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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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읽는다는 건 한 사람의 생애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평전이 나왔다는 건 그 사람의 생애가 굉장히 특별하다는 것. 한 나라의 거대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는 것. 작가들로부터 탄생한 수많은 평전이 존재하지만 문익환 선생의 평전을 읽는다는 건 가슴뿌듯한 일이다. 세계에서 오로지 한국만이 분단 국가다. 햇볕 정책으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가 조금 좋아지는 가 싶다가 얼어붙은 정국이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고 지금처럼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는 경우도 드물다. 통일이 올까. 통일이 아니어도 통일된 상태와도 같은 교류가 있다면 이것 또한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통일의 간절한 염원을 담았던 인물이 문익환 선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때 뉴스에서 떠들석하게 나왔던게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었다. 그의 통일을 향한 마음으로 방북했으리라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방북후 구속되었고, 구속된 사진이 실려 그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았을 뿐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를 잊고 있었다. 단편적인 사실은 기억한다. 배우 문성근이 문익환 선생의 아들이라는 것. 재야에서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김형수 작가가 쓴 『문익환 평전』이 전부터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문익환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이 출간되니 반가울 뿐이었다. 책의 뒷 부분은  꽤 많은 분량의 사진이 들어있다. 그가 태어났던 북간도에서부터 생의 한 페이지가 차례로 실려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으로 그의 생을 훑어보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가슴이 북받치는 감정을 느꼈다. 그의 육성을 듣는 느낌이었다. 

 

『문익환 평전』을 읽는다는 건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것과도 같다. 1918년에 태어난 문익환은 윤동주, 송몽규와 함께 자랐다. 일본의 핍박을 받았던 일제 강점기, 나라를 위해 독립을 외쳤던 독립군의 활약들이 문익환의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 그의 어머니 또한 아홉달 된 그를 업고 독립을 위한 만세 운동을 나갔다고 하니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감동이 밀려 온다.

 

삶은 흐르는 물과 같다. 삶의 현실은 어디선가 끝없이 샘솟는 강물처럼 흘러와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의 관계들을 재편해놓는다. 자만에 찬 전위들은 낙오의 길을 가고 선지자를 열심히 뒤따르던 이가 홀연히 전위가 된다. (312페이지)

 

 

삶은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다. 생生은 명命이다. 살려면 살고 말려면 마는 것이 아니라 살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 따라서 생명은 불가피하게 자라려고 하는 힘을 갖는다. 생명의 마음, 생명의 본능은 내일을 지향한다. 생명은 '지금 있는 것'이면서 '장차 있어야 할 것에 대한 꿈'을 내포하고 있다. (329페이지)

 

통일을 위해 앞장섰던 그가 목사인 건 다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 역시 목사의 아들이었으며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성서 공동번역위원으로 성서를 번역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으며 우리말 풀어쓰기에 앞장섰다. 또한 분신자살한 전태일의 뜻을 이어 많은 학생들이 기성세대에 대한 항의로 삶을 외면하자 그들에게 향한 언어는 감동이다.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  그때는 청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을 달리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저자는 문익환 목사 보다는 문익환 선생이라는 호칭이 더 맞다고 표현했다. 성서를 번역하며 믿음을 강조했던 목사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통일을 위해 앞장섰던 민주 투사이기도 했으니 맞는 표현같다. 약자의 편에 서서 민중들을 사랑했고 그들과 함께 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써왔던 사람들 중에 신을 섬기는 성당의 신부들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사 직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한 일이다.

 

다시금 평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세계의 눈이 우리를 향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써왔던 문익환 선생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태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한국과 북한의 정상이 포옹을 하는 장면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역사의 한복판에 서서 민족을 위해 앞장섰던 문익환 선생의 삶의 궤적을 읽는 일이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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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4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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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에 출간된 여행서적을 읽는다는 건 책이 쓰여진 시대를 안다는 것. 과거의 기록이지만 현재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에 우리는 감동하고 다시 여행에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방랑이라는 말 자체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뜻한다. 후지와라 신야의 400여 일간의 방랑의 기록이자 동양 여행기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한 겨울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여행은 앙카라, 이슬람, 콜카타, 티베트, 버마, 치앙마이, 상하이를 거쳐 홍콩과 한반도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향했던 여정의 기록이다.

