물도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추앙받지만 보수를 필요로 한다. 최대한 건축가가 만든 원형에 맞게 보수하지만 때로는 전쟁의 상황에서, 때로는 자연재해로 인해 유실되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건축물은 자신의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달에 걸쳐 실측하고 설계도를 그렸고,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건축 설계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자부심이 있을테니까.  

 

건축물에 대한 애정. 건축을 배우는 사람의 자세.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건축사의 마인드를 알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건축을 배우는 사람이거나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이 보면 더욱 좋을 소설이었다. 한적한 여름 별장의 풍경이 그려지고, 그 공간에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의 회상에서 우리는 가슴가득히 스며드는 감정들을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언맨 매뉴얼
대니얼 월리스 지음, 이규원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세련된 화보와 자세한 설명으로 된 영화의 가이드북을 본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영화속에서 보지 못한 세세한 면을 볼 수 있고, 아이언맨을 만들게 되는 과정을 스토리로 만날 수 있다. 사실 예고편만 보고 영화로는 보지 않았기에 아이언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언맨 매뉴얼』은 한눈에 알수 있다. 스타크의 주변 인물들. 그의 반대편에서 그를 죽이려는 적들. 무엇보다 놀란건 아이언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세세한 설계도서가 있다는 것이다. 스케치와 색을 입혀 점차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실제를 보는것 같달까.

 

책을 펴보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극비 파일이 들어 있다. 기밀 문서 한 장과 별도의 기자전용카드와 비밀 메모 몇 장이다. 이 모든 것들은 책과는 별도로 파일집 안에 별도의 메모로 되어 있어 실제 기밀 문서를 보는 느낌이다. 강한 살상력을 지닌 무기를 만드는게 토니 스타크의 일이었다.  

 

 

 

 

 

 

토니 스타크, 그는 누구인가. MIT 재학시절 인공지능 분야의 신기원을 개척하는가 하면 17세의 나이로 MIT를 수석 졸업했고, 4년 후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수장에 올랐다. 그가 머물고 있는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있는 저택. 절벽위에 세워진 집으로 그곳이 그의 터전이자 작업실이었다. 책에서는 그의 저택 설계도, 거주 공간의 사진, 작업실의 내부 등을 만날 수 있다.

 

 

 

 

각 페이지마다 풍부한 사진 자료 때문에라도 아이언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열광할 책이다. 나처럼 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이처럼 좋은 책을 소장할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다. 별도로 삽입된 메모 자료 때문에라도 일일이 풀을 바르고 메모지를 붙였을 수작업 때문에라도 소장가치가 큰 책이다.

 

아마 사진보다도 실제 책을 펼쳐보면 함성을 지를 만한 책이다. 책을 가진 자만이 느낄수 있는 희열과 흡족함이랄까. 고로 아이언맨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소장하시길. 아이언맨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보고서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밀을 가진 집, 미니어처하우스.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는 남색자에게 머리에 무거운 돌을 매달아 바다에 익사시키는 형벌이 있었다. 그 때에는 남색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반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느님에게 죄를 짓는 것, 그 죄를 짓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분노를 표현하는게 익사였던 것 같다. 지금에야 시대가 변해 남색자를 동성연애자라고 표현하고, 그들의 결혼도 허락하는 나라가 있게 되었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우리 또한 그들을 인정하면서도 만약 내 가족이 그렇다면 고통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제시 버튼의 소설은 이렇듯 동성연애자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선물로 받은 장난감 집 때문에 일어난 기이한 이야기를 나타냈다. 물론 소설속에서 17세기의 네덜란드 거리,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네덜란드의 문화와 역사를 간접적으로 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난감 집이 가진 비밀과 소설 속 주인공 넬라가 머무는 집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는데, 우리는 이러한 소설을 고딕소설이라 부른다.

 

페트로넬라라는 열여덟 살의 소녀는 결혼식을 올린 후 남편이 있는 저택으로 오게 된다. 이상하게 반겨주는 이 없고, 어둠 속에 숨어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을 뿐이었다. 이 광경에서 우리는 이 집이 가진 비밀의 한 부분을 접할 수 있다. 어떠한 비밀을 가진게 분명하다고. 새신부가 왔음에도 어둠속에서 숨어 지켜볼 뿐 쉽게 나타나지 않은 것만 봐도 그랬다. 그녀의 신랑이라는 요하네스 브란트의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넬라는 남편의 따스한 시선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던 저택에서 음울한 그림자를 엿볼 뿐이었다.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상인인 남편은 어느 날 밤 늦게야 돌아왔고 새신부인 그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그가 머무는 서재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기대에 부풀어 남편을 기다리던 넬라는 홀로 자신의 방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뒤 요하네스는 넬라에게 그들이 머물고 있는 집과 똑같은 캐비닛 상자를 선물로 받는다. 그가 넬라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실제에서는 줄 수 없는 무엇을 장난감 집으로 채우길 바랐던 것일까.  

