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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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책을 읽을때 고요한 시간 속에서 온전히 집중해 책을 읽었다. 최근의 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집중에 방해되는 가요보다는 팝음악을 듣는다. 거의 이십 년만에 스마트폰 앱으로 듣는 '배캠'을 시작으로 팝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제대로 된 뜻을 많이 모르기 때문에 책에 더 집중을 하는지도 모른다. 새롭게 다가드는 음악들에 독서하는 시간을 더 즐기고 있다.

 

 

온통 음악을 들으며 읽은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9년 만의 신작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출간하기 전부터 우리 나라 출판사의 과열 경쟁이 있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만으로도 홍보효과를 누리지 않겠는가. 나 또한 이렇게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하였으니. 또 신작 소설집이 나왔다는 말에 벌써부터 읽을 생각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인 아들녀석의 기대감에 부응할 수 있는 책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답게 소설은 아주 흡족했다. 전에 읽었던 소설집 『도쿄 기담집』이 그의 에세이처럼 읽혀졌다면, 『여자 없는 남자들』은 그의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장편소설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면과 필자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절하고도 조화롭게 써 있었다. 또 우리나라에서만 볼수 있는 단편 「사랑하는 잠자」가 실려있지 않는가.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는 일, 갑자기 암으로 죽어버린 아내를 추억하는 일, 참 행복하고도, 슬프고, 아련한 시간인것 같다. 무뚝뚝한 여자 운전사, 미사키의 침묵에도 편하게 대사 연습을 할수 있었던 가후쿠가 미사키의 침묵이 편하게 느껴졌는지 죽은 아내를 추억하게 된다는 이야기 「드라이브 마이 카」.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일들을 말하게 되는 건 상대방의 침묵이 어느새 편하게 느껴진 이유일 것이다. 아내와 잠을 잤던 다카스키와 아내 이야기를 하며 친구가 되었던 일들을 얘기할수도 있게 되었다. 책 속에 그런 문장이 나온다. 아내가 왜 깊이가 없는 그 남자를 사랑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이처럼 알수 없는게 아닌가.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늘 개사해서 부르곤했던 기타루와의 이야기를 다룬 「예스터데이」가 두번째 단편이다. 소설속 화자 '나', 다니무라는 찻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기타루를 알게 되었다. 기타루에게는 초등학교때부터 사귄 여자친구 구리야 에리카가 있다. 기타루는 삼수생, 에리카는 대학생, 다른 이와 사귀는 것보다 '나'에게 사귀어보는게 어떻겠냐는 말에 다니무라는 에리카와 만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독립기관」은 「예스터데이」와 화자가 같은 다니무라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이다. 「예스터데이」에서 다니무라도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독립기관」에서의 다니무라도 글을 쓰는 작가이다. 다니무라는 성형외과 의사인 도카이의 이야기를 한다. 기교적인 삶을 살았던 도카이, 애인이 있는 여자와 남편있는 여자와만 연애를 하던 그였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 싫어해 그처럼 서너명의 여자를 한꺼번에 만나기도 했던 그가 사랑에 빠져 버렸다. 남편 있는 여자였는데, 확실하게 선을 그을줄 아는 그였지만,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은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지배당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데, 그것이 노력만으로 되던 일인가. 책 속에서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하는 '독립기관'이 있다나. 그것이 거짓말인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독립기관이 알아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천일야화』의 왕비 셰에라자드처럼 하바라와 성교할때마다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는 여자를 그는 「셰에라자드」라 불렀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이야기를 끊고 가버렸던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하바라는 기다리곤 했다. 자신의 전생이 칠성장어 였다는 소릴 하고나서는 고등학교때 학교를 빠지고 빈집털이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좋아하던 남학생의 집,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남학생의 집에 들어가 남학생이 쓰던 연필을 하나 들고 나오며 자신의 것을 그의 책상의 맨 아래칸 서랍에 넣어두고 왔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열병처럼 남학생의 집을 몇번 털었지만, 어느 순간에 언제 열병을 앓았냐는 듯 식어버렸던 이야기였다.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211~212페이지, 「셰에라자드」중에서)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어 이혼을 하고, 홀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있는 이야기 「기노」가 겪는 기이한 경험들과 감정들이 짙게 배어있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했지만, 갑자기 여자가 죽거나 사라져버리면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는 이야기. 누구라고 이름을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를테면 열네 살의 같은 반의 여자아이였던, '엠'이라고 칭해보는 여자를 추억하는 내용은 화자가 엠이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밝히지 않아서 마치 꿈속의 여자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될 마음들을 담았다. 여자를 잃고난 남자들의 심정, 지우개 반쪽을 오래도록 간직했던 것처럼 그 여자 '엠'에 대한 회상을 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327페이지, 「여자 없는 남자들」중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오마주인 「사랑하는 잠자」는 어느날 그레고르 잠자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고 하루키의 여섯 편의 단편은 모두 중년의 나이인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사랑, 그 속에 홀로 남은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내게로 오는 사람을 막기도 하고, 상대방에게로 가고 싶은 마음을 겉잡을 수 없지만, 어느 순간에 마치 차가운 얼음처럼 식어버리고 만다.

 

 

현실의, 홀로 사는 중년 남자들이 느끼는 외로움, 고독 들의 내음이 짙게 배어있었던 소설이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담겨져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유한 감정들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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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9-01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전 사놓기만 했어요.
님 리뷰 읽으니 막 읽고 싶어집니다.
행복한 한주 되세요~~~~