 

그의 기록을 보자면 후미진 뒷골목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번화한 도시보다는 후미진 뒷골목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폈다. 사창가의 뒷골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민낯을 찍었다. 가슴을 드러내는 사진도 마다하지 않았다. 창녀들의 벗은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섹스어필하다기 보다는 오늘을 사는 그네들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식당에서 손님의 옆자리에 앉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거구의 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식당측으로부터 손님의 접시가 비워질때마다 그에 대한 수당을 받는다. 먹고 살기 위해 손님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여자. 그게 신기해 자꾸만 접시를 그 여자 쪽으로 보냈던 후지와라 신야의 호기심을 엿볼 수 있었다. 장사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또한 음식을 먹어치우는 그 여자에게서 삶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다. 

 

후지와라 신야는 한 겨울의 서울, 돼지 머리가 진열되어 있는 시장 한복판에서 순대와 간을 먹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 전에 택시를 타고 오면서 들었던 한이 서려있는 듯한 읖조림이 판소리라는 것. 판소리는 전라도의 음악이라는 것. 판소리를 듣고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방문한 시기가 1981년의 서울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1981년 서울의 시장은 남루하다. 치열하게 몸싸움하며 달아났던 창부와의 사투에서 어떤 처절함을 엿보았다. 눈내린 한 겨울 서울의 모습은 어쩐지 그 시기 만큼 시린 모습으로 다가온다. 서울을 소울(영혼)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그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길을 걷는 자'였고 보고 느낀 것들을 '보고하는 자'에 불과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알아차렸을 텐데, 나는 지난 1년 동안 누구나 들고 다니는 평범한 카메라 한 대와 렌즈 하나만 써서 대부분의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도 사용하지 않았다. 삼각대는 기계의 다리지 내 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477페이지)

 

그가 방랑했던 장소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 도시의 풍경들에서 드러나는 장면들. 때로는 감추고 싶은 장면일지라도 그가 머물렀던 시간에의 사유로 비춰졌다. 때로는 여행자에 의해 그 도시의 민낯이 드러나는 법이다.

 

고지대 산사에서의 며칠을 묵었던 그의 기록을 보자. 40세가 넘어서도 더이상 승려를 할 수 없다며 떠나는 자들. 열두어 살 먹은 소년 승려의 이탈. 한번 나간 자는 다시는 승려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떠날 수 밖에 없는가. 그저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또한 막지않은 산사에서의 기억은 마지막 노승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모든 것을 통달한 자의 모습이 이렇던가. 작가가 이만 산을 내려가야겠다고 했을 때 누운 채 그를 바라보는 승려의 사진 한 장에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진다. 산다는 게 이런 것인가. 많은 것을 체념하고 살다보면 이런 얼굴이 될 것인가.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만나듯이

여행에도 빙점이 있다.

여행 초기의 뜨거웠던 피는 식고

마침내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얼어붙는다.

눈앞에 무엇이 나타나든 시들하다.

 

(중략)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어쨌든 사귀어보라. (514~515페이지)

 

인간에게 실망하다보면 다시는 인간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또 마음을 여는 건 인간때문이다. 다시금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그. 사진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루한 인간이든, 그들이 창녀든, 시장 사람들이든. 다시금 인간에게 마음을 여는 그의 마음을 우리는 그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다.

 

그는 그저 '길을 걷는 자'라고 표현했다. 남루한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그의 글에서 삶의 한 부분을 엿보았다. 일상을 떠난 가까운 여행지에서 이 책을 읽었다. 작가처럼 여행의 기록을 사진과 함께 남기고 싶다. 오래도록 읽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 그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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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05-3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이런 게 나왔군요... 구판이 집 구석 어디에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아마 없을 것 같은데...뭐 또 있다고 해도 신판구판 같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어쨋든간에 살 궁리만 하고 있는 홍돈입니다.... 일단 장바구니로.....ㅎㅎㅎ

Breeze 2018-05-31 21:20   좋아요 0 | URL
구판 있으면 읽어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구판 있으면 신판도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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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다작을 하는 작가도 없다. 수많은 작품들을 써왔고, 여전히 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

계절에 맞게 출간된 『눈보라 체이스』는 설원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쫓고 쫓기는 레이스를 펼친다.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한국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을 비롯해 스피드 스케이팅은 꼭 챙겨보고 있는데, 이와 맞춰 출간된 탓인지 역시 재미있는 레이스를 보는 듯 했다.

 

소설은 세 가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살인 누명을 쓰게 된 대학생 와키사카 다쓰미와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 고스기, 온천있는 스키장의 마을 사람들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먼저 다쓰미는 한 스키장에서 여자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예쁜 여자라 그녀를 '여신'이라고 칭하며 잘해보고 싶었으나 그녀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름도, 어디에 사는 지도 확실치 않는 그녀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 살인 누명을 벗을 방법은 그녀 '여신' 밖에 없었던 것. 다행히 고글을 벗은 탓에 그녀의 얼굴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다쓰미에게는 법학과 출신의 친구 나미카와가 함께 해 그의 증인이 되어줄 여신을 함께 찾는다.