 

넬라는 그저 남편의 사랑을 바랐던 것일 뿐인데. 남편은 그녀에게 왜 무심한 것일까. 커튼을 열고 미니어처를 열었다. 그리고 미니어처를 채울 것들을 찾았다. 스미트 명부에서 미니어처리스트를 찾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몇가지 물건을 주문하게 된다. 하지만 며칠뒤 도착한 물품은 자신이 주문한 물건 외에도 넬라와 남편 요하네스, 남편의 누이 마린, 집안의 하인인 오토와 코넬리아의 모습을 빼박은 미니어처가 들어있었다. 미니어처리스트는 왜 주문하지도 않는 물건을 배달한 것일까. 이유를 알수 없음에도 넬라는 저택의 사람들을 각자 자기방에 넣어 두었다.

 

 

 

 

넬라가 미니어처리스트를 찾아 갔을때 한 낯선 여자의 시선을 느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뚤어지게 바라본 여자.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듯한 여자의 시선을 느끼고는 늘 그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미니어처리스트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주문하지도 않는 물건을 보내는가 하면, 손가락 하나 크기인 실제 사람과 똑같은 인형속에는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집이 가진 방들. 방들의 문을 열어보면 드러날 비밀을 그 낯선 여인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말인가.

 

장난감 집은 장난감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미니어처하우스는 이 소설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었다. 실제 사람과 똑같이 생긴 미니어처에서는 앞날을 예감할수 있는 표식들이 숨겨져 있었다. 심지어 저택에 있는 개에게서도 빨간 십자 표시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앞으로 일어날 불행을 예감할 수 있는 표식이었다. 과연 넬라는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저택의 사람들에게 닥친 불행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넬라가 원하는대로 혹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결말이 이어질까.

 

이 소설은 번역자인 이진의 또다른 번역작품 『열세 번째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고딕 미스테리를 다룬 작품. 『열세 번째 이야기』의 소재가 책이었다면 『미니어처리스트』에서는 미니어처 하우스가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선물 받은 미니어처하우스와 낯선 여인, 미니어처 인형들의 비밀에서 꽤 매력을 느꼈다.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소설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매혹적인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퀴벌레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동안 동남아에서 아홉 살에서부터 열서너 살까지의 아동을 상대로 성관계를 했던 소아성애자들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이에 따라 동남아에서 어린 소녀들을 사고 파는 일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아마 이 소설은 그때쯤 쓰여진 소설이 아닐까 싶다.

 

불편한 진실이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한다는 사실은 몹시 불편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과거에도 있어왔다.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서도 나오지 않았는가. 사랑이라 일컬었지만 결국에는 소아성애자였음을 우리는 알수 있었다. 소아성애자들의 많은 이들이 과거에 강간을 당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더욱 불편한 진실이다. 자신이 받은 상처을 잊지 못하고 똑같이 되돌린다는 것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이며 고통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으로부터 탈피를 할수 있어야 자신을 이기는 방법일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요 네스뵈의 『바퀴벌레』는 해리 홀레 시리즈를 알린 『박쥐』의 다음 소설로 『레드브레스트』의 전편이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젊은 삼십대 중반의 해리 홀레를 만날 수 있다. 젊은 해리 임에도 이질감을 전혀 느낄수 없을 정도로 전혀 새로운 해리 홀레의 이야기이다. 역시나 술에 절어 살고 있는 해리에게 사건이 주어졌다. 방콕 대사가 사창가의 한 모텔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고 그가 가진 가방에는 소아성애를 나타내는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대사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이유로 그가 죽은걸까. 노르웨이 총리와 절친한 친구였던 아틀레 몰네스의 죽음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에 대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해리는 방콕으로 가야 했다. 그것도 혼자서 방콕의 경찰들과 함께 사건의 배후를 조사해야 했다.

