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빛의 일기 - 상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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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을 TV앞으로 이끌었던 드라마가 있었다. 수랏간의 궁녀로 있다가 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로 국민 배우가 되었었고, 이웃 나라로 수출까지 되어 꽤 많은 인기를 누린 배우가 이영애다. 이영애라는 배우가 사임당 역할로 나온다고 해서 많은 팬들은 기대했다. 기대했던 마음이 컸던 탓일까. 막상 드라마가 뚜껑을 여니 생각보다 심심했고, 다른 드라마에서 나오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내용이 때로는 식상하게까지 느껴졌다.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데, 드라마 특성상 배우가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겹치게 되어 제대로 스토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런 탓인지 생각보다 인기를 누리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조금은 외면을 받았던 듯 하다. 지나치듯 드문드문 본 드라마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었고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아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 원작 소설이 사실 재미가 없다. 배우의 연기와 외모, 긴장을 부르는 장면들 때문에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데 비해 소설이 심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사임당과 이겸의 러브스토리가 좋았기 때문일까. 이 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오히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었고, 과거와 현재, 앞과 뒤의 맥락이 제대로 이해되었다.

 

 

배우 이영애는 과거 조선시대의 사임당과 현재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는 인물을 맡아 연기한다. 현재의 인물은 서지윤이라는 이름으로 교수 임용을 위해 민정학 교수 밑에서 그의 뒤치닥 거리를 하고 있다. 민 교수는 안견의 <금강산도>가 진품인지의 여부를 놓고 연구하는데, 볼로냐 학회에서 민 교수로부터 내침을 당하고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다. 몇백 년 전의 과거의 기록이 있는 미인도와 서적을 발견했던 것이다. 안견의 <금강산도>가 가짜라는 것만 발견하면 자신의 미래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어린 소녀 사임당. 헌원장에 안견의 <금강산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그림을 보고자 월담을 하는데 그것을 본 이가 바로 소년 이겸이다. 이겸과 함께 시와 그림에 대해 논하며 서로에게 다가가는데 이들은 서로 혼약을 맺었다. 출세에 눈이 먼 민치형에 의해 운평사에 머물던 유민들을 죽게 한 자도 그였으며, 의성군 이겸을 구하기 위해 사임당은 이원수와 혼례를 올린다. 그후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 신명화에 의해 시와 서화에 띄어났던 사임당을 그녀의 남편 이원수는 무척 질투를 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이원수를 비루한 남자로 그리는데, 이는 사임당을 더 돋보이기 위함이 아니엇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에서도 나왔지만, 서지윤과 한상현에게 민 교수가 부리는 횡포는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제자의 작품을 가로채는가 하면 쓸모 없다고 느꼈을때 과감하게 내치기도 하는. 어떻게든 교수가 되어보려는 제자는 지도 교수의 횡포에 말없이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모습을 그렸다.

 

사실 원작인 드라마에 관심 없었는데, 소설을 읽고났더니 드라마도 궁금해졌다. 같은 시점으로 이어지기에 드라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윤은 안견의 <금강산도>의 진품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사임당의 일기가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까지 흘러가게 되었는가. 아마도 짐작하기에 이겸이 조선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던 것 같은데, 그 내막이 궁금하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하는 바가 없지않지만 말이다.

 

스쳐가듯 본 드라마에서 이영애가 운평사 고려지를 만들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전의 드라마 「대장금」에서 요리를 만들던 모습과 흡사했다. 또한 사임당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망이 살아나는 송승헌의 진한 눈빛 또한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되니 드라마의 내용이 더 궁금해진다. 이번 주말엔 「사임당 빛의 일기」 드라마나 다시보기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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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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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글자들이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한 글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거의 두 글자로 된 음절들을 사랑했다. 책의 제목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휘파람 소리를 내어보았다. '휘'라고 소리를 내어 발음을 해본다. 휘파람처럼 여운이 있는 글자다. 한 글자로 된 음절 속에서 이름 끝에 따라오는 여운을 음미해 본다. 바람소리처럼, 누군가의 부름처럼, 휘라는 글자가 나에게 다가섰다.