 

다른 한편으로 고스기의 시선을 다루는데, 계장의 지시하에 살인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다쓰미를 좇는다. 그가 묵었던 숙소에 찾아가 그의 흔적을 찾는 한편, 그들의 차에 잠깐 동승했던 여자가 밝힌 GPS 위치 때문에 다쓰미 일행을 쫓는다. 스노보드 동아리 멤버였던 다쓰미의 사진을 받아 그들을 찾아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키장을 운영하는 온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들은 스키장을 홍보하기 위해 결혼식 행사를 하게 된다. 그곳의 공연 연출가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다쓰미가 보았던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물방울 무늬의 스노보드 복을 입은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형사들은 온천마을 스키장에서 다쓰미 일행을 쫓고, 어떻게든 형사들을 피해 자신의 증인이 되어줄 여신을 찾아야 하는데, 자신들의 뜻대로 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람들,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은 꽤 흥미로웠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여신을 찾는 부분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었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느 소설들과는 다르게 반전이 없다. 독자가 예상했던 대로 귀결되는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느른한 결말이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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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 외 7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1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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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처음 만난 건 『워싱턴 스퀘어』였다. 한 여성의 결혼과 유산 상속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남성 작가임에도 여성의 입장을 섬세하게 표현한 글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작정했으나 여태 읽지 못했고, 이번에 현대문학에서 나온 헨리 제임스의 단편집을 읽게 되어서 좋았다. 무려 여덟 편의 단편집이라는 것. 그동안 읽고 싶었던 「나사의 회전」과 「데이지 밀러」까지 수록되어 있어 무척 기분좋은 독서였다.

 

일단 「나사의 회전」은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다. 콜린 퍼스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것 같은데 책을 읽고난 뒤 영화를 보고 싶어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영화로는 어떻게 그려졌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실망감을 감추고 그 다음 작품을 읽으려고 했으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작품이었다.

 

유령이란 게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나사의 회전」속 가정교사는 정말 유령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신경 쇠약증에 걸려 헛것을 본 것일까. 유령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일까. 유령을 믿지 않지만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없다. 지난 연휴때 비소식이 예보되었음에도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캠핑을 떠났었다. 저녁부터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까. 잠을 청했다가 놀래서 깼다. 꿈 속에 어떤 젊은 엄마가 나타나 사진 석 장을 내밀며 한 장만 골라달라고 했다. 그때 느꼈던 게 죽은 아이의 사진이로구나 했다. 그때가 새벽 3시 30분경이었는데 옆 텐트에서 자고 있었던 여동생이 비명을 질렀다.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그때 생각했던 게 우리가 야영을 했던 곳이 무덤이 아닐까 했다. 여동생 또한 한 아이가 텐트 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유령이 있다는 건데. 

 

 

 

단편 중 「제자」와 「나사의 회전」에서 가정교사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느껴지는 건 가정교사는 아이들을 훈육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무척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돈을 주지 않아도 제자 곁에 있었고, 무심한 그의 부모를 피해 달아날 생각까지 했다. 이 모든 게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사의 회전」에서 보면 스물두 살의 여성인 가정교사는 저택에서 보이는 유령들 때문에 아이들을 보호하려했다. 혹시라도 그 유령들이 아이들이 데려갈까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가정교사의 역할과 의무, 아이들을 대하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양탄자의 무늬」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작품속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소설이다. 작가는 평론가들에게 명쾌한 단서를 준다고 여기고 있으나 평론가가 느끼는 단서와 작가가 의도한 단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 어떤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즐거움이 줄어들었다. 저자의 힌트를 따라가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 책들에 대한 지식을 직업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명예로우리라고 생각했다. (309~310페이지)

  

작품들이 지닌 전반적인 의도, 진주알 들을 꿰는 줄, 묻힌 보물, 양탄자의 무늬(346페이지)를 아는 일은 지난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평론가라 할지라도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를 따라 여행을 많이 했던 작가의 이력 답게 여행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품고 있는 주인공들도 만날 수 있었다. 「네 번의 만남」과 「데이지 밀러」 혹은 「제자」라는 작품에서도 여행자들을 주인공으로 했다. 여행중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가정교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과 꿈에 그리던 유럽 여행을 떠났다가 미술학도인 사촌에게 여행자금으로 모아둔 모든 돈을 주고 만 여성의 이야기가 「네 번의 만남」 이었다. 주인공 남자가 그토록 염려했건만 어리석은 행동이 빚은 결과물이었다. 또한 「데이지 밀러」에서도 미국인 여행자 데이지 밀러의 이야기를 한다. 다소 자유분방하거나 바람둥이로 표현되지만 자신만의 감정에 충실했던 데이지 밀러였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 또한 결국 그 나라, 그 도시의 관습에 따라 평가된다는 내용이었다.  