 

해리의 장점은 어떤 사건을 맡게 되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코올의존증에 가까울 정도로 짐빔을 마셔대던 그가 사건이 시작되면 아무리 알코올의 유혹이 있어도 마시지 않는다는 것. 그런 그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사건에서만큼은 치밀하다. 어떻게보면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어 그를 선택했겠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사건에서만큼은 정확하게 수사한다는 것이다. 그는 형사로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그가 사건의 현장에 도착했을때도 물건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다. 아주 작은 물건이라도 살펴보고 단서가 되지 않을까 챙겨놓는 치밀함을 보인다. 사건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교묘히 틀지만 그는 마음속에서부터 어떤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다. 다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 요 네스뵈의 추리소설의 백미는 결말 부분의 반전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게 마련이고, 혹시 의심했던 사람이라도 우리가 잘못 생각했나 할 정도로 단서들을 숨겨두고 있다. 독자를 마음을 놓게 해놓고 본격적으로 진정한 사건 추리를 들려주게 된다. 아마 그렇기에 독자들은 요 네스뵈에 열광을 할 것이다.

 

요 네스뵈의 후기작들을 먼저 읽고 그의 초기작들을 읽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초기작에서의 젊은 해리는 다소 순수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운증후군인 여동생 쇠스에 대한 걱정, 홀로 사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엿볼 수도 있다. 쇠스를 성폭행했던 남자의 행동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남자를 잊으면 안된다. 그리고 후기작들에서 해리와 숙적인 볼레르의 등장도 어쩐지 반갑다. 해리로 인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해리 홀레 편이기에 볼레르의 등장에 날을 세울 수밖에 없다.

 

소아성애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사창가에 내몰았던 태국의 사정에 많이 안타까웠다. 지금도 여전히 소아성애자들은 태국 등을 방문할 것이고 그들의 요구에 맞춰 어린 소녀들은 사창가로 내몰릴 것이다. 그들은 아주 교묘하게, 비밀리에 움직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안타까울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하라 료하면 생각나는 게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이다. 몇 편의 사와자키 시리즈를 보고는 그에 매료되었다. 얼마전에 본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데 일본은 탐정사무소가 합법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심부름센터 혹은 흥신소로 불리는데 주로 하는 일들이 바람피운 배우자 뒷조사를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뒷조사 뿐만 아니라 대신 경비를 서주는 일등 아주 잡다한 일도 하는 반면에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일도 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개인의 의뢰가 있어야하겠지만, 경찰과 공조하게 개인적으로 조사하게 되는데, 하라 료의 추리소설 속 주인공 사와자키가 하는 일이 탐정이다.

 

그는 늘 살인사건에 희말린다. 무엇을 조사하다가 누군가를 죽인 사람을 찾는다던가 해서 탐정식 수사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물론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어느 때보면 경찰관보다 오히려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사건을 더 깊게 바라보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주로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탐정을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내가 죽인 소녀』라는 작품에서 사와자키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한 소녀의 유괴사건이다. 전화를 받고 그곳에 도착했지만 사건 의뢰를 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가 사와자키에 전화를 걸었고, 유괴된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돈 6천만엔이 든 가방을 주며 제발 딸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건때문에 사와자키는 인질범으로 몰려 경찰에게 잡히고 유괴범은 다시 전화를 걸어 와 사와자키에게 돈을 운반하게 한다. 경찰은 사와자키를 유괴범들과 한패로 보고 그를 의심하고 사와자키는 답답할 뿐이었다. 유괴된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던 외삼촌이 사와자키에게 이 사건에 대한 다른 의뢰를 맡기게 되면서 새롭게 조사를 시작한다. 

 

늘 유괴사건에 대한 의심은 주변 사람부터 하게 된다. 무슨 원한을 산 적은 없는지. 아니면 돈이 필요한 누군가가 없는지. 만약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거나 할때 그 사람은 유력한 용의자가 될 수도 있다. 가이 마사요시의 자녀들에게 맨처음 눈을 돌렸던 것처럼.

 

 

 

그런데 소설속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에 유괴를 하기도 하고, 순간적인 잘못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아주 작은 이유때문에. 순간의 실수를 무시하고 더 큰 죄를 저지르기도 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참 비정하다. 조금만 더 대처가 빨랐더라면 살릴 수도 있는데 그걸 무시한다. 어차피 죽을거라며 목을 조르기도 한다는게 더 큰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사라진 소녀의 오빠인 요시히코가 하라 료의 작품에 나와 사와자키의 조수로 나오던데, 이 사건이 요시히코와의 인연이었나 보다. 탐정사무소를 함께 시작했던 와타나베의 안부글이 적힌 종이비행기. 휴대폰이 없어 전화사무소 안내 서비스를 받는 등 지금과는 다른 아날로그적 감정이 물씬 풍겨났다. 

 

결말 부분이 씁쓸하다. 사건을 감추기 위해 탐정과 다른 사람들을 끌여들여 새로운 사건을 계획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충격적이다. 어쩌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인가. 비정하다 못해 잔인하다. 우리 인간들의 다른 한 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