 

단음절로 된 글자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글자로 다른 글자에 기대에 사용하는 글자들의 제목이었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라는 제목을 가진. 단음절로 된 제목 앞에서 우리의 주변에서 보았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조해 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여운을 남기고 우리의 머릿속을 부유한다. 단음절의 제목을 새기고, 그 속에 깃든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이렇게 소설로 나타난 글들에서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휘」 라는 단편에서, '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자신을 두고 떠난 부모를 찾는다. 악(樂)이라는 이름자가 들어간 아버지. 그래서였을까. 그가 '악'하고 소리를 낼때마다 사라진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찾겠다고 나간 어머니 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때, 제 이름 마냥 바람이 되어 사라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볼 수도 없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인은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노인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창틈으로 들어와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이름 없는 바람이었다. (22페이지, 「휘」)

 

내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못내 불편했던 단편이 「종」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고, 그러므로 가족에게 혹은 모두에게 종이었던 누이. '누구든 누이를 쳤다'라고 시작한 단편에서 한 사람이 무너질 수도 있구나. 그런 누이를 자신 또한 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는 이의 목소리는 비감에 차 있었다. 어머니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누이는 밤마다 아버지와 함께 잤다. 그런 누이가 더렵다고 느꼈고,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자기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누이. 주인공은 모두의 종이었던 누이가 어느새 누이를 위해 울리는,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기울였다.

 

 

모든 단어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휘라는 단어에 이름이 되지 못해 바람소리처럼 흩어지는가 하면, 또다른 이름이 되어 나타났다. '종'이라는 단어에도 누군가의 종이 되었다가, 어디선가 울리는 종소리의 종이 되었다. 「홈」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책상위에 조금씩 깊에 패여가는 홈과 가정을 나타내는 홈이 이중적 의미로 나타났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의 교실, 전교 십 등 안에 들지 못한 십일 등의 자살 소식에 이어 십 등의 자살이 이어졌다. 이제 구 등 차례인가. 언제부턴가 십일 등의 책상에 조그맣게 홈이 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이 지나갈수록 홈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볼펜이 들어갈 홈에서 점점 커져 다른 것도 끼워넣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홈은 깊게 패어버린 마음의 상처인가, 동시에 집안의 아늑함을 나타낸 것이었던가.

 

 

우리는 종종 동물이 인간을 바라보는 세상을 소설 속에서 경험한다. 「개」 라는 단편에서도 개가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았다. 개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외국인 아내를 둔 할배와 며느리뻘이라 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엄마. 그리고 진구라는 아이가 있는 가족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혹시나 도망갈까봐 집밖에 못나가게 하는 할배. 할배를 피해서 창고에 짐을 싸놓고 나가길 주저하는 엄마. 점점 자라 반항의 시기를 겪는 진구.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개의 시선을 바라볼 수있다.

 

그녀가 들려주는 연애가 한낱 블로그에 연재하는 이야기였음을 나타내는 「못」과 한 소녀가 장난으로 떨어뜨렸던 것들로 인해 비밀을 가진 「톡」, 불면증을 앓고 있는 남과 여의 이야기인 「잠」이 이어졌고, 마지막엔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초」라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소설을 쓴 시점이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세월호에 대해 말했는데, 거짓말처럼 세월호는 인양되었고, 다시 3년전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날들에서부터 간절한 바람으로 지켜보았던 마음,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달았던 노란색 리본이 다시금 보이고 있는 현재다. 조금만 대처를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며, 아직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비수가 되어 날아드는 감정들을 말했다.

 

 

비는 좌절의 상징이다. 우비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내다보면서 나는 더는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베어내고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웠다. 진실을 가리는 차양이 될까 봐 망설여졌다. (247페이지, 「초」 )

 

 

단음절로 된 단어들은 이처럼 많은 뜻을 내포한다.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그러지 않을까.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길은 엇갈리고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지의 길 앞에 있는 것처럼 한 글자로 된 말들은 우리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어두운 공간 속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지만, 모두들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 빛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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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출간 10주년 리미티드 에디션)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3
루이스 캐롤 지음, 김양미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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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이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동화를 읽고 자란 아이와 읽지 않은 아이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동화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동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렸을 적에 동화를 읽고 자란 아이가 커서도 읽었던 동화를 찾게 되므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다. 아이는 동화를 읽으며 상상력을 기르고, 어른은 동심과 추억을 읽는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책은 읽지 않았어도 대강의 스토리는 알고 있을 작품. 루이스 캐럴이 세 소녀들과 피크닉을 간 곳에서 들려준 이야기이다. 책의 앞부분에서도 나오는데, 어린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또다른 이야기를, 또 그 다음의 이야기를 원한다.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게 되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이야기의 한 중간에 있는 양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사랑스러운 소녀 앨리스가 흰토끼를 따라가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는 꽤 사랑스럽다. 동물들과 이야기를 하고 무얼 먹을 때마다 상황에 따라 키가 커지거나 적어지는 경우도 꽤 재미있다.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삽화가 그 이미지를 더해주고 있다. 작은 병에 든 것을 마시다가 집안이 가득차도록 키가 자라서 팔을 창밖에 내놓고 있는 장면은 저절로 웃음짓게 만든다.

