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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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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에 걸친 소설에 대한 심오한 작업.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업이란 어떻게보면 지난한 일일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저 밑바닥에서부터 다 내보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 자신의 이야기 뿐일까.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출발한다. 감추고 싶은 비밀마저도 파헤쳐야 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나 고통등을 나타내야 한다. 글로 써야하는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못내 하고싶을것이고, 가족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소설가의 모든 기억이 다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볼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은 때로 굴절화된 시선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실제 일어난 일들보다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듯. 우리의 모든 기억이 맞다고 볼수는 없다.

 

  책의 제목이 왜 『익사』일까. 누군가 물에 빠져 죽었단 말인가. 고통이 너무 심해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혹은 늪에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는 뜻일까. 우리가 미처 내보이지 못한 마음 저 밑바닥 심연을 만나게 되는 소설인가 했다. 그렇다. 한 인간의 어렸을 적의 기억때문에 기억속의 어린아이인 자신이 물에 빠진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는 일이 반복되어 꿈으로 나타난다. 꿈은 매번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의 익사, 그걸 바라보는 자신. 아버지와 함께 배에 타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컸던 탓일까. 늘 어릴적 코기의 모습으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꿈을 꾸었던 소설가가 아버지의 죽음후 60년이 지난 즈음 익사 소설을 쓰고자 한다. 소설가가 된후 익사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한 편의 익사 소설을 쓰다 말았고 이제 마지막일수도 있는 익사 소설을 쓰고자 한다. 

 

  '익사 소설' 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나'로서 쓰기 시작해 강 아래 물살에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다가 드디어 이야기를 끝낸 소설가가 단번에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그런 소설' (14페이지) 이라고 말했다. 또한 '익사 소설'을 쓰기 위해 수련을 계속 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어머니 사후 10년이 지난 때 드디어 '익사 소설'을 쓸 때가 다가왔다. 어머니의 유언으로 익사 소설을 쓸 수 있는 모든 자료가 들어있는 '붉은 가죽 트렁크'를 여동생으로부터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머물렀던 '산속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마 코기토는 설레는 마음으로 '산속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붉은 가죽 트렁크'를 열어 드디어 '익사 소설'을 마무리 할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일흔이 넘은 작가인 코기토는 '산속 집'에서 어머니의 유품인 '붉은 가죽 트렁크'를 기대감에 차 열어보았다. 그가 익사 소설을 쓸 수 있는 만큼의 자료는 없었다. 그 속엔 아버지가 읽었던 세 권의 책이 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소설은 익사 소설을 쓰려는 코기토가 산속 집에 머물며 '붉은 가죽 트렁크' 속의 책을 보며 소설의 자료를 찾으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여동생 아사로부터 '혈거인'들에게 '산속 집'을 연극무대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 혈거인의 연극무대를 위한 작업을 위해 우나이코와 아나이 마사오가 찾아와 코기토를 거들었다. 혈거인들이 세우려는 연극은 코기토의 작품 전체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해 연극을 만들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붉은 가죽 트렁크'에서 기대했던 것이 좌절되고 코기토는 '익사 소설'을 더이상 쓸수 없게 되었다. 그랬다. 포기했다. 그리고 연극무대를 위한 산속집으로 혈거인들에게 내주고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장애를 가진 아들 아카리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만을 듣고 음악을 만드는 아카리. 언제부터 등허리쪽의 고통을 호소했고 병원에 갔던 날 아카리가 그의 소중한 악보에 낙서를 해놓은 것을 보고, '너는 바보다' 라고 한마디 한 후에 아카리와 코기토의 사이가 벌어졌다. 아카리는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공간에 틀어박혔다. 아내가 암으로 투병을 하게 되고 간호사였던 아사가 아내를 보살피게 되며 코기토는 아카리와 함께 다시 산속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혈거인의 새로운 연극무대를 위한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고, 역시 우나이코가 그들을 챙겨주게 되었다.

 

  새로운 연극을 꾸미는 우나이코에 대한 기억속의 상처를 들으며 코기토는 어렸을적 코기의 모습과 마주했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코기.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던 코기.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던 코기. 그리고 아들 아카리에 대한 마음. 어떤 식으로든 아카리와 화해를 하고 싶었던 코기토의 모습이 과거와 현재의 시간속에서 혼재(混在)해 있었다. 코기토가 머물고 있던 산속집은 우나이코의 곪았던 상처를 터트리며 아물게 되는 시간, 어린시절의 코기와 아버지와의 화해의 시간, 일흔의 아버지가 된 코기토와 마흔이 넘은 장애 아들 아카리와의 화해의 시간이었다. 이 모든 상처와 고통들의 위로의 공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실제로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떻게든 그 위기를 버티려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여전히 이런 글 조각 하나가 의지가 되고 있다고. (348페이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익사』를 읽는 일은 나에게도 지난한 시간이었다. 나마저도 저 깊은 강물 속의 강물결이 되어 버린듯 했다. 코기를 산으로 올려 보낼 준비도 하지 않았던 엄마가 쓴 시에서처럼. 돌아오지 못할 강물결이 되어 버린 듯 했던 것이다. 과거와의 시간에 안녕을 고하고 현재의 시간에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게 되는 것. 『익사』는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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