 

경제적 궁핍을 해결하고자 모델 일을 하려 했던 모나크 소령과 그 부인에 관한 이야기인 「실제와 똑같은 것」은 사람은 바꾸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중년」에서는 새로운 소설을 펴낸 유명한 작가가 절벽 산책길에서 자신의 책에 열광하는 젊은 길동무로 인해 열정을 다시 찾은 이야기였다.

 

헨리 제임스는 여성의 섬세함, 작가로서의 고뇌, 가정교사라는 직업, 유령의 존재 유무에 대해 깊이 파고든 작가로 여겨졌다. 가장 의미있었던 작품이 「나사의 회전」과 「양탄자의 무늬」였다. 유령의 존재와 작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쓰는 가, 그에 대한 질문을 건넸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때때로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 글을 썼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내가 느껴지는 감정대로 읽기는 했지만 답답함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책을 읽는 행위는 스토리에 대한 즐거움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다. 얼마만큼 작가의 의도를 이해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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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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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는 좋아하지만, 사랑이 떠나갈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는 약간 멀게 느껴졌다. 그저 과거의 이별을 생각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견디는 시간이 너무도 아픔에도 나한테는 어느 한 순간, 그랬던 적이 있었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에게 사랑이 이토록 멀었던 것일까. 수많은 사랑이야기를 읽지만, 이별에 대한 건 언제나 안타깝다. 사랑의 상처를 안고 그 시간을 견뎌봤기에 그렇다. 하지만 아직도 사랑이 아픈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그에 몇 퍼센트는 이별을 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너무 가까우면 이별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 상처받는 나를 발견했기에 그렇다. 덜 상처받기 위해서는 덜 사랑을 줄 것.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 것. 이렇게 다짐함에도 늘 이별을 맞는 마음은 아프기 그지 없다. 내가 잘못을 했건 하지 않았건 이별 그 자체가 아프다는 소리다.

 

적당한 거리감은 인간관계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상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가장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어요. (17페이지)

 

이별을 잘하는 법을 말한 글을 만났다. 꽤 직설적으로 말한다.

남남으로 돌아가는 게 이별이에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과거의 자신과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습니다. (57페이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 ' 이 점만 고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실낱같은 희망, 남

이 보기엔 절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사소한 기대감이 바로 미련의 본모습이에요. (67페이지)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글에서처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언젠간 연락해주겠지 하는 기다림, 이런 게 미련이라고 말한다. 밤늦게 술마시고 그에게 전화하는 것도, 언젠가는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애타게 매달리는 것도 자기애가 아닌가. 사랑은 한 사람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해야 비로 사랑인 것이다. 일방적인 감정은 깨지기 마련이다. 이미 식어버린 마음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한번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마는 것처럼. 이별은 그런 것이다.

 

 

 

오늘을 살지 않으면 현재는 보이지 않아요. 과거에 살기를 멈춰야 드디어 현재에 눈뜰 수 있습니다. (111페이지)

 

헤어진다는 건 잔혹한 일이에요. 사귈 때는 서로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별에는 필요 없거든요. 어느 한 쪽이 "더 이상 안되겠어" 라고 말하면 그냥 거기서 끝인 겁니다. (중략) 남아 있는 정을 싹둑 잘라 버리고 비정해질 것. 그게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119페이지)

 

이별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은 디제이 아오이의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것 만큼 현명한 방법이 없다.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갖고 있으면 자신만 아플 뿐이다. 하루쯤 어쩌면 사흘쯤 아픈 뒤에 털어내려고 해야 잊는 법이다. 어느 순간 문득문득 떠오르겠지만 과거 속에 묻혀 두어야 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꺼내보는 게 현명하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곧게 일어설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197페이지)

 

아주 진부한 말이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처럼 정답도 없다. 이별을 했을 때는 무슨 그런 말이 있느냐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역시 시간이 약이었다. 하루하루를 견디고 한 달, 두 달을 견디면 서서히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이따금 꺼내어 보는 것까지는 나무라지 않는다.

 

사랑을 할때는 이 세상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고, 이별할 때는 오직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다른 누구도 필요치 않다. 오직 나만을 생각할 것. 그렇다보면 어느 새 이별이 덤덤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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