 

장갑과 부채를 가져오라는 토끼의 명령을 받으며, 자신의 고양이 다이너에게 명령을 받는 장면 또한 재미있다. 우리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에서 배우곤 하는 것처럼, 앨리스 또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키가 아주 많이 자랐을 때 너무 슬퍼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 웅덩이가 바다인줄로만 알았던 장면도 재미있다. 많은 동물들이 눈물 바다게 빠져 젖은 채로 있자 달리기 시합을 하며 몸을 말리는 장면은 아주 기발하다. 그것처럼 빨리 물이 마르는 경우도 없으므로. 누군가와 시합을 하니 자신이 젖었다는 것도 잊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드로 된 사람들은 또 어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목을 쳐라'라고 명령을 내리는 카드의 여왕. 한낱 카드일 뿐이지만, 카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즐겁기만 하다. 여왕이 목을 쳐라고 외쳐대는데도 사라져 버리는 이들. 또한 여왕이 빨간 장미를 심으라고 말했는데, 실수로 하얀 장미를 심어 열심히 빨간색을 칠하고 있는 파이브와 세븐, 투. 여왕에게 들켜 죽을 위험에 처하자 그들을 구하려는 앨리스는 용감하게 여왕에게 대들기도 했다.

 

 

언니가 읽었던 책이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어 재미없었지만, 이처럼 상상의 나라에서 앨리스는 누군가를 도울 줄도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말을 경청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사람이 많다. 비록 동물들의 말이지만 그들의 말하는 사연에 귀기울일 줄 아는 일들이 살아가는데 굉장히 필요한 일이잖는가. 배려와 경청, 무엇보다 중요한 '용기'를 배울 수 있게 했다. 나의 크기가 작더라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으며, 나보다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함부로 무시하지 않고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출간 10주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다시 나온 작품이라 지난 판본에 비해 책의 판형도 커졌을 뿐아니라 그림도 더 예뻐진 듯한 느낌이다. 소장가치를 높인 책으로 책 속으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 앨리스라는 소녀와의 모험은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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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안아 준다 -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신현림 엮음 / 판미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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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할때 시 한 편을 읽고, 하루를 마감할 때 시 한 편을 읽는다면 우리는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을까. 지치고 힘들때 읽는 시 한 편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다. 짧은 시에서 가슴을 치듯 다가오는 느낌에 우리는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쓰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하다보면 시는 더 깊이 스며든다.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교감이 되어 스며드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최근 시집을 자주 읽게 되었다. 한 장소에 앉아서 한 권의 시집을 다 읽는게 아니라, 어딘가로 이동할 때 비행기 안에서 혹은 차 안에서 시집을 꺼내어 읽었다. 한두 편씩 읽다보면 어느새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한 시인의 시집은 시인의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반면, 여러 시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은 다양한 감성을 느끼게 된다. 엮은 시집의 대부분은 몇 가지의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다. 신현림이 고른 이 시집에서는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엄선한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시는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시의 느낌과 비슷한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준다. 그림을 바라보며 시를 읽는다.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몇 번이고 읽다가 장을 넘긴다. 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도 좋았지만, 내게 생소한 우리나라 시인의 시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 중 제일 좋았던 시가 김광규 시인의 「밤눈」이라는 시였다. 얼마나 좋던지, 몇번이고 다시 읽은 시였다.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이 시가 왜 좋았느냐고 물어보면 특별히 대답할 말이 없다. 하지만 모든 시어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두근거릴 정도의 떨림이 있었다. 겨울밤의 그 시린 풍경이 가슴을 데워주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 시를 제대로 이해했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가슴을 채워주는 그 느낌때문에 김광규 시인의 다른 시가 궁금해졌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도 참 좋아하는데, 여기에 수록된 시는 「발작」이란 시였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는 시다.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奇蹟(기적) 아녀

 

누군가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장을 간다고 했다. 북적북적한 사람들 틈 사이로 걸어가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활기에 저절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시인은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장소인 터미널을 떠올렸나 보다. 삶이 무료할때, 쓸쓸할 때 훌쩍 떠났다 돌아오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시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기억으로 견딜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밤의 고요한 시간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사랑과 감사에 대하여, 그리고 희망에 대한 시를 보며 마음을 위안을 얻는다. 시를 읽으며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잠못 드는 시간, 여러가지 일로 마음이 어지러울때 읽으면 좋을 시다. 마음을 적시고 영혼을 적시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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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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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그저 글을 통해 보는 세상이 좋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 내가 살아보고 싶은 세상. 이 모든 것들이 책 속에 있었다. 때로는 아파하고, 상처로 인해 고통받을 때 위로가 되어주는 글들의 집합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상처를 잊었고, 다른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삶의 방향을 배웠다. 책을 읽은지 삼십 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고, 읽어야 할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제일 좋았던 책은 역시 내가 읽었던 책이 아닐까. 누군가가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을 적은 글에 의견을 표할 수 있는 것도 읽은 책인 경우 할 말이 더 많은 건 당연하다. 그리고 같은 책에 대한 공감이 사람을 더 가깝게도 만든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면서도 누군가가 좋았다는 책 목록을 보게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읽었던 책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메모를 하게 된다.

 

아예 메모장을 옆에 두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과연 뇌과학자가 읽은 책은 어떤 책일까. 독자에게 소개할 만큼 좋은 책일 것이며, 여러 사람이 두루두루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책이어야 할텐데. 책의 첫장에서부터 마음에 들었다. 어떤 글이든 첫 문장이 가장 중요한 법인데, 역시 그의 독서 이력이 먼저 나오게 되니 괜시리 반가웠다. 저자는 신화에서부터 철학, 역사, 과학 서적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도 소개할 정도로 저자의 다양한 독서에 감탄하게 되는데, 얼마전에 읽었던 호메로스의 『오딧세우스』에서부터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와 그가 읽은 책들의 기억을 함께 한다.

 

우리는 소위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 보다는 답변을 내놓는데 급급하다. 어떤 것을 질문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때가 많다. 내가 읽었던 책 이야기도 결국 말하지 못하는 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질문에 대한 준비 작업일 수있다. 언젠가 기계가 질문할 수 있는 위험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보스트룀 교수의 말처럼.

 

꽤 여러 권의 책을 소개하는데, 나는 내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중 꼭 읽어보고 싶은 책 몇 권을 메모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가 그 중 한 권인데, 궁금했지만 읽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도서였다가 저자의 글을 보고는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과학 분야에 젬병인 까닭에 소설이어도 이해하지 못한 면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소개글을 보니 꽤 흥미를 돋우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과학 기술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이라는 건 둘째 치고 공상과학 소설이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소설이라고 해야겠다.

 

 

오래전에 영화로도 보았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영화를 보았을때나 원작으로 읽었을 때에도 그저 그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정신없이 읽었던 듯 한데, 이 책에서 새로운 걸발견했다. 물론 움베르트 에코가 기호학자이자 중세학자라는 건 책을 읽은 다음이었다. 중세를 연구한 학자답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이 실제로도 존재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 속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역사서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 또한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책은 또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인간의 뇌가 몰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읽는 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책. (74페이지)

 

내가 메모한 책 중에서 전부터 꼭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책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아직까지 읽지 못했는데, 역시 저자는 이 책을 소개한다. 어렵지만 이해하기 불가능하지 않다고 표현했다. 또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 『축복받은 집』에 대한 것도 말했다. 줌파 라히리의 책은 궁금했으나 다른 책들을 읽느라 놓친 책인데, 이웃 분도 왜 그 책을 아직까지 읽지 않았느냐며 강력히 권한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내게 익숙한 작가의 책을 먼저 선택하게 되는데 습관적으로 이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느냐에 관심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생각지 못했던 책의 발견이며, 잊고 있었던 책의 새로운 발견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일이다. 나 혼자 책을 읽는 것하고 책을 읽는 이웃들과 소통하며 책을 읽는 일은 천지차이다. 다양한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한 좋은 책을 선별해서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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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3-30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책만큼 독자의 상상을 풍부하게 불러일으키는 사물도 드문 듯하고요.

저는 다른 책을 통해서 여러 번 ‘어떤 책‘을 거듭 소개받는 경우에, 결국 나중에 언젠가는 그 책을 붙잡고 읽게 되는 경우가 제법 많았던 듯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그런 책 가운데 한 권인데, 읽고 나서도 정말 오래도록 계속해서 그 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답니다. 지금도 가끔씩 펼쳐보는데, 언젠가는 다른 번역자를 통해서 그 책을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답니다.(저는 김종건 교수님이 번역한 제4개역판으로 읽었는데,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김성숙 교수님의 번역으로 읽으면 그 책이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Breeze 2017-03-30 13:10   좋아요 1 | URL
어문학사에서 나온 율리시스 보려고 했었거든요. 동서문학사 판도 괜찮으려나요? 율리시스는 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역시 이번에도 읽고 싶은 마음에 메모했습니다.
다른 번역으로 읽으면 또 새로운 느낌